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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41화) 나의 자서전 -넷 번째 좌충우돌 신혼생활기 부분에서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09. 7. 10. 21:52

 

(41화) 나의 자서전 -넷 번째 좌충우돌 신혼생활기 부분에서


그날 이후, 주인 할머니는 내가 무엇을 돕고 싶어도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거부하셨고, 내 타고난 호기심은 무엇을 했다며 잦은 실수로 시골 동네 아주머니들의 입방아에만 올랐고 관심거리만 되었다.

그나마 나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토끼마저 잊어버렸고, 토끼 대신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 대화할 정도로 외로움은 극도로 친구와 가족이 너무 보고 싶었다.

부산 번화가 음악실이나 음악 다방에서 많은 친구와 음악과 수다로 커피가 그리웠고 한 번쯤 가고 싶었지만, 아주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공기놀이하다가 데모 군중이 던진 돌덩이에 귀를 맞아 그때 달팽이관이 약간 손실되어 울렁거리는 것은 무조건 심한 멀미에 시달려야 하는 상태로 그 당시 하루가 소요되는 그곳에서 부산까지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혼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내 어린 시절은 외할머니가 많이 돌봐 주셨다.

외할머니는 제멋대로 고집 피우는 외손녀에게 늘 말씀하셨다.

< 우리 애씨는(애기 씨 줄임말) 지금은 누구도 고집과 버릇 고칠 사람이 없으니, 다음에 인간 호랑이 신랑을 만나야만 고칠 질 거야.>

나는 외할머니 늘 하시는 말의 마법에 걸린 것일까? 

하루를 해바라기 같은 그를 기다리는 것이 오직 낙이었는데, 그는 되려 약혼식 날에 결혼하면 나를 완전히 바꾸어 놓겠다는 약속처럼 말괄량이 길들이듯이 군대 훈련병처럼 엄격하게 수건도 끝과 끝이 딱 맞게 접어야 했고 옷걸이에 걸린 옷마저 조금도 흩트림 없어야 할 정도로  완벽하고 깔끔한 성격으로 얼렁뚱땅 대충 하는 것에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내 고집으로 멋대로 살아 거만, 천적을 만난 뒤? 내 모든 행동에 제동을 걸렀고 잘난 척했던 옛 전 내 모습은 서서히 두 날개가 꺾인 체, 어느 날부터인가 아는 이 하나 없고, 오고 갈 수 없는 먼 시골 유배생활 하면서? 나 자신도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을 만큼 불쌍한 모습으로 그가 퇴근하며 곧바로 세숫대야에 발 씻을 물을 대령하고 옆에서 수건을 두 손 받쳐 들고 서 있어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친정어머니가 부산서 경북 끝자락까지 먼 거리를 오셨다.

친정어머니를 보는 순간은 시집 와서 여태 고생한 것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철없던 딸이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과 그에게 아주 공손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시고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한마디 하셨다.

< 자네, 우리 애가 그사이 왜 저렇게 되었나? 혹시 약혼식 날에  버릇을 완전히 고쳐놓겠다고 하더니...., 너무 심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대충하게. 옛 전에 내 딸같이 않고 너무 불쌍하게 보이네! >

<절대 아닙니다.>

그는 어머니께 변명했지만, 어머니는 이미 아셨다. 덜렁 되는 말괄량이 딸이 그의 완벽하고 깔끔한 성격을 맞추느라 당신 딸이 마음고생을 많이 할 것이라는 것을….

친정어머니와 꿈같은 며칠이 지나고 부산으로 가신 후, 한동안 허탈한 마음으로 보냈었다.

 

어느 날 그는 월급봉투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공무원 월급은 사실 얼마 되지 않은 돈이지만, 스물한 살 어린 나이로 보는 돈은 결혼 전 어머니에게 한 푼씩 용돈을 타 썼다가 월급봉투 돈뭉치는 가슴이 벌렁벌렁 벌벌 떨릴 정도로 엄청나게 많아 보였다.

정말 많은 돈인 줄 알았고 월급에서 반을 뚝 때어 은행 정기 적금을 넣었다.

하지만. 나머지 50%로 다음 달 월급까지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결혼 몇 달 전만 해도 평생 편찮아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내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내 하고 싶은 것만 어떻게든 하고만 내가 아닌가?

인간은 자기 경험한 것만 알 수 있듯이 결혼하고 보니 비로소 어머니의 고생으로 우리를 힘들게 키우신 것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고 철이 드는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생활비로 어쨌든 알뜰하게 살아 보려고 시장에서 싱싱한 고등어와 상태가 좋지 않은 싼 고등어 앞에서 무척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싼 고등어를 사와 먹다가 피부 두드러기가 생겼고 그나마 병원비를 절약하느라 가려운 피부를 마구 끌다가 2차 감염으로 고생도 많았다.

또한, 일반미보다 가격이 싼 정부미를 사 먹었고 배달비마저 아껴 보겠다는 마음으로 먼 거리를 손수레로 빌려서 미숙한 서툰 운전으로 내리막길의 전붓대에 부딪쳐 크게 다리를 다쳐 오랫동안 통증으로 아픈 눈물도 흘려보았다.

무리한 생활비 절약에 그는 몹시 걱정이 되었는지 30%로 낮추라고 종용했지만, 깁스한 내 모습에 한탄하기보다는 억척같은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고, 어쨌거나 끝까지 정기 적금을 꼭 채우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여태까지 살아온 모습에서 점차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감자가 땅에서 수확된다는 것은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전부인 나로서 그와 쉬는 날이며 주인 할머니 밀밭과 감자밭을 도우면 일당처럼 덤으로 받은 감자와 곡식과 또한, 동네 사람들도 도우며 얻어온 여러 식재료는 생활비에 많은 보탬이 되어주었다. 

어느덧 그렇게 사는 시골 생활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수확한 누른 통밀로 전통 결혼식 날에 맛있는 잔치국수를 먹었든 기억은 여태까지도 그런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동네 어느 집 제사가 끝나면 제사 음식을 밤새 동네 사람 모여 함께 나누어 먹었든 기억도 나의 신혼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시골 장날이면 작은 축전처럼 약장수 구경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군중 속에 나 역시 비집고 들어가 보았다.

그날은 구충제(해충 약) 선전을 하고 있었다

< 속이 메스껍고…. >

그날의 약장수 설명은 나를 두고 하는 것 같았으며 지금 생각해보면 약국에서 정품으로 파는 약이 아닌 불명의 위험한 약을 겁 없이 사게 되었다.

< 아저씨 저도 주세요.>

그것이 임신 증세라는 것을 나로서 전연 상상도 못했고 어처구니없이 멍청하게 먹고 말았다.

얼마 후, 이상한 낌새로 세상이 거꾸로 뒤집는 듯이 어지럽게 돌았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면서 구토와 배가 뒤틀리면서 괴롭게 경련으로 아파져 왔었다.

또 다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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