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열세 번째 새로운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선생님 헬스클럽에 불이 났어요 빨리빨리 오세욧" 휴대폰에서 숨이 넘어갈 듯이 황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온몸에 소름 끼쳐 몸이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
오늘 내 꿈속에서나 일어난 일이 정말로 현실 속에서 불이 났다니, 기절초풍할 일 같았다.
남편도 꿈에서 불을 보며 좋은 꿈이니 신경 쓸 것 없다고 했다가 정녕 이게 현실이라니....
우린 잠시 멍해진 상태에서 벗어나 빠르게 정신 차리고 남편은 서둘러 먼저 뛰어가 자동차 시동을 걸 테니 제발 안달 내지 말고 마음도 진정하고 자동차 쪽으로 오라며 급히 뛰어 내려갔다.
그랬는데, 이게 무슨 나의 이상한 조화인지 "급하게 서둘지 말아라" 어떤 메시지를 받은 양 순간 내 마음이 아주 침착하게 차분해지면서 빨리 뛰어가야 할 자동차 방향이 아니라 정반대 편 법당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법당 안에서 각각의 부처님에게 3배씩 절을 하였으며 심지어 떨어져 있는 칠성당 법당까지 올라가 3배씩 절을 올리게 되었다.
이런 행동은 내 마음을 내 멋대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에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었다.
한편, 남편은 자동차 시동을 급하게 켜고 날 기다렸으나 도무지 나타나지 않으니 혹시, 불이 난 것에 충격받아 다리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는 줄 알았다며 숨이 차게 급하게 법당까지 올라와 보니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부처님에게 차분하게 절을 올리고 있는 내 모습에 그는 너무나 충격적이라 아연실색했단다.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남편은 법당에서 보았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상한 내 행동에 어리둥절 영문을 몰라 아무래도 정신에 이상이 생긴 줄 알았는지 날 힐끗힐끗 조심스러운 곁눈질로 훑어보며 "당신 괜찮아? " 거듭 물었다.
헬스클럽에 도착하니 이미 불은 꺼져 있었고. 소방차들은 마무리 단계에 신문사 기자는 에어로빅복 차림의 회원들 모습을 찍고 있었다.
몹시 놀란 선생들, 회원들, 동네 분들은 웅성웅성 옹기종기 모여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우르르 모여들면서 한마디씩 난리이다.
< 선생님 왜 이리 늦게 오셨어요. 천만다행히 아래층 인쇄소 사장님께서 일찍 신고해 주시어 초기 진화해 큰불을 막았지만,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헬스클럽 실내로 들어와 둘러보니 화제 소화기로 뿌려진 거품 마룻바닥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있어 꿈속 장면의 파괴된 도로에서 뿜어 나오는 시꺼먼 진흙탕을 연상시켰고, 자욱한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기침을 연달아서 하였다.
난 태어날 때부터 폐활량이 매우 약해서 약간의 연기를 마셔도 호흡곤란을 느낀다.
불이 난 시발점은 맨 끝 위치한 부엌이며 커피 포드를 꼽은 전기선 합선에 의해서 불꽃은 전기선을 타고 올랐는데 바로 위층 옥상에는 대형 가스통이 2개가 있었으며, 부엌 옆 휴게실에는 부탄 가스통이 든 난방용 난로도 있었다.
만약 가스통이 폭발했으며 뒤편 근접된 아파트까지 대형 사고 날 뻔한 찰나에 그야말로 신이 도운 것처럼 그 순간 위기일발에 가까스로 모든 것이 정지된 것이다.
휴게실 가스와 옥상의 가스는 꿈속에서 나를 억지로 태우려고 했던 꽃 상례 차와 검정 영구차가 생생하게 겹쳐 연상시켰다.
소방서 조사를 마친 후에 헬스클럽 최초 목격 신고자인 아래층 인쇄소에 찾아가 매우 고마움을 표시했는데 그분은 상황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 인쇄기 기계에서 나는 냄새인 줄 알고 살펴보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바깥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니 위층 헬스클럽 제일 끝부분 부엌에서 연기가 밖으로 피어나오는 걸 발견하고는 놀라서 119에 먼저 신속하게 화제 신고하고, 이 층으로 뛰어 올라오니, 다들 불이 난 줄 모르고 신명 나게 에어로빅 춤을 추고 있어 지금 불이 났으니 빨리 나오라고 다급하게 소리쳐 회원들이 급하게 대피했고, 바로 소방차가 도착해 천만다행이지 내가 조금만 늦게 봤으면 아주 큰 대형 인명 사고도 날 뻔했어요>
인쇄소 사장님은 침을 튀기길 정도로 잔뜩 흥분된 높은 억양의 목소리로 말씀하시어 난 거듭 감사하다는 말과 고마움에 내 나름의 보답도 하였다.
오늘 이런 예언된 꿈을 꾸지 않았다면 난 평소처럼 헬스클럽에 출근했을 것이고, 급한 내 성격으로 주인의식에서 불을 끄느라 몹시 허둥거리다가 진퇴양난에 빠져 더 위험한 행동을 분명히 했을 것이고, 많은 연기를 마셔다가 호흡 질환에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예사 꿈이 아닌 것 같아 다행히 헬스장으로 출근하지 않고 절로 갔었고, 그곳에서 어떤 힘에 이끌러 법당으로 들어가 절을 하느라 시간 연장 늦추지 않았다면 내 호흡 질환에 아주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아찔했던 순간은 지나가고, 불이 난 뒷수습 보수 공사로 헬스클럽은 잠시 문을 닫게 되었는데 보수 공사 기간에 평소 지병 없이 매우 건강하셨다는 인쇄소 사장님이 밤 중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단다.
그 소식에 우리 회원들도 매우 놀라 "설마 저승사자가 대신해서 신고자인 아래층 멀쩡한 인쇄소 사장님을 혹시나 데리고 간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소문 말이 떠돌았다.
시간은 다시 흘러가 모든 것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었다.
이 건물에서 우리 헬스클럽이 이 층 전체를 사용하고, 아래층에는 여러 개의 상점이 즐비하게 있었다.
인쇄소가 문 닫고 새로 개업한 옷 가게를 비롯해 그 외도 치킨집, 식당, 복권 가게, 미용실 등등 있었다.
우리 건물 주인은 이 건물 이외도 다른 상가 빌딩을 가진 부자인 할아버지는 진작 본인의 집은 없다.
여름이면 건물 옥상에서 2평 남짓한 작고 비좁은 낡은 컨테이너에서 살다가, 추운 겨울이며 온갖 잡동사니들이 잔뜩 쌓여있는 곰팡내가 나는 건물 지하에서 허름한 침대 하나 갖다 놓고 홀로 사신다.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 헬스클럽에서 더러워서 버린 이불, 낡은 냄비도 가져다가 사용하고, 담배도 길바닥 꽁초를 주워서 피운다.
그렇게 궁색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 오시는 분도 제대로 못 본 것 같았다.
얼마 후에 미국에서 온 50대 중반의 아들이 할아버지를 이어서 건물 관리하였는데 할아버지가 사셨던 것처럼 여름은 옥상 컨테이너에서, 겨울은 할아버지가 사용한 지하 낡고 허름한 침대에서 할아버지처럼 집 없이 사는 것이었다.
새로 온 주인 아들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의사 생활을 하셨다는데 현금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서 흑인 강도가 침입해 부인은 총에 맞아 돌아가셨단다.
그 충격으로 미국 생활을 접고, 건물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대학생 자식들은 미국에 두고 홀로 귀국해 할아버지가 사셨던 것처럼 아주 허름한 추임새에 보는 이마다 "큰 건물 두 채에서 나오는 월세만 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왜 저렇게 거지처럼 살까? 그러니까 미국에서도 현금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부인이 흑인 강도에 총을 맞아 죽은 것이 아닐까? 세입자들은 그렇게 수군거렸다.
어느 날, 건물 주인이 찾아와 아래층 미용실에서 우리 헬스클럽 에어로빅 음악 소음 때문에 장사 방해된다고 불평해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였으니 같은 건물 세입자끼리 서로 잘 지내보라고 그런다.
여자들은 머리 스타일을 매우 소중하게 여겨 마음에 들지 않은 미용실에는 잘 가지 않은 성향이 있다.
미용실 개업하면 위층 여성 전용 헬스클럽에 많은 여성 회원들이 있어 많이 올 거라고 매우 큰 기대를 했었지만, 생각과 달리 그렇지 못하니 심통인지 건물 주인에게 시끄러운 음악 소음 때문에 손님이 없어 폐업할 지경이라며 볼 적마다 주절주절 불평을 늘어놓으니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나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몇 번을 가 보았으나 왜 손님이 없는 것인지 곧,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방문해야 했으며 또는, 맛있는 간식이라도 사서 자주 얼굴을 비추어 어색한 관계를 해소하니 그 이후로 건물 주인에게 불평이 사라졌다고 한다.
어느 날도 간식을 사 들고 미용실에 들어섰는데, 나이 드신 여성 손님이 승복 차림으로 머리 파마를 하고 있었다.
<잘 오셨네요. 보살님, 이분은 우리 위층 헬스클럽 관장님이고요, 이분은 저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유명하신 보살님이신데, 다음에 딸내미 결혼 궁합을 보고 싶을 때는 이분에게 물어보세요. 우리 자식도 이분에게 궁합을 보아요>
<아~ 예~>
난 눈인사를 나누었는데,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분 같았으나 다소 온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파마하고 기다리자니 매우 지루한데 위층 헬스클럽 구경이라도 해도 될까요?>
< 아 ~ 예~ 그러세요. >
함께 헬스클럽을 올라와 한 번 둘러보시다가 나에게 생년월일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 무슨 일을 해도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그런 사주 운을 타고났는데, 왜 하필이면 돈이 안 되는 헬스클럽을 경영해요? 이왕이면 돈이 되는 사업이나, 큰 식당이라도 경영하지 그랬어요>
< 그런가요! 아마도 이것도 제 운명인지, 몰라도 제가 운동을 무척 좋아해서요>
그날 그렇게 해서 그분을 알게 된 첫 인연이었는데, 훗날 내가 몹시 큰 어려움이 부딪칠 때마다 "괜찮아 앞으로 좋아질 거야"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셨다.
남편과 난, 우리가 처음 만날 당시 그는 병장 제대 후 사법고시 공부할 적이며, 난 여고 졸업한 그해 봄날이었다.
그 당시 그는 날 아주 철없는 말괄량이 이미지가 짙게 깔려있어, 그 후 결혼하고도 여전히 날 믿지 못해, 지금까지도 나에게 의논 없이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진행하면서 본인이 알아서 잘할 테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성향이 있다.
요즘 들어서 남편이 갑자기 살이 불어나 걱정스러웠다.
그를 처음 만날 적부터 키 176cm에 76kg으로 항상 변함없이 여태까지 잘 유지하고 관리해 왔으나 근래에 들어서 어떤 근심이 생겼는지 만사 귀찮아하면서 유난히 움직임을 싫어하더니 체중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 날에 식사 중에 전혀 뜻밖에 음식을 흘리면서 먹기에 내가 한마디 했었다.
< 그렇게나 유별히 깔끔 떠는 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드나 봐요. 음식을 다 흘리고 먹네요>
< 요즘 내 머릿속에 뭔 벌레 같은 것이 기어 올라가는 것처럼 그런 증상이 가끔 생기더라고>
내가 가장 후회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그때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어 진작 빨리 병원 가서 진단을 받아야 했었다.
평소 우리 가족은 매우 건강해, 아이 4명을 키울 때도 어쩌다가 한 아이가 감기에 걸려 시럽 약을 먹으면 다른 애들이 그 약이 부러워 시럽 한 숟가락만 달라고 할 정도로 그다지 병원에 갈 일 없이 살았다.
나 역시도 헬스클럽을 경영하니 항상 내 주변에는 건강한 사람들만 둘러싸여 있으니, 건강에 자만심이 가득 차 있어,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진정 몰랐던 시기이었다.
하루 전날 저녁만 하여도 남편은 많은 치킨을 잔뜩 사 왔기에 난 뭘 이렇게 많이 사 왔느냐? 그랬다.
<유명한 맛있는 치킨집이라 우리 가족만 먹지 말고 헬스클럽 선생님들 치킨도 함께 사 왔어>
평소 과묵한 성격에 말은 없지만, 나보다 더 따뜻한 배려심 많은 남편이었다.
다음 날 저녁 타임의 에어로빅 시간이 막 시작될 무렵에 남편 사무실 동료부터 전화가 왔었다.
남편이 퇴근 시간에 사무실에서 갑자기 쓰러져 119구급차로 00 종합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고 있다는 급한 전화이었다.
막 시작한 시끄러운 에어로빅 음악 소리에 난 처음에 뭘 잘못 들었나? 할 정도로 내 귀를 의심해 다시 반문하다가 화들짝 놀라, 정신없이 허둥지둥 종합 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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