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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78화) 열한 번째 월세방에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9. 10. 1. 13:30


(78화) 열한 번째 월세 단칸방에서 생긴 이야기



인생을 살다 보면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도 있겠지만, 삶의 굴곡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도 많은 것 같았다.

월세방 앞에서 이삿짐이 트럭에서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비싼 자개 가구에 놀라며 서로 비밀스러운 눈길을 나누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고~ 잘 살다가 폭삭 망해서 이곳 단칸 월세방에 이사 왔나 봐! 저런 비싼 가구를 보니 쯧쯧…>
<말 안 해도 이 집 사정 다 ~ 알겠네!>

이전 아파트에서 큰 주택으로 이사 올 때는 남편 사업이 한참 번창할 적이라 우리나라 자개 명인 공예가 국전 작품 전시회를 다녀온 남편이 그분의 작품에 반해 매우 비싼 가구임에도 불구하고 안방의 장롱, 삼층장, 화장대, 문갑 등등 가구 일체를 몽땅 사들었다.
그 후 남편의 사업이 실패를 했을 때도 피아노를 비롯한 비싼 수입 가구 기타 등등 모두 처분했어도 안방 가구는 필요한 점도 있겠으나 내가 무척 아끼는 애착심도 있어서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이번 단칸방에는 둘 자리는 없었지만, 방에 달린 무용지물인 점포가 있어서 어차피 필요한 이불, 옷가지들을 넣어둘 가구도 필요해서 처분하지 않고 가지고 왔었다.

이삿짐에서 이런 가구를 본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괜한 구경거리 되었다며 큰딸이 불평하였다.

<그냥 다 처분하고 왔어야 했는데…저 봐~ 동네 아줌마들이 뒤에서 모두 쑥덕쑥덕하잖아>


그렇게 해서 빈 점포 안에 길이가 매우 긴 장롱을 공간상 같이 붙일 수 없었고 낱개로 하나씩 떨어져 놓았고 그 외 여러 가구는 포개어 올려놓아 겨우 한 사람만 다닐 수가 있었다.

창고에 첩첩이 쌓인 가구를 보니 갑자기 친정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친정어머니는 평생 편찮으신 아버지 때문에 고생만 하셨기에 당신께서 못 해 본 여자의 소망을 첫딸인 나에게 대리만족으로 늘 기대하시어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비싼 자개 가구에다 손수 챙기고 오신 기름으로 빤질빤질하게 광택을 내시고는 매우 흡족하시어 가구들을 쓰다듬어보면 좋아하셨는데 그런 가구들이 지금 허접한 창고 점포 안에서 짐 더미 체로 높이 쌓인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속이 상 할실까?

내 걱정보다도 어머니 마음을 헤아려 보니 더 마음이 아팠다.


이사 와서 제일 불편한 점은 화장실이 따로 없는 것이다.

더구나 한밤중에 일어나 유일한 출구라고는 방과 이어진 점포를 지나서 완전히 밖으로 나와야 바깥에서 주인집 대문 열쇠로 열고서 마당 안으로 들어와 바깥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니 추운 한밤중에 화장실 한번 다녀오면 잠이 다 날아가 버리고 한동안 잠을 못 이루는 날도 많았다.

또한, 집 밖으로 나올 적에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마주칠 때면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는 그 시선도 더욱 부담스러웠다.

이곳에는 대학 졸업반 큰딸과 중학생 아들과 내가 살았고, 이번에 대학교 입학한 셋째 딸은 둘째 딸이 대학교 기숙사에 나와 두 자매가 함께 서울 옥탑방 한 칸 월세를 빌려서 살게 되었다.

두 군데 생활비에 3명의 대학생 학비 그리고 중학생 아들…

학비만 생각해도 걱정이 태산과 같아 앞날은 캄캄하였으나 공부도 때가 있는 것이라 그렇다고 아이들 대학교를 중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비로소 남편 덕분에 그동안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과, 지금은 그의 빈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에어로빅장 일반 회원들의 푼돈 회비로는 겨우 밥이나 먹을 수 있어도 세 딸의 대학 등록비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 시기에 내가 깨달은 나름대로 철학이 생겼다면 그것은 명예, 권력, 돈 그런 것은 영원한 내 것이 될 수 없는 일시적인 바람 속에 먼지일 뿐이고, 자식들에게 진정한 유산이란 오직 자식들 머릿속의 지식을 넣어주는 것만이 영원한 그들의 재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은 막상 들어도 내 현실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두 군데 월세, 두 집 생활 유지비, 세 명의 대학교 목돈의 등록비, 에어로빅장 월세와 에어로빅 선생들의 월급, 그 외 기타 유지비 등등...

현재 월세에 사는 이 형편에서 대학생 3명에 더구나 서울 유학하는 2명의 학비와 생활비 부담은 아주 헛된 희망일뿐 누가 보아도 나를 미친 짓으로 볼 상황이라 누구와도 상담과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모든 무거운 짐을 내 어깨에 짊어질 생각하니 눈앞이 까마득했었다.


이럴 때 독수리 교훈을 생각해 보았다.

사람 수명과 비슷한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도 생의 중간쯤이 되면 생사의 고비를 겪게 되는데 40 살 정도가 되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도 다 낡고, 날개도 낡아 무거워 처져 날기가 힘들어 사냥할 수 없을 때는 이대로 죽음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새 삶의 여정으로 쇄신할 것인가? 그 고비의 길목에서 독수리는 자신과의 처절한 목숨을 건 사투를 하고자 홀로 바위에다 자신의 부리를 50일간 마구 쪼아서 낡고, 구부러진 부리가 다 닳아질 때까지 안간힘으로 괴로운 과정을 감내하고 나면 다시 닳아진 독수리의 부리 자리에는 매끈하고, 튼튼한 새로운 부리가 나오게 된단다.

새로 나온 날카로운 부리로 자신의 무딘 발톱과 낡은 무거운 깃털을 하나씩 뽑아내는 과정 아픔을 견디어

150 여일을 감내하면은 독수리는 다시 재생된 발톱과 깃털로 힘차게 기상해 새로운 삶을 4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한다.

"독수리도 살기 위해서 힘든 선택을 하는데 난 아이들의 엄마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이 고비에서 이겨내야 해! 미래가 보이지 않은 캄캄한 터널 안이지만, 어딘가 분명히 빛이 보이는 출구는 있을 거야!"


다음 학기 아이들 대학교 등록비 목돈이 없어 하마터면 대학교도 포기해야 할 막연하고 불확실한 떠러지 절벽의 찰나에서는 몇 번이나 절망감에 빠졌으나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니 어두운 터널 안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의 빛이 보였다.

학원에 에어로빅 선생이 되고자 하는 교육생들이 연이어 많이 들어와 목돈이 마련되면서 간신히 딸들의 대학교 등록금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학기 등록금이 나올 때도 놀랍게도 그 시기만 되면 교육생들이 연이어 들어와 등록금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겨우 넘길 수가 있었다.



전원주택에 있는 진돌이와 고양이 두 마리가 걱정되어 좋아하는 간식을 사 들고 옛집에 찾아가면 진돌이는 처음에는 나를 매우 반기며 꼬리를 흔들다가 갑자기 원망의 눈초리로 변해서 화가 난 듯이 짖어대다가 심지어 물려고 할 정도인데 그러던 어느 날에 다시 갔을 때는 진돌이와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현재 사는 집 주인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지난번 내가 방문한 그다음 날부터 진돌이와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런다.

아마도 우리를 찾아서 집을 나간 것 같다면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 방에는 진돌이가 한 번도 와 본 적도 없는 곳이라 도저히 그 말이 믿을 수 없었지만, 날마다 진돌이와 고양이들 걱정이 되어 전화해도 그날 이후부터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진돌이와 두 마리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친구들과 처음 가는 낯선 절에 가게 되었다.
이 절에 계시는 큰 스님은 우리나라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분이라 법회 때 이외는 뵙기 힘든 분인데 그날따라 우리들은 큰 스님에게 차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이가 지그 하신 큰 스님께서 손수 그리신 작은 그림을 우리 5명에게 한 점씩 선물도 주셨다.
큰스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어떤 인연으로 불교에 첫 입문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셨다.

친구들도 불교와 첫 인연에 대해서 말을 하게 되었고, 나 역시도 불교 첫 인연이 그날 특별했다는 말씀들이자 유독 나에게만 나의 생년월일과 남편 생년월일을 물어보셨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나의 전생을 들을 수가 있었는데 어느 고전 영화 한 장면을 보는 착각마저 들었다.

난 전생에서 무희이었고, 남편은 큰 절에서 스님이 되고자 공부하는 학생 스님이었단다.
그 큰절에 나라님도 참석한 큰 행사가 있었는데 난 무희로서 춤을 추게 되었는데 그 관중 속에 학생 스님인 남편이 춤을 추는 나를 보고는 흠모하면서 결국 절 돈을 훔쳐 나를 찾아 떠나게 되면서 전생에서 큰 죄를 짓게 되었단다.

그 후 우리는 다시 현생에서 또다시 만나게 된 것이란다.

처음 그를 본 신문사 시험장에서 애당초 만나면 안 되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딱 맞다인 빚쟁이를 만난 것처럼 그를 본 순간에 매우 소스라치게 놀라서 손에 든 볼펜마저 떨어뜨린 정도로 놀란 적이 있었다.

그도 시험장에 들어서는 나를 처음 본 순간에 어디서 많이 본 낯익은 얼굴이라고 하였고 그 당시 그는 법학 고시생으로 공부할 때이었다. (15화 참조)


난 뜻하지 않게 그에게 큰 죄를 짓게 만든 장본인이 되면서 그에게 평생 죄인이 되어 절절매면서 살 것이며 또한, 그의 뒷바라지로 마음고생 무척 할 것이라 하셨다.

남편도 전생에 지은 죄 갚음이 현생에서 처음에는 많은 돈을 많이 가지게끔 해주고는 그 후는 돈을 모두 거두어 버리게 함으로써 돈으로 많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 하셨다.

오늘 처음 뵙는 큰 스님이 내 현실을 손바닥을 보는 듯이 말씀하시어 듣는 순간 내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친구들은 현재 내가 처한 경제 사정은 잘 모르지만, 과거부터 무용한 점과 현재도 에어로빅 선생인 점과 유독 내가 남편 앞에서 절절매고 사는 것을 잘 알기에 매우 놀라며 한참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친구들도 자기네 전생을 듣고 싶어 했으나 큰 스님은 더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도 내 전생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며 난리들이었다.

< 넌 우리와 달라서 옛날부터 남자를 아주 우습게 여겼고, 타고난 한 성깔 하는 네가 어째서 남편 앞에서만 절절매며 바보처럼 사는지? 그 이유를 이제는 알겠네!>

< 옛날 음악다방에서도 네가 그랬어. 오늘 신문사 시험장에 갔는데 아는 사람이 시험감독이라서 시험 치르온 것에 부끄러워 안절부절하며 시험감독 얼굴을 계속 피했다고! >

< 그래 맞아! 나도 그런 말이 기억나!>

친구들은 지나간 내 옛이야기를 상기하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전생이란 정말 있는 것인지? 신기하다고 그런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불현듯 큰 스님에게 들었던 내 전생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난 어릴 적부터 무용하면서 대중들 앞에서 위문 공연 춤을 추었고, 현재에어로빅 선생이 아닌가?

예전에 우리 어머니도 우리 집에서 빨래를 접어 챙겨주시면서 내 화려한 색깔의 에어로빅복을 보시고 그런 말씀도 하셨다.

<아무래도 넌 전생에 무희였나? 결혼 전에도 알록달록한 무용복에서 지금도 온통 얄궂은 옷들뿐이네!>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어머니는 평소 교훈도 남에게 돈 빚지고 안 갚으면 후생에서 돈으로 고통받는다며 그런 말씀도 잘하셨고 그래서 남에게 해로운 업보를 짓지 말라고 늘 말씀하셨다.

친구들이 말한 것처럼 나 역시도 타고난 내 성격은 매우 유별나 자유분방하고 도전적이라 어릴 적부터 왈가닥, 말괄량이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남자들을 아주 우습게 여겼는데 유독 남편 앞에서만 고양이 앞에 쥐처럼 굽신거리고 절절매며 살았던 지난 일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의 종교도 그랬다.

시가의 종교는 천주교라서 시아버지 장례식 날에 천주 교인님들이 베푸는 매우 헌신적 봉사에 남편과 난 크게 감동을 하고는 그 계기로 우리도 성당에 함께 나가기로 약속하였는데 하필이면 성당 가는 첫날 아침에 평소 한 번도 꿈 이야기가 없었던 그가 너무나 생생한 현실 같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그랬다.
꿈속에서 아주 큰 절 마당에서 많은 스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삭발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데 왜? 오늘 이런 꿈을 꾼 것인지? 꿈이 매우 찜찜해서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던 모든 그와 얽힌 일들…

정말 그래서 그런가? 지난 모든 퍼즐이 다 맞혀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 혼자서 짊어진 아이들 학비 부담과 근근이 살아온 생활고에 지칠 대로 지친 무척 힘들었던 그해가 지나고 다음 해 여름 백중날이 되었다.

시가집에는 남편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시가 큰아버지의 제사를 시아버지 생전에 우리 집에서 큰아버지 제사를 모시라고 당부하시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여태까지 제사를 모시면서 무덤도 알 수 없어 절에다 시 큰아버지 영구적인 나무로 된 영가 위패를 절에 신청해서 모시고 싶어 했었다.

그해 백중날에는 유난히 더욱더 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들었으나 영가 나무 위패와 천도재 기도비는 그해 경제 형편으로는 엄두도 낼 수가 없었지만, 어떻게 무리해서라도 그토록 숙원이던 일을 어렵게 자금을 마련하였고 그해 백중날에는 올릴 수가 있었다.

머리 위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서 백중기도 조상 천도재 법회에 참석하고자 은적사로 향했다.

부처님에게 엎드려 간절히 기도 올리면서 그날 온통 나의 기도는 오직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

"부처님 그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에서 홀로 외롭게 보내고 있나요...? 정말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 큰아버지의 정성스레 위패를 모시고 영가 천도재 기도와 물잔을 올리면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 큰아버지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가 정녕 죽지 않았다며 제발 생사라도 알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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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올린 내 간절한 기도가 그에게 통했는지? 아니면 부처님 혹은 시 큰아버지에게 내가 간절히 올린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인지?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전화벨이 그날 밤 자정이 다 되었을 때 울렸다.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