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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80화) 열한 번째 월세 단칸방에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20. 3. 18. 11:40


(80화) 열한 번째 월세 단칸방에서 생긴 이야기



에어로빅장을 다른 곳으로 다시 옮기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반 사무실을 옮기는 것도 아니고 많은 회원을 이끌고 멀리 이전도 할 수 없으니 주변에서 비워진 넓은 공간을 찾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지만, 막상 있다고 한들 이전하면 투자를 새로 해야 하는데 투자 비용은 현재 우리 집 경제 형편은 단칸 월세방에 사는 처지에 3명의 대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

매달 서울에 있는 2명의 대학생 딸에게 생활비도 보내야 하고, 그리고 새학기마다 등록비 마련에 기타 등등 겨우 전전긍긍 간신히 버티고 사는 현재 내 처지에서 꿈도 꿀 수 없으니 계약 만기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의 심리적인 부담은 매우 커 저만 갔다.


여기 에어로빅장으로 첫 이전했을 때만 해도 아파트 입구의 유도장에서 비워진 오전 시간대를 잠시 빌려서 한 시간만 사용했었다.

그러나 유도 관장은 처음 계약과 달리 회원 수가 많아지니 중간 월세를 갑자기 엄청 인상해서 우리 회원들은 우리가 주는 중간 월세로 본인의 유도장을 공짜로 쓸 작정이라며 화가 난 회원들이 이번 기회에 옮겨버리자며 급하게 이곳으로 옮겨 왔으니 시설 따위는 그 당시 따지지 않았고 이전한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수업도 오직 오전 1타임뿐이라 선생도 필요치 않아서 나 혼자서 가르쳤고 건물 주인도 조용하게 운동하니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 에어로빅장 시설 수준은 아주 형편없었다.

운동하는 바닥도 마룻바닥이 아니었고, 샤워실 시설도 순간온수기 1대에서 사용하는 뜨거운 물로 몇 사람만 사용하면 금방 찬물이 나왔다.

샤워실 수도꼭지도 2개뿐이라 통에 물을 받아서 바가지로 퍼 써는 수준이니 대부분 회원은 흥건히 흘린 땀을 대충 타울로 닦고 자기네 집으로 바로 갔었다.

또한 탈의실도 없다 보니 한구석 코너에다 커튼으로 가를 막 쳐 사용했고, 회원들 물품 수납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서 샤위실 선반 위에 나란히 두고 다닐 정도이었다.



처음은 그렇게 시작했지만, 계속 회원 수가 불어나고 운동 수업 시간도 갈수록 늘어나 오전반 선생이 가르치는 새벽 타임과 오전 1부타임, 내가 가르치는 오전 2부타임, 저녁반 선생이 가르치는 저녁 1부, 2부타임 하루에 5타임 시간에다 쉬는 오후 시간대마저도 내가 직접 지도하는 에어로빅 선생이 되고자 하는 교육생 타임까지 있었으니 건물 주인은 새벽부터 밤까지 온종일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시달려야 했고, 종일 뛴다고 건물 손상에 영향을 준다며 아무리 더 많은 월세를 올려준다고 해도 이제는 돈마저 귀찮다며 무조건 비워 달라는 것이다.

우리 회원들이 이 시설에 오죽했으며 회원들만 바글바글하다며 가난한 "흥부네 집 에어로빅장"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건물 주인이 비워달라는 말에 회원들 생각은 이제는 회원 수도 엄청 많고, 교육생까지 많으니 당연히 좋은 시설로 이전할 것이라 학수고대까지 하니 내 처지는 더욱 난처해져 심리적 부담으로 속은 새까맣게 타서 들어갔다.


어느 날 집에 왔을 때 중학생 막내아들이 혼자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에서 예전 아들 백일기념 사진 밥상이 떠올랐다. 

딸 세 명을 낳고 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남편이 최고로 사업이 번창할 시기라 아들 백일기념상 뒷배경도 우리나라 자개 명인 공예가 국전 작품의 번쩍번쩍한 장롱이 있었고 만찬 백일기념상 위에는 그 당시의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수북한 현금도 쌓여있으니 아들이 들고 있는 숟가락마저도 금수저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의 아들 밥상 뒷배경은 초라한 단칸 월세방 쪽문 부엌 배경만 보였고 공간을 덜 차지하는 양은 접이식 밥상에 들고 있는 숟가락마저도 이제는 흙수저로 보여 동화책 속의 마법사 마법봉에 휘져서 모든 순간이 반대로 싹 변해버린 것처럼 보였다.

아들의 초라한 밥상에서 예전과 비교되어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순간 울컥하였다.

그래서 인생에는 한 끗 앞을 모르고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계약 만기 날짜가 곧, 다가왔으나 뾰쪽한 방법도 없고 조바심만 더해져 불안, 초조했지만, 아무리 안간힘을 쓴들 결론은 뻔했었다.

누가 이 시점에 나를 도와줄 것도 아니라서 지금까지 쌓아온 에어로빅장은 사실 매우 아깝지만, 여기가 마지막인 것 같아서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막상 포기하고 나니 마음도 공허하고 허탈해 심란한 머리를 식히고자 주말에 남편이 있는 분당으로 향했다.


그에게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내 심정을 털어놓았으나 남편은 도움은커녕 늘 그랬듯이 이번 기회로 그만두고 서울로 이사 오란다.

남편의 의견은 두 딸도 서울에서 대학교 다니고 큰딸도 곧, 졸업할 것이니 중학생 아들만 서울로 전학하면 세 군데 갈라진 월세 경비도 한군데 모으면 생활비 절감에다 가족도 함께 모여 살 수 있다면 되려 환영하였다.

남편은 본인의 공인중개사 자격증으로 서울에서 부동산을 개업해서 다시 시작해 보자고 그랬다.

나 역시도 경비 절감과 무엇보다 흩어진 가족을 한데 모여서 살 방법에 동의하면서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 그는 이미 지역 조사를 다 했다며 개업할 부동산 사무실과 우리 가족이 함께 거처할 집도 구할 겸 아침 일찍 그곳으로 향했다.

온종일 개업할 사무실과 이사할만한 남의 집도 구하러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럴수록 우리 회원들 정든 웃는 얼굴들이 눈앞에 밟히면서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몇 년간 오직 나만 믿고 곧, 좋은 장소로 이전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절망감과 배신감마저 들것이라 생각할수록 내 발걸음은 무거워져 뒤처지게 걷게 되었다.

남편은 몇 번이고 내 힘없는 모습을 힐끗힐끗 뒤돌아보는 것 같았다.


다음날 그는 오늘 특별히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이 있다면 아주 고풍스러운 주택으로 나를 데리고 갔었다.

<여기가 누구네 집이에요?>

< 어제 당신 어두운 표정을 보니 사실 내 마음이 편치 않더라. 내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어서 나와 친하게 지내는 증권 회사 직원이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아주 이름난 000 철학관 선생 밑에서 철학 공부했다는 기억이 나 네 선생님을 뵐 수 있느냐? 물었어>

<정말로? 당신이 그런 것도 다 물어보았다고요?>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라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그런 것은 무조건 미신이라고 단호하게 손사래를 쳤던 사람이며 그런 돈이 있으며 차라리 불쌍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던 사람이라 듣고도 내 귀가 의심되었다.

< 어제 집 보러 다닐 동안 네 표정은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어깨가 축 처져 보여 오죽했으면 내가 먼저 물어봤겠어. 그 직원이 자기 스승님은 연세도 높고 건강도 안 좋아 벌써 은퇴하시고 집에만 계시는데 자기가 특별히 부탁해 약속을 정했다며 여기 주소로 가르쳐 주었어 >

믿을 수 없는 뜻밖의 일이지만, 마음도 혼란스러운 찰나에 예전에 일간지, 주간지에서 '오늘의 운세'에서 이름을 많이 본 유명한 분이라서 흥미로운 호기심마저도 사실 있었다.

 

그 집에서 비서인지 제자인지? 어떤 젊은 남자가 거실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그런다. 

잠시 후에 젊은 남자가 서재로 들어오라고 했으나 남편은 이런 곳이 매우 쑥스러운지 본인은 거실에 남아 있을 테니 나 혼자 가란다.

서재 안으로 들어서자 연세가 여덟이 훌쩍 넘어 보이는 나이 드신 분이 안경 너머 나를 바라보면 한마디 하셨다.

<자네는 의사인가?>


(뭐야?? 완전히 아니잖아??)


그분의 한마디에 속으로 매우 실망하고 말았다.

의자에 앉자마자 다시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자네는 의사인가?>

<전 의사가 아닌데요!>

이런 철학관에 오면 먼저 생년월일도 묻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아예 묻지도 않으면서 "자네가 의사인가?" 그 질문만 두 번 하니 유명하다고 소문난 분이 완전한 엉터리 같다는 생각만 들었고 괜히 온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 내가 묻는 말은 꼭 수술칼을 들고 의사복을 입어야 의사가 아니란 거지. 남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의사나 다름없지>

<…>

< 자네는 부자네!>


(이건 또 뭔 엉뚱한 소리람? 지금은 단칸 월세방에 살고 있는데…?)


< 내가 말하는 부자란 자네는 딸이 많구먼. 딸들이 앞으로 잘 되어서 자네에게 큰 자산이 되어줄 거야. 그래서 자네를 부자라고 말한 거야. 그중에 특별한 딸이 자네에게 큰 자산이 되어줄 거야! 자네 딸들 얼굴을 직접 안 봐서 모르겠지만 자네 얼굴에서 보여 > 

물론 딸들이 잘된다는 말에는 부모로서 듣기 좋았으나 딸들은 현재 학생들이라 미래를 지금은 알 수 없는 상태이지만, 당장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대구에서 여태까지 경영한 에어로빅장도 그만두고 무턱대고 서울로 이사 와 앞으로 어떻게 살 게 되는지? 아직도 혼란스러운 내 결정이 정녕 옳은 것인지? 그게 더 궁금하였다.

<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의 생년월일도 안 물어보시네요>

<구태여 그런 것은 안 물어도 자네 관상에서 이미 사주가 다 보여 >

< 그럼 거실에 남편도 와 있는데 함께 관상을 보시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한 사람 얼굴만 봐도 다 알 수 있어.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자네가 알아서 결정해. 내가 조금 전에 두 번이나 말했지. 자네가 의사인지를? 그 말은 자네는 태어날 때부터 천직으로 남의 건강을 책임질 운명으로 타고난 것인데 그 천직을 마다하고 돈을 따라간다고 해도 자네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들 사주라 뭘 해도 돈을 벌 수 있어. 단, 그 대신 천직을 마다했으니 덤으로 받은 자네 건강은 바로 헌납되어 많이 아플 거야. 무엇이든지 하나를 주면 하나는 거두어 가는 것이지. 그러니 돈을 택하던지, 건강을 택할 것인지 그것은 자네 몫이고. 내가 건강이 안 좋아 더는 오래 앉을 수가 없으니 그럼 가 봐 >

그러고 바로 서재에서 나가시어 더는 물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마음만 더 답답한 채 나오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들었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게 되었다.

< 혹시 당신이 이분의 제자라는 증권 직원분에게 내 직업과 우리 딸이 3명이 있다는 것도 말 한 적이 있어요?>

< 아니! 왜 쓸데없이 우리 집 사정을 남에게 말해>

그는 단호하게 말했고 내 생각에도 남편 성격상 우리 집 가정 이야기를 남에게 절대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 그런데 그분이 내 직업이 남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둥, 아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는 없고 딸들이 큰 자산이 되어 줄 것이라서 부자라는 둥, 천직을 마다하고 새로운 사업을 하면 돈은 많이 벌 수는 있겠으나 건강은 매우 나빠져 아프게 살 것이라는 둥, 그러니 내가 알아서 결정하라는 둥, 어제 이미 결정한 부분을 오늘 괜히 여기 와서 마음만 뒤숭숭하게 만들어 더 헷갈려요>

<…>

남편은 어제 내 어두운 표정 때문에 마음이 걸려서 처음으로 본인이 자진해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곳이라 할 말이 없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하였다.


그날 이후 대구에 내려와서도 여전히 마음만 더 복잡했었다.

왜? 평생 멀리하던 철학관에 나를 그곳에 데리고 가서 이 시점에 쓸데없는 시간만 더 허비하게 할까?


( 철학관 분의 말도 뻔한 사실이잖아! 꼭, 천직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운동하면 건강할 것이고, 운동 대신 사업이나, 장사한다면 다른 신경을 많이 쓰다 보면 운동할 때보다 건강을 덜 챙겨지니 아플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런 뻔한 말로 며칠 동안 내가 쓸데없는 고민 했다니! 어차피 에어로빅장은 더하고 싶어도 투자할 경비도 없는데 인제 그만 다 잊어버리고 서울 가서 새로운 삶이나 시작하자!)



그렇게 마음 결정을 한 번 더 다짐한 그 날밤에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었다.

<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당신 건강이 안 좋아진다는 말에 자꾸 신경이 쓰여. 내가 며칠 동안 생각해 봤는데 철학관 그분의 말씀이 맞을 것 같아. 내가 생각해도 당신 성격상 절대 집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고, 또 무엇을 새로 시작한다고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밤낮 막 덤벼들 것이 뻔하니, 당신의 그 지나친 열정 때문에 분명히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이 안 봐도 뻔해! 그럴 봐야 차라리 운동 선택이 더 나을 것 같아. 앞으로 우리 집 경제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당신은 그냥 운동이나 계속하면서 건강이나 챙겨 >

< 엉?? 그럼 서울로 이사 가지 않고 여기에서 계속하려면 다시 이전도 해야 하고 시설도 새로 투자해야 하는데요?>

< 내가 대구로 내려가면 여기 오피스텔 계약금도 뺄 수도 있고, 지금 증권에 투자한 돈도 다 처분해서 당신 투자비에 도와야지…>

남편은 여태까지 내가 하는 에어로빅장에 단돈 10원도 투자한 적이 없었고 더구나 툭 하며 그만두라는 반대만 고집했던 남편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정으로 본인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전부를 나에게 투자해 준다고…?

난 무언가로 쾅 얻어맞은 기분이 되어 혹시 잘못 들은 것인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몇 번이나 되새겨 보아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여기 에어로빅장이 마지막이라며 마무리 단계에서 서울로 이사하리라 생각했던 일이 전혀 예상조차 못 한 뜻밖 남편의 결정에 다시 계획을 서둘러 바꾸게 되었다.

다행히 주변에는 비워진 큰 공간도 있었고, 그가 투자해 준다는 금액과 현재의 에어로빅장 계약금에 친한 지인들마저 서로 무이자로 도와주면서 지인의 소개로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참여하면서 이곳의 공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의논하게 되었다.


새로 설치될 마룻바닥, 통유리 거울, 탈의실, 여러 개 샤워기가 달린 넓은 샤위실, 사우나실, 사무실, 회원들 비품을 둘 공간, 휴식 공간의 바이오 방, 부엌, 그리고 대량의 뜨거운 물이 나올 보이러실까지 설계되었다.

헬스 기구도 서울에 미리 주문하였고, 지금까지 형편없는 허접한 시설의 에어로빅장에서 나름 멋진 여성 전용 에어로빅 헬스장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