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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77화) 열 번째 전원주택에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9. 7. 31. 15:31


(77화) 열 번째 전원주택에서 생긴 이야기



남편의 충격적 편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아직 잠에서 덜 깬 꿈속에서 일어난 일 같았다. 
그의 편지에는 현재 최악의 회사 일로 더는 회사와 집에 있을 수 없는 상태라서 가족과 고3  수험생 입시 시험을 앞둔 딸도 있는데 이 모든 짐을 나에게 떠맡겨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쓰고 또 쓰면서 제대로 끝도 못 맺은 편지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따라 남편은 몹시나 초조하며 밤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뒤적거린 것이 순간 스쳐 지나갔었다.

아찔한 현기증에 매우 당혹스러웠으나 아이들 앞에서 내 불안감을 보일 수 없어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내 표정부터 얼른 고쳐야만 했다.
< 아빠가 요즘 얼마나 힘들었음은 이런 선택까지나 했을까…? 지금은 아빠가 조용한 곳에서 잠시 쉴 수 있게 해드리자. 이러다가 학교 지각하겠어. 어서 서둘러 엄마가 먼저 나가서 자동차 시동을 켜 놓을게 >


아이들 앞에서 당황하며 약한 모습을 안 보이고자 서둘러 나왔지만, 편지 충격은 다리 힘이 풀려 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얼마나 심한 어려움에 부닥쳤으면 이런 선택밖에 할 수 없었을까…? 어떤 나쁜 극단적인 선택만 하지 않으면 돼. 이 위기에서 본인 스스로 정리하고 벗어날 수 있는 숙려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럼 내가 우선 강해져야 해. 난 아이들 엄마니까!"


나 스스로 강한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면서 겨우 아이들 학교 앞에 내려주었다. 
학교에 도착할 동안 아이들도 그사이 많이 성장한 것인지 되려 나를 걱정한 듯이 더는 묻지 않았다.
이런 멍해진 기분으로 어디 조용한 곳에서 떨리는 마음을 정리하고 차분한 생각도 하고 싶었으나 곧이어 시작할 에어로빅 수업 시간이 촉박해 그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내 감정을 억누르고 힘든 처지에서 평소처럼 에어로빅 수업을 해야 하는 내 심정… 



남편의 걱정에 날마다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어 누운 상태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어쩌다가 이 사태까지 왔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혼잣말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았다.

" 어디서부터 그는 잘못된 단추를 끼우게 된 것일까…?"

그래서 지난 온 일을 회고해 보았다.


남편은 처음에는 사법 고시 공부를 했지만, 나를 만나 약혼하면서 그의 첫 번째 꿈을 포기하고 우린 이른 나이에 결혼하였다.

아들에게 실망하신 시부모님은 결혼만 고집한다면 경제적으로 한 푼도 도와주지 않겠다는 약속에 스스로 독립하고자 그 당시 공무원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최고의 성적을 받아 그 특혜로 그가 원하는 곳으로 특별 배치를 받을 수 있었고 청와대를 택하면서 두 번째는 공무원 신분에서 또 다른 큰 꿈도 키웠다.

하지만, 시부모님께서 일본에서 한국 귀환하시면서 대구에서 함께 모여 살자는 부모님 소원에 공무원 사표를 내면서 대구에 내려와 첫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사업에 성공하면서 그때부터 자아가 매우 높아져 자신을 부정하지 못하는 자만심이 그때부터 그를 망치게 한 첫 요인도 있었다.


그 후 공장을 세우다가 민사소송에 오랫동안 휘말리면서 엄청난 손해 본 것을 복구하느라 주식투자를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주식이란 블랙홀에 빨려들어 가면서 또다시 잘못 끼운 단추는 많은 부동산을 잃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거리에 내다 앉을 뻔도 했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부동산 미련으로 공부해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취득해 다시 자리를 잡는 줄 알았다.

어느 정도 다시 경제 안정권에 접어들었지만, 잃어버린 주식투자 실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잘 되는 부동산 일마저 관두면서 다시 공부해 끝내 증권투자 상담사증을 취득하였다.

그 계기로 대기업 증권 회사에 입사하면서 증권 투자상담사 및 증시분석으로 고객들을 상담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남편이 속해 있는 회사가 그 당시 전국 순위에서 상위권으로 올리고자 무리한 지나친 과시욕으로 말미암아 그의 인생도 우리 집 경제마저도 망가뜨리며 현재 이 시련까지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이전에도 내가 묻지 않았는데도 회사 순위가 본인이 입사 후에 큰 노력 해서 순위가 상위권으로 향상되었다며 자랑삼아 득의양양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남편 성격은 학창 시절부터 늘 최고 순위에 만족 추구하는 것을 잘 알기에 저러다가 너무 무리해 잘못되는 것이 아닐까? 내심 걱정한 것이 끝내 현실이 된 것이었다.


다음 날 오전 에어로빅 수업이 끝날 즘 남편의 가장 절친인 친구가 날 찾아왔었다.
남편의 친구는 오래된 주식 투자자 고객이라서 매일 그의 증권 회사에 나가면서 남편의 회사 분위기에 잘 알고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 정보 시대라서 모든 정보를 자유롭게 각종 웹사이트나 앱 등의 서비스로 주식구매나 정보의 습득, 투자 흐름 성향을 분석하며 증권 시황을 확인하는 시대지만, 그 당시만 해도 고객들이 증권회사에서 객장 전광판 쳐다보며 관심 종목을 증권투자 상담사 상담과 추천 종목을 많이 의존한 시절이었다. 
증시가 좋을 때는 그가 추천 종목에 투자해서 시세차익 이득 재미를 본 고객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그는 회사에서 퀄리티가 한층 높아져 많은 고객과 그의 지인들, 심지어 친인척들까지도 그가 추천하는 주식을 사고, 팔면서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

남편은 날로 일취월장 되어 그런 자신감은 그의 이성 판단을 더욱 흐리게 한 것 같았다.

일반 투자 고객들은 주식 시장 흐름에 잘 알고 본인들이 판단하지만, 나이 많은 어르신 소액투자자 중에는 주식의 상향과 원리와 방법을 잘 모르는 고객들이라 그가 추천 종목에 덜컥 투자했다가 만약 잘못되며 대신 원금 책임질 수 있느냐? 묻곤 한 단다.

그런 질문이야 어디 가나 증권회사마다 있는 일이란다.

주식 투자란 성공 확률보다 실패확률이 많은 곳에서 상위권 순위에 눈이 먼 승부욕와 맞다이면서 매일 찾아 오시는 어르신들의 소중한 종잣돈에 믿음을 주고자 그의 무리수는 심지어 원금까지 책임지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각서마저 쓴 것이란다.


그 후부터 나라 큰 경제 위기가 불어 다칠 첫 시기 조짐이 시작하면서 이미 증권가에는 이상한 징후 조짐으로 계속되는 주식 폭락 사태가 지속하였고 이번 사건도 터진 것이란다.
매일 주식 폭락이 시작되니 어르신들은 약속대로 당장 원금을 돌려달라며 책상과 의자. 비품을 뒤엎어 회사 내에서 소리를 지르는 소동이 일어났고, 그리고 그가 추천한 종목을 산 고객, 친구, 지인, 친인척들까지도 그에게 심한 원망이 이어지면서 매일 시달리는 강박감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단다.

어르신들의 소동은 회사 측면에서는 직원의 개인적 일이라 책임 회피하니 그럴수록 더 험악한 소동만 벌어지고, 고객들에게 믿음이 우선인 증권회사 내에서 이런 소동이 길수록 다른 고객들에게 나쁜 이미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시방석 같은 회사에서 더는 견딜 수 없었단다.

그는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사표를 내는 과정에서 그동안 몹시 초조하며 밤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뒤적거린 것에 비로소 납득이 되었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머물면 필히 어르신들은 집으로 찾아와 가족들 앞에서 난동 피울 것이라 어쩔 수 없이 집을 나간 것 같다며 그의 친구가 말했다.

역시나 그의 친구 예상대로 어르신 몇 분이 극도로 흥분해서 나를 찾아왔었다.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 확인되셨는지 집에 찾아와도 소용없다는 소문이 회사에 알려져 그 후에는 그다지 가족에게는 피해가 없었다.

아마도 그도 그런 생각을 해서 집을 나간 것 같았다.

그러나, 매일 해가 지며 바로 집으로 칼퇴근하는 남편이 집에 올 수 없는 것에 난 마음이 아팠다.


유난히도 나에게만 지나치게 구속이 심했지만, 그래도 타고난 성실함은 더할 나위 없는 가정적인 사람이라 모든 면에서 완벽 하고자 늘 노력했으며 칼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은 생활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 지금 어디에서 초췌한 하루를 보내다가 해가 지는 이 시간에는 얼마나 외로울까?
그런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내 마음이 다급해져 손 놓고 회사가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사는 이 집이 그는 전세로 사는 줄 알고 있었지만, 사실 내 집이라 매매할 수 있으니 매매해서 어르신들이 가지고 있는 각서 원금을 만들어 드리고 남편이 돌아올 수 있게 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집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시기는 겨울이며 더구나 나라 경제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으니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 딸의 대학 입시 원서 마감 날이 되고 있었다.

셋째 딸도 둘째 딸처럼 공부를 잘하니 언니와 함께 서울에서 대학교 다닐 수 있게 해 주겠노라 평소 약속했는데 이번 사태가 생기면서 도저히 딸과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았다.

한참 예민한 수험생이 입시를 앞두고 아빠의 가출에 서울에서 대학 다닐 처지가 못 되는 실망으로 이 상태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에 침울한지 시무룩하게 지내면서 그간 좋았던 성적이 갈수록 갈팡질팡해지니 그런 딸에게 진정 미안함이 많았다.


우리 집이 시외 전원주택이니 새벽부터 서둘러 도시락 준비해 아이들 등교시켜놓고, 에어로빅장에서 운동도 가르치고 고3 수험생 딸을 매일 늦은 밤 데려가야 하는 이 모든 일을 그가 없으니 혼자서 해결하자니 피곤함과 늘 잠마저 부족해 잠시 신호등에 정차할 때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거운 눈 곁 풀이 내려와 스르르 잠이 들어 하마터면 위험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 힘든 시기에 친정 가족, 시가집. 친구, 지인에게도 마음 놓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고, 더구나 아이들 앞에서는 더욱 강인한 척하자니 내 그런 심정은 그럴수록 오직 종교에만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어느 날 고3의 입시생 엄마들과 시외에 있는 어느 절에 가게 되었는데 매우 추운 한적한 시골길에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할머니가 앞에 보였다.
왠지 내 느낌에는 이 시간에 이 길을 가시는 것을 보니 같은 절에 가시는 것 같아서 함께 가는 입시생 엄마들에게 물었다.
<저기 앞에 가시는 할머니 걸음이 매우 불편해 보이는데 물어볼까? 00절에 가시면 같이 타고 가자고?>
모두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면 거부하였다.
<여기 좌석도 없고 우리도 꽉 끼어 복잡해 죽을 지경이며, 지금도 지각인데 제발 그냥 가자 >
내가 생각해도 더는 탈 공간도 없었고 늦으니 어쩔 수 없이 할머니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되었다.
운전하면서 내 자동차 사이드 옆 백미러에 자꾸만 멀어져 가는 할머니 모습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리고 5분이나 더 운전하고 왔었지만, 불편한 걸음걸이로 걸어가셨던 할머니가 계속 눈에 밟혀서 결국 내 의지대로 결정해 버리고 자동차를 돌려 할머니 쪽으로 달렸다.
그것으로 뒷좌석에 앉은 입시생 엄마들은 날 원망하는 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었다.
그들은 자기네 의사를 무시하는 내 행동에 불쾌한지 앞으로는 절대 내 자동차를 타지 않을 것이라며 야단들이었다.
아무튼, 난 할머니 곁에 다가와 자동차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 할머니 혹시 00절에 가시는 중이에요?>
< 에이고 그래요~ 안 그래도 다리가 매우 불편하고 기도 시간도 늦어서 날 좀 태워 가지... 그랬는데 고맙게끔 태우러 다시 오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안 그래도 불평하는 엄마들 속에 할머니까지 포개 앉으니 모두 삐친 얼굴이 되어 절에 도착할 때까지 나에게 한 마다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딸의 입시 합격 기도를 해 주실 것이라며 매우 고마워하셨다.

그날 이후부터는 이상하게도 무언가 이끌린 사람처럼 내면 많은 갈등을 겪었지만, 뜻하지도 않게 딸의 약속을 지키고자 끝내 서울에 원서를 택했다.


그리고 딸은 합격하였다.


(지금에서 보면 그때 결정은 딸의 앞날 운명에 밝은 지름길이 되어 주었다)

 
합격 소식은 기뻤으나 하지만, 입학금이 우선 걱정이 앞섰다.

남편 없는 이 시점에 혼자서 다 짊어질 내 몫이 너무 커서 날이 갈수록 고민에 빠져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시점에 집만 매매가 된다며 남편 문제도 딸의 입학금, 등록금도 마련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얼음이 꽁꽁 언 추운 겨울철에 도심도 아닌 시외 전원주택이니 매매가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러니 혼자 속않이 할 뿐이지 누구와도 털어놓고 상담할 수 없으니 그럴 적마다 답답한 마음은 오직 절을 찾아가 부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 올리고 또 올렸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생겨 놀랍게도 집이 매매되었다.  
현재 사는 이 지역이 개발 제한 구역에 함부로 어떤 행위를 할 수 없는 곳을 난 무식하게 일을 저질 어진 사건이 있었다. (제71화 참조)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가장 예쁜 신축 전원주택이라 같은 동네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돈이 많은 분이 계셨는데 본인의 집은 너무 오래되어 낡은 집을 고칠 수도 없고, 또한 멀리 떨어져 살 수 없는 처지인지라 고민하다가 우리 집을 매매한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당장 사겠다고 하셨다.
그것도 아주 비싼 가격으로 매매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매매한 자금으로 딸의 입학금, 등록금도 해결하였고, 남편의 회사 문제도 해결하고자 우릴 돕는 남편 절친과 의논하였다.
친구 남편에게 집 매매한 자금으로 우린 단칸 월세방 한 칸 얻어서 이사할 테니 몽땅 남편 문제 해결하겠다고 하였으나 남편 친구는 내가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다며 절대 반대하였다.

남편이 어르신들에게 각서를 써 준 것은 매우 잘못된 처사이지만, 이 모든 것 시작은 지나친 회사 열정으로 회사 순위를 상위권에 올리고자 하다가 일어난 사태이니 시간이 가면 회사에서 다 처리할 문제인데 굳이 애쓰지 않아도 해결될 수 있다며 왜 단칸 월세방까지 옮기면서까지 해결하려고 하느냐며 완강하게 말렸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며 그가 책임져야 할 일이니, 그의 이름으로 떳떳하게 해결하고 싶다는 내 의견에 더는 말릴 수 없는지 이른 시일에 회사 내에서 자리 주선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다.


지점장실에서, 지점장, 남편 친구, 각서를 가지고 계시는 어르신들과 모여 함께 한자리에 앉게 되었다.
난 매매 계약서를 그들 앞에 내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선 딸의 입학금, 등록금과 첫 달 단칸방 월세 금액만 제외하고는 한 푼 남김없이 몽땅 다 내놓겠다고 솔직하게 진심을 담아 말씀을 드렸다.
현재 내 어려운 처지에도 아이들 4명이나 있는데 집을 팔아서 단칸 월세방까지 이사하면서까지 해결하겠다는 내 진정성 말에 매우 감동했는지 회사 중재하에 전액을 몽땅 내주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가 써 준 각서를 받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찢어버리면서 그렇게 모든 것을 그날로 깨끗하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이 소식을 전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딸의 입학식을 끝내고 한 주변 커피숍에서 갔었다.
딸이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화장실 바닥에서 지갑을 주웠다고 그런다.
지갑 속에는 제법 많은 현금과 신분증, 카드가 들어있었다.

그 당시에는 한 푼도 아쉬운 시기라서 이 현금 중에서 한 끼 식사만이라도 해결할까? 그런 유혹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어느 택시 뒷좌석에서 2~3만 원 든 지갑을 주운 경험이 있었는데 가지고 있은 그날에 사고가 생긴 후부터 남의 지갑을 주운 날은 절대 좋지 않다는 불길한 트라우마가 있다.

하필이면 오늘은 딸의 입학식 날이고 앞으로 여기 대학교에 다니면서 좋은 일만 생기게 바라는 마음에 지갑을 주인에게 찾아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보다는 안전한 파출소에 갖다주자고 합의하고 어렵게 주변 파출소를 찾아 맡겼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딸이 의아하다는 듯이 그런다.
< 귀중품을 주워 파출소에 맡기면 습득한 우리의 연락처나 주소를 기재해야 하는데 왜? 아무것도 기재도 안 하고 그냥 두고 가라고 하지? 그것은 좀 그렇네! >
< 우린 할 일은 했으니 그만 잊어버려. 신분증이 있었으니 알아서 잘 찾아줄 거야>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애…? >
< 연락처를 적고 안 적고가 문제가 아니야. 좋은 일을 하면 행운이 생겨서 입학하고 나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


월세 단칸방을 얻고자 정말 가진 돈이 없으니 교통비조차 아끼느라 체면을 불고하고 에어로빅장 부근에 방을 얻었고 이사하기로 하였다.
진돌이와 고양이는 당장 단칸 월세방에 데리고 갈 수 없으니 그것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이사 오는 주인에게 간절하게 부탁하고 그 집에 맡기기로 하였다.
이삿짐 트럭에다 짐을 다 싣고는 진돌이와 고양이에게 이별하자니 목이 메워와 난 눈물을 흘리면 진돌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미안해 진돌아 엄마가 당장 너희들 데리고 함께 갈 수 없어. 그 대신 자주 너를 보러 온다는 약속은 하게. 네가 두 고양이를 아빠처럼 잘 돌봐줘. 정말… 정말… 못 데리고 가서 미안해 진돌아>
영리한 진돌이도 내 아픈 마음을 읽은 것인지.. 처음으로 동물의 슬픈 눈물도 보았다.
이삿짐 트럭이 출발하자 진돌이는 큰 도로까지 따라서 우리 뒤를 달려오는 것에 마음이 매였다.


그리고 이삿짐 트럭은 앞으로 우리 가족이 살 단칸 월세방 앞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