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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74화) 열 번째 전원주택에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8. 12. 31. 18:03


(74화) 열 번째 전원주택에서 생긴 이야기



수험생 딸을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난 딸과 한마음이 되고자 조용한 곳에서 딸의 1 교실 시험이 시작되며 불경을 읽으면서 집중했었고 쉬는 시간이면 잠시 긴장을 풀다가 2 교시가 시작되면 다시 불경을 읽어가면 시험이 완전히 마칠 때까지 함께 했었다.
잠시 어느 순간에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순간 깜빡했는데 놀란 가슴으로 얼른 차가운 물로 세수하고 다시 집중해 불경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잠깐 졸았던 그 시간이 궁금해 시험이 끝난 딸에게 그 시간에 관해서 물었다. 
< 응, 엄마 나도 그 시간에 집중력이 떨어지더라고>

그것을 일심동체라고 하는 것인지?


드디어 점수 발표되었고 딸은 그 대학교에 합격하였다.

시험 치르기 전만 해도 여기 대학교에 합격 기원 기도로 "제발"이라며 수 없는 간절한 기도를 했구먼, 막상 높은 점수 결과를 받아 보니 내 간사한 마음은 좀 더 나은 대학교에 응시하지 못한 것에 금세 후회하면서 예전 딸의 초등학교 시절 성적이 떠올랐다.


첫 딸이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처음 경험이라 딸의 성적 올릴 수 있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온 열정을 퍼부었으나 그것은 결코 진정한 딸의 성적이 아니라 오직 엄마의 극성 공부라는 걸 깨닫고 둘째 딸은 저 스스로 공부하게끔 내 버려두었다.
결과는 역시나 받아쓰기 10문제 중에서 겨우 2개만 받아올 점수이니 초등학교 졸업하도록 한 번도 학급 반장은커녕 흔한 줄 반장도 못 해 보고 졸업했었다.

그때도 "제발" 인문계 고등학교에만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딸이 사춘기를 접하더니 교과서 위주 공부로 저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깨달았는지 열심히 공부한 탓에 중학교 시절에는 전교 1등을 하였다.

그 자신감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등급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딸을 초등학교 시절 성적은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난 남 앞에서 처음부터 잘한 양 했었다.




주지 스님께서 백일기도를 끝낸 수험생 어머니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면 차를 대접해 주셨다.

많은 학부모가 모여서 차를 마시다가 3천 배 절 한다는 어머니가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약간 얼굴을 붉히며 불만이 썩힌 말로 질문하였다.

<스님에게 궁금한 것에 여쭈고 싶은데요. 저 어머니는 제가 볼 적에 제대로 기도한 것 같지도 않았고 기도 시간에도 약수 받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쓰면서 산만하게 계속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째서 여기 학부모 아이들 중에서 제일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으며 저는 3천 배 절로 지극정성 기도를 했는데도 왜 우리 아이는 불합격이 되나요? 그럼 백일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런 의문으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신뢰조차도 부정적으로 되었습니다>

함께 열심히 기도한 학부모 중에서도 합격, 불합격이 있다 보니 그 질문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지 큰 반응을 두고 주지 스님의 답을 기다렸다.


(사실 난 딸의 학교 성적을 한 번도 말 한 적이 없었고, 학부모들은 오직 어설픈 내 기도만 절에서 보았으니 어쩌면 더 의문을 가진 것 같았다)


< 우리에게는 업이 있습니다. 전생의 무거운 업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가벼운 업보를 가진 사람도 있듯이 업보는 각자가 다릅니다. 현실에서도 우리가 알고 모르고 짓는 업보도 많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내빼는 말 한마디, 나쁜 마음, 행동 한 가지도 이생에서도 또 업보를 짓는 것이 됩니다. 제가 듣기로는 저 보살님은 걸음걸이 불편하신 나이 드신 보살님들도 도와준 것을 들었습니다. 도움을 받으신 보살님들이 차에서 내릴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말로 합격 기원을 한 마디씩만 해 준 것도 비록 많은 절을 안 했어도 합격 기도에 큰 보탬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스님은 좋은 말씀으로 3천 배 절을 한 어머니에게 위로 말씀을 드렸으나 그 어머니는 불교에 실망한 것인지 그 후 절에서 볼 수 없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오늘 들었던 스님 말씀을 전화로 친정어머니에게 전했다.
친정어머니께서도 스님 말씀에 동의하시면서 그러신다.
< 나도 처음에는 내 신세를 한탄하고 원망하며 살았단다. 남들은 부모 복도 많고, 남편 복도 많은데 왜 나는 지독 시리 복이 없어 태어날 때부터도 네 외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기다린 아들이 아니라 하잖은 셋째 딸로 태어나 그때부터 천덕꾸러기로 크면서 제대로 먹기를 했나? 학교 문 앞에를 가봤나? 시집와서도 남편 복까지 없다 보니 평생 아픈 네 아버지를 안방에 눕혀놓고 병시중에 나 혼자서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려니 별별 고생을 다 하면서 날마다 한숨으로 내 신세타령만 했었지. 내가 무슨 전생에 많은 업보를 가지고 태어나 이렇게나 지질 리도 복 없이 살아야 하는지? 이러다가 자식 복까지 없으면 어쩌나? 그 생각이 제일 무서웠는데 네 둘째 오빠마저 어릴 때 죽어버렸으니 자식 보낸 내 가슴에 또 대못까지 박고 보니 이제는 자식 복까지 없는 것 같아서 내처럼 지질 리도 복이 없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 내 신세타령으로 얼마나 한탄하며 살았는지…

그러다가 절에 다니다 보니 전생에 내가 네 아버지에게 빚진 업보가 많아서 이생에서 지금 갚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이 내 업보라고 생각하며 다음 생애에는 이렇게 태어나지 않도록 열심히 참회 기도하고, 남들에게도 베풀고 살다 보니 그다음부터는 내 업보를 좀 나아진 것인지 다행히 너희들이 착하게 커 주어서 고마웠다.


이어서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하셨다.
외가에서 딸, 네 명 속에 오직 외아들인 외삼촌만 먹이고 입히고 교육해 한 맺힌 서러운 마음에 당신은 딸을 낳으면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명세를 하셨단다.

오빠 세 명에 내가 처음으로 첫 딸로 태어났을 때 어머니처럼 복이 없을까 봐 늘 걱정하며 유난히 나에게 더 많은 기도 하게 되었고 절의 범종에도 내 이름을 새겼으며 없는 살림이지만, 당신이 못 해 본 한풀이를 나를 통해서 대리만족하고픈 마음이 많았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내 어릴 적 일이 생각났다.

옛날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주변에 헐벗은 거지도 많았다.  

우리 집도 어렵지만, 어머니는 겨울철이면 춥고 배고픈 거지들에게 김치 국밥을 끊어서 나가면 그 시간에 국밥을 얻어먹고자 모여드는 거지들에게 하필이면 오빠들은 관두고 구태여 어린 초등학생 나에게 그 봉사를 시켰다.

들통도 무겁고 거지가 있는 곳에 가기 싫다면 그런 것은 힘센 오빠들에게 시키라고 울고불고 떼를 쓰다가 끝내 엄마 손에 이끌려 가곤 했었다.

어느 날 거지에게 내가 국밥을 나누어 주는 모습을 공교롭게도 학급 친구에게 들켜 학교에서 거지와 한패라고 창피스러운 놀림과 왕따를 받아 본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처럼 당신의 맏딸도 복이 없을까 봐 복을 짓는 법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 같다.


평소에도 어머니는 불쌍하신 분을 그냥 보고 가지 못한 분이라 어느 날 집에 들어서니 고약한 냄새가 집안 전체를 심하게 풍겼다.

몸이 불편한 나이 든 장애인이 추운 겨울날 오줌을 싸 밖에서 떠는 것을 보시고 동사할까 봐 우리 집에 데려와 아버지 옷과 따뜻한 밥상을 챙겨주시고 있었다.

난 그런 어머니가 너무나 싫었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냄새난다고 코를 막고 다닌 기억이 난다.


어머니 삶의 철학은 누구든지 우리 집에 오시는 분에게 빈 입으로 보내지 말라시며 못 살고 배고픈 옛 시절에 우편 집배원이 편지를 갖다 주려 와도 종일 걸어 다니면 배고프다며 따뜻한 밥상을 챙겨주시는 분이다.


동짓날이면 남들은 가벼운 초와 향, 그리고 돈을 들고 절에 가지만, 어머니는 절에 못 가시는 분의 100집 무거운 쌀을 모아 정성을 들고 가시는 분이다.


또한, 시어머니 병원 입원하실 때도 어려운 관계인 사돈 병간호마저도 당신이 자청하시고 도와주셨고 더구나 병원에 계실 때도 청소 아주머니 힘들다며 6인 입원실 화장실도 어머니가 손수 청소하시기에 제발 그만하라며 내가 아무리 말려도 본인 뜻대로 행하는 분이다.
"죽으면 썩어 없을 몸이니 살아있을 때 부지런히 남을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
친정어머니의 늘 말씀하시는 봉사 철학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생각하는 업보는 양파 껍질을 비교하면서 겹겹이 쌓인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길 때마다 매워 눈물 나는 마찬가지로 업보도 양파처럼 한 겹씩 벗길 때마다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라 하셨다.

복을 까먹는 것은 교만이며 가진 자 자만심으로 남을 무시하거나 깔보면 그 업보가 다음 생애에 반대로 본인이 그대로 당할 수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학교 교육을 배운 것은 없으나 자식에게 한글을 배우신 후부터는 새벽마다 목욕하시고 불경 책 모서리가 다 닳도록 읽다 보니 거의 외울 정도 수준이 되셨다. 

그런 어머니 가르침보고 자란 형제들은 어머니 영향을 받았으나 난 그러지 못했고 타고난 내 천성적인 성격도 있겠으나, 당신이 못 해 본 한으로 날 키운 탓인지? 아무튼 어릴 적부터 내 멋대로 자란 것 같았다. 



에어로빅장에서는 그해 전국 에어로빅 대회에 참가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선발된 회원들에게 난 오랫동안 철저히 개개인 힘든 교육한 보람으로 지역에서 큰 상을 받았고 전국 대회 000 방송국 주최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난 미리 시합 장소도 둘러보고, 회원들과 하룻밤 보낼 숙소도 예약해야 하며 그리고 서울에서 대학교 입학한 둘째 딸도 내가 늘 바빠 서울에 올 수 없었는데 그간 못 챙긴 딸도 이번 기회로 볼 겸 여러 가지 일로 하루 전날 서울에 상경하였고 다음 날 서울역으로 우리 회원들 마중 나갔다.
대회에 선발된 많은 회원, 에어로빅 선생님들, 우리 에어로빅장의 회장, 총무 어머니 그리고 응원차 함께 오신 회원 어머니들까지 합쳐서 약 30명이 서울역에서 나오고 있었다.
회원들은 처음으로 전국 대회에 나간다는 들뜬 마음에 다들 백화점에서 싹쓸이 쇼핑한 것인지? 평소에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서로가 경쟁하듯이 스타처럼 선글라스, 화려한 의상, 요란한 화장발로 한 무리가 서울역에 나오니 그 시절만 해도 요즘처럼 여행 단체가 없을 때이니 많은 아줌마 때에 역내 주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쳐다보고 나 역시도 기막힌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약 30명이 요란한 차림새로 시끌벅적 떠들어대니 역내 순회하는 경찰관들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우리 곁에 다가와 물었다.
<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역내 파출소 가서 잠깐 조사할 것이 있으니 따라오십시오>
<예? 제가 책임자인데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파출소에 따라가야 합니까?>
<일단 파출소에 가서 상세한 것을 말합시다>


옛날 봄날이며 흔히들 보따리 끼고 무작정 서울역에 상경한 시골 봄 처녀처럼? 영락없는 그런 모습 경향으로 보인 것인가? 얼토당토않게 따라오란다.
그럼 나는 뭔가? 영락없는 수상한 포주인가…?


예상치도 못한 기가 막힐 일이 생기면서 난 경찰관 따라서 역내 파출소에 잡혀? 가는 수상한 어떤 이? 꼴이 된 것이다. 

파출소 밖에서는 봄날 시골 보따리 처녀가 아닌 요란한 차림새로 집 나온 아줌마 패들?은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면 파출소 안으로 기웃거리면 나를 기다렸다.





배경음악 -Seven Daffodils / 브라더즈 포(The Brothers 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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