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열 번째 전원주택에서 생긴 이야기
남편의 두 번째 증권투자에 실패하면서 현재 사는 아파트에서도 곧, 나와야 했었다.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다 자란 아이들이 부모를 바라보는 눈빛마저 심리적 부담이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구나 그 당시 둘째 딸은 고3이라 어수선한 가정 분위기는 입시생에게 공부 지장도 우려되었다.
그가 경제 좋은 시절에 대구 변두리 그린벨트 안에 이다음에 우리가 나이가 들면 공기 좋은 전원주택에서 살자며 허름한 이층집 하나를 내 명의로 매우 오랜전에 사 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는 가정 경제를 빨리 복구하고픈 조급한 마음에 증권 투자의 자본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매매해 자본화시키고자 했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 같은 지인이 늘 자기도 이다음에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어 했는데 그 소식에 당장 그 집을 사고자 하면서 지인과 남편 사이에는 가격 타협도 이루어졌고 곧, 매매가 성립될 직전에 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난 그간 에어로빅장을 경영하면서 남편 모르게 꾸준히 저축하고 있었던 비자금이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남의 집으로 가기보다는 차라리 허름한 집이라도 내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아빠를 신뢰하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자존심도 챙겨주고 싶었고,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보니 측은지심도 생겼다.
남편도 내가 비자금이 있을 것이라 상상도 못 했으니 당연히 지인이 사는 줄 알았고 또한, 내 명의로 된 집이라 매매 조건도 좋았다.
친구에게 내가 비자금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 남편에게 절대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녀도 내 말에 동의하면서 나를 도와 그에게만 비밀히 매수자, 매도자가 친구 지인이라 서로 수월하게 잘 매매되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친구가 그렇네요. 그 집을 당장 이사할 집이 아니고 이다음을 위해서 사두는 집이라 우리가 원하면 전세를 놓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곳은 거리가 멀어서 아이들 통학도 불편하고 집도 매우 허름해서 당신도 안 될 거야>
<하지만, 이 부근에는 전세비가 매우 비싸잖아요>
<친구가 집수리는 깨끗하게 해 줄 것이지만, 고치는 방법을 잘 모르니 이왕 이며 내가 편리하게 쓰도록 직접 와서 감독하면서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네요>
그는 처음에는 거리와 집이 허름해서 안 될 것이라 했으나 비싼 전세비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그곳밖에 없으며 허름한 집은 수리해서 들어가면 괜찮을 거라고 하였다.
내 속사정을 전연 모르는 남편은 현재 집안 상태를 잘 이해해주는 고마운 아내 말이라 생각했는지 그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하라며 남편이 건네준 전세비로 집수리비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난 서울 신 장위동에서 헌 집을 새집처럼 리모델링한 경험과 대구에 이사 와서도 헌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경험 바탕이 있어서 집수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수리만 생각했으나 손 볼 곳이 매우 많았고 어설프게 손을 볼 바에는 어차피 내 집이니 완전한 리모델링을 하고자 이층집 형태만 남겨두고 내부는 완전히 다 부수어 편리한 아파트 구조로 개조하기로 하였다.
인부들은 거리가 멀어서 올 수 없다고 하여 새벽 일찍 내가 직접 운전해 출퇴근을 시켜드리고 하루 전날에 필요한 기초 건축 자재들의 모래, 시멘트, 벽돌에서 마무리 실내 장식까지 모두 직접 자재를 찾아 구매하여 운송을 부탁해 미리 현장에 갖다 두었다.
또한, 인부들 식사는 식당이 없는 그 곳이라 현장에서 내가 직접 점심과 간식도 알아서 만들어 챙겨드리니 직접 자재구매와 인부들 식사비까지 절약해 보니 집수리비가 훨씬 절약되었고 시간도 매우 단축되었다.
그러나 사실 너무나 피곤했었다.
매일 새벽 일찍 인부들을 모아서 먼 현장까지 통근시켜 일을 시작하게끔 만들고 부리나케 집에 들어와 아이들 아침 식사와 도시락 챙겨 등교시켜 주고는, 곧바로 에어로빅장에 달려가 운동을 가르쳐야 했었다.
나머지 수업은 선생님들에게 맡겨놓고 점심 식사 시간을 맞추어 현장으로 급히 달려와 식사와 그 외에도 중참과 커피도 챙겨드리고 그 외 시간은 인부들의 잡다란 일을 돕는 노가다? 일을 매일 하였다.
그리고 해가 지면 현장 일이 마무리하고 인부들 집까지 퇴근시켜드리고, 다음 날 필요한 자재를 미리 구매해 운송을 부탁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 들렀다.
집에서도 서둘러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서 밀린 집안일, 내일 아이들 6개 도시락 준비, 새로운 에어로빅 안무까지 밤늦게 만들고 나면 밤새우는 날이 허다했으니 수면은 항상 부족했었다.
그렇게 집이 완성될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았으며 매일 흙과 자갈, 벽돌 등등 만지는 노가다? 일하다 보니 실장갑을 아무리 끼워도 내 손등은 거칠어졌고 손톱 밑의 때가 늘 새까맣케 끼어 있으니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목욕탕에서 손톱 밑의 낀 새까말 때를 빼고 있으니 내 손을 바라보던 옆의 어느 아주머니가 아마도 막 노동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는지 나에게 물었다.
< 요즘 여자들 노가다 일당 얼마씩 줘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힘들게 집이 완성되었다.
깨끗한 이층집에 방 4개, 거실의 앞 유리는 천장에서 바닥까지 하나의 통유리로 바깥 전원주택 풍경과 따뜻한 남향 햇살이 거실 안까지 밝게 들어왔었고, 거실에 조그만 벽난로 형태를 만들어 그 속에 조명 통나무 조명을 켜 놓으니 매우 잘 어울리는 전원주택 분위기가 되었다.
마당 조경도 전체 잔디에다 나무토막 디딤돌, 빨간 벽돌 담장은 예쁜 러브하우스로 변형되었다.
이사 오면서 진돗개 한 마리(진돌이)와 고양이(방울이) 한 마리도 우리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큰 문제가 발생되었다.
난 그 시절에는 그린벨트 내에서 할 수 없는 법령을 전연 몰랐으니 무식이 용감해 무턱대고 멋지게 고쳐놓았으니 그것이 동네 소문에서 담당 구청까지 민원이 들어가 말썽의 소재가 되였다.
그린벨트 안에서는 허가받지 않고 함 부록 해서는 안 되는 여러 가지 법령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문제가 발생하니 날마다 담당 구청에서는 오라 가라는 호출과 이미 완공되어 이사까지 간 집을 황당무계하게 잘못된 일부를 다시 부서야 한다고 하였다.
이 고민 문제를 남편에게 상의하자니 지인의 집이라 했으니 들통날까 봐 상의도 할 수 없으니 그 모든 시련을 나 혼자 꺾느라 마음고생이 많았다.
담당 구청에 들어가 법령에 아둔해서 일어난 행동이라며 현재 사는 집 일부를 어떻게 다시 부서 수는 없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 안타까운 표정으로 매일 도움을 되려 청하니 그 시절만 해도 요즘과 달라서 이웃들과 잘 지내어 민원이 다시 들어오지 않게끔 잘 해 보라는 귀띔도 해 주었다.
난 동네 이웃들에게 이사 떡을 돌리면서 앞으로 사이좋은 이웃으로 함께 살자면서 도움 부탁을 하였고 어렵사리 문제가 해결되었다.
전원주택은 도심 아파트와 다르게 공기가 매우 상쾌했었다.
부엌 식탁 창문으로 보이는 옆집 포도밭 포도송이는 그림 속의 실제 정물화 같았고 손만 뻗어도 포도송이가 닿을 것 같았다.
잔디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개와 고양이와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은 그림처럼 매우 좋아 보였으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갈 곳이 없어 어쩌다가 이곳으로 온 것이지 고3 입시생 둘째 딸에 그리고 셋째 딸, 초등학생 아들은 먼 거리 학교까지 매일 등교는 사실 큰 문젯거리가 되었다.
고3 입시생 등교는 꼭두새벽부터 허둥지둥 서둘러야 했으며 하교도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집에 올 적에는 일일이 도심까지 자동차로 데려가야 하니 늦은 밤마다 매일 힘들었다.
그나마 자동차가 두대라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나 역시 도심의 에어로빅장까지 매일 출퇴근에 지쳤고 아파트 살 적과 달리 주택 집안일은 훨씬 많았다.
불편한 교통 문제로 셋째 딸은 매일 아빠 자동차로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리 집 입구 부근에는 10차선 도로가 있었는데 늘 과속 차량이 많았다.
그 날은 딸의 학교 시험 기간이라 독서실에서 공부한다는 말에 남편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10차선 도로에서 과속 차량으로 인해서 큰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남편의 자동차는 반대편 도로까지 밀려 튕겨 나갔으나 다행히 맞은편 자동차가 마침 오지 않아서 극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으나 자동차 후면은 종잇조각처럼 짓눌러져 형태가 없을질 만큼이 되었으니 만약 그날 셋째 딸이 독서실에 가지 않고 평소처럼 뒷좌석에 앉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매우 아찔했었다.
아들이 다니는 학원 통학차도 우리 집 거리가 멀어서 데려줄 수 없다니 내가 날마다 시간 맞추어 학원으로 데려갔었다.
학원 원장이 직접 운행하는 통학차는 내가 단 1분이라도 늦으며 다음 시간 차질에 문제가 되어 시간을 매우 엄숙하게 지켜주어야 했다.
대로변에 있는 학원은 주차 공간이 없었고 마땅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주차해야 했다.
그 날은 내가 조금 늦게 학원에 도착하였는데 그날따라 불법 주차 단속하는 날이라 더욱더 주차할 곳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지 못하였다.
횡단보도 건너편 학원 통학차는 계속 시동을 켜 놓고 나를 기다리다 더는 기다릴 수 없는지 막 출발 하는 듯 하였다.
전전긍긍하다가 지체할 수 없는 촉박한 순간이라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불법 주차 단속하는 경찰관에게 말을 하면서 뛰었다.
< 경찰관 아저씨 죄송한데요 잠시 제 자동차를 맡기게요 >
<방금…뭐…라고…?>
하마터면 놓칠뻔한 학원 차를 간신히 급정지시켜서 아들을 데리고 숨넘어갈 듯한 급한 호흡을 하면서 교통 경찰관에게 돌아왔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은 황당한 얼굴로 몹시 당황한 교통 경찰관은 말문이 막히는 듯이 말까지 더듬었다.
< 지금…아주머니가…현재 불법 주차 단속하고 있는 우리에게…자동차를 맡기고 간 것이 맞죠?>
< 예~ 죄송합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막 출발하는 아들 학원 차를 정지시켜야 하는데 주차할 곳은 없고 시간은 촉박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
< 헉~ 내 교통경찰 생활에…불법 단속하는 경찰관에게 자동차를 맡기는 사람도 있다니… 정말 어이가 없네요>
불법 단속 경찰관에게 이런 일도 있었다.
나의 첫 번째 제자는 그녀의 남편과 이혼 후에 대구 근교 시외에서 헬스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난 그녀를 돕고자 한 달에 한 번씩 그곳에서 특별 수업을 해 주는 날이었다.
방금 떠난 시외버스를 놓쳐버려 다음 버스 시간은 도저히 늦을 것 같아서 급하게 택시를 타기로 하였다.
혼자서 비싼 택시를 타는 것보다는 그 부근에는 함께 타고 갈 수 있는 합승 택시가 요금도 저렴하고 빨라서 그 당시 한때 유행한 총알 합승 택시가 있었다.
평소에는 늘 길게 손님을 대기하고 있는 합승 택시가 그날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난 무척 어리둥절 다급한 마음에 다른 사람 다 두고 왜 하필이면 대로변에 서 있는 교통경찰관에게 물어보았는지?
< 아저씨 오늘따라 그 많은 합승 택시가 한 대도 안 보이네요?>
내 질문에 교통경찰관은 매우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 제가 지금 불법 총알택시 단속하는 중인데… 그걸 나에게 묻어보다니…어처구니가 없네요… >
< 아…그래서…>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참으로 여러 가지 실수투성이가 많은 것 같다.
지난 설악산 계곡 물에 빠졌을 때 그가 한 말처럼 ~
"너는 남들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들은 왜 너에게는 자주 일어날까?"
남편의 말에 인정하면서… ㅎ
남편의 성격은 무엇을 실패하면 포기하기는커녕 옛말에 있듯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예전 부동산을 잃을 때는 공인 중개사 시험에 도전해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이번에는 증권 투자에 실패하면서 시험이 매우 어렵다는 공인 증권투자 상담사 시험에 도전해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 좋은 명석한 두뇌로 차라리 법률가가 되었으며 내가 좋았을 텐데…
우수한 성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니 우리나라 대기업 증권회사에서 그를 초대하였고 그래서 그는 증권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다음에 나올 이야기지만, 그 일은 또다시 불행한 늪으로 빠지는 길이 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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