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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73화) 열 번째 전원주택에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8. 11. 30. 16:23

 

(73화) 열 번째 전원주택에서 생긴 이야기


법당에 들어와 처음으로 절을 해 보았는데 불자님들의 절하는 뒷모습은 낮고 차분해 보였으나 난 절하는 방식도 몰라 나만 유독 높아 보였다.
스님의 예불과 법문 시간도 지루해 다리도 뻣뻣하고 쥐도 내렸고 계속 콧등에 침을 바르면서 자세를 바꾸어야 했었다.
백일동안 이래야 하나? 미리 걱정이 앞섰다.


집으로 돌아와 불교 독실한 신자이신 친정어머니에게 오늘 처음 절에 간 이야기를 하였다.
친정어머니는 내 말에 매우 깜짝 놀라시며 웬일로 네가 스스로 갑자기 절에 가게 된 이유가 궁금해하셨다.
난 오늘 새벽에 어떤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확실한 메시지는 잘 모르겠으나 뭔지 이끌린 기분으로 절에 가게 되었으며 아마도 둘째 아이 대학 입시를 많이 생각해서 그런 꿈을 꾼 것 같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그러신다.
네가 어떤 사유로 절에 갔든지 간에 그 인연 법이 네게 닿은 것이라 하셨다.
종교에도 다 인연 법이 있는 것이며 어머니 생각에는 오랫동안 절에 다니시면서 전국 어느 절에서 새 범종을 세우는 절과 인연이 있을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종 불사에 동참하며 종에 이름을 새기는 곳에는 네 이름도 꼭 새겼는데 그윽한 범종 소리는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을 주는 부처님 법의 음성이라 오랫동안 울리면서 그 인연이 아마도 너에게 닿은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제대로 불교 공부, 법당 예절을 알려면 불교 학교에도 가라고 하셨다.
어머니 권유로 불교 학교에도 등록하며 기초반부터 공부하게 되었다.


"사찰은 부처님을 모시는 신성하고도 장엄한 곳이며 속세의 번뇌를 씻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곳이니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올바른 삶을 다짐하는 곳"이다고 먼저 가르친다.
하지만, 내 잘못을 먼저 참회 기도부터 하자니 여태 살면서 내 잘못이 너무나 많는 것 같아서 내 참회 기도는 그냥 생략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사심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기도는 절대 버리지 못하고 "아무쪼록 우리 딸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사심 기도만 올렸다.
그것뿐인가? 스님의 좋은 법문을 경청하기보다는 절밥에만 사심을 두었고, 매일 절에 올 적마다 에어로빅장 식수 물을 받아 가느라 약수터에 물통을 받쳐두고 법당에 들어왔으니 지금쯤에 약수가 다 받아졌을까? 그런 생각만 온통 머리에 가득했으니…

나의 첫 불교 입문은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절에는 백일기도 동참하는 수험생 학부모님들이 많았는데 난 몇 번만 절을 해도 힘이 들었는데 그중에 어느 수험생 어머니는 지극정성으로 한 번씩은 3천 배 절도 올린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 수험생 어머니를 3천 배 엄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 다른 봉사를 대신에 하였다.
절에는 부처님께 올리는 무거운 공양 놋그릇이 많았는데 백일기도 동안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놋그릇 닦는 날에는 꼭 동참해 닦았고, 그리고 법당 청소, 절 식당 뒷설거지, 남들의 49재 천도재에 동참하였고, 걸음걸이 불편하신 할머니들은 내 차에 태워서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드리는 일 등등…
불교 학교에서 배운 공부와 절에서 돕는 일을 하다 보니 처음 불교 입문 때와 다르게 불교를 좀 더 알게 되면서 백일기도 동안 집안 행사로 3일만 빠지고 97일을 기도에 참석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때는 불교 초심으로 가장 열심히 한 시기 같다.


그 시기에 일어난 일이 있었다.

우리 집의 진돌이와 고양이 방울이 둘 사이가 매우 나빴다.

방울이는 실내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을 진돌이가 못 들어오니 괜한 심통이 나서 방울이를 괴롭혔다.
늘 괴롭힘을 당하는 방울이는 진돌이를 피해 실내로 도망해 오면 더는 올 수 없으니 현관에서 뒤발 끝만 남겨놓고 거의 99%가 거실 안으로 다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절대 들어온 것이 아니라며 잘못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모습에 우리는 웃고 했는데 어느 날 방울이가 새끼 두 마리를 낳은 후에 종일 보이지 않았다.
배고픈 고양이 새끼들은 어미를 찾았고, 우리는 동네 구석구석을 따로 흩어져서 방울이를 찾아다녔다.

진돌이가 방울이를 먼저 찾았는지 우리를 불렀다.
포도밭 나무 밑에 방울이가 죽어있었다.
그 당시 동네 어느 분이 쥐를 잡고자 약을 놓은 것 같은데 아마도 약을 먹은 쥐를 먹은 것 같았다.
우리는 고양이를 묻어주고 새끼 고양이가 걱정되어 들어오니 실내 상자 속의 새끼 고양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 고양이 새끼들이 어디로 나갈 수도 없을 텐데, 집안 어디를 찾아보아도 없었다.
더는 찾을 수가 없었고 난 진돌이 저녁밥을 주고자 개집 앞에 오니 고양이 새끼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라서 안으로 들어다보니 두 마리 새끼들이 그곳에 있었고 진돌이가 고양이 새끼들을 계속 핥아 주며 품고 있어 그야말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에 고양이 새끼들이 여기에 있다고 외쳤다.
우리가 방울이를 묻어주고 있을 때 진돌이는 방울이 새끼들이 걱정한 것인지 몰래 실내에 들어와 두 마리 새끼를 물고 간 것이다.
평소 진돌이는 방울이를 싫어해 우린 상상도 못 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신통해 그 소문으로 동네 분들이 보러 와 신기한 눈초리로 다들 바라보면 진돌이는 누가 새끼를 데려갈까 봐 가까이 접근을 못 하게 으르렁 걸렸다.

우리가 우유를 먹이느라 실내로 데리고 와도 불안하게 기다렸고 다시 데려다주면 안심하고 핥아 주는 모습이나, 그 당시에 사료가 아닌 음식을 끊어서 갖다 주어도 진돌이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우선 고양이 새끼들이 마음껏 먹을 때까지 물러나 기다리다 새끼들이 다 먹고 물러나야 배고파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면 암캐도 아닌 수캐의 진돌이의 모성애? 가 대단해 보였다.


(요즘 같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 TV에 내보낼 소재이다)
고양이 새끼들은 진돌이가 어미? 인줄 알고는 오리처럼 늘 따라다녔고 진돌이의 보살핌으로 고양이 새끼들은 그렇게 다 자라게 되었다.



딸의 대학 지원서가 오늘 마감날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의견 차이로 아직도 내지 못하였다.
남편은 보수적 성향이 짙어서 딸은 무조건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유이다.

첫 딸 입시 때도 남편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용을 시켜서 네 고집으로 끝내 서울로 입학 원서를 내어 불합격 한 것도 모두 내 탓이라고 하였다.
< 내 의견에 따랐으며 처음부터 무용이 아닌 공부에만 열중했으면 대구에서 좋은 대학교에 다녔을 텐데 네 잘못된 선택으로 결과는 대구에서 좋은 대학교를 못 간 것이니 이번은 내 말대로 해 >
그는 단호하게 딱 잘랐으나 하지만, 내 희망과 둘째 딸의 희망도 서울로 가고 싶어 했다.
아마도 나의 옛날 입시 시절에 서울의 어느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못 했던 그때의 아쉬움이 남아서 딸을 서울로 대학교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난 남편의 말에 복종한 시절에 살았고, 무엇보다 첫 딸 입시를 실패한 것이 있어서 이번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그의 말을 따라야 했다.



오늘이 마지막 원서 접수 날이지만, 백일기도에 먼저 참석하고서 원서를 내기로 하였다.
아직도 내 손에는 남편 모르는 두 장의 대학 지원서를 들고 있었는데 법당 높은 수미단 부처님 불상 옆에 두 장의 원서를 양쪽으로 갈아 놓으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마지막으로 어떤 쪽을 선택을 해야 하는지요?)


다른 날과 달리 그날은 마지막 대학지원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매우 간절한 기도를 하다가 우연히 부처님 불상을 보게 되었는데 내 눈에는 부처님의 불상이 한 면이 차츰 어렴풋이 어둡게 보였다.

내 눈이 침침해서 그런가? 줄곧 눈을 다시 비볐으나 한결같았고 옆에 있는 신도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오늘 제 눈에는 부처님 불상이 한 면은 잘 보이고 한 면은 대조적으로 어둡게 보이는데 어떤가요? >

생뚱맞은 내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아닌데요. 늘 같은 모습인데요>
< 그래요? 제가 잘못 본 것 같네요>
하지만 스님의 법문 시간에도 오랫동안 그 현상은 계속되었다.
한 번 더 눈을 비벼보면서 반대편의 신도에게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 혹시 부처님 불상이 오늘은 반만 보이지 않나요?>

옆의 보살님 역시도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면서 말했다.
< 아뇨. 매일 보는 모습 그대로인데요>
< 그래요. 오늘은 제 눈에 이상이 생겨나 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예배를 마치고 일어서다가 부처님 불상 양쪽으로 내가 놓아둔 하얀 원서 종이가 멀리서 보였다.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에 갑자기 내 가슴이 전율로 벅차올랐다.
( 부처님 제가 지금은 어느 쪽에 어떤 대학 원서를 올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밝은 쪽의 원서를 택하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 번 다시는 고민하지 않고 따르겠습니다)
원서가 있는 곳까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고, 수미단 앞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는 밝은 쪽의 원서를 들어 올렸다.



서울 쪽의 원서이었다.

비로소 그동안 무거운 고민을 과감하게 정리할 수 있었고 그리고는 부처님을 다시 바라보니 조금 전 현상과 다르게 늘 보았던 온후한 표정이었다.

숨을 가다듬고 용기내 남편에게 전화로 서울에 원서를 내었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니 그가 몹시 당황하는 목소리에 수화기를 얼른 끊어버렸다. 
물론, 그날 밤에는 엄청난 남편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내 귀를 막아야 했었다.


드디어 시험날이 되었다.
서울에서 수험생 딸을 교문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제발" 이라는 기도를 수없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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