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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70화)아홉 번째 새로운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8. 2. 27. 15:36


(70화) 아홉 번째 새로운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우리가 사용하는 건물 위층에는 주인이 살고 있어 에어로빅 음악 소음이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니 시끄럽다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바로 나가달라는 통보를 해 왔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많은 회원을 데리고 멀리 이전도 할 수 없었고 에어로빅할 수 있는 비워진 넓은 공간을 주변 건물을 찾는 것도 또한, 힘들었다.

그리고 빈 건물이 있다고 한들 일반 사무실과 달라서 한번 이곳에 설치한 사방 큰 거울, 마룻바닥, 샤워장, 탈의실 기타 등등 시설을 다른 곳에서 재활용도 할 수도 없으니 다른 곳으로 이전하며 다시 그렇게 설비하는 것은 나에게 막중한 이중부담비가 든다.
더구나 여기 건물 주인은 처음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나가라니 철거비까지 부담을 주었다. 
남의 건물을 사용하는 임차인은 누구라도 그렇겠으나 이런 일이 생길 때는 남의 건물에 설치한 막대한 부대 비용이 가장 큰 난감한 고민되어 난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남편이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당시 남편 사무실은 도심 기업의 큰 빌딩 취급만 전문적으로 할 적이라 사업이 매우 번창하였고, 그 당시 우리는 대구에서 최고의 인기 최고급 아파트 48평도 분양받아 곧, 이사할 준비도 하였으며 그 외 부동산도 있어 그는 얼마든지 내 소유 건물에 에어로빅장을 하나쯤 차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고민의 경제적 도움을 청했으나 그는 단호하게 거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번 기회에 에어로빅 경영을 완전히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이나 돌보면서 살림이나 살라고 그런다.


< 내가 언제 아이들에게나 살림에 소홀한 적이 있었어요? 당신의 칼퇴근 시간에 맞추어 일찍 들어와 집 안 청소, 곧바로 저녁 식사 대령도 하잖아요. 그리고 에어로빅장을 경영하는 원장이지만, 새벽 타임이나 저녁 타임 시간에 당신 눈치 보느라 얼마나 안 가보았으며 회원들이 내가 누구인 줄 얼굴을 몰라서 전에 한번 갔을 때는 되려 회원들이 새로운 회원이 올 줄 알고 에어로빅을 한번 해보라고 권유를 할 정도이니…>
< 내가 그만큼 봐 주었으면 되었지. 네가 원하는 만큼 해잖아. 학교도 다닐 만큼 다녔고, 이번 기회에 경영은 그만두고 편안하게 일반 회원으로 헬스클럽에 다니면 되잖아>
< 여태까지 단 한 푼도 당신이 도와준 적이 없잖아요>


이럴 때는 이런 말을 속으로 하고 싶었다.

(예전 처음 헬스장 경영할 적에 단 한 푼도 도와주지 않았고 그때 우리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도와주어 처음 헬스장을 경영할 수 있었고, 그 후 어렵게 그 빚을 다 갚았을 쯤은 당신의 잘못된 증권투자로 말미암아 기초적인 생활가구와 도구만 겨우 챙겨 나와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고 여기 아파트로 분양받아 옮겼을 때도 턱없이 부족한 아파트 장만비를 내가 보태느라 잘 되고 있는 헬스장마저도 과감하게 처분해 난 힘껏 보태 주었잖아요)

그렇게 말을 하고 싶은 충동감이 있었으나 그의 자존심을 건드릴 일 수 없으니 차마 말을 끄집어낼 수는 없어 억누르고 참았다.


남편 도움을 받아서 내 소유 건물에서 에어로빅 경영해 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이라 더는 꺼낼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시점에서 에어로빅장을 포기란 더욱 할 수 없었다.
난 그동안 좀 더 나은 선생이 되고자 노력했었다.

아무리 바빠도 외국에서 온 유명한 에어로빅 워크숍에는 전국 어디라도 절대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으며,

부산 00대학교 체육과 유명한 교수님의 에어로빅 수업을 받고자 그 대학교 체육과 학생들에게 눈치를 보면서 청강생으로 매주 한 번씩 빠지지 않고 오랫동안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다녔으며, 그리고 하나라도 더 배워서 좀 더 체계적인이고 과학적 운동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에 체육 대학원에도 어렵게 고생해 졸업했었다.

오직 이것이 나의 천직이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지금에 와서 모두 다 접으라는 터무니없는 소리에 그의 도움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 대신 에어로빅 건물 주인에게 다시 한번 더 간절하게 부탁을 하였다.
최대한 음악 소음을 줄이고 피해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그 대신 임대료는 더 올려드리겠다고 하였다.
건물 주인은 내가 그동안 한 번도 매달 임대료 날짜를 어긴 날도 없었고 임대료도 더 올려주겠다는 말에 생각이 달라지면서 재계약을 하겠으나 그 대신 조건으로 한 타임에 몇 명 이상 뛰지 말 것과 최대한 음악 소음을 줄이지 않으면 언제든지 계약을 파기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렇게 해서 일단락 고비는 넘었으나 건물 주인은 타임마다 인원수가 많으며 건물에 손상이 있다면서 바깥의 신발장에서 신발 숫자를 조사하니 늦게 들어오는 회원들은 신발을 몰래 안으로 들어오곤 하였다.
어느 날부터는 심지어 실내까지 들어와서 현재 뛰고 있는 회원 인원수 숫자를 점검해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제한된 인원수 때문에 수업 시간을 더 늘리다 보니 선생님의 추가 월급 지출 부담도 많았다.
 
이럴 때는 내 건물에서 마음 놓고 운동할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간절한 소망이 많았으나 남편은 어릴 적의 외로운 트라우마로 엄마는 무조건 아이들이나 돌보며 집안에서 살림만 해주길 바람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자 노력한 것 같았고, 역시 나에게도 노력한 것도 많았다.


어느 내 생일 날에 아파트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내 생일 꽃 선물 바구니를 가지고 누가 왔다고 그런다.
그가 보낸 생일 꽃바구니일 거로 생각하고 받았는데 그 남자분이 그런다.
< 사모님 베란다 밑으로 내다보세요>
별 기대 없이 베란다 밑으로 보다가 너무 뜻밖의 선물에 깜짝 놀랐다.
그 시절 최신형 새 스포츠 자동차가 전등을 켜고 깜빡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 젊은 남자는 자동차 키 케이스와 그가 보낸 카드라며 건네주었다.
( 당신에게 빨간색 스포츠카를 선물하고 싶었으나 여자 것으로 표시 날까 봐 까만색으로 선택한 거야. 생일 축하해)
그는 내가 처음 운전 면허증을 받았을 때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으로 절대 운전을 못 하게 하였는데 뜻밖의 자동차 선물이라 감동이 매우 컸다.


어느 생일날은 자고 일어나니 내 손가락에 아주 예쁜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너무 놀라서 어떻게 이렇게 손가락에 꼭 맞을 수가 있느냐고 묻으니 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 실로 재어서 맞춘 것이라 하였다.


어느 생일날은 대구에서 최고급 호텔 라운지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서니 보컬 밴드의 나를 위한 생일 축하 노래와 샴페인, 촛불 케이크로 반겨줘 감동을 준 적도 있었다.


단둘이 떠나는 생일 여행도 가끔 다녔고,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경상도 남자라서 말도 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친정어머니에게 전화 안부 인사를 매주 한 번씩 변함없이 꼭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컬러 TV가 나왔을 때도 제일 먼저 친정어머니를 생각해 선물로 보내주었으니 친정어머니는 이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사위라고 만족하셨다.

그래서 난 아마도 그에게 더 잘하고자 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순조롭게 행복하게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검은 불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시절 증권 경기가 매우 좋아지면서 사회 큰 이슈로 떠 올랐다.

남편은 모든 것이 철두철미해 자로 재면서 사는 사람이지만, 한 번 실패한 것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심한 자존심이 되려 큰 독이 되어 예전 증권투자에 실패한 것에 또다시 달라지고 있었다.
예전 큰 주택에 살 적에 속수무책 증권 투자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 가면서 우리 집 경제가 밑바닥까지 떨어져 풍진 박살로 애를 먹었는데 겨우 경제가 회복되어 한시름 돌렸다고 생각했었다.

남편의 수입이 고정적인 월급 생활이 아니라서 얼마를 증권투자 하는지 알 수 없으니 통제할 수도 없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많은 증권 투자 이득을 보았는지 날마다 의기양양한 모습과 자신감에 넘쳐 있는 듯했으나 곧이어 또 손해를 얼마나 많이 본 것인지 몹시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 경영이 잘 되는 사무실에는 아예 출근도 안 하고 오직 증권투자에만 신경을 꼭 두 세우고 있으니 사무실은 차츰 엉망 되었고, 직원들도 떠나고 마지막 남은 이 아파트마저도 은행에 담보 제공하였다.
제발 이 지긋지긋한 증권투자에 그만 손을 떼라고 했으나 소용도 없었고 끝내 남은 우리 아파트마저도 날리면서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가 얼마 전만 해도 경제적으로 매우 잘 나갈 때 그토록 내가 바랬던 에어로빅장 건물이라도 그때 도와주었으며 그것이라도 남았을 텐데 단호하게 거절한 남편에게 원망도 컸으나 이미 증권투자 손실 불똥은 현실이 되었고 또 들이닥친 우리 집 밑바닥 경제는 그 당시 무척 어렵게 장만한 이 아파트마저도 또 나와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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