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아홉 번째 새로운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그 당시는 남편은 내가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사실 아니었다.
내 성장 과정 환경을 다시 돌이켜보며 고모가 없는 아버지 4형제에서 나의 사촌오빠 7명에 우리 친오빠 3명(한 분은 일찍 돌아갔음)고모도 없는 집안에서 오빠들 10명을 낳고 난 딸이라 나름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그렇게 남자들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면서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만큼 남자애처럼 용감해 사촌 오빠들과 우리 오빠들이 함께 뱀 잡으러 산에 갈 적에도 겁 없이 따라나선 기억도 있고, 오빠들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를 보며서 자랐다.
친구들은 크면서 잘못하며 아버지 꾸지람과 훈계를 듣고 자라지만, 우리 아버지는 평생 아픈 모습만 보았으니 아픈 아버지로부터 한 번도 꾸지람과 훈계를 들을 수가 없었으니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안해서 잘못도 통제 없어 거침없이 내 멋대로 자라게 되었다.
더구나 여고 시절에는 합기도를 배우면서 유단자가 된 후에는 더 그랬고, 또한, 유도 3단인 나에게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어준 작은 오빠는 내 여고 시절에 가족끼리 해수욕 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남자애가 나에게 성희롱 했다고 화가 난 오빠가 "감히 어딜 내 동생한테 " 그 남자애를 잡아 와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든 적이 있을 만큼 동생에게 특별해서 늘 버팀목으로 지켜주었다.
그렇게만 성장하다 보니 자만해져 웬만한 남자는 아주 우습게 여기게 되었다.
천하의 말괄량이 외손녀를 걱정하는 할머니께서 인간 호랑이 남편을 만나야 한다고 늘 그랬었다.
여고 졸업하는 그해 봄날에 남편을 처음 만나면서 철부지 시절에 약혼하고 연이어 결혼하면서 우리 할머니의 주문 마법에 걸린 것처럼, 평생 아버지로부터 한 번도 듣지 못한 훈계를 천적? 을 만나고서 듣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나의 성격을 훤히 잘 알고 있었는데 천하에 타고난 내 성질은 온데간데없이 오직 남편 앞에서만 고양이 앞에 쥐가 된 듯이 죽어지내게 되었고, 어느 날부터 혼자서는 어두워지는 밖에는 아파트 주차장도, 슈퍼에도 나와도 두렵고 불안해지는 심리 상태가 되어버렸다.
(내가 좀 더 성숙한 나이에 남편을 만나더라면 어땠을까?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암튼, 그날도 내가 늦은 시간에 집에 귀가했을 것이라고는 그는 전혀 예상도 못 했으니 어딜 서둘러 나가려다 그와 맞다 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밤중에 급하게 어디로 나가려고? 옷도 제대로 안 입고… 그 모양새로… 다른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눌렀으면 어쩔 뻔한 거야…?>
< 그게…아니라…>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말을 어떻게 둘러 붙여야 하는지 어물거렸다.
내 이상한 모양새에 그는 아연실색 놀라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우리 집 층수 버튼을 눌렸다.
<띵~똥~~>
그는 집에 들어왔을 때 현관 입구 신발부터 시작해 집안 정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무척 스트레스를 받는 결벽증이 있어서 집안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여태 아이들 저녁까지 먹이지 않았으니 어쩌나? 이런저런 걱정이 앞섰다.
오늘은 크게 대항할 각오 준비태세로 들어왔는데 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옷까지 풀어헤친 모습으로 들킨 상태에서 이미 계획은 무너졌고 기세도 기우어졌다.
아이들도 늦은 이 시간까지 엄마가 귀가하지 않자 아빠가 몹시 화를 낼 것에 겁을 내어 알아서 집도 깨끗하게 정돈하고 평일과 다름없이 아빠를 맞이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었느냐? 물었고 아이들은 벌써 먹었다고 그런다.
저녁도 알아서 미리 챙겨먹은 것 같았다.
남편은 평일처럼 생각했는지 그도 오늘 모임이 있어 밖에서 식사하고 왔으니 저녁 차릴 필요가 없다며 욕실에 들어가 씻는 물소리가 나자 아이들이 내 옆으로 주르륵 모여들었다.
별 탈 없이 넘어가는 오늘 위기에 매우 안심되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 아빠가 먼저 들어올까 봐 무척 마음을 쪼였다"고 그런다.
그런 불안한 아이들 눈빛을 보니 나의 반란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고 난 또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욕실에 나온 그는 조금 전의 엘러베이터에서 왜 그런 모양새로 있었는지 궁금해 물었다.
아이들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방에 들어와 적절한 거짓말을 하였다.
< 이번에 사 온 외출복을 막 입어보고 있었는데 옆 동 S 엄마가 인터폰으로 연락이 와 지금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 것이 있으니 급하게 내려오라고 해서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바로 받아서 올라가는 찰나에 당신이 왔네요…>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앞으로는 그런 꼴로 내려 가지마 >
<알았어요…>
오늘 종일 커피솝에서 단단히 각오하고 세운 나의 전투 전략? 은 거짓 변명만 늘어놓은 채 결국 끝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서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사실 그날은 아이들이 초조하게 생각해 거짓말을 한 것이며, 학부모들과 지리산 단풍 구경 가다가 고속도로 중간에 돌아오게 되었고, 그런 나 자신이 처량해 당신에게 반란하고자 크게 싸울 태세로 늦게 들어온 것이라 말했다.
이미 지난 일이라 그날은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단풍 구경에 마음이 걸렸는지 친정 작은오빠와 사촌오빠도 함께 의논되었다며 이번 주말에 설악산 산행 가자고 그런다.
우리 오빠, 사촌오빠, 남편은 같은 나이라서 친구처럼 잘 통했다.
특히나 나의 작은 올케 언니가 된 내 친구는 나와 중고등학교 함께한 제일 친한 친구이며, 사촌오빠 올케 언니도 자기네 끼리 친구처럼 잘 어울렸다.
지인에서 친구가 된 미술학원 C의 부부도 합류해 4팀 부부가 함께 설악산으로 2박 3일 단풍구경 겸 산행을 가게 되었다.
그때 오빠와 설악산 산행 여행은 매우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으나 사촌 오빠는 몇 년 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먼저 하늘나라에 가버려 사촌오빠와 함께한 설악산 추억은 마지막으로 소중하게 남아있다.
설악산 추억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또 있었다.
설악산 단풍 산행 좋아서 다음 해에는 친한 친구들 5팀 부부로 구성으로 10명이 설악산 산행을 가게 되었다.
설악산에서 2박 3일 산행을 잘하고 마지막 하산 날은 해도 저물면서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운 가을 날씨가 매우 춥게 느껴졌다.
하산 길 인파 속에서 우리 일행도 서둘러 내려오다가 난 화장실이 급했으나 중간에는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일행 맨 끝 친구에게 화장실이 급해서 먼저 내려가고 있으면 곧 뒤따라 갈 것이라 말하고 하산하는 사람들을 피해서 길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쪽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갔었다.
더는 들어갈 수 없는 숲 가장자리 아래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서로 엉켜있는 나뭇가지 허공 위에 오랫동안 낙엽이 층층이 쌓여 있어 그곳을 땅이라 착각하였다.
그곳을 밟자마자 선 체로 아래로 푹 빠져 계곡물에 "철벙"하고 빠져버리고 말았다.
바위에 부딪히지 않고 제법 깊은 계곡물에 완전히 빠지면서 다치지는 않아 다행이라며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곳에는 누가 도와줄 사람이 없어 4~5미터쯤 높이를 나뭇가지들을 움켜쥐고 낑낑거리며 간신히 올라왔지만, 올라오는 과정에서 흙에 옷과 얼굴이 얼룩투성이 되었고, 물에 흠뻑 빠진 생쥐 모양새로 배낭, 호주머니 속에서 물이 계속 쭈르륵 흘려 등산화 속으로 들어가 털어 신어도 금방 물이 가득 차 들어갔었다.
흠뻑 젖은 옷도 철갑 옷을 입은 것처럼 매우 무거웠다.
( 그 시절은 등산복, 등산화, 배낭 등이 요즘처럼 가볍거나 좋은 방수 제품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하산하는 길에 합류하니 하산객들이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다들 뒤로 물러났었다.
부끄러워 먼저 내려간 일행 쪽으로 부리나케 뛰었는데 뛸수록 등산화 안에서는 "철벙 철벙" 소리에 앞서가던 하산객마다 갑자기 웬 물소리가 나는지? 뒤돌아보다가 내 모습에 황급히 놀라며 다급하게 물러난다.
한참 앞선 간 일행 쪽으로 허둥지둥 뛰어갔는데 "철벙 철벙" 등산화 요란한 물소리에 우리 일행도 이게 무슨 웬 물소리인가 싶어 뒤돌아보다가 나를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른 사람보다는 그는 엉망이 된 내 꼴에 설악산 물귀신을 본 것처럼 허걱~…
<이게…무슨 꼴이야…뭐…야‥>
기막힌 내 꼴에 말까지도 더듬거렸다.
방금까지도 멀쩡한 모습을 보았는데 금세 흙투성이에 물까지 뒤집어쓴 물귀신으로 둔감했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서 얼이 빠져나간 얼굴이 되었다.
화장실이 급해 사람들이 안 보이는 숲 깊숙이 들어가다가 나뭇가지 위에 쌓인 낙엽 위를 땅인 줄 잘못 밟다가 허공 아래 빠져 이 꼴이 되었다며 숨 가쁘게 말을 하였다.
< 넌 설악산까지 와서도 남들이 일어나지 않는 일이 왜? 유난히 네 한데만 꼭 일어나는 거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디 가나 매번 빠지고 그래?>
이런 상황에서 제일 걱정해주고 챙겨줘야 할 남편이 지난 옛일까지 떠올리며 내가 불가사의 사람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젖었다.
< 경치가 아름다운 설악산 계곡에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로 착각하고 잠시 목욕하고 왔을 뿐이에요~>
오빠들과 작년에 왔을 때는 화장실 갈 적마다 걱정된다며 여자 화장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기다려 주고 했는데 이번에는 친구들 남편들과 어울리느라 내가 뒤에 처진 줄도 몰랐고, 물에 빠진 것도 몰랐으며 걱정되어 감싸주기보다는 뒤따라오는 나를 흘끗흘끗 쳐다보면서 남들 보기에 창피하다며 멀리 떨어져 걸어오란다.
<자꾸 그러면 이 꼴로 당신 팔짱 끼고 걸을 것이에요>
일행들은 우리 대화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ㅋㅋㅋ~~
다들 손수건밖에 없다며 숙소에 가야만 마른 옷을 갈아입을 수가 있었는데 날은 어두워질수록 더 춥고, 물에 젖은 옷은 무겁고, 숙소까지는 30분을 더 가야 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는 아름다운 설악산 계곡에서 목욕하고 왔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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