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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67화) 아홉 번째 새로운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7. 9. 11. 17:44


<아홉 번째 새로운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회원 D의 남편 초보 운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 여조카의 초보운전이 생각난다.
D와 알게 된 인연은 그때만 해도 10년 지인으로 나와 매우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D의 여조카는 결혼도 포기하고 높은 계급의 육군 간호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해 여름에 그녀와 D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동해 바닷가로 떠나게 되었다.


옛날 그 시절의 동해 바닷가 부분에는 북한 간첩선 감시 철망으로 철통같은 경비 때문에 일반인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바닷가에 군인 장교 가족들만 그녀와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일반인 접근금지로 그곳의 바닷물은 너무나 깨끗하고 매우 조용했으며 모래밭에는 흔히 말하는 물 반 조개 반이라고 할 만큼 제법 큰 조개가 많아 그곳에서 우리 아이들과 조개잡이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 그 후에는 동해바닷가에는 군인 철조망이 없어졌으며 그런 곳은 두 번다시 없을 장소에서 조개잡이는 우리 아이들과 좋은 추억거리가 된 것 같다)


요즘은 어디가나 콘도와 펜션이 많을 때지만, 그 시절 풍경이 아름다운 동해 바닷가 부근에 콘도 분양이 한참 뜨고 있을 때에 여름 피서를 귀찮은 텐트 캠핑 도구보다는 콘도에서 편리하게 지낼 수 있다는 첫 호기심은 주부들 사이에서 큰 로망으로 생각했었다.
우리 일행은 해 질 무렵까지 그곳 바닷가에서 조개잡이로 즐기다가 D가 콘도 2개를 준비한 곳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 시절은 네비케이션도 없을 시절이라 길을 아는 D의 가족 자동차가 선두차이고, 두 번째로 우리 가족 자동차, 그 뒤에는 D의 여조카 자동차가 우리 뒤따라 가게 되었다.
D의 여조카는 초보 운전 실력에 야간 눈 시력이 안 좋다면서 혹시나 우리 차를 놓치 까봐 지나치게 바짝 붙여 따라오다가 정지 신호등마다 계속해 "쿵쿵~ " 뒤에서 부딪치는 심한 충격으로 노이로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콘도에 도착해 자동차 뒷부분을 보니 여기저기 푹푹~ 패어 졌고 뒤 펌퍼도 덜렁덜렁 떨어질 정도로 손실되었다.


그녀는 매우 죄송하다며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녀의 자동차 초보운전 실수담을 말했다.
초보 운전으로 어느 고속도로 중간 휴게실에서 주차하다가 잘못해 앞 유리창이 완전히 깨졌는데 앞 유리 없이 그 상태로 고속도로로 온 적이 있다고 하였다.

< 헉~ >

우린 그녀 말에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고속도로에서 지나가는 많은 자동차가 자기를 신기한 구경을 보는듯이 웃더란다.
정비공장에 도착해 화장실 거울을 보니 얼굴 전체가 먼지와 햇빛으로 눈. 이빨 부분 이외는 모두 새까만 색이 되어 있었고, 그것보다는 고속도로 미세먼지를 얼마나 많이 마신 탓인지 몇 날 며칠을 목이 칼칼하게 따갑고 아파서 매우 고생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예전 우리 아들을 맡아준 미술학원 원장 C는 내가 처음 전문대학을 들어갈 적에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는데, 그 이후에도 우리 아들 매년 생일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생일 떡을 손수 만들어 가지고 오는 특별한 인연으로 매우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당시에 미술학원을 그만두고 새로 시작한 사업이 비디오 작품 제작을 하였다.
요즘은 동영상을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시절이지만, 그 시절에는 노래방 뮤직비디오 제작이 한참 유행할 시기이며 뮤직 비디오나 결혼식, 돌잔치, 특별한 행사장에서만 처음 비디오 제작할 시기였는데 그 이후로 비디오 사업이 죽순처럼 생기는 바람에 사업을 접으면서 마지막 기념으로 나의 에어로빅 운동과 내 일상생활을 비디오로 찍어서 선물로 주겠다고 하였다.


그 시점은 나 역시도 헬스클럽을 접고 집에서 쉬다가 새로 유도장에서 에어로빅을 시작할 시점이라 그간 많이 불어난 체중으로 망설이며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찍고 싶었지만, 그녀의 사업을 접는 시기와 맞출 수가 없어 그 상태로 바로 찍게 되었다.
에어로빅이야 혼자 찍을 수 있어 상관없지만, 일상생활은 남편과 함께 찍어야 한다고 했으나 그가 사양하며 나 혼자 많이 찍으라고 그런다.
그가 절대적으로 거부해 그럼 엑스트라를 세워 남편처럼 뒷모습만 찍어 연출하자는 C의 의견에 그 꼴은 못 보겠는지 겨우 함께 찍을 수가 있었다.


( 이것도 그 시절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시점으로 보면 그때 찍은 비디오는 내 삶의 소중한 필름이 된 것 같다)


뮤직비디오에서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갔을 때 일이다.
대구에서 나름 유명한 높은 회장님, 금융계 사장님, 대구에서는 잘 나가시는 나이가 많으신 분들로 구성된 모임은 오랫동안 유지하며 친하게 지내는 부부 모임으로 제주도 여행으로 많은 일행이 가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저녁때 배가 고파서 적당한 식당을 찾고 있었는데 간판에 "000 가라오케"를 발견하였다.
< 가라오케가 뭐야? >
그 시절 제주도 관광지에 일본에서 건너온 가라오케가 뭔지 몰랐던 시절이라 모두가 제일 젊은 나에게 물었다.
< 글쎄요? 제가 부산 친정에 가면 그사이에 못 본 일본 이름으로 된 우동 집들이 많더라고요. 아마도 새로 나온 일본 우동 이름이 아닐까요?>
< 그럼 오늘 저녁으로 가라오케 우동을 먹어볼까?>
우리 일행들은 가라오케를 일본 우동 집으로 착각하고 들어가게 되었다.
가라오케 입구에서 까만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 종업원이 아주 큰 목소리로 친절하게 안내하며 어둡고 이상야릇한 룸으로 안내하며 곧이어 깨끗한 흰 냉 타올과 얼음물을 갖다 주는 서비스가 어째 일반 우동집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았다.
< 막내 말 듣고 잘 들어온 것 같네. 매우 친절해서 왠지 가라오케 우동 맛도 좋을 것 같은데! >
< 역시 일본 음식점은 서비스가 달라. 이런 깨끗한 차가운 흰 타올도 갖다 주고 말이야>
< 서울의 어느 호텔 식당보다 서비스가 더 나아! 이런 좋은 룸에 푹신한 소파도 마음에 들고>
<우리나라도 이런 서비스만큼은 일본을 본받아야 한다고!>
일행들은 여행으로 더러워진 손과 얼굴을 냉 타올로 닦고, 시원한 얼음물도 마시며 거듭된 칭찬을 하였다.
난 분위기가 어째 우동 집이 아닐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 때 종업원이 들어와 무엇을 시킬 것인가 묻는다.
종업원이 묻는 것은 어떤 양주를 시키겠느냐고 물어 본 것이다.
<막내가 알아서 시켜봐요>
< 가라오케 우동으로… 쭉… 주세요>
<어, 엥… 가라오케 우동이라뇨?>
종업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반복해서 물었다.
그런 종업원 표정에 더 불안한 생각이 들면서 자신 없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라오케가… 일본 우동이 아닌가요…?>
< 가라오케는 양주나 맥주를 마시면서 부르는 일본식 노래방인데요…>
< 가라오케가… 일본식 노래방이라고요…? 무척 죄송하지만요… 잘못 알고 들어온 것 같은데요… 저희는 지금 배가 몹시 고파서 빈속에 양주 마시고 노래 부를 처지가 못 되는데… 그냥 나가도 될까요…?>
종업원은 많은 일행이 들어와 더럽게 닦은 흰 타올에 차가운 얼음물만 마신 상태에서 손님들이 다시 나간다고 그러니 얼굴을 찌푸리는 것에 미안해 슬금슬금 나오게 되었다.
그는 이런 창피한 사태를 내가 괜히 아는 척해서 나이 드신 분의 체면만 구겼다며 나를 책망하였다.
< 모르면 가만히 있지. 죄송하게 이게 뭐야?>
<아니야 우리 막내 덕분에 시원한 얼음물과 시원한 타올로 닦고 좀 쉬다 나오니 훨씬 피로도 풀리고 좋은데 뭘 허허>
< 막내 덕분에 가라오케는 우동이 아니라 일본 노래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잖아. 다음에 제주도에 오면 추억거리가 되었어 허허>
그 이후로 전국에 가라오케라는 간판이 생기면서 대중들이 다 알게 되었지만, 그 모임에서는 가라오케 간판만 보면 가라오케 우동이 생각난다고 그랬다.



첫 딸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니 교실에서 알게 된 여러 학부모와 모임을 계속 이어왔는데 그간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었고, 오랫동안 모인 회비로 가을 단풍 구경 나들이 가자며 어느 날짜로 정해졌다.
하지만, 나 혼자만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이유는 남편에게 말을 해봐야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일상은 남편이 출근하면 에어로빅도 하고 모임도 하고 자유롭게 지내다가 오후 4시에는 집에 돌아와 그가 6시 칼퇴근하기 전까지 집 청소, 저녁준비가 되어야 했다.
그 이후 시간에는 바깥은 오직 남편과 동행하는 모임이나 영화관, 가족 외식 이외는 저녁에는 나갈 일이 없었다.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혼자서 밤에 아파트 주차장이나 수퍼에만 나와도 어두운 밤하늘이 익숙하지 못해서 불안하고, 두렵고 무서운 생각으로 이상한 병 증상이 생겼다.
친구나 지인들 모임에서 여행은커녕 단풍 구경을 한 번도 어디 가본 적이 없어서 혹시나 오후 4시 안으로 돌아올 수 없으면 어떡하나? 그런 것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몇 번이나 그에게 학부모 언니들과 가을 단풍 구경 갈 것에 사전 허락을 받아볼까도 생각을 했으나 결국 물어봐야 절대 허락도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아예 말도 끄집어 내지 않았다.


내 타고난 천성은 어릴 적부터 천하에 누구도 말릴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고집과 행동으로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둘렸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말괄량이 성격으로 내 멋대로 커 왔는데 어린 나이에 약혼, 결혼하면서 지금까지 그에게 이상하게 길이 들려 복종하며 살게 되었는데 이것도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이런 내 성격에서 벗어나 숨통이라고 생각한 것이 대학을 다니거나, 헬스클럽 운영하기나, 에어로빅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그가 나의 이런 약점을 알아차리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뻑하며 "당장 대학을 그만두라, 헬스클럽 그만두라, 에어로빅 그만두라" 협박성 말에 사실 쩔쩔맨 내 문제도 있었다.
아무튼, 그런 생활을 오랫동안 살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어두워지는 시간부터는 혼자서 밖에 나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지경에 달했다.


가을 단풍 구경하러 가는 날이 되었다.
< 그래! 가까운 곳으로 단풍 구경 간다고 했으니 오후 4시 안으로 돌아오면 될 것이니 구태여 구접스럽게 말할 필요 없어. 남들은 이 나이에는 남편을 쥐락펴락 마음대로 사는데 난 첫애가 고등학교 들어갈 동안 언제 단 한 번이라도 가족 이외 친구나 지인들과 나들이 한 적도 없잖아. 그리고 또 조금 늦으면 어때. 단풍 구경 다녀왔다고 당당하게 말하면 되지 뭘! 이제부터라도 나도 그렇게 안 살 거야! 만약 오늘 뭐라고 한다면 안 살면 되지 뭘 남편이 뭐가 무섭다고 쩔쩔매 죽기 아니면 까무어치기로 싸우면 되겠지 >
큰마음으로 다짐하고 학부모 언니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나가게 되었다.
만나는 장소에 나가보니 몇 대 승용차로 가까운 곳으로 간다고 그랬는데 승용차가 아닌 중형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승용차가 아니고 웬 버스인가요?>
< 처음은 가까운 곳으로 갈려고 했는데 이왕 단풍 구경하러 가는 김에 오늘은 제대로 단풍 구경 하기로 전라도 주왕산으로 계획을 바꾸었는데 거리가 멀어서 여러 대 자동차보다는 버스 한 대로 가기로 했어>
< 저는 처음 듣는 말인데요… 그럼 몇 시에 돌아오나요?>
< 평일이라 차가 밀리지 않아서 그래도 그곳까지 멀리 다녀오려면 아마도 밤 8시~ 9시경에 올 것 같은데>
( 엉… 밤 8시~ 9시라면 밤 10시도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내 계획에서 너무 벗어나잖아… )
먼 주왕산까지는 내 계획과 너무 먼 것 같았다.
학부모 언니들에게 내가 못 간다며 나로 인해서 모처럼 분위기가 깨지면 어쩌지? 그런 생각으로 우물쭈물 결정을 못 짓고 망설이다가 버스가 출발하게 되었고, 막상 대구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초조해져 눈 밑 다크서클이 쭉 내려오는 것 같았다.
내 걱정과 달리 언니들은 모처럼 나들이가 즐겁다며 매우 신이 나 간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신나게 깔깔대고 웃다가 조용한 나를 보면서 다들 한 마다씩 했다.
<언제나 밝고 발랄한 우리 막내가 왜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있는거야? 오늘은 집 걱정이랑 다 잊고 가을 단풍에만 빠지는 거야>
<아…예…그래야죠>

내 마음은 아무리 즐기고 싶어도 대구에서 자꾸 멀어질수록 내 다크서클은 더 내려와 심장이 답답해지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성난 그의 얼굴도 떠오르면서 예전 꽃꽂이 납덩어리로 피아노 뚜껑 깨진 사건도 생각나고 더구나 아이들 앞에서 부부 싸움으로 가정 평화를 깨면서까지 내가 꼭 단풍 구경을 가야 하는지? 갈수록 버틸 자신감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더는 갈 수가 없었다.
버스가 중간 휴게실에 도착해 화장실 가는 타임에 언니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 언니들 정말 죄송한데요. 이런 마음으로 가을 단풍 나들이 가봐야 즐겁지도 않을 것 같으니 양해해 주시고 저는 아무래도 여기서 대구로 되돌아가야겠어요>
언니들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벌컥 화를 내며 다들 난리를 쳤었다.
내가 남편에게 꼼짝 못 하고 사는 것에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바보처럼 사는 줄 몰랐다며 난리를 쳤고, 또 한 편 다른 언니들은 내 어두운 얼굴을 보니 데리고 가봐야 마음의 병만 생길 것 같다며 보내주자고도 하였다.

국, 학부모 언니들 원망을 들으면 버스는 주왕산으로 떠났고 난 그곳에서 대구로 오는 버스를 겨우 구해서 돌아오게 되었다.


혼자 대구로 되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심드렁한 마음으로 보는 창밖의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을 보니 더욱 허탈해지면서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서글픈 심정으로 대구에 도착하였다.
이런 마음으로 일찍 집으로 들어간다면 나 자신에게 더욱 비참함을 느낄 것 같아서 커피솝에 앉아 긴 한숨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덧 오후 4시가 넘었고 또한, 6시가 넘어갔으나 오늘만큼은 늦게 들어갈 것이라며 밖이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을 보면서 이따위 어두움이 뭐가 무섭다며 여태 바보처럼 산 것인지? 오늘부터는 절대 그렇게 안 살 것이라며 몇 번이나 다짐하고 무한히 길게 느껴지는 밤을 좀 더 버티고는 늦게 일어나 아파트로 향했다.

그는 분명히 오늘도 6시에 칼퇴근했을 것이고 청소도 저녁밥도 안 하고 이 시간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잔뜩 화가 나서 날 벼루고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며 이런 내 기분에 뭐라고 야단쳐 봐라! 오늘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야! 남편이 뭐가 무섭다고 단풍 구경 가는 도중에 돌아온 내 바보 같은 속상함으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라며 그까짓 것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단단히 맞설 싸울 태세로 들어갔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니 내 사정을 잘 아시는 관리실 아저씨가 천만이라는 표정으로 그런다.
<천만다행입니다. 오늘은 아직도 아저씨께서 안 오셨으니 빨리 올라가 보세요>
< 그래요~~ 아주 잘 되었네용>
 관리실 아저씨의 그 한마디에 안도의 반가움으로 그 시절에 엘리베이터 안에 CCTV가 없을 적이라 그가 오기 전에 우리 집 층수로 올라가는 틈새 시간을 벌고자 허둥지둥 외출복 위의 옷 단추와 바지 자크를 풀다가 거울에 비친 내 행동을 발견하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조금 전까지 단단히 싸울 준비 태세가 바뀌어 외출복에서 홈웨어로 갈아입을 준비 태세 행동을 하다니 내가 너무나 단순해 미칠 것만 같았다.
< 아니… 뭐가 잘 되었다고 지금 이 난리야? 빨리 갈아입을 준비 태세를 하고 있잖아? 얼마전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들어가 한바탕 싸울 준비 태세로 늦게 들어온 것이잖아! 남편이 아니라 이래서 내가 더 문제야! 내가 멍청이고 내가 미친 거야! >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찡~ 열리면서 단추가 다 풀어헤친 윗옷에 바지 자크가 풀러 내려갈까 봐 옷을 움켜쥐고 엉거주춤한 내 이상한 모양새를 목격한 그는 몹시 충격스러운 표정 지으면 말했다. 
<이게 무슨 꼴이야? 뭘 미쳤어?>
< 어‥엉… 당신이 왜 거기 서 있어요…?>
그의 등장에 너무 놀라서 순간 퍽 주저앉을 뻔하면서 엘리베이터 숫자를 보니 아직도 일 층에 서 있었다.
너무 급히 서둘다가 깜빡하고 우리 집 층수 버튼을 눌리지 않은 체 그 자리 일 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금까지 열심히 옷을 벗고 있었던 것이고, 그가 방금 도착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렸는데 옷을 벗으면서 내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 그게… 그게… 그러니까…>
내 수상쩍은 지금 상황은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고 급하게 야간 도주하다가 딱 걸린 사람처럼 보였고, 반대로 이 곤경에 빠진 나는 또다시 남편 앞에서 작아지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의 말로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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