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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66화) 아홉 번째 새로운 아파트에서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7. 8. 9. 15:08

<아홉 번째 새로운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그동안 여러 가지 집안일을 꺾다 보니 편입 생각을 잠시 접고 있었는데 여기 아파트를 이사오면서 위층에 늦게 입주한 교수님 댁의 인연으로 편입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분들은 도움이 될 만한 정보 제공에 계속해서 용기까지 북돋아 주셨는데 그런 힘을 얻어 난 다시 용기를 내어 편입시험을 치르고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에도 역시 대학교에는 군 복무 마치고 복학한 학생이 제일 나이가 많을 시절이라 전문대학 다닐 때처럼 또 한 번 더 학생들 사이에 아줌마 대학생으로 소문나면서 교내 관심거리가 되었다.
더구나 이 대학교에는 친정 큰오빠 막내아들인 나의 친조카가 같은 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조카와 늘 다니면서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도 하고 모르는 문제는 조카에게 물어보는 여러 면에서는 매우 좋았으나 고모와 조카가 같은 학교 학과에 다니는 것도 또한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대학교 졸업식 날에는 친정어머니를 비롯한 친정 가족들이 축하해 주려 오셨는데 나에게는 친정어머니와 친오빠 가족이지만, 조카에게는 친할머니와 친부모가 오신 것이다.


(조카와 함께 졸업식 날에 학사모를 쓰고 친정 가족과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며 내 삶도 참으로 다양하게 산 것 같다)


우리 아들은 아파트 이사 와서도 역시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었다.
얼마 전에 아들이 버스 교통사고 났을 때는 공부를 못 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된다고 다짐했으나 그래도 너무할 만큼 학교 다녀와서는 책가방은 저 멀리 던져 놓고 컴퓨터 게임에만 종일 매달리고 있으니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내가 따끔하게 아들에게 경고했었다.
집에서 종일 컴퓨터 게임만 한다며 내쫓아 버리겠다고 엄포를 주었다.
그러나 그때뿐인 아들에게 몇 번이나 경고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니 약속을 이행하라고 말을 했을 뿐인데 어리석고 순진한 어린 아들은 그말은 들어야 할 것 같은지 정말 짐 보따리를 사고 있었다.
그렇다고 말리 수도 없는 일이고 …
아들은 짐 보따리를 사 들고 현관문을 나서는 것이다.
속으로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황급히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내다보니 아들은 갈 곳이 없는지 짐 보따리를 옆에 끼고는 아파트 벤치에 한참 동안 우뚝 크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다시 내다보니 금세 어디로 사라져 안 보였다.
난 놀라서 후다닥 뛰어 내려와 벤치 부근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사방을 찾아 헤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동네 PC 게임방에 가 보니 아들은 그곳에서 짐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는 동네 형들 하는 게임을 보느라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정신은 온통 게임에 빠져 있었다.
너무 기가 차고 한심해 긴 한숨을 땅이 꺼지라 쉬고는 아들과 짐 보따리를 챙겨 데리고 오면서 나 자신에게 다시 체념시키며 마음을 다독거렸다.
<그래 내가 뭘 더 바래… >
난 아들 태아 때 낙태 생각으로 산부인과에 간 적도 있었고, 그때 의사 선생님 의견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아들 운명의 고비도 있었고, 헬스클럽 경영한다는 핑계로 아기를 제대로 거두고 보살피지 않아서 병원에 실려 가 아들 생명에 매우 위태한 고비 순간도 있었고, 지난 버스사고 때도 죽을 뻔한 고비도 있있을 때도 아들 생명을 덤으로 얻었다고 생각하자며 더는 욕심내지 말고 건강하게 잘 커 주길 바랬는데 또 그 사이에 욕심을 부리는 것인가?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고자 어느 눈 오는 겨울날.
시험장은 우리 집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가량 먼 거리에 있었고 그날 하필이면 눈이 많이 와서 교통체증으로 시험장에 조금 늦게 도착하였다.
요즘은 운전 시험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자동차 1종 보통면허증을 취득하려면 필기시험 합격 후에 실기장소에서 1톤 트럭으로 장거리 주행, T 코스, S 코스를 치른다.
S 코스에서는 끝 선을 밟게 되면 컴퓨터에 불합격 벨이 울리게 되는데 난 그날은 왜 그랬는지?

떨어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완전 거꾸로 생각하고 있었다.
S 코스 마지막 끝 선에서 밟아야만 컴퓨터 합격 불이 들어올 것으로 착각하고 한두 번도 아니고 그것도 부족해 혹시나 컴퓨터 벨이 울리지 않을까 노파심에 재차 확인으로 끝 선에다 꾹꾹 다시 밟으니 시험장 스피크에서 내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불합격이니 빨리 내려오라고 한다.

그러나 난 불합격이라 생각 안 하고 다음으로 진행하니 끝내 경찰관이 뛰어와 내려오라고 그런다.
< 스피크에서 불합격이라는 소리 못 들었어요? 왜 계속해 끝 선을 자꾸 밟아요>
< 벨이 안 들릴까 싶었어요>
경찰관은 내 말에 어이가 찬 듯이 끝 선을 밟으며 불합격이라는 그 정도 상식도 모르고 시험 치러왔느냐며,

시험 전에도 미리 주의 사항도 주었는데 왜 계속해 밟은 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난 지각으로 이런 주의 사항까지도 듣지 못했고, 왜 그날은 엉뚱한 생각을 했는지…

암튼 그래서 보기 좋게 실기시험에서 떨어졌다.

다음 실기시험에는 두 번 실수하지 않았으니 운전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었으나 차선에 대한 트라우마는 그 이후로 차선 만큼은 매우 잘 지키는 좋은 습관? 생기게 되었다.


도로 연수 연습을 받게 되었는데 며칠 만에 설날 연휴로 잠시 쉬게 되었다.

설날 제사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남편에게 대구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까지 태워 달라고 했으나 오늘 같은 날은 아주 복잡해 못 가니 그냥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라며 재래시장을 만류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몹시 피곤하니 쉬었다가 동네 슈퍼에 함께 가자고 그런다.


그가 곧바로 잠든 것을 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제사 차례상 준비물은 동네 슈퍼보다는 큰 재래시장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잠든 틈을 이용해 이제 운전 면허증도 취득했고, 도로 연수도 며칠 했으니 완전 왕초보자 난 무식할 때가 가장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복잡하고 북새통 같은 큰 재래 큰 시장에 가겠다며 그의 자동차의 열쇠를 호주머니에서 몰래 빼내어 운전 잘하는 사람도 엄두 내기 싫은 설날 명절 대목 시장에서 일방통행 길을 멋모르고 들어간 것이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나로 인해서 교통 마비가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존재한다는 욕은 모두 출동해 흠씬 두들겨 맞은 만큼 들었다.

그래도 간신히 차례 장을 다 보고 겨우 집에 들어오는 길에 명절 대목이라 거리에 엄청난 교통체증에서 로터리 안에 휘말려 도무지 기회 찬스가 없어 못 빠져나와 아마도 그 안에서 20 바뀌는 돌았을 때 눈치챈 교통경찰이 도와주어 겨우 빠져나왔는데 아마도 그때도 대한민국에서 존재한다는 욕을 흠씬 두들겨 맞고 겨우 집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아직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는 세상 물건 중에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자기 자동차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까맣게 모르고 자는 곁으로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들어가 열쇠를 그의 주머니 속에 감쪽같이 넣어두었다.


설날 명절 연휴가 끝나고 자동차 도로 연수를 다시 하자는 연락이 왔으나 그 많은 욕을 다 듣고 터득한 도로 연수를 할 필요가 없다며 도로 연수를 그만두었다.


며칠 후 큰딸 중학교 졸업식을 하는 날.

그날도 그는 자동차 없이 출근해 자동차가 서 있었다.
<잘 되었네!>
그때는 운전에 대한 두려움과 겁이 없이 복잡하고 혼잡한 졸업식 학교 정문 앞으로 완전 왕초보 운전자가 차를 몰고 들어갔으니 나로 인해서 또다시 교통 마비가 되었다.


남편은 그때까지도 내가 자기의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을 꿈에들 생각 못 하고 있었는데 꼬리가 길면 끝내 밟힌다는 그날이 왔었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 밖으로 내다보니 우리 자동차가 서 있었다.
< 잘 되었네! >
아이들에게 오늘은 맛있는 외식을 시켜주겠다며 4명 아이 다 태우고 식당에서 점심을 잘 먹고 나와 복잡한 10차선 도로 중간 큰 가로수에서 U턴을 했었다.

U턴을 해 보니 잘못 들어온 곳이라 직진 신호등으로 방금 바뀐 반대편 자동차들이 나를 향해서 벌 때같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무섭다고 소리지르고…

엄마의 왕초보 운전으로 반대 차선으로 잘못 들어가 자기네들이 오늘 다 죽는 줄 알았다고 말을 했으니 그의 놀라움은 나에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이 경탄을 금치 못했으며 그리고 시작된 그의 잔소리는 물불을 안 가린 나의 운전으로 그동안 지은 아이들 농사를 한꺼번에 헛수고로 만들 작정했냐면 난리를 쳤다.


나의 왕초보 운전 시절의 이런저런 경험 계기는 도리어 좋은 교훈이 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운전대만 잡으며 평소 내 성격과 완전 다르게 차분해지는 현상이 생겼는데 그런 안전 운전으로 여태까지도 교통 신호 위반 카드 한 장을 받은 적이 없었고, 남으로 받은 피해는 한두 건 있으나 내가 상대방에게 주는 피해는 단 한 건도 없이 지금까지도 무사고 운전 경력자가 되었다.


우리 아파트 상가에 유도장이 생겼다.
예전 헬스클럽 에어로빅 회원들이 날 찾으러 와 유도장에는 오전 시간대에 비어있으니 사용료를 주고 한 시간씩 에어로빅을 다시 시작하자고 그런다.
그렇게 해서 오전 한 시간씩 그곳에서 에어로빅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우리 아파트 주부들도 합류하면서 회원 수가 매우 많아졌다.
회원 간에 알아서 회장, 총무를 선출해서 난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자기네들이 알아서 운영을 잘했다.


어느 날 회원들과 초보 운전 시절에 얽힌 이야기를 서로 하게 되었는데 회장이 먼저 초보 운전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남편이 처음 운전 면허증을 취득했을 때, 날마다 자동차를 사자고 그녀에게 아이처럼 아부하며? 졸라 대더란다.
그 당시 그녀는 남편 봉급으로 매우 알뜰하게 저축하며 살 때라서 적금이 끝난 다음에 사자며 몇 번이나 거절했으나 결국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장기 할부금으로 자동차를 계약했단다.
그녀의 남편은 빨리 차를 몰고 싶은지 잔뜩 희망에 부풀어 운송비를 아낀다는 핑계로 직접 울산 자동차 회사에 가서 가지고 오겠다고 하더란다.
그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울산까지 갔었는데 아이들은 아빠의 시험 운전 기대하며 종일 눈이 빠지라 기다려도 늦은 밤까지 오지 않더란다.
휴대폰이 없는 시절이라 연락도 안 되어 무진장 밖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침 나갈 때는 신이 나게 나갔던 사람이 자동차 없이 풀 죽은 얼굴로 힘없이 뚜벅뚜벅 걸어오더란다.


그녀는 이상한 생각에 자동차는 어디 있느냐며? 물었단다.
남편은 초보 운전으로 도저히 고속도로가 겁이 나서 일반도로로 오게 되었는데 중간에 배가 고파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 주차 미수로 브레이크 안 걸고 나와 차가 내리막 경사 길에 가속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어떤 주차된 대형 트럭 뒤꽁무니에 처박혀 엄청나게 찌그러져 부근 정비 공장에 맡기고 시외버스를 타고 왔다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는 곧, 울기 직전이더란다.
그래도 인명사고가 없다니 천만다행이라고 말을 했으나, 속으로는 (땅이 그렇게 없더냐? 왜 하필이면 경사길에 주차한다고 난리를 치다가 브레이크도 안 밟고 나왔느냐?)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남편의 너무나 슬픈 표정을 보니 그날은 꾹~ 참았단다.


다음 날 정비 공장에서 연락이 왔는데 자동차 앞면과 중요한 부분이 완전히 다 부서져 쓸 수 없고, 쓸 수 있는 부분은 뒤 자석과 뒤 트렁크뿐이라며 어떻게 할 것인가 묻더란다.
새 자동차를 한번도 타 본 적도 없고 더구나 어떻게 생긴 것인지 본 조차도 없는 자동차를 집에도 도착되기 전에 폐차시킨 것도 화가 나서 못 견디겠는데 자동차도 없는데 장기간 할부금 청구서는 몇 년간 달달이 끊임없이 날아오더란다.
그녀는 매달 청구서를 볼 적마다 혈압이 올라갔었고, 반대로 청구서가 날아오는 날이며 남편은 그녀 눈치를 보면서 기죽어 살았단다.


겨우 자동차 장기 분할이 끝날쯤 그녀도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자동차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장기 할부로 자동차를 다시 계약하였단다.
남편에게 절대로 운전대 잡을 생각을 꿈에도 하지 말라며 그 시절 동네 카 센터에는 요즘과 달리 땅을 파고 그 밑에서 자동차 정비하던 시절에 동네 카센터에서 예쁘게 장식하고 나오다가 그녀의 운전 미수로 그 웅덩이에 한쪽으로 자동차 타이어가 빠지면서 새 자동차가 또 찌그러졌단다.


그 자동차를 수리하고 며칠 후 혼자 시골 갔다 오는 길에 화장실이 매우 급해서 사람과 자동차가 다니지 않은 한적한 구석에 차를 세우고 급한 볼일을 보고 자동차 문을 열려고 하니 안으로 잠긴 상태로 가방과 열쇠는 차 안에 있었단다.
그 시절에는 자동문도 아니고 휴대폰 없는 시절에 또한, 자동차도 요즘처럼 많지 않은 시절이라 한적한 시골길에서 도와줄 사람을 간절하게 기다렸으나 없었고, 날만 어두워져 눈물을 머금고 부근에서 작은 돌멩이를 찾아 자동차 창문을 때렸는데 아까워서 그랬는지 절대 부서지지 않더란다.
다시 바위급 돌을 찾아서 한쪽 눈을 질끈 감고서 힘있게 창문을 때리니 부서지더란다.
망가진 자동차보다는 그녀의 마음이 더 시퍼렇게 멍이 들어 며칠 안 되어 또다시 동네 카 센터에 흉한 몰골 상태로 들어가니 카 센터 사장이 히쭉히쭉 웃더란다.
아무튼, 그 시절에는 자기들과 새 자동차는 인연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작은 굿판이라도 벌여야 하나 했단다.
그 계기로 남편의 기세가 다시 살아났으며 자동차도 남편으로 넘어갔단다.


회장의 이야기가 끝나고 D 회원이 자기 남편 초보 운전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를 뒤이어 이야기했다.
D의 남편은 평소에는 매우 소심한 사람인데 술만 조금 들어가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어느 날, 남편이 친구의 부친 초상집에 갔는데 그곳에서 술을 조금 마시고 늦게 집으로 돌아오다가 멀리서 경찰이 음주 측정 단속을 하고 있더란다.
음주운전이라 급하게 차를 돌려 나왔는데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남편 차를 잡으러 오더란다.
술이 들어가기 전에는 세상에서 제일 소심하고 얌전한 남편이 술이 조금 들어가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확 바뀌는 돌변 표정이 되는데 얼마나 운전 잘했으며 경찰차마저 따 돌리고 차를 어디에다가 숨기고 왔단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또다시 소심한 남편이 되어 기억이 몽롱해서 자동차를 어디에다 숨겨 놓았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고 하더란다.
남편에게 다시 술을 먹여야 기억이 되살아날 것 같냐며 몇 날 며칠을 남편과 자동차 찾아 헤맸는데 일주일 만에 자동차를 겨우 찾았다고 하였다.


손수레나 겨우 다닐 정도의 논두렁 길 위에 보기만 하여도 아찔해 남편의 초보 운전자 실력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더란다.

세계 주차 달인만이 진기명기 나올 뻔한 주차 기술이라 그곳에서는 아무도 자동차를 뺄 수 없어 장비로 집어 올리는 작업으로 견인해 왔다고 했다.

우리는 초보운전 시절에 얽힌 이야기를 하며 한참 동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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