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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62화) 나의 자서전 일곱 번째 이야기 (주택에 살 적의 이야기들)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7. 1. 8. 19:19


(62화) 나의 자서전 일곱 번째 이야기 (주택에 살 적의 이야기들)


그 시절 그가 새롭게 시작한 사업은 외국에서 수입한 큰 원목을 건축자재로 새로 만드는 것이라 공장 외부에는 무거운 원목을 운반하는 지게차 구입과 공장 내부에는 원목을 움직이는 철도 레일 설치 등등 모든 설비를 미리 제작 주문 의뢰하였다.

중도금 지급한 후에는 나머지 잔대금은 부동산 등기 등록부 을구에 있는 매도자의 몇개나 있는 채무를 대신 갚아 말소하면서 동시에 공장 내부 설비도 하는 것으로 매도자와 합의했었다.

공장 기술자 직원들도 채용했고 매도자 채무도 다 정리했으니 소유권등기이전 신청하고 이제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난 줄 알고 공장도 가동 시작했는데 법원에서 통지서가 날아왔다.
내용은 공장 부동산이 다른 누가 먼저 등록되어 후자인 우리 무효가 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너무나 놀란 충격으로 법원에 당장 뛰어가게 되었다.


그 시절은 요즘처럼 신속한 인터넷 시절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매도인이 변심하여 매도자의 매형 이름으로 소유권등기이전을 우리 앞 순간 찰나에 먼저 소유권을 넘겨 등기부 등록한 것이다.

복잡한 것을 다 상세히 다 쓸 수는 없으니 중략하고…


결론은 매도자는 바로 사기죄가 성립되어 형사 입건이 되었으나 이미 등기부에 등록된 등기 문제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는 권리를 구제받기 위해서는 증거서류를 기재한 소장을 작성하여 지방법원에 제출했고 결과는 승소로 판결이 났으나 소송 상대방은 처남에게 사채를 빌려준 것이 있었는데 그 대가로 처남에게 부동산을 먼저 넘겨받은 것이라며 판결에 불복한 항소하면서 지겨운 긴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 민사소송을 해 본 사람들은 그 심정을 알 것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힘겨운 소송을 끝없이 끌어야 하는 것인지, 또한, 그간 엄청난 경비가 들어가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 일이 예상만큼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앞장서 기꺼이 소송을 끝장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선 상대방 부부를 만나 타협 중재 역할 하기로 커피숍에서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당신네도 알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억울한 피해자인지! 제 남편 성격으로는 절대 이 소송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끝까지 갈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확실한 것은 우리 서로는 갈수록 빈털터리가 될 것이고 각자 변호사만 배부르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까운 시간과 돈 낭비는 그만하고 차라리 이 시점에서 공장을 처분해 공평하게 반씩 나누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할 적에는 그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고 또한 자존심 명분의 한 방법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사실 남편에게 먼저 의논하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정해지면 연락해주세요. 남편은 제가 어떻게 잘 설득 시켜 보게요 >
상대방 소송자는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으며 바로 동의한다고 그런다.


하지만, 다음은 그에게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하는지…?
내 의견을 말하게 되었으나 그는 얼토당토않은 선택이라며 그에게 먼저 의논 없이 함부로 그들을 만나고 제안한 것에 굉장히 충격받았는지 두 눈을 무섭게 부라리고 매우 흥분하며 나를 몹시 질책하였다. 
<소송이라는 것이 무슨 장난 같은 일로 보여? 처남 매부 간에 그들이 사전에 짜고 처남은 교도소를 택한 것이고 매형은 민사소송을 한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인데 왜? 내 허락 없이 엉뚱하게 상대방을 쓸데없이 만나서 먼저 그런 바보스러운 제안을 해 >
<내가 오죽했으면 나셨겠어요, 맨날 민사소송에 휘말려 아까운 그 긴 시간을 계속 고통으로 낭비하는 당신을 보니 이게 아니다는 생각에요 >

 

다행인지? 그때 나에게 힘을 실어준 사람이 있었는데 새로운 출장 도우미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는데 어느 부잣집 중년 사모님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며 일하신 것이 매우 서툴러 보였다.
퇴근해 들어오는 그와 마주치자 그분은 화들짝 놀라면서 부끄러워 황급히 나가려고 하였다.
알고 보니 매우 잘나가는 아파트 건축 회사 사모님이라며 건설회사 부도 맞고 사장님은 교도소에 수감 생활을 하고 사모님은 얼마나 형편이 어려웠으면 출장 도우미 일을 시작한 것인데 모르고 온 집이 하필 우리 집이다.

건설 경기가 한참 잘나갈 시절 회사 사장실에서 그 사모님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며 그에게 가장 큰 손해 타격을 준 건축 회사이란다.
세상은 한치를 정말 알 수 없다고 하더니



그 당시 아파트 부동산 경기가 매우 좋지 못할 시기였다.

건설경기가 나빠지니 사회 전반적 경기마저도 좋지않아 건설회사들이 부도나면서 아파트 건축 자잿값으로 받은 약속어음은 휴짓조각이 되어버렸다.

그는 출장 도우미 사모님을 보고 난 후에 마음이 안되었는지 다음날 교도소 수감 중인 건축회사 사장님 면회하고 왔다고 그런다.

건설 경기 호황 시절에 회장실에 늘 근엄하게 앉아 있었든 모습만 보다가 수염도 깎지 않은 초췌한 모습과 사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침통하더라면서 되려 약간의 영치금을 주고 왔다고 한다.
건설회사 회장님은 고맙다면 자주 면회 와 달라고 하더란다. 그 말에 허탈한 발걸음으로 왔다며 그런 모습을 보고 온 후에는 마음도 변한 것 같았다.

여러 곳에서 받았든 휴지가 된 약속 어음 종이를 한 뭉치를 나에게 주면서 벽에 도배지로 쓰던지 쓰레기통에 버리든지 하라면서 주었다.

< 그러니까요. 그런 것에 비해서 차라리 우리가 더 나잖아요. 소송이 좀 억울하고 내 의견이 바보 서럽게 여겨지겠지만, 얼마 전에 내가 끔찍한 시한부 선고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더 나쁜 것에 비교해요. 훨씬 마음이 가벼워질 테니 이제는 털어 버리고 새로 출발해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지겨운 민사소송에서 벗어나지만, 그는 나와 달리 부동산 손실뿐만 아니라 설비된 공장 장비들마저도 고물값으로 처리되면서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다.


( 그 시절 900평 공장부지는 현재 대구의 1번 도로 대로변에 위치한 엄청난 가격이 되었고 그곳을 지날 적마다 그 사건은 잊히지 않는다)



어느 날 헬스클럽에서 돌아오니 자주 오시는 출장 도우미 아주머니가 이상한 말을 하였다.
어느 노인이 찾아와 이상한 말을 하고 갔다고 그런다.
집터를 전문적으로 보시는 분이라며 이 집에서 하루빨리 이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그러더란다.
<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부적을 팔려고 하는 분일 것이에요>
<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부적 같은 그런 말은 안 하고 먼 곳에 사시는 할아버지인데 우연히 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나다가 먼발치에서 보니 우리 집 주변 기운이 안 좋은 터라서 일부러 버스에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이 집은 아이들에게도 해롭고 살수록 경제도 빈 손바닥 떨고 나갈 것이라며 하루라도 손해를 안 보려면 이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니 자기 조언을 들어라며 하더라고요. 그리고 더불어 주변 집도 그렇다고 하면서 갔어요>
그 말을 들을 때는 기분은 매우 좋지 않았으나 신경 쓰지 않기로 했었다.
그 후 셋째 딸이 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입어 정형외과 병원에 가게 되었고, 아들도 불장난으로 큰 사고 날 뻔도 하였고, 얼굴도 다쳐 정형외과 병원으로 가면서 몇 번이나 놀란 가슴을 쓰다듬은 일도 있었지만, 그때도 그저 아이들이 크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다.


그 할아버지 말처럼 얼마후에 우리 집 좌우에 있는 집들도 놀랍게도 불행한 일이 있었다. 
오른쪽 옆집은 남편이 검사인데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중풍으로 마비가 되었고, 왼편 옆집은 원만한 부부가 그 집으로 이사 오면서 매일 싸움이 잦더니 끝내 이혼하면서 가족이 뿔뿔이 헤어졌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그를 보면서 마음은 차츰 혼란이 왔었다.

민사소송이 끝난 후에 그동안 손실된 경제를 되살리는 방법 중에 선택한 것이 그 당시 사회 이슈가 된 증권투자에 관심을 끌면서부터이다.

그는 타고난 천성은 모든 것을 자로 재듯이 빈틈없는 계획과 심사숙고하는 성격 소유자라 절대 불확실한 것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증권 투자 만큼은 그렇지 못하였고 속수무책 증권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무릅쓰고 말려 보았으나 처음은 증권투자에 손해 본 것만 한다더니 그러나 끝내 멈추지 못하고 미래를 대비해서 지금까지 장만한 그 많았던 부동산을 하나씩 하나씩 처분하면서 증권투자에 몰입하였고 이러다가 정말 빈 손바닥이 될 것 같았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올 당시에 시어머니께서 함부로 이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든 말씀에 비로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으로 이사와 강도가 들어와 현관문 앞에 날카로운 긴 칼이 놓여있었던 사건.
아들의 초주검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 간 사건.
석 달에서 한 달 안 사이에 사망할 것이라는 끔찍한 오진의 내 시한부 선고 사건 
오랜 민사소송에 휘말리면서 받았든 정신적 고통의 사건
딸의 교통사고와 연이어 일어나는 아들의 사고 등등
무엇보다 그의 증권 투자로 인해서 조마조마 우려했던 일은 우리 집 경제가 밑바닥이 보였다.

이 집에 살면 살수록 수난 사고와 경제도 곧, 빈손으로 나올 것이라는 그때 할아버지 조언이 생각나면서 이러다가 빈 털이로 길바닥에 나올 것 같았다.


옛날 그 시절 일층 이 층 거실에 2층의 거실은 대형 벽난로가 있는 큰 주택에서 그나마 남은 돈으로 27평 작은 아파트로 살림을 줄이면서 그 많은 비싼 큰 가구들과 피아노마저도 들어갈 공간 없어 몽땅 처분해야 했었다.
이로써 혼란스러운 나날들을 보낸 일곱 번째 주택의 살 적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내리고 여덟 번째 이야기로 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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