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나의 자서전 일곱 번째 이야기 (주택에 살 적의 이야기들)
어느 날 우리 집 부근에 조그만 철공소가 개업했다.
젊은 신혼부부가 경영하는 철공소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오가는 동네 분들에게 인사성도 좋았으나 아직 일거리가 없어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우리 집 1~ 2층 전체 창문 방범창을 만들어 달게 되었는데 방범창을 설치한 얼마 후 어느 한 밤중에 대문 초인종 소리에 놀라 깨었다.
무슨 일인가?
<경찰관입니다. 도독이 이 집에 들어간 것 같으니 문 좀 열어보시겠어요?>
어떡하나? 생각 와중에 그가 황급히 나를 가로질러 막으면서 한밤중에 경찰관이라도 함부로 문을 열어줄 수 없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
< 동네에 도독이 발생해 이 집으로 들어간 것 같으니 문을 열어주시겠어요>
옛날 그 시절 초인종은 음성만 들렸고 지금처럼 화면이 나오지 않을 때라 신분 확인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우리 집에는 별 이상이 없으니 아침에 와서 확인하라고 그런다.
< 정말 경찰관이라면 문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 경찰관이라는 것도 알 수 없잖아.>
< 설마~ ? >
그날 밤은 그렇게 잠을 설치게 되었는데 아침에 현관문을 열다가 소리치게 놀라게 되었다.
현관문 앞에 날카로운 긴 식칼이 놓여있었고 현관문 손잡이와 열쇠 구멍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우리 집의 자물쇠는 외부용과 내부용 두 개로 잠금 되어있는데 도독이 외부 자물쇠는 개방했으나 내부 것은 외부로 노출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실패하고 집 주위를 둘러봐도 이번에 설치한 튼튼한 방범창 덕분에 침입할 수 없으니 거짓으로 경찰관이라고 한 것 같았다.
그는 확인차 동네 파출소에 전화하게 되었는데 그 시간에 우리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느냐 물으니 전연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경찰관이라고 한 것은 도독이 거짓말한 것이며 만약 문을 열어주었다면 큰일이 날 뻔한 것이라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처음에는 철공소 부부에게 일거리를 준다고 시작한 방범창이 오히려 큰 화를 면하게 한 큰 득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 후부터는 2층 한 공간에 방 두 칸과 부엌이 있는 것을 그동안 비워둔 공간에 세를 주기로 했다.
첫 번째 어느 중년 아주머니가 중학교 다니는 남매를 데리고 방을 보려고 왔었다.
방이 별채처럼 돌아있고 방도 부엌도 크고 좋다면 더는 꼼꼼하게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는 상냥한 미소를 띠면서 바로 계약을 하겠다고 그런다.
아주머니는 대구 인근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아이들은 대구에서 자취 생활하면서 중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농촌이 한창 바쁜 시기라서 온 김에 내일 당장 이사하고 급히 집으로 가야 하는데 현재는 은행 문이 닫힌 시간이라 계약을 할 수 없다면 믿고 남에게 세를 놓지 말라고 심신 당부한다.
도독 때문에 세를 두기로 한 것이라 아이들만 두고 간다고 하니 정말 거절하고 싶었으나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보니 같은 부모 입장이라 안 되어 보여서 도와주고 싶었다.
< 어른들과 함께 사는 분이 좋은 데…음~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하세요>
잠시 후에 그녀는 다시 돌아와서는 연탄도 미리 주문하고 갈려니 선금이 필요한데 이왕 봐 주신 김에 내일 은행 문 열면 한꺼번에 다 드릴 테니 빌려달라고 그런다.
남을 의심하고 살지 않아서 그런지 무엇보다 두 아이까지 동행한 아주머니가 설마 사기꾼이라고 상상도 못 한 체 연탄 선금까지 빌려주고,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은 그들의 뛰어난 연기에 난 바보가 되어버렸다.
두 번째 방을 보러 오신 아주머니에게는 절대 속지 않을 것이라고 단단히 방어 다짐하면서 다행히 정상적으로 계약하고 세를 놓게 되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부부와 두 아이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사하는 날에 아이들은 이삿짐을 나르는데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이사를 마친 아주머니가 부탁하려 내려왔다.
그녀의 남편은 가정에 통 관심이 없어 이사해도 무관심이라면 저녁에 이사 한 집을 몰라서 우리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는데 전화 오면 마중을 나가야 하니 전화를 좀 바꾸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참 편하게 사는 남편이구나!)
속으로 무척 놀랐으나 아주머니는 이미 체념하듯이 말을 했다.
저녁에 이 층 아주머니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었고 그녀는 마중을 나갔다 들어오면서 우리에게 인사를 시켰다.
우선 곁으로 봐서는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순한 인상이었다.
< 우리 남편은 남들에게 너무나 좋아서 잘 도와주고 하는데 정녕 우리 집에는 이사하는지 마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이사 하는 집마다 제가 이렇게 마중을 나가야 한답니다>
이 층 아저씨는 이사에는 관심이 없어도 그 핑계로 집들이는 꼭 해야 한다면 술친구들을 벌써 집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그런 남편에게 아주머니는 이미 알고 있듯이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더운 날 집들이 음식을 하는 아주머니가 안 되어 보여 도와줄 것이 없는지 올라가 보았는데 아주머니는 국 솥에 넣을 고춧가루를 바쁘게 서둘다가 밥솥에 고춧가루를 넣어버려 붉은 고춧가루 밥이 되었다고 얼굴이 일그러져 울상이 되었고 곧이어 이층아저씨는 술병을 한 아름 안고서 술친구분들과 들어 닫쳤다.
여름방학 때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운전 교습소에 등록하게 되었다.
옛날 그 시절에는 운전 학원생도 많지 않았던 시절에 더구나 여자 운전 교습생은 더욱더 많지 않았다.
학원마다 어느 정도 학원생이 시험 인원수를 채워야 하는지 등록한 지 며칠이 안 된 나에게 필기시험을 한 번 보라고 그런다.
< 저는 아직 필기에 아는 것이 없는데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실험 삼아 어떤 내용이 시험에 나오는지 분위기 파악하면 다음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시험 보는 비용만 학원에 보태준 것 같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하니 할 수 없이 시험장에 가게 되었다.
시험지는 역시나 훑어보아도 아는 것이 없었고 다시 대학입학 수학 시험지를 받은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파악하면 읽어 보았다
요즘은 운전이 자동 기아지만 옛날에는 수동 기아 운전대가 있었던 시기이다.
언덕 경사에서 현재 3단 기아에서 힘이 부족하면 몇 단 기아로 바꾸어야 하는가? 문제가 있었다.
단계를 낮추어야 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그때는 아는 것이 없는 난 당연히 3단에서 안 되면 힘이 부족하면 더 높은 단계로 4단이겠지! 하고 4단에 점을 찍었다.
지나가는 감독관이 내 답을 보았는지 "푸웁~"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첫 운전 필기시험에 깨끗하게 낙방하였다.
그해 여름 방학은 운전면허 시험은 낙방했으나 헬스클럽에도 매일 수업에 참여하며, 걸 스카우트에서 아이들 에어로빅 수업, 기업 직원들 의자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 수업, 미인 대회에 나가는 어느 후보의 워킹 개인지도, 백 댄스팀 안무도 참여하면서 바쁜 여름방학을 보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강하는 날 친하게 지내는 학과 동생이 그녀의 어머니께서 새벽 기도하러 나갔다가 괴한에게 봉변을 당하고 돌아가셨다고 울었다.
신문에 난 그 사건이 그녀의 어머니라는 것에 매우 놀라며 무슨 말로 어떻게 학과 동생을 달래야 하는지 가슴이 무척 먹먹한 첫날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날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친구들이 그러는데 세상에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없으며 부모님이 몰래 선물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그런다.
나 역시 어릴 적에 진짜 산타클로스가 있는지 없는지 의문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정말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매우 실망한 경험이 있어서 확실히 알기 전까지 몰랐으면 했다.
<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 글씨체가 아빠 글씨였어!>
<맞아! 우리 친구들도 산타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다고 하더라>
<애들아 산타할아버지가 그 집 부모님 글씨체로 바꾸어 쓴 것이란다>
딸 세 명이 산타클로스가 절대 없다고 한 날의 크리스마스이브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에 낯선 글씨체가 쓰인 크리스마스 카드를 붙인 큰 과자 종합선물 사각 상자를 누군가 두고 갔었다.
어젯밤에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가 있다, 없다면 언쟁했는데 다른 글씨체의 과자 선물 상자는 산타할아버지가 세상에 있다는 마지막 선물로 좋은 추억이 된 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누가 갖다 둔 것인지 모른다.
다음 해
학교에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미술학원 원장 C가 바쁜 일이 있다면 일찍 아들을 데려다준다고 했다.
아들을 데리고 오는 길은 시장통로 지나야 하는데 한참 저녁 시장이 분주한 시간대에 어린 아들이 이제는 제법 엄마 헬스클럽 길을 아는 체하면서 먼저 앞장서 뛰어가다가 시장 아주머니의 팔 물건을 올리는 널빤지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따닥따닥 붙은 옆의 다른 널빤지까지 부딪혀 과일 장수, 생선 장수, 콩나물 장수들의 널빤지 위의 물건들이 도미노처럼 비가 온 뒷날 질퍽한 흙탕물 시장바닥에 쏟아진 물건들은 더는 수습 불가에 C는 감당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전봇대 뒤에 숨어 버렸다고 한다.
피해 본 시장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아들 옆에 모여들어 우리 아들을 붙잡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소리 지르더란다.
< 이 아이 엄마가 누구욧?>
격분한 시장 아주머니들이 아들 주변에 둘러서 아들은 놀라 울고, C는 물어줄 지갑도 없지만, 무엇보다 잡아먹을 것 같은 성난 시장 아주머니 앞에 도저히 나올 용기가 없어 계속 전봇대 뒤에 몰래 숨어서 숨만 들숨 날숨 불안한 숨 고르기만 했다고 한다.
미술학원 원장 C는 자기의 둘째 아이 출산으로 이제 우리 아이를 맡길 수 없어 출장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니 이 층 아주머니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신발도 신지 않은 체 뛰어나와 숨을 몰아쉬었다.
<큰일 났어요. 아들이 갑자기 정기를 해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뭐… 뭐라고요~.누가 데리고 가셨어요?>
< 아저씨밖에 연락 안 되어 아저씨에게 연락했는데 아저씨가 급히 응급실로 데리고 갔어요. 이일을 우째~>
이 층 아주머니도 이미 아셨다.
내가 얼마나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학교 다니고 있는지 그래서 이 층 아주머니는 아이 걱정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눈치다.
택시를 타고 어떻게 병원까지 왔는지‥
아들을 겨우 찾았는데 아이 옷을 훌렁 다 벗어놓고 높은 열을 내리고 있었다.
이미 눈동자는 초점을 잊은 체 축 널어져 있었다.
예전 시가집 형님의 큰아들도 정기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을 겪은 그는 더욱 불안했고 그래서 나에게 몹시 화가 난 상태가 되었다.
아들이 퇴원할 동안 화가 난 그는 나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더 무거운 짐의 벌을 주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그는 나에게 소리 질렀다.
<그만큼 내가 아이들 위해서 집에 있으라고 했는데 대학교, 헬스클럽이 자식보다 더 중요해. 이게 다 네가 집에 붙어있지 않아서 생긴 것이잖아>
정말 주부가 대학교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쯤에서 학교를 포기할까?)
몇 번을 망설이게 하였다.
참고 견딘 어려운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전문대학 졸업식이 되었다.
누구보다 기뻐하시는 친정어머니께서 오셨다.
좋은 성적으로 노력한 만학도 학생에게 주는 특별상을 졸업생 앞에서 받는 딸을 보시는 친정어머니에게 졸업 증서와 학사모를 씌어드리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면 엄청나게 까다로운 사위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네 명의 아이들 엄마가 헬스클럽 경영까지 하면서 이 졸업장이 얼마나 고생해 받은 졸업장인지를 아시기에 대견스러운 딸이라 생각하셨는지 어머니는 우셨다.
다음 해 봄날,
지난 산에서 교단을 제공해 주신 전문대 학장님께서 또다시 안부 전화가 헬스클럽으로 걸려왔다.
그간 나를 잊지 않고 전화해 주신 학장님에게 고마운 안부를 전하자 학교에 다시 방문해 달라고 그런다.
몇 번 바쁜 핑계로 거절했지만, 자꾸 거절이 미안해 마지막 마음으로 대학교에 방문하였다.
체육학과 교수님과 학장님이 무척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다들 우리 대학교에 강의를 못 해서 난리인데 왜 그때는 거절했는지요? >
그래서 솔직히 말씀을 드렸다.
그때는 고등학교 졸업자라서 차마 말씀 못 드리고 거절하게 된 사연과 그 후로 다시 용기를 내 대학입시 학원에 등록과 다른 전문대학에 다녔으면 이번에 졸업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학장님과 체육과 교수님은 나의 고백에 매우 좋게 격려를 해 주셨다.
그런 열의 가득 찬 것에 충분히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더 돕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강의할 수 있게 도와줄 테니 제일 빠른 방법은 미국에 있는 자매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학장님이 직접 추천서를 써 줄 테니 유학 갈 의사가 없느냐고 물어셨다.
무척 고맙지만, 아이 네명을 키우는 엄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리고 나를 믿고 도와준 헬스회원들에게 문을 닫을 수 없다고 거절하고 나오는 발걸음은 무척 복잡한 심경으로 집에 왔었다.
그날 저녁 식사 후에 그에게 슬쩍 말을 때웠다.
< 오늘 학장님께서 미국 자매 대학교에 유학 다녀와 체육과 강의를 맡을 의향이 없는지 묻더라고요…>
< 뭐, 뭐라고?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네가 학교 다닌다고 집을 비운 바람에 아들이 아찔한 사건도 벌써 다 잊어버린 거야?>
< 꼭¨간다고 한 것도 아닌데…>
< 그럼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 말 같지 않은 소리 때문에 화를 만들게 해>
그는 얼음처럼 냉정한 말투로 두 번 다시 말을 못 끄집어내게 잘라 말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내 인생을 그렇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미술 학원 원장 C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해야 한다고 그간 일을 말을 하였다.
<사람에게 행운의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야.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그런 기회는 꼭, 잡아야지!
나 같으면 그런 좋은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 나 역시도 미국 유학과 보장된 앞으로 대학교수가 된다면 좋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닌 것 같아! 내 꿈도 좋지만, 가정과 아이들이 더 소중한 것 같아! >
그렇게 사라진 꿈이 되었지만, 학장님과 체육 교수님의 특별 제안으로 외부 초빙 특강 명목으로 그 해는 전문대학에서 체육 교수님 수업 시간에 교수님 주도하에 외부 초빙 에어로빅 특강을 맡게 되었다.
그때 잠시 한 전문대학 강의 씨앗의 뿌리는 내 인생에 또 다른 꿈을 만들게 하였고, 정식적인 그 꿈을 이루고 싶어서 다시 4년제 대학교 편입 준비를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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