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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61화) 나의 자서전 일곱 번째 이야기 (주택에 살 적의 이야기들)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6. 9. 1. 07:11


(61화) 나의 자서전 일곱 번째 이야기 (주택에 살 적의 이야기들)




편입을 생각하고 있었던 어느 날
그의 사업하는 사회 모임에서 매달 부부 모임이 있었다.
대다수 연령대가 높았는데 그중에 유일한 한 젊은 부부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친하게 지낸 그녀가 지난달 모임에 왔을 때 나에게 비싼 화장품을 선물 주고 갔는데 이번 모임에 그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통한 소식이 전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가 나에게 선물 준 화장품을 바르면서 그녀를 생각하게 된 어느 날
내 눈가에 붉은 안경테를 두른 것처럼 이상한 현상에 그리고 얼굴이 자꾸 퉁퉁 부어올랐으며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내 얼굴에 이상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주변 사람들과 친구가 걱정하면서 오늘은 꼭 병원에 가 보라고 한다.

대구 최고의 큰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 그 당시에는 동네 의사 추천 없이 갈 수 있었던 시절이다)


얼굴이 부어오른 것은 내과 같았고, 피부의 붉은 반점은 피부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피부과? 내과? 어디로 가지? 망설이다가 접수부에서 물었다.
내 붓은 얼굴을 보는 접수부 간호사가 먼저 내과에 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면 내과 의사 선생님께서 먼저 보시면 피부과로 다시 소개할 것이라 했다.
대구에서 유명한 내과 과장님에게 특진비까지 지급하고 내과 복도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내과 앞 복도에는 혈색이 안 좋은 아픈 환자들에 비해서 내가 너무 건강해 보였는지 옆의 아주머니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 환자 가족으로 왔어요?>
< 아뇨. 제가 검사를 좀 받으러 왔어요>
그 아주머니는 내 말에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찌푸리면서 다른 환자들에게 들리게끔 큰 소리로 말했다.
< 이런 건강한 사람들까지 동네 병원에 안 가고 여기로 다 모여드니 종합병원이 이렇게 복잡하지!>
아주머니의 큰 목소리는 주변 아픈 환자들이 동시에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초리가 따갑게 느껴진다.
오늘따라 별생각 없이 입고 온 옷은 몸에 딱 붙는 흰 바지와 화려한 색깔의 티셔츠 차림과 조금 전의 에어로빅 운동 후의 혈액순환 잘 된 내 건강한 혈색과 아픈 환자들의 혈색이 비교되었다.
다행히 그때 내 이름을 호명해 주어 그 자리에서 피할 수 있었는데 바깥 분위기와 달리 내과 과장님은 내 얼굴 상태를 뚫어지게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는 다른 내과 의사를 호출하였다.
자기네끼리 의학적 전문 영어 용어를 나누더니 간호사에게 시키지 않고 의사 선생님이 직접 앞장서 나를 여기저기 검사실로 데리고 다녔다.
뭔지 몰라도 왠지 불길한 생각에 나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에 복도에서 나에게 빈정거렸던 아주머니와 다른 환자들도 내가 방에 들어갈 때와 다르게 약간의 겁에 질린 내 초조한 반전된 얼굴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쳐다보는 것 같았다.
검사들을 다 마치고 다시 내과 과장님 앞에 앉았는데 또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계속해서 꿰뚫어보면서 또, 자기네들의 의학적 전문 용어로 나누어 한 번 더 나를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내과 과장님은 내가 뭔가 의심스러운 것이 있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게 되었다면 결과 나오는 날 다시 오란다.


불안한 분위기 때문에 병원에 다녀온 말을 그에게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당시에는 새로운 사업으로 막 시작하면서 정신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태이고 자기의 사업 전환 걱정만으로도 잠도 못 자고 뒤척일 때이다.
그래서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쓸데없는 걱정 시키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걱정으로 말 수도 적고 늘 굳어진 표정으로 며칠을 보내니 그도 뭐가 이상한지 물었다.
< 찌개가 끓어 넘치는데도 멍하니 딴생각하고, 왜 그래? >
< 그냥 에어로빅 안무 생각하느라…>


드디어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되었다.
내과에서 앞 순서 환자들도 매우 많았는데도 나를 먼저 호출한다. 
내과 과장님과 여러 인턴 의사들까지 둘러 모여서 나를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이 내 얼굴을 뚫어지라 심각한 표정으로 살피는 것에 또다시 나를 더욱 불안한 주녹이 들었다.
(내 결과가 매우 나쁜 것인가?)

드디어 내과 과장님이 말문을 열었다.
< 검사 결과가 매우 심각해서 바로 입원해서 수술합시다>
<왜요? 제가 못 쓸 병에 걸린 것인가요?>
내과 과장님은 내가 매우 드문 희소병 이상한 병명을 대면서 일종의 혈액암 증세 결과가 나왔다고 그런다.
그리고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급속하게 혈액암이 심장으로 파고들면 셋 달에서 한 달 안 사이이라도 사망할 수도 있으니 당장 입원 준비해서 오란다.


끔찍한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오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다리 힘이 풀러 휘청거렸다.
병원 벤치 앉아 멍하니 하늘 보니 구름 사이로 해맑은 웃음을 짓는 올망졸망한 내 어린 자식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친정엄마, 그다음은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린 우리 아이들 내가 없으면 앞으로 어떡하지…?>
아이들 생각을 하니 눈물이 빰을 타고 주르룩 흘러내렸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을 보내고 눈앞에 보이는 병원 전화 박스로 다가갔다.
(그 시절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야만 할 것 같았는데 전화 통화음에서 윙~ 뚜~ 뚝~ 끊기기를 몇 번 했지만,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오늘 결과가 나오는 것을 아는 친구가 전화기 앞에 계속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전화를 꼭 해달라고 당부한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전화 신호가 가자마자 친구가 다급하게 묻는다.
< 결과 나왔어? 괜히 쓸데없는 생각했지?>
< … >
<왜? 왜? 숨넘어갈 것 같으니 빨리 말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 내일이라도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셋 달에서 한 달 사이에도 내가 죽을 수도 있데…>


그리고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
아이들이 집안을 엉망으로 흐트러져 놀다가 엄마가 들어 오자 흠칫 놀라 후닥닥 치우느라 난리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니 또다시 눈물이 났다.
(저 어린 애들 두고 어떡해…)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까 전화가 왔을 때 나도 너무 놀라서 아무 생각 못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거야. 네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니 절대 자식을 먼저 앞세울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 절대 아닐 거야 >
친구의 위로 전화도 여전히 위안이 되지 않았고 밖이 어두워지는 방에서 전등도 켜지 않은 체 이 세상에 엄마가 사라진다면 저 애들 어떡하지? 그 생각만으로 자꾸 목이 메었다.

그가 퇴근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이 함께 쾌활한 목소리로 아빠~ 하는 반기는 소리가 들린다.
평소 같으면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 집 청소와 현관 신발도 깔끔하게 정돈하고 저녁 준비도 이미 끝내고 아이들과 함께 그를 맞이하는 시간이지만, 집도 정돈되지 않았고 집 전체와 부엌도 컴컴하니 그의 화가 난 음성이 들린다.
< 왜 집이 이렇게 컴컴해? 엄마는? >
<엄마 방에 있어요>
안방 문을 확 열다가 캄캄한 방구석에서 잔뜩 웅크리고 앉은 나를 보고는 딱딱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 뭣 야? 집에 있으면서 불도 안 크고 집도 엉망이고 여태 아이들 저녁 준비도 안 하고 무엇 하는 거야?>
그의 말에 대꾸할 힘도 없었지만, "그래 불쌍한 우리 아이들 배고프면 안 되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저녁 밥상을 차려 주고 평소와 달리 힘없이 안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따라 들어와 묻는다. 
<도대체 왜 그래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
말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어들어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잘못되면 우리 아이들 불쌍해서 어떡하죠?>
<무슨 뜬금 없는 소리야?>
< … >


그에게 그간 있었던 병원 일에서 오늘 결과에 대해서 말을 하게 되었다.
순간 그도 큰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내 얼굴의 이상한 증세로 그도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그것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가 나올지 도저히 믿지 못한 일이라서 그도 말문이 곽 막힌 것 같았다.
<내가 내일 직접 병원에 가 볼 테니 그리고 한 병원 말만 믿을 수 없어. 다른 병원에도 가보고 암튼, 절대 아닐 거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를 위로 했지만, 그 날 밤은 둘 다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다음 날부터 그와 함께 다른 종합병원에 가게 되었지만, 옛날 그 시절에는 같은 지역에서 꽤 유명한 내과 의사가 먼저 그런 진단 결과가 나왔으면 다른 내과에서는 다시 검사를 의뢰하는 것에 몹시 꺼렸으며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그런다.
예전에 우리 첫아이의 어머니 교실에서 만났던 몇 명의 언니들과 그동안 친하게 지내면서 모임을 계속 이끌어 왔는데 그 중의 K 언니의 친동생이 대구 큰 종합 병원의 피부 과장님으로 무척 유명한 분이 있었다.
K 언니에게 내 이런 사실로 말하고 그곳의 피부 과에서 다시 검사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K 언니는 내 말에 무척 놀라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내일 당장 자기 동생에게 예약해 놓을 것이니 가 보라고 그런다.


다음 날 K 언니의 예약 확인 전화를 받고 피부과에 왔는데 피부과 과장님이 환자복 차림으로 들어왔다.
현재 과장님도 같은 병원에서 입원 중이라 환자를 보지 않았는데 K 언니의 절대 부탁에 환자복 차림으로 진찰실에 들어 오신 것이다.
피부과 부 과장님도 예전 아파트 살 적에 친하게 지낸 프랑스로 유학 간 미술과 대학교수가 된 A의 시동생이라 번갈아 특별히 잘 봐주시니 피부과 간호사들도 내가 대단한 어떤 환자인 줄 착각하고 그네들까지도 모두가 특별했다.
피부과 과장님의 세심한 진단은 앞의 내과 과장님의 의견과 다르게 생각하시고 피부 조직 검사, 혈액 검사, 내가 쓰고 있는 화장품들과 비누까지 조금씩 찍어 발라서 내 등 뒤에 가득 채워서 일일이 번호 적고서 15일간 여러 반응을 보는 성분 검사 등등 피부 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세심한 검사를 15일간 진행되었다.

결과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주고 간 선물 화장품에서만 이런 반응이 나타나자 그 화장품만 다시 피부에 발라 보고 다시 몇 차례 반응이 나타나 얼굴 붉은 띠에서 직접 조직을 떠내어 두 차례 다시 검사한 결과 희소병 혈액암이 아니라 화장품 부작용이라는 결론에 우린 안도감과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태 살면서 내 피부는 어떤 무엇을 발라도 절대 부작용이 없는 피부이었다.)


그렇게 보낸 시일이 벌써 한 달이 가까이 갔으며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셋 달에서 한 달 안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말에 그는 울화통에 처음 종합병원 내과 과장님을 만나러 갔다고 한다.
내과 과장님은 그를 보고는 아직도 수술을 받지 않으면 어떡하느냐 약간 과장된 경고 말투로 하더란다.
그 말에 몹시 화가 났지만, 이성을 찾고는 다른 종합병원 피부과에서 그간 검사 병명이 단순한 화장품 부작용으로 밝혀졌다고 말을 하니 내과 과장님도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란다.  
<의사 선생님도 사람이니 오진도 할 수도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엄청난 병명이 나왔으면 환자보다 보호자를 불러서 먼저 말을 하는 것이 상식일 텐데 그런 상식도 없는 사람이 이 자리에 어떻게 앉아 있는지요. 당신의 그 상식 밖의 한마디로 충격받은 환자로 우리 가족은 그간 얼마나 불행한 시간을 보냇는지 압니까?앞으로 과장님의 유명세보다는 환자를 대하는 기본 상식부터 먼저 배우고 그곳에 앉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과 과장님의 사과를 받고 나오니 복도에서 대기하는 환자들이 그의 큰 목소리를 다 들었는지 그네들도 위엄만 주는 의사에서 속이 후련하다고 하더란다.


정말 그랬다.
의사 선생님의 시한부 선고는 날카로운 칼을 맞은 것처럼 한 달간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었고 정말 내가 죽는 줄 알았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생기 없이 축 늘어져 살았다.
여기저기 병원에 다녔느라 아이들 마저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으며 삶을 포기한 퀭한 모습으로 오직 아이들이 불쌍한 마음으로 가슴 아픈 눈물로 보낸 사이에 집은 늘 어두운 그림자로 씌어 있었고 또한 헬스클럽 경영마저도 엉망 되어버렸다.


그도 그랬다.
새로운 사업을 막 시작하는 그때 첫 출발점 단계에서 아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니 그 곤경에서 제대로 사업에 신경을 쓸 수 없었고 함께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새로 사들인 공장부지는 관리 못 한 그 틈새에 변심한 매도인이 다른이에게 소유권등기이전 함으로 매도자 사기 사건으로 그가 법원에 고소장을 내게 되었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법원 민사 소송에 휘말리면서 우리 집 경제마저도 서서히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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