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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54화) 나의 자서전 여섯 번째 이야기 (아파트 살 적의 이야기들)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5. 3. 15. 15:32

 

(54화) 나의 자서전 여섯 번째 이야기

 

 

( 아파트에서 만나게 된 인연들 )
A와 친하게 지내면서 나의 자아의식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비록 바꿀 수는 없지만 내 마음에 자아 씨앗을 심은 놓은 것은 틀림없었다.
그런 생각은 아직은 때가 아니었으나 내 마음속에 뿌리가 분명히 자라고 있었고 그 후에는 다가오고 있었다.


A는 아이가 없었다.
A가 공부하느라 아이를 미루는 줄 알았는데 늘 조용한 성격에 말수가 적은 그녀가 어느 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A의 친정아버지도 화가이고 교수이며 그녀의 시가는 시아버지를 비롯한 남편, 시동생 모두가 의사 집안이며 두 집안끼리 중매로 맞선을 보고 잠시 사궈어 보고는 곧바로 결혼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A의 남편은 마치 클래식 음악과 결혼한 사람처럼 지나칠 만큼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집에만 들어오면 헤드셋을 쓰고 지휘봉을 휘돌다가 지쳐 쓰러져 잔다고 한다.
그리고 더 심한 것은 한 침대를 사용하면서 피부가 닿는 것을 싫어해 결혼 첫 달부터 혼자 이불을 둘둘 감아서 자는 날이 많다고 그런다.
그러니 별을 봐야…
<친정어머니에게 말 해봤어?>
< 이상적인 결혼이라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친정어머니가 매우 좋아하시는데 실망을 드릴 수가 없어…>
( 세상에는 부부만이 안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

그래서 그녀가 그림에 더욱 열정을 가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후 A는 장기간 프랑스 그림 유학을 떠나면서 나에게 많은 클래식 LP판을 선물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 다음에 다시 A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지만, 그녀는 지금은 대구에서 알아주는 서양화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람의 인연이란 만나면 헤어지고 그 빈 공간에 또 누군가 다시 들어 오는 것 같았다.

 

A가 나간 빈자리에 B와 C가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 아파트에 사는 우리 큰아이 친구 엄마들이다.
B의 남편은 대구 국립대 아동심리학 교수이며 C의 남편은 대구 검찰청 검사이다.
모두가 첫 아이라서 우린 마음이 서로가 잘 맞았다.

함께 모여서 숙제랑 일일공부를 하루씩 돌아가면서 일일 선생으로 맡아서 돌보기로 하였다.
아이들도 함께 숙제하는 것을 즐거워했고, 엄마들은 이틀 정도 숙제와 공부 가르침에 매달리지 않으니 해방되어 더 좋았다.
아이들로 인해서 우린 친한 친구가 되었다.
B는 아들만 둘이라 한참 개구쟁이들이다.
어느 날 내가 아동심리학 교수 B의 남편에게 묻었다.
< 아이들 어떻게 하면 말을 잘 듣나요? >
< 아동 심리 책에서 나오는 별별 방법도 많지만 저는 말 안 들으면 회초리를 들면 약효가 제일 빨라서 그 방법을 쓰죠. ㅎㅎ>

 

C는 우리 큰아이 친구인 딸과 아래로 아들 두 명이 있다.
C의 3살짜리 막내아들이 밤중에 자다가 깨는데 엄마 방문이 안 열러 평소처럼 베란다에서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한 것인데 하필 그날은 환한 보름달 빛에 부부가 한참 동침 중인 현장에서 창밖 아이를 발견하고 부부가 너무 놀라서 허둥지둥 서둘러 얼른 옷을 입었는데 아이가 지금 무엇하느냐고 묻더란다.

엉겁결에 말놀이라고 했단다.
위기를 잘 넘어간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가 오신 날에 갑자기 아이가 "엄마 아빠 말놀이는 이렇게 해" 엎드려 시어머니 앞에서 흉내 내더란다.
얼굴이 빨개져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에 아이 행동을 얼른 말렸는데 시어머니께서 매우 놀라움 얼굴로 아이들 키우면서 조심하지 못하다고 아주 따끔한 한소리에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고 하는 바람에 우린 배를 움켜쥐고 한참 웃었던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 교실에서 만난 인연들)
큰 아이 학교에서 우리를 추천해 B와 C 함께 대학교에서 주체하는 주 1회 3개월 코스 '어머니 교실'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여러 학교에서 모인 학부모들이 60명이 되었다.
3개월 수료가 거의 끝날 때쯤 한 명씩 나와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동안에 익명으로 그동안 본 이미지를 적어 봉투에 봉해서 주는 것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봉투를 떴으면 난 당연히 좋은 이미지일 것이라 착각했었다.
하지만 우리 아파트에서 함께 간 B, C 이외 한 명을 제외하고 내 이미지 글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나 자신도 어리벙벙해 믿기지 않았다.
(오만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상대자 같다, 말 붙이기가 쉽지 않다. 그 외 기타 등등…)

나의 타고난 밝고 낙천적인 이미지는 그동안 어디 가고 10년 가까이 결혼 생활에 아이 세 명 출산과 육아, 그리고 남편에게 긴장해 살면서 모든 것들이 나를 딱딱해 보이는 이미지, 그리고 오만까지 내 인상을 만든 것일까?
지금이야 물론 나이가 들어서 누가 봐도 아주 푸근한 평범한 아줌마 인상이지만, 30살의 나의 자화상은 그런 모습이 된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았고, 모르는 이에게 딱딱한 얼굴으로 대한 것도 정말 맞는 것 같았다.
그때 받은 충격 기회로 그 후 다시 반성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서 밝은 표정을 되찾게 되었고 먼저 인사도 건네다보니 그 덕분인지 어머니 교실에서 만나게 된 3명의 언니는 지금도 변함없이 자매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사 가고 싶은 날)
우리 아파트는 저녁녘이면 서향 햇살이 부엌으로 들어와 매우 덥고 눈이 부셨다.
그래서 분위기도 살리 겸 베란다에 예쁜 색채 천막 가리게 설치하였다.
그날도 서향 햇살이 부엌으로 들어올 즈음 저녁준비에 눈부셔 천막으로 쳐다보는 순간에 갑자기 천막 위에 어떤 큰 물체가 덜컹 내려앉다가 주르르 미끄러지면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엉~ 뭐지?>
그리고 아파트 시멘트 바닥에 무겁게 쿵~ 떨어지는 소리와 주민들의 날카로운 비명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라 후다닥 베란다로 뛰어와 아래로 내다보았다.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어느 남자가 시멘트 바닥에 온통 피투성이 범벅된 체 즉사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 놀란 사건으로 그 후부터 천막 위로 도저히 볼 수 없었고 베란다에서 빨래도 널 수도 없으며 베란다 아래도 피투성의 그 남자의 형상이 떠올라 훨씬 더 심각하게 트라우마가 생겨 벗어날 수 없었다.
아파트에 이사와서 그동안 좋은 이웃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보낸 곳이지만 이사를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도 내 트라우마가 걱정되는지 이사를 생각해 보겠다고 하였다.

 

 

(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 한 날)
어느 날 그와 영화관에 갔다.
영화 줄거리는 진한 부정애를 느낄 수 있는 매우 감동적인 영화이었다.
우리는 셋째 아이가 이미 유치원에 들어갔고 더는 아들을 포기하고 끝낸 상태이었다.

그러나 그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 아무래도 남편에게는 아들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들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꿈에라도 그런 소리 절대 하지마. >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면서 여태 무서워 미루는데 당장 정관불임 시술받으러 갈 것이라면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그는 첫 아이를 두었을 때부터 아들딸 구분 짓지 말고 하나면 충분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아마도 나의 어설픈 육아법을 믿지 못하면서 생긴 것 같았다.
그러나 그와 달리 그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는 아들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여전히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조부님 제삿날이 되었다.
부침개를 붙이다가 갑자기 메스꺼운 헛구역질을 하게 되었다.
옆에서 그것을 보게 된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 어디 아프냐? >
<아니에요…>
<오늘은 제사까지 밤늦게 있지 말고 어서 집에 가서 쉬어.>
제사 음식을 하면서 절대 그런 배려 깊은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니신데 반가운 내색 띤 얼굴로 뜻밖에 나를 밀어내시었다.
옛날 그 시절에는 아들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시부모님 시대에 셋째 딸이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아직 아들이 없는 것에 시어머니는 나에게 매우 못마땅해 하셨다.

 

새벽녘에 제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가 다짜고짜 묻었다.
< 어머니께서 네가 아무래도 헛구역질하는 것이 임신한 것 같아서 일찍 보냈다고… 설마 아니지?  >
< 아~ 아니에요. 몸이 안 좋아서...>
예상했던 대로 그의 지나친 거부 눈빛을 본 것인지, 왜 그랬는지 몰라도 그 순간 거짓말을 해버렸다.
< 다행이네! 난 아들이 정녕 필요하지 않아. 우리 있는 아이들만 잘 키우자. 내일 당장 병원가서 정관불임 시술을 받아야겠어. >
< … >
그가 안심하는 표정으로 잠이 들었으나. 난 더는 말할 기회를 놓쳤고 멍하니 그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가올 걱정으로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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