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나의 자서전 여섯 번째 이야기 (아파트 살 적의 이야기들)
그는 아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듯이 다음 날 정말 정관 불임수술을 하고 왔었다.
그러니 더욱 임신 사실을 말을 할 수 없었다.
며칠간 전전긍긍하다가 그가 그토록 원치 않으면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아기를 포기하기로 하고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수술실에서 의사 선생님의 흰 가운 옷이 보이자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눈을 감았다.
배 속의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에 매우 마음이 아팠다.
차가운 메스가 내 몸 가까이 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차드를 한 번 더 보았는지 말했다.
< 지금 딸이 세 명이나 있네요? >
<예…>
< 저도 딸을 세 명을 두고 네 번째 아들을 본 사람이라 같은 심정으로 그러는데 이왕 임신한 것이니 확률이 반은 있으니 며칠 지나면 양수검사가 가능하니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안 그래도 배 속의 아이에게 죄의식을 매우 느끼고 있는 참에 의사 선생님의 그 한 마디는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예~ 선생님 아무래도 한 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위기일발에 처했던 아기에게 의사 선생님 한 마디는 생사를 달리하게 되었다.
유독 심하게 한 입덧을 그가 알아채진 못하게 매일 숨바꼭질하듯이 며칠 몇 날을 보내고 양수 검사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산부인과를 다시 갔었다.
하지만 양수검사는 남편의 승낙 각서 도장이 필요하다면 남편이 직접 병원에 와야 한다고 그런다.
난 제삿날부터 지금까지 임신한 사실을 숨겼고 그도 또한 이미 불임수술을 한 남편에게 인제 와서 임신한 사실과 더구나 아들인지 딸인지 양수검사까지 할 것이니 직접 병원에 와 승낙 각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한다며 상상만 해도 그것은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에게 남편의 성격을 설명하고 대신 친정에서 보호자를 대신하면 안 되느냐고 통 사정을 했으나 병원 규칙상 남편 이외는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되려 의사는 우리 부부 사이가 이해 안 되는 듯이 매우 의아한 눈빛으로 보았다.
그날 저녁 그에게 넌지시 운을 띄우면 말을 해 보았다.
<어머님도 우리가 아들이 없다고 매우 불만이 많으시고… 그래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서 네가 그런 생각을 할까 봐 무서워 하며 정관 불임 수술까지 받았는데 엉뚱하게 지금 와서 왜 갑자기 아들 타령을 해. 더는 다 잊고 있는 아이들이나 잘 키우자고!>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강력한 거부하는 그의 말에 또다시 사실을 말 못하고 말았다.
( 돌아보면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는지… 암튼 그때는 나는 남편에게 끽소리 못하고 살았을 때이다)
끝내 그에게 말 못했고 애꿎은 의사만 매일 찾아가 안 되는 규칙인 줄 알면서 여전히 앉아있는 나에게 보다 못한 의사가 말을 하였다.
< 그럼 남편에게 제가 말 해드리게요>
의사가 그의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하게 되었다.
임신으로 양수검사를 원하는데 남편 승낙 없이는 병원 규칙상 할 수 없다고 말을 해도 날마다 집요하게 부탁해 병원 업무에도 곤란에 처해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러니 빨리 와서 해결해 주셔야겠다는 말을 강요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나에게 이제 걱정하지 말고 잠시 기다리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매우 놀란 충격받을 것이고 어쩌나 하는 마음에 심장이 마구 방망이 짓을 하고 있을 즈음, 그가 허겁지겁 택시에 내리는 것을 보면서 얼른 서둘러 진료실로 뛰어들어가 의사 선생님 앞에 먼저 앉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가 몹시 놀란 얼굴로 의사와 나를 번갈아 보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었다.
의사는 다시 설명하면서 남편의 승낙 동의 서류가 필요한 데 매일 찾아와 곤란해서 보호자에게 직접 전화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도무지 고집이 꺾이지 않을 것 같다고 더 붙여 주었다.
<예…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혹시나 양수검사가 아기나 산모에게 위험하지는 않습니까?>
어떻든 그렇게 해서 그날 양수검사는 받을 수 있었으나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태산 같은 걱정이 들었으나 뜻밖의 말을 했다.
< 왜 진작 나에게 말 안 하고 혼자 끙끙거리면 그간 남편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어? 그리고 사실대로 미리 말했다면 나도 무서워 하며 불임수술까지 받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더욱 말을 할 수 없었는데…>
그렇게 끌 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가슴 쪼이면 산 것이다.
병원에서 다음날 검사 결과가 몇 시에 나올 것이니 그 시간에 확인 전화를 해보라고 한다.
그날 밤은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가는 것 같았고 결과 시간까지는 초조한 조바심으로 방금 본 시계를 또다시 보고 했었다.
검사 결과에 따라서 또 갈등을 할까 봐 그것이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약속된 시간보다 덜되어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이며 간호사의 맑고 높은 톤으로 말했다.
< 00 병원입니다. 축하합니다. 양수검사 결과에 아들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기쁜 소식을 연락드립니다>
앞서 걱정한 것에 안도의 한숨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 딸만 세 명을 출산해서 그런지 왠지 아들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치명적인 잘못 선택을 했다면 어찌할 뻔 했나 하는 생각에 한번 더 의사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에게 먼저 기쁜 소식을 말하고 싶어 전화했었다.
< 병원 검사 결과가 지금 나왔는데요. 아들이라고 하네요>
< 지금 매우 바빠! 집에 가서 이야기해>
잔뜩 기대하고 전화를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낮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딸각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 … >
시어머니가 매우 좋아하실 것 같았다.
얼른 전화로 말씀드렸다.
< 어머니 병원에서 양수검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아들이라고 하네요>
<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네! 배 속의 아이는 낳아 봤어야 알지 모르는 거야>
이해가 안 되는 말에 별 감흥 없이 전화를 끊으신다.
< … >
매우 좋아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두가 설렁한 분위기에 혼자만 잔뜩 오른 기쁨은 거품으로 변해 싹하고 내려앉았다.
그 시절에는 민방위 훈련시간 시작되면 한참동안 길거리 통행을 할 수 없었다.
그날은 산부인과 정규 검사가 있는 날이라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민방위 훈련 시간 전에 서둘러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었지만 중간에 민방위 훈련 시간이 시작되었다.
모든 차들은 길 한 모퉁이나 서 있고 사람들은 건물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기사 아저씨가 만삭이 된 나를 보면 말했다.
<아주머니 가는 병원 옆에 내가 점심 먹는 기사 식당이 있는데 아직 점심을 먹지 못해서 매우 허기져서 그러니 이제부터 급한 산모가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부탁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갑자기 야간 비상등을 켜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길거리 통행 단속하고 있는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기사 아저씨는 나를 가리키면 급한 산모가 있어서 그런다고 하였다.
경찰관이 내가 급한 산모인 줄 알고 우리 곁에서 번쩍번쩍한 불빛과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면 경호차 보호처럼 호위받으면 민방위 훈련으로 거리가 텅 비워진 도심으로 신들린 듯이 무한 질주를 했었다.
최고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손잡이를 힘껏 움켜잡았다.
행인들은 무슨 일인가? 다들 쳐다보는 것 같았고 20분이 소요할 거리를 5분도 채 안 되어 병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경찰차가 되돌아가면서 나에게 순산을 빈다고 인사까지 한다.
기사 아저씨도 매우 흥분하며 신이 났다.
<한 번쯤 실컷 달려보고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복잡한 도심에서 액션 영화처럼 달릴 수 있었다니 와~ 오늘 그 꿈이 이루어졌네요. 민방위 훈련 시간에 식사까지 할 수 있고, 이런 좋은 날이 두 번 다시 없겠죠. 허허허~>
기분이 매우 좋은지 흡족한 웃음을 띠고 갔으나 난 정신없어 얼얼한 상태에 온몸이 다 뻐근했다.
혹시나 배 속 아이에게 피해를 준 것 없는지 배를 쓰다듬어 보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해서 안 된 일이지만 나 역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더운 한여름에 나는 아들을 출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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