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나의 자서전 여섯 번째 이야기 (아파트 살 적의 이야기들)

 

(53화) 나의 자서전 여섯 번째 이야기 (아파트 살 적의 이야기들)

 

큰아이가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아직 20대에 벌써 학부모가 되었다.
학교에 갈 적에는 외모에 힘써 꾸미고 갔으나 큰 아이가 시 둥둥한 표정으로 학교에 올 적에는 긴치마와 파마머리를 하고 오란다.
다른 아이 어머니들이 모여서 엄마가 너무 젊어서 혹시 계모인가? 수떡수덕 꺼리는 것이 아주 싫다고 그런다.

둘째 아이 유치원에서 학부모회가 있었다.
그날은 생각하지 못한 방송국 견학이 있었다.
대구 방송국 방영하는 아침의 토크쇼 즉, 요즘의 아침 마당' 같은 프로이다.
주제는 '스트레스'이었다.
방송국 스태프의 카메라 움직임과 밝은 조명, 매우 긴장감을 느꼈다.
아나운서와 전문 게스트가 한참 토론을 하더니 아나운서가 일어나 우리 쪽으로 오더니 하필이면 나에게 질문을 갑자기 던졌다.
"주부님은 어떨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나요?"
방송하기 전에 이미 정해진 사람에게만 질문 마이크가 가는 줄 알다가 순간 당황스러웠다.
< 예? 음… 음… 제 경우에는 남편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 예를 들면 어떤 경우인가요? >
< 아주 작은 용무까지도 남편에게 사전 허락을 받고서 외출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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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영향이 그렇게 클 줄 몰랐다.
내가 아는 이들은 전부 방송을 다 보았는지 방송을 봤다는 전화가 부리나케 걸려왔다.
심지어 어떤 이는 방송 탔으니 한턱을 내라는 농담까지 했다.
< 남편이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모양이군…>
그들이 건네는 인사말마다 그의 얼굴이 떠오르면 걱정이 앞섰다.
내가 방송에 나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누가 그에게 하면 어쩌나? 더구나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방송에서 그렇게 떠들었으니 이 일을 어쩌지?
그가 알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의 퇴근 시간까지 그런 근심으로 온종일 일이 잡히지 않았다.
서둘러 다른 날보다도 더 맛있는 저녁 반찬도 만들어 놓고 제발 몰랐으면 하는 조바심이 산더미처럼 밀려왔다.
띵~ 똥~ 
< 오늘… 별…일 없었죠…? >
죄진 듯한 목소리로 말까지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묻었고 순간 그가 홱 돌아보면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별일 없느냐고? 이제는 하다가 하다가 방송 마이크 잡고 내 흉을 봤어? 그래놓고 뭐~ 오늘 별일 없었어요?>
< 그게… 그러려고 하게 아니라…갑자기 아나운서가 나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면서 묻기에 엉 결걸에…>
< 직원들이 오죽 마누라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으면 방송에다 하소연하게 만들어나고, 농담에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지경이니…>
< 그게…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난 침까지 꿀꺽 삼키면서 변명하고자 했다.
< 무슨 얼토당토않게도… 남들은 하나라도 사생활을 덮으려고 안달인데 넌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는 이렇게 삽니다. 방송 마이크에 대놓고 떠들 줄 내가 꿈에라도 생각이나 했겠어. 기가 차서 원.>
그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면 고갯짓을 하면서 불평스러운 음성으로 투덜 투덜거렸다.
< 그게…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 제발 평범하게 살자. 응~ >
그가 경고하듯이 말을 했었다.
<알았어요…>
간신히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내 속마음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 그러게 내가 방송가서 그런 말 안 하게 평소에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지…)

 

 

연말 로터리클럽 부부 모임이 호텔 연회실에서 열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들 이제 잊어주면 좋을려만 어째 만나는 사람마다 또 방송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는 농담을 잘 받아넘기지 못하는 성격이라 당혹스러워하기에 내가 중간에 얼른 끼어들어 그들의 대화를 끊기 바빴다.
그 당시 로터리 클럽은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을 때라 제발 최대한 얌전하게 있기를 당부했다.
하지만 음악이 울러 퍼지자 다들 체면만 앞세우는지 격이 있는 노래만 불러 연말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럴 때 누군가 지루한 파티 분위기를 깨뜨려 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왜 그게 나라고만 자꾸 생각이 들게 하는지…?

이런 상황만 되면 여고 시절 때로 돌아가 내가 무슨 해결사 인양 용감하게 나설 버릇이 자꾸 속에서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얌전하게 있기를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꾹, 참기로 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음악 밴드 아저씨가 어떤 곡을 부를 것인가 묻었다.
잠시 머물 거리다가 신 나는 음악을 주문했었다.
역시나 그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무대 위에 있는 나를 쳐다볼 때는 순간 움찔했지만, 애써 눈빛을 다른 곳으로 외면하면서 서툰 신 나는 노래를 불렀다.
다음 차례부터는 누구 할 것 없이 연회장은 일제히 신 나는 트롯트 노래로 흥을 돋우는 노래로 이어져갔다.

오직 단 한 사람만 불만에 꽉 찬 차가운 눈빛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상했던 대로 그가 아주 불만스러운 찌푸린 얼굴로 말을 했다.
< 왜? 또 네가 성급하게 그런 노래를 시작하는 거야?>
그는 내가 먼저 어디 나서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을 했다.

 

그렇게 철없이 지내는 어느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 
곧, 서른 살이 된다는 생각에 이전에는 미처 생각 못 한 서글픈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여학생 시절에도 제대로 못 해 본 사춘기 감정이 가을 앓이로 무척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여자 일생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20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가?
결혼한 주부가 으레 그런 것이지만, 최고로 아름다워야 하는 여자 나이 20대에 나는 아이 세 명을 출산과 보육 외는 남편 비유 맞추느라 숨이 막힐 만큼 쩔쩔매고 산 것 외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면서 떨어지는 낙엽에 눈시울을 저시면 서글프고 애달픈 가을로 느껴졌다.

그런 생각은 내 인생을 새롭게 살아보고 싶다는 첫 번째 시발점이 된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계기는 어느 날 그가 주민센터(그 당시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하나 때놓으라고 하였다.
혼인신고, 주거 전입 출 신고, 아이들 출생신고 등 그가 했기 때문에 관공서에 서류를 때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서툴렀다.
어디다 써야 하는지 몰라서 그 시절 친절하지 않은 공무원 아가씨에게 몇 번이나 물어보니 아가씨 얼굴이 매우 귀찮은 표정으로 내빼듯이 말을 했다.
<아줌마는 도대체 몇 번을 묻는 것이에요. >
그녀의 큰 목소리에 남들이 볼까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창피했다.
또한, 내가 쓴 글씨체마저도 비뚤비뚤 한 것에 마음 들지 않아 몇 번이나 용지를 찢으면 다시 써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 자신에게 속상함에 속이 뒤틀렸고 그것밖에 안 되는 부족함은 내가 매우 작게 여겨졌다.

그것도 나를 다시 볼 수 있는 두 번째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계기는 우리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A를 알면서부터이었다.
그녀가 이사 오기 전까지 일과 동선은 큰 아이 초등학교 보내고 둘째 아이 유치원 셔틀버스 태워 보내고 셋째 아이와 아파트 놀이터에 잠시 놀다가 동네 아줌마 집에서 커피 마시면 수다를 떨다가 점심때 집으로 오는 것이다.

점심 먹고 유치원 셔틀버스 하차 시간을 맞추어 아이 데리고 오고, 큰 아이 숙제 봐주고 오후에 슈퍼마켓이나 동네 시장에 가는 것과 저녁 준비해 놓고 그의 칼퇴근 맞추어 아이들과 그를 마중 나가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일과로 끝나는 것이다.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 내용도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와 연예인의 쓸데없는 잡다한 뒤 이야깃거리나 쏠려 듣고, 우리 남편과 아이, 남의 남편과 아이 어쩌꾸 저쩌꾸... 자랑 아니면 흉이나 보는 것 등등...

 

신문을 보아도 정치, 경제, 시사 등은 그냥 슬쩍 보고, 시사만화, 오늘 무슨 사고가 있었지? 무슨 영화프로가 있는지? 매일 집에 박혀 있으면서 무슨 오늘의 운세가 있다고 보는지? 그게 내가 보는 신문 전부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남의 집 멋진 수입 장식품을 보면서 "와~ 정말 멋지다! 이것 어디서 샀어요? 매우 비싸죠? " 감탄사를 연발하고 부러워했다.
그 시절 거실 풍경은 쓰지 않은 수입 그릇 장식장, 장식 책장에는 절대 볼 것 같지 않은 검정 가죽 표면에 금박 글씨가 쭉 새겨진 두꺼운 전집이라도 거실에 있어야 삐까뻔쩍해 보이는 시절이었다.
즉, 그 시절의 내 안목이란 그런 것이었다.

 

A는 그 당시 서양화를 전공하는 대학교 강사로 출강하고 있었다.
A에게 우리 아이들 그림 개인지도를 부탁했고 A와 무척 친하게 지내면서 서서히 나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여태 내가 부러워 한 것은 비싼 돈으로 치장한 삐까뻔쩍한 거실이 최고라고 생각할 당시에 그녀의 거실에는 2면으로 가득 찬 클래식 음악 LP판과 금박 글씨가 새겨진 두꺼운 전집이 아니라 손때가 많이 묻은 낡은 저서 책들은 모서리가 닳은 체 있어 다른 집 거실 분위기와 사뭇 달라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A와 친구로 친하게 지내면서 그녀는 클래식 음악과 명작 그림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난 A에게 팝송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 음악 삼매경에 빠졌고 그런 것이 세 번째 계기가 되어 주었다.

 

철없이 지낸 세월에서 이런 것들은 새로운 영향을 받게 되었고 자아의식의 자물쇠를 열어주는 동기유발 된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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