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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4화) 나의 자서전 - 첫 번째 수학여행 얄개 시절 부분에서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08. 12. 7. 16:11

 

(4화) 나의 자서전 - 첫 번째 수학여행 얄개 시절 부분에서

수학여행 기차에 드디어 함께 탈 수 있었고 반가운 친구들과 10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 상봉같이 서로 부둥켜안고 뛰고 소리지르고 야단법석 떨었고 담임 선생님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궁금한 내게 물으셨다.

< 네가 어떻게 대구에서 나타난 거야?>

< 교장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비싼 기차표를 끊어주셨기 때문에 먼저 올 수 있었습니다.>

부산역에서 교장선생님의 사비로 두 명의 지각생과 함께 비싼 기차를 탈 수 있었던 사실을 들으시고 수학여행에서 반갑지도 않은 나 때문에 교장선생님의 사비를 내놓은 것에 당황하셨고 교장 선생님 뵙기가 거부하게 되었다며 어두운 얼굴로 찡그리고 계셨다.

(1.속리산 수학여행 얄개 부분에서)

그날 밤, 속리산 숙소 부근에서 임대한 2개의 대형 스피커에 야외 전축 연결해 마당에 설치하니 웅장한 음량에 신이 났고 대형 불꽃 캠프파이어는 기분이 한층 고조되어 우리의 장기 자랑과 시끄러운 댄스파티로 늦은 밤까지 지칠 줄 모르고 떠들었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소음에 지쳤고 들리지 않게 귀에 솜을 막고 잠자리에 들어가셨다.

숙소는 그 당시 수학여행 전용 여관으로 한옥 방이 여러 개가 길게 이어져 있었고 선생님의 방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선생님들이 깊이 잠든 틈을 이용해 수학여행 위해서 미리 준비한 장난감 안경, 새빨간 색 립스틱, 실과 바늘을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가 장난감 안경에 새빨간 색 립스틱을 잔뜩 칠해서 선생님들 눈에 씌어놓고 굵은 실과 바늘로 재빨리 선생님들의 잠옷과 잠옷을 민첩하게 연결해 이부자리에 꿔 매고 귀에 막은 솜도 빼고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여러 개 붉은 횃불과 시끄러운 물건들을 모조리 동원해서 크게 양철 북을 두드리면서 선생님 숙소 방문 앞에서 인디언처럼 뛰어다녔다.

< 불이야~>

선생님들은 문풍지로 통해 들어오는 붉은색 횃불과 새빨간 색안경에 비치는 빨간색은 더욱더 불난 줄 아셨고 일어나고 싶어도 엮인 바느질에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당황했을 것이고 시끄럽게 두드리는 양철 북소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얼빠진 표정으로 마당에 뛰쳐나오셨고 우리는 한바탕 웃음으로 배꼽을 끌어안고 계속 불꽃 캠프파이어를 이리저리 뛰면서 한층 더 신이 나 인디언 춤을 추고 다녔다.

<우~우~우~>

 

(2. 서울 수학여행 얄개 부분에서)

속리산 여행에서 서울로 이어지면서 광화문 부근 숙소에 도착했고 다음날 경복궁, 창덕궁으로 향했고 수학여행 단체 줄로 길게 이어져 걷다가 거리 이정표에서 '명동'을 발견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겼고, 나를 중심으로 해 우리 친구들은 서로 눈치를 보내면서 단체 줄에서 슬그머니 한 명씩 빠지면서 이탈했고 우리는 명동을 향해서 신나게 뛰었다.

명동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매장의 멋진 옷과 구두 등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서서히 배도 고팠고 물도 마시고 싶어서 그 당시 명동 입구에 있는 유명한 제과점에 들어가게 되었고 허기를 달래고 보니, 밖은 어두워졌고 걱정하실 선생님에게 전화하기로 하고 제과점 내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에 다가갔다.

친구들은 잠시라도 낯선 서울에서 서로 떨어지는 것이 불안해 씩씩한? 내 주변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전화 앞에 모였고 앞 손님이 넣은 구겨진 동전이 걸려 있는 상태로 통화할 수 없었다.

뒤 손님인 남학생들이 자진해서 우리에게 말 걸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들도 꼼짝하지 않는 동전에 어떻게 할 수 없었고 급한 생각으로 내 친구가 자기 신발을 벗어 남학생 손에 살짝 쥐여주면서 애교 어린 눈빛으로 세게 치라고 종용했고 언급 결에 어리석은 그 남학생은 신발로 전화기를 무자비하게 내려쳤었다. 

<꽝~>

많은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동시에 쳐다보았고 제과점 주인은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황급히 뛰어왔었다.

우리는 바로 줄행랑을 쳤었고, 친구의 엉뚱한 행동에 명동 입구 길거리에서 배꼽을 잡고 한동안 웃음보를 터뜨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에 또다른 남학생들이 계속 따라와 귀찮게 말을 걸었다.

그 시절 나는 파출소 신고를 아주 좋아했던 시절이라 얼른 뛰어들어가 말했다.

우린 수학여행 온 학생들인데 저 애들이 우릴 이상한 곳으로 가자고 자꾸만 꼬신다면서....

불쌍한 남학생들에게 은근슬쩍 말했다.

< 그러니까 귀찮게 굴지 말라구....>

이 대목에서도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요즘이나 옛날이나 성추행은 있었고 심지어 여학교 교내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상담 선생님과 방과 후에 자기네 복잡한 가정사를 상담하게 되었는데 가까이 앉아 위로하는 척하면서 자기에게 성추행하는 것 같아서 바로 도망했는데 누구에게도 지금까지 말을 못 하고 비밀로 지키면서 왔단다.

< 왜? 그럼 혹시나 다른 애들에게도 그럴 수 있잖아>

<그런 말을 어떻게 해 >

<그러니까 선생도 알고는 마음 놓고 그런 거야. 나 같으면 학교에 소문 다 내고 말 거야>

< 너는 그럴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이 너에게 어깨만 스쳐도 넌 선생님이 성추행했다고 전교에다 소문낼 충분하니까, 아예 선생님이 되레 겁이 나서 더 멀리 앉을 거야. 그리고 파출소에 또 신고할까 봐서… >

난 이전 우리 학교에 새로운 선생님이 전근 오셨을 때도 생김새가 너무 억울하게 생겨 아마도 북한에서 방금 내려온 수상한 사람처럼 보인다며 파출소에 신고하였고 또한, 나에게 책 장사로 가장해서 스토커를 한 대학생에게도 아무래도 수상한 자 같다고 신고했으니 난 교내에서 이미 파출소 신고를 좋아한다고 소문나 있었다.

 

아무튼, 파출소 신고 후에 숙소까지 힘들게 걸어서 도착했으나 담임 선생님은 사라진 우리가 걱정되어 불안, 초조하신 모습으로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들어갈 수도 없었고 우리와 동행하지 않았던 친구의 도움으로 몰래 뒷문으로 들어왔지만, 우리가 들어왔던 사실을 아신 선생님은 당장 불로동이 떨어졌고, 선생님이 도저히 무서워 이불을 덮고 자는 척했었다. 

아까운 마지막 수학여행 밤을 우리는 꼼짝도 못하고 저녁도 굶고 초저녁부터 처량하게 누워 자는 척했고, 선생님은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면 가셨고, 그날 밤은 선생님도 모처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 오늘 밤은 무사히 지나갔지만, 내일 아침에는 어떡하지? 혼날 덴데.>

< 내일 아침만 무슨 수로 시간만 끌 수 있다면 서울역 출발 때문에 넘겨 수 있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

우리는 걱정이 되었고 어두운 이불 밑에서 서로 머리 맞대고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줄곧 생각해 보았고 궁리 끝에 생각 낸 것이 그때의 무모한 생각으로 선생님 구두를 숨겨 놓으면 아침에 구두 찾으신다고 분주할 것이고 출발 시각이 촉박해지면 그때 몰래 갖다 놓자고 합의하고 구두를 지붕 위에 올려놓고 명동 나들이로 정말 피곤한 상태로 깊이 잠들었다.

 

아침에 친구가 당황한 목소리로 깨웠다. 밖에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가죽 구두 속에는 빗물이 가득할 것을 예상되었고 선생님은 없어진 구두를 찾느라 학급 친구들까지 동원되어 지만 차마 말씀도 드릴 수도 없었고 난처했었다.

더는 시간에 촉박하신 선생님은 비오는 날에 여관 주인아저씨의 고무 실내화를 대신 신었고 배웅한 여관 주인아저씨는 먼 거리에서 지붕 위에 비를 맞은 선생님 구두를 보게 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빗물에 첨벙첨벙한 구두는 털어서 우리 선생님께 드렸다.

아침부터 구두 일로 분주했던 선생님 덕분에 어제 일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정말 선생님께 죄송해서 부산까지 오는 긴 시간 기차 속에서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아주 조용히 왔었다.

 

 그 후, 우리 선생님은 나와 질긴 인연으로 이어 3학년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또다시 톰과 제리처럼 쫓고 도망을 다니는 관계로 지냈다.

사춘기 꿈많은 여학생 시절에는 한 번쯤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친구도 많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얄개 시절을 보내다 보니,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그런 친구는 그 당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나의 짝사랑은 다소 선생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체, 불행하게 성장하고 말았다.

 그리고 여고 삼 학년 여름 되었고, 우연히 만난 첫사랑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철없는 얄개 시절에서 벗어나 여자의 마음이 진정 무엇인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내가 먼저 좋아했지만..... 

하지만 가슴 아픈 첫사랑 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