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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3화) 나의 자서전- 첫 번째 여고 얄개 시절 부분에서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08. 12. 5. 04:05

 

 (3화) 나의 자서전- 첫 번째 여고 얄개 시절 부분에서 

 

 요즘은 학생들은 의복이 자율화이지만 옛날 그 당시만 해도 학생은 무조건 외출 시 교복을 꼭 입고 다녀야 했고, 사복 차림으로 번화가에서 돌아다니다가 선생님에게 발각되면 처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이 부산 시내 번화가 주변이라 사복으로 목욕탕, 부모님 심부름, 여름이면 부산 광복동에 유명한 팥빙수 석빙고에서 아이스 케이크를 먹을 때도 단속반으로 순회하시는 호랑이 규율 선생님에게 만날 일이 잦았고 영화관 사건으로 죄지은 주눅이 길거리 다니는 것이 두려웠다.

 

(스토커 사건)

길거리 두려움은 호랑이 규율 선생님보다 더 두려운 사람이 있었다.

그 당시 내 주변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있었다.

평소 도보로 함께 등교하는 친구가 7~9명이 되었고 항상 시끌벅적했고 분식집이나 서점을 가거나 눈에 잘 띄었다.

난 그때 한동안 셰익스피어 책에 관심이 많았다.

번화가에 큰 서점이 있었는데 그 집 대학생 아들에게 스토커에 시달린 적이 있었고 번화가 행인 앞에서 노골적으로 좋아하다는 대담한 소리를 했기 때문에 창피로 수모를 당했고, 하교할 때에는 학교 정문 앞에서 길거리 책 장사로 변장해서 매일 나를 지키는 바람에 정문으로 나오지 못하고 학교 뒷산 철조망으로 넘어다녀다가 여러 번 교복도 찢어지는 일이 허다했으며 그런 일로 파출소에 신고 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그냥 신고가 아니라 반공 교육이 한창하던 시절이라 아무래도 수상한 자 같다고 신고 했었다.

 

 난 어릴 적부터 파출소 신고를 좋아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수상한 사람을 보거나 신고하면 많은 사례금을 준다는 포스트가 여기저기 벽에 아주 많이 붙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사례금액에 눈이 멀어 요즘의 로또처럼 생각하게 되었는데 내 저학년 초등학교 시절에 밤마다 옆집 옆방에서 옛날식 타자기 두들기는 소리가 꼭 간첩이 무전기를 두드리는 소리 같아서 파출소에 신고한 적이 있었다.

역시나 잘못 착각한 신고였으나 파출소 경찰 아저씨가 내 신고 정신에 칭찬해줘 아마도 그때부터 계기가 된 것 같았다.

어느 날 우리 학교에 새로운 선생님께서 전근 오셨는데 생김새가 너무 억울하게 생겨? 북한에서 방금 내려온 수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교내에 돌아다니는 모습도 수상해 보여 내 반공정신이 투철한 것보다는 로또 같은 사례금에 눈이 멀어서 파출소에 또 신고하게 되었는데 사례금은커녕 내 엉뚱한 짓에 매우 곤란해진 우리 담임선생님에게 아주 혼쭐난 사건도 있었다.

 

(여름 콜레라 수용소에서 탈출하다.)

철조망 사건을 쓰다 보니 연관되는 사건이 떠오른다.

그해 여름은 콜레라 전염병으로 사회 이슈가 되었는데 평소는 건강하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일이 없지만, 그날은 아파서 내과에 가게 되었다.

증세가 콜레라와 비슷하다고 오진판단 되어 가족에게 알리는 시간 없이 급히 구급차로 실려갔고 콜레라 환자 취급을 받고 군 부대 임시 수용소에 갇힌 적이 있었다.

임시 만들어진 흰 천막 속에 야전 침대 같은 곳에 환자들이 누워 있었고 그 당시에 보았던 영화 벤허에서 굴속에 갇혀 있는 피부병 환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많은 환자가 여기저기서 설사와 구토로 내가 정말 콜레라 환자로 전염될 것 같아 그곳에 잠시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철조망을 뚫고 탈출했었다.

 

 (브라질 이민 배에서 탈출하다.)

 탈출이란 단어에 무독 생각나는 사건이 또 있었다.

친구의 가족들이 브라질에 이민 가는 날 부산 부두에서 친구와 헤어지면서 우리는 무척 아쉬워하고 슬퍼하다가 친구에게 줄 선물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다시 주려고 친구와 나는 분주한 틈을 이용해 여객선에 몰래 탑승하게 되었다.

아주 큰 여객선에서 미로 같은 출구를 못 찾아 헤매게 되었고 밖에서는 출발의 고동소리로 여객선은 부두를 떠나고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고, 우리는 잘못되어 그 길로 브라질로 가는 줄 알았고 가까스로 선장님 도움으로 여객선에 겨우 내릴 수 있었다.

 

(창과 가야금 인연)

합기도 호신술을 2년 가까이했고, 유단자가 되고 난 후 합기도는 더는 하지 않았지만, 무용 학원으로 돌아와 보니 합기도의 오랫동안 공백은 무용 실력이 옛 전 같지 않았고 공부 외는 지기 싫어하는 내 자존심은 무용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른 것으로 보충해 채우고 싶었다.그래서 택한 것이 무용과 연관되는 가야금, 창으로  못사는 그 시절에 철없이 어머니를 조르게 되었고 한 번 하고자 하는 내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고, 결국 비싼 등록금을 지급하고 두 분의 선생님 만나는 인연이 되었다. 

옛날 그 당시 선생님들은 정말 무섭게 호되게 제자를 가르쳐졌었다.

가야금을 튕기는 손가락에 늘 물집이 터졌고 쓰리고 아파도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고, 잘못하고 꾀를 부리며 물집 터진 손에 회초리로 때렸다.

창을 배우는 선생님은 더욱더 심했고 목에서 피를 토할 때까지 해야 한다면 늘 회초리를 내 목에다 갖다대고 있었기 때문에 안 나오는 소리로 꽥꽥거렸다.

내 성대는 날마다 부어 목멘 소리를 냈고 손가락은 물집이 터져 피멍을 안고 살았다.

그 고된 훈련법은 선택에 많은 후회를 하게 되었고 더는 무서워 오래하지 못했다.

(그때의 무용, 합기도, 창, 가야금 선생님들의 고된 훈련법은 내 인생에 많은 밑거름되어 제자들 양성 훈련법에 영향을 주었다.)

 

  ( 수학여행 얄개사건)

 

그 당시 나의 애장품 야외 전축이 고장으로 기술자에게 급하게 A/S 맡겼는데 그분이 약속보다 늦게 나오시는 바람에 수학여행 떠나는 새벽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부산역에는 배웅하려 나오신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교감선생님, 두 분 선생님과 그리고 내 같은 지각생이 두 명이 더 있었다.

지각생 두 명은 놓쳐버린 기차에 애통하게 울고 있다가 씩씩한? 나를 보고 반가워했었다.

< 지각으로 기차를 놓쳐버려서 우리는 어떡해? >

< 무조건 가면 되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해결해볼게.>

<어떡해? >

궁금해하는 그들을 두고 나는 교장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렸고, 교장선생님은 지각했다고 꾸중하셨다.

옛날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기차 시간대가 많지 않았고 오직 비싼 기차만 가능했지만, 못살던 그 시절에 학생 신분으로 수학여행의 용돈 몇 푼으로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나는 교장선생님에게 비싼 기차는 첫 역이 대구역이라서 그곳까지만 기차표를 끊어달라고 용기 내 말씀드렸고 당돌한 내 부탁에 다른 선생님들 마저 당혹했었다.

내 동 정어린 애교로 드디어 교장 선생님은 나를 비롯한 두 명의 지각생까지 비싼 열차표를 끊어주셨고, 우리는 덕분에 빠른 기차로 수학여행 완행열차 보다 훨씬 편안하게 먼저 대구역에 올 수 있었다.

 

한편, 기차가 떠나는 순간까지 나를 애타게 기다렸던 많은 내 친구들은 기대한 야외 전축과 내가 없었기 때문에 맥이 빠져 풀이 죽었고, 반면 우리 담임선생님은 골치 아픈 얄개가 오지 않아 다행스럽게 기뻐하셨다고 그랬다.

드디어 수학여행 기차가 대구 역내로 들어오고 있었고 뜻밖에 대구역에서 나를 발견한 우리 반 친구들은 놀라움에 금치 못하고 모두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반갑게 환호성을 질렸다.

다만, 우리 선생님은 내가 반갑지 않으신지 수학여행 기간에 앞으로 일어날 예측에 잔뜩 겁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