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나의 자서전 - 셋 번째 운명적인 사랑부분에서
밤늦게 귀가해서 그런지, 우리 집 가족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가족들이 잠에서 깨지 않게끔, 뒤꿈치를 들고 고양이 걸음으로 들어와서 어머니 옆에서 몰래 자는 척했었다.
인기척을 느끼신 어머니가 나를 일으켜 세웠고 어머니께서 믿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서는 말씀하셨다.
< 처음에는 꿈을 꾼 줄 아는데,. 생시였어! >
<뭘요?>
< 내일 약혼식 준비를 해 달라고 그랬어! >
<누가 약혼하는데?>
< 나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너에게 묻는 거야. 내일 부모님과 가족들이 약혼식 하려 부산에 내려온다니? >
< 무슨 꿈을 꾸신 것이에요? 헤어진 사람이 무슨 약혼식은,. 그만 잘래요.>
어머니는 몇 번이고 잠든 나를 깨우시고, 일으켜 앉게 했지만, 나는 사실조차 전혀 모르는 것이라 어머니가 정말 꿈을 꾸신 줄 알았다.
이른 아침부터 집안 분위기가 벌집 쑤셔 놓은 듯이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어머니는 꿈이 아니라며 정말 약혼식 때문에 대구에서 오신다며, 집안의 큰일이라 아버지도 편찮아 누워계시니, 숙부님까지 연락하셨고 모두 모이게 하셨다.
소식에 놀라신 숙부님, 사촌오빠들도 함께 오셨고, 숙부님은 어머니께 어른들 상견례 없는 약혼식이 세상에 어디 있으며, 아직 철부지 아이 말만 듣고 어른들도 만난 적도 없다면서 무슨 약혼식이냐? 어머니에게 따졌다.
오빠들도 내가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느냐고 요란하게 난리를 쳤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어젯밤에 그에게 전화 온 것이 사실 같았다.
오늘은 이런 일로 외출 금지령이 떨어졌고, 어제 친구들과 캠핑 계획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미팅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말이 되지 않는 일보다 리더의 책임자로서 나갈 수 없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그가 정말 우리 집에 왔었다.
너무 황당하고 당황하며 그의 얼굴을 은근슬쩍 살펴보니 환자처럼 엄청 수축해 있었다.
그는 우리 가족과 집안 어른들에게 이런 큰일에, 정중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점에 깊은 사과의 절을 올렸고, 현재 그의 부모님과 가족도 함께 부산에 왔으며, 우선 우리 가족과 먼저 상견례를 원하고 있다며, 장소가 정해질 동안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나갔다.
당사자인 나에게 쳐다보지도 않았고,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려, 나는 너무 어이없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숙부님도 그를 보기 전에는 어머니에게 몹시 따져지만, 그가 점잖고 예의도 있고, 매우 괜찮아 보인다고 좋게 말씀하셨다.
나는 친지와 가족에게 그와 분명히 헤어졌으니 그의 부모님을 만나 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내 의견을 분명히 말씀드려 지만, 옛날 그 당시 시절의 어른들은 나와 의견이 달랐다.
연분의 인연은 하늘이 정해져 있는 것이며,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그의 부모님과 가족이 시 갓집 식구가 될 수 있으며, 구태여 잘못 보일 필요가 없고 또한, 이미 대구에서 내려오신 분에게 만나서 음식 대접을 해 드리고 나서 다음에 연분이 되며, 그때는 약혼하며 된다는 의견을 모았다.
친구가 오늘 미팅 장소 함께 가자며 우리 집에 왔었고, 엉뚱한 소식으로 충격을 받고 까무러쳤었다.
오늘 약속 장소로 나가려고 친구와 미용실가서 머리 손질하고 오겠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친구를 믿고 보내 줄 테니, 절대 약속을 지켜 달라고 친구에게 몇 번이고, 당부하셨다.
번화가에 나오니 탈출한 해방감으로 기분이 날아갈 듯이 시원했었다.
번화가 단골 미용실 원장님에게 친구가 오늘 내가 약혼식 있어, 특별한 머리와 화장발이 필요하니 예쁘게 해달라고 놀잇감으로 말하였고, 원장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완성된 모습은 무슨 미인대회 출전하는 모양으로 아주 어색하고 이상한 모양새로 만들어 주었다.
오늘 약속된 미팅 장소에 친구와 장난기를 머금고 잔뜩 부풀어진 머리와 긴 머리처럼 붙여진 가발 머리, 화려한 화장발, 그곳에서 입혀준 예복차림으로 음악실에 들어섰었다.
그곳에는 내 친구와 남자 친구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날과 송정에서 밴드 보컬 연주한 남자 친구들 ) 모여 있었고, 처음에는 내 모습에 누군지 몰라보았고, 뒤늦게 알아보고 내 모습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와 같이 온 친구는 내가 오늘 약혼식이 있어서 갑자기 이런 모양새가 되었다고, 웃음을 감추느라 애 섰다.
그 말을 듣고 놀란 친구들은 어젯밤까지 함께 모여서 캠핑 계획을 짜고 헤어졌는데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사실 설명을 듣고 난 뒤, 모두 놀라며 까무러치고 있었다.
남자 친구 중에 나에게 관심이 많은 의대생이 진지하게 벌떡 일어서서 그랬었다.
나를 처음 보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은 음악 다방에서 그와 함께 들어와서 엉겁결에 인사하였고, 두 번째 만나는 송정 해변에서는 그 사람이 찾아와 싸우는 것을 보았고, 셋 번째 만나는 오늘은 약혼식 날이라니, 자기 운명이 너무 비참하다며, 엉뚱한 고백 했었다.
나와 친구들도 그의 고백에 할 말을 잊었고, 우리 어머니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친구는 우리 집에 데려주었다.
내가 늦게 와서 그의 대구 가족들이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신다며 잔뜩 성이나 나에게 꾸지람했었다.
그가 우리 집에 와 있었고, 역시 나에게 눈 깃 한번 주지 않았다.
친구가 돌아가는 모습, 가족의 혼난 꾸지람, 나를 무시하는 그의 뒷모습, 거울에 비추어진 나의 이상한 모양새,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이래지고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고 갑자기 서러운 생각으로 눈물이 나왔다.
곱게 단장한 예복에 미용실에서 잔뜩 부풀어진 머리, 화려한 화장발 얼굴에 그대로 선 채, 세숫대야에 가득찬 찬물을 내 머리 위에서 쏟아 부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는 가족, 친지, 그도 역시 순식간에 일어난 황당함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어찌할 줄 몰랐다.
지금도 늦다고 하시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졸도 하듯이 힘없이 풀썩 주저앉아 버렸고, 곱게 차려입으신 한복과 버선발을 벗어 던져버리고, 눈물을 흘려시며, 한탄하셨다.
< 아무리 내 딸이지만, 저런 행동을,. 자네도 일찌감치 정신 차리고 포기하는 것이 자네 신상에 좋을 것이네! 앞으로 우리 딸 같은 것은 만나지 말고, 얌전하고 참신한 순한 아가씨를 만나게. 그것이 자네에게 백번 좋을 것이네! 이제는 모든 걸 잊어버리고 기다리는 부모님께 어서 가보게. >
눈물과 한숨 섞인 어머니 목소리에 더는 혼란스러운 광경을 참지 못한 작은 오빠가 뛰어나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뺨을 때렸고, 그 충격으로 나는 쓰러졌었다.
그가 보는 앞에서 오빠에게 뺨을 맞았고, 내가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그도 가슴 아픈 장면에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았다.
숙부님과 친척 사촌오빠들도 처음 보는 내 고집과 행동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둘렸고, 이런 심각한 분위기 상황에서 상견례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나가시는 친지들 앞을 그가 가로막고 무릎 꿇었다.
<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앞으로 결혼하며 저 애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제가 버릇을 고쳐 놓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즉시 반란하면서 더 보라는 듯이, 물에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친지 중에는 내 고집을 더는 볼 수 없다고, 몇 분은 가셨고 그는 계속해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끝까지 눈 깃조차 주지 않았다.
친구가 궁금해서 우리 집을 다시 찾았고, 친구와 올케언니, 이종언니의 오래 설득, 그리고 작은 오빠는 네가 벌린 일이니, 네가 약속 장소에 직접 나가서 수습하지 못하며 가만두지 않겠다며, 벽을 치며 겁을 주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주눅으로 저녁 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에 그의 가족이 종일 기다리는 부산 광복동 특급 일본식 요릿집으로 나갔었다.
오전에 대구에서 오시고 여태 기다리신 그들의 가족 표정은 매우 어둡고 얹잖았고, 그의 어머니는 딱딱하고 굳은 얼굴로 내가 들어서자마자 보기 싫은 듯이 재빨리 휙 돌아앉았다.
우리 가족은 그들 가족에게 어쩔 줄 모르시며 거듭 사과로 미안해하셨다.
그리고 다음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날 상황은 이랬다.
그의 가족과 우리 가족 친지들이, 식사와 인사를 끝내고, 양갓집 대표자들이 다른 방에서 의논했다고 그랬다.
일본 교포 그의 아버지는 멋쟁이 신사 사업가로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하셨다.
오늘 종일 왜 아가씨가 나오지 않았는지, 바보 같은 자기 아들이 여태 무슨 병으로 앓고 있었는지, 모든 것을 이제는 파악 했다며,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시고 내일 일본으로 출국해야 하는데, 이대로 일본 가서 아들 걱정할 수 없으니, 약혼식을 바로 이어서 했으며 좋겠다고 제안을 하셨고, 결혼은 아직 나이가 있으니 몇 년 후에 정하며 어떠냐고 묻었으나. 그의 어머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절대 반대를 하셨고, 어른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종일 나오지 않는 것은 내가 건방진 태도라 용서되지 않으며 또한, 상견례에서 바로 약혼식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반대하셨다고 그랬었다.
그의 아버지께서는 다른 방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어머니를 설득하셨고, 우리 집도 오늘 내 고집 모습을 본 숙부님은 왠만하며 약혼시켜놓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고, 혹시 나에게 묻는 것은 오늘 집에서 한 행동이 여기서도, 나올 것이 뻔한 일이라며 의논도 않았다.
오랜 설득과 합의가 끝난 두 집 가족들은 광복동에서 분주한 움직임으로 서둘러 약혼반지를 사게 되었고, 일본식 요릿집은 부산하게 준비한 음식이 새로 들어왔고, 이어서 깜짝스러운 약혼식 발표로 사촌오빠 사회로 진행하였다.
그날의 우리의 약혼 사진은 오빠에게 뺨을 맞고 퉁퉁 부어오른 반쪽 일그러진 내 얼굴, 그는 나와 반대로 피골이 상접 된 환자 같은 수축한 얼굴 기념 사진으로 평생 남게 되었고, 아무튼 말이 많았던 우리의 파란만장한 약혼식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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