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나의 자서전-셋 번째 운명적인 사랑부분에서
다음날 그는 일찍, 우리 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었다.
그는 홍 기자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내가 올 때까지는 절대 부산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랬다.나는 오후가 넘도록 음식도 먹지도 않고, 누워 뒤척이다가 아무래도 홍 기자의 아랫목에 깔아 놓은 이불로 찜찜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으므로 고민 끝에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홍 기자 집주변 구멍가게에 둘려서, 세제와 간식, 반찬거리를 대충 사 들고 홍 기자 자취방 언덕 비탈길로 올라갔었다.
그가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비탈길 위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함박꽃 얼굴로 쏜살같이 뛰어왔고 초조한 마음으로 여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홍 기자는 어제 우리 일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그의 집 방문으로 세제와 먹을 것을 사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는 홍 기자에게 어제 우리가 다툼이 있었고, 내가 화가 풀려서 다시 온 것으로 해명했었다.
나 역시 미혼으로 자취하는 홍 기자 위해서 오늘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불과 청소, 그리고 밥도 같이 해먹자고 어눌한 핑계로 둘려댔다.
평소에 우리 집에서 백수로 놀면서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고 늘, 어머니께서 나무라고 했었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사유로, 홍 기자가 말리는 이불을 세제를 풀어서, 큰 통에 담갔다.
이불만 빨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마음에도 없는 방 청소와 서툰 요리까지 할 수밖에 없는 나를 보고는, 홍 기자는 보기보다는 착한 심성과 부지런함이 겸비하였다고 사람은 곁으로 보고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며, 내 속 모르는 어이없는 칭찬을 했었다.
내 서툰 요리를 먹는 그들의 얼굴은 맛은 없지만, 지친 시장기로 억지로 맛있게 먹는 척 해 보였다.
그가 나를 도와주면서 내가 왜 이불을 빨아야 하는지 그도 알고 있다고 그랬다.
홍 기자 집에서 나온 우리는 폐쇄된 철도 길에서 손을 잡고 걸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지 한번 마음을 정하며 어떤 한 일이 있어도 꼭, 실천을 해야 하고, 하물며 외모에 관심 많은 사춘기 때에 고생하시는 그의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장학금밖에 없다는 생각에 방학 동안 바깥 유혹을 끊으려고 스스로 얼굴 눈썹을 밀어 본 적도 있었다고 그랬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은 놀라고 대단한 집요한 집념을 지닌 사람이라는 겁먹은 큰 부담감이 마음속에 밀려왔었다.
그는 자기 꿈의 포부가 빨리 성취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나에 대한 책임감을 실천하기 위해서, 내가 좀 더 어른스러워 주면 좋겠다고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진지하게 말했었다.
< 어제처럼 함부로 헤어지자는 그런 말, 앞으로는 하지 마. 다시는 그런 말로 불안해지기 싫어! >
<예, 염려 마시고 앞으로 편지도 꼬박꼬박 잘 쓰고, 말 잘 듣는 착한 지야가 될 것이에요. 그리니, 인생의 중요한 목적을 위해서 공부에만 열심히 전력 분투할 수 있도록 내가 신경 쓰지 않게 할 테니 날 믿어 봐요.>
< 너는 변덕쟁이라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
사실 천연덕스럽게 애교를 떨어가며 대답을 했지만, 내 속마음은 그의 말에 인정하고 있었다.
부산역에서 헤어지면서 늘 그랬듯이 내 손바닥에다 그날은 이심전심(以心傳心) 한문 글씨를 적어주고 내 손등에 키스해주고 떠났다.
그 후 처음에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달콤한 사랑이 담긴 편지 글로 한동안 서로 주고받고 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나는 작은 연못에 갇혀 있는 물고기처럼 답답해지고 있을 때, 신문사 사장님의 호출로 신문사에 갔었다.
사장님은 아까운 내 기질을 시간 낭비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낮에는 신문사에서 경험 쌓아두고, 야간 대학에 다녀 유망한 신문기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더 권유하셨다.
나 또한, 신문사에서 내 적성에 맞는 도전적인 일을 다시 하고 싶었지만, 그는 절대적으로 반대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만나며 교장 선생님 같은 보수적인 말투로 내 치마길이, 행동 하나까지 모든 것을 관섭했었고 무조건 통제만 하니, 친구의 말처럼 그가 서서히 지루하고, 짜증과 싫증으로 내 자유 분방한 성격은 홀가분하게 살고 싶은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가 염려했듯이 또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여름 방학으로 서울에서 친구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방학으로 친구들과 음악 다방에서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그나마 그에게 보내는 편지조차 소홀해졌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부산 친구들과 바닷가 캠핑 여행을 떠나려고 가족들에게 기간과 행선지를 가르쳐주고, 허락을 원했지만, 오빠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캠핑 떠나기로 친구들과 약속되었는 날, 하필이면, 그도 모처럼 우리 집으로 방문하겠다며 전화 왔었다.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 가족과 그리고 우리 집 방문으로 보고 싶다는 그의 말조차도 저버리고 다음날 아침. 가족들에게 반란의 편지 한 장만, 남겨둔 체, 나는 여행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경부선 기차 타고 그가 나를 만나러 내려오는 같은 시간대에 나는 친구들과 동해선 기차를 타고 캠핑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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