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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30화) 나의 자서전 - 셋 번째 운명적인 사랑부분에서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09. 2. 28. 02:10

 

(30화) 나의 자서전 - 셋 번째 운명적인 사랑부분에서



그가 떠나간 송정역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기차 기적소리는 가끔 그를 생각나게 하였고 한 번씩 마음이 편치않고 아려왔었다.

앞으로는 누구도 사귀고 싶지 않았고, 사랑이란 단어로 두 번 다시 관섭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내가 생각한 사랑은 자유스럽지 못하는 구속이며 나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어린 나이에 그냥 친구들처럼 대학에 가고 싶었고 신문사로 돌아가 홀가분하게 앞으로 신문기자로 도전하고 싶었고, 가벼운 새털처럼 내 인생을 자유롭게 만끽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가 떠나고 친구들마저 내 눈치를 살펴보는 것 같아 더는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더 명랑한 척 애를 쓰고 있을 때쯤, 민박집에 고기를 잡고 사는 아주 순박하게 생긴 아들이 쑥스럽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부끄러운 얼굴로 한참 망설이더니, 깊은 물 속에 들어가서 가지고 온 것이라며 아주 예쁜 귀한 붉은 산호초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순박한 아들의 산호초는 어이가 없었고, 더는 그곳에 머물고 있지 못할 것 같아서 혼자 바로 짐을 챙겨서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었다.

캠핑에서 돌아온 우리 집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웠다.

그날 그가 우리 집에 온다는 연락을 받고도 멋대로 가버린 내 행동과 더운 여름날에 대구에서 내려와, 다시 송정까지 찾아 간 사람에게 못 질게 해서 보낸 것은 철없는 한심한 행동이라고 어머니께서 꾸중하셨다.

우리 가족은 지나칠 만큼, 유별난 가족 애정이 토 탁해서 무슨 일이 생기며, 숨기지 않고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런 가족 간의 분위기 때문에 나는 그를 소개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되려 지금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곤경의 걸음도리 되었다.

특히, 우리 어머니는 그동안 그와 정이 들었고 예비 사위처럼 대하시면서 무척 좋아하셨다.

 

 그가 나에게 보내온 쓰라린 아픈 심정이 담긴 장문의 열두 장 편지가 도착하였고, 내용은 차라리 그날 송정을 가지 않았다면,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도 듣지 않았을 덴데, 그날 부산에 간 것이 너무 후회가 된다는 아쉬움 글로 시작해서 해변에서 내가 냉정하게 그를 뿌리치고 들어가고 혼자 밤새도록 바닷가를 거닐면서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고 했었다.

그는 앞으로 누구를 위한 삶으로 살아야 하며, 자신의 포부를 실천하고 싶은 열렬히 갈망하는 고시 공부도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미련도 없어서 포기할 것이며, 여러 가지 의욕 상실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은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인생을 끝내고 싶은 유혹을 참느라 밤새 힘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의 애절한 편지를 어머니께서 뺏어 읽어보시고 나를 크게 나무라셨었다.

남의 귀한 아들 운명이 잘못되고 또한, 고시 공부도 망쳤으니 네가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무섭게 역정을 내셨다.

나 역시 그의 가슴 아픈 장문편지가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이미 완전히 끊고 헤어지기로 한 내 굳은 마음은 변하고 싶지 않았다.

작은 오빠마저 그가 우리 집에 나를 찾아오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날은 우리 일행이 낮에는 민박집에서 꼼짝하지 않았으니, 우리를 찾지 못하고 오빠는 뜨거운 뙤약볕 땡볕에 더워서 파라솔 밑에 앉아 있었지만, 그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피서객 틈을 헤치고 다녔다며 더구나 물속까지 들어가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고 내 동생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집념에 남자인 내가 보아도 감동으로 새삼 평가하게 되었다고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오빠의 말에 우리 어머니는 더욱더 나를 나무라셨었다.

 

두 번째 장문 편지를 보내왔었다.

부산에서 돌아온 뒤로 정말 괴로운 것은 내가 그를 만난 뒤부터 우울함과 명랑하지 못한 점, 그리고 즐겁지 못했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나의 말이 그의 뇌리 속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아 고뇌로 힘들고 괴롭다며 그의 지나친 욕심이 부담을 주었다고 생각한다며 가슴 아프다고 그랬다.

그리고 새벽 첫 기차 송정역을 떠날 때까지 나오지 않으며 널 포기한다고 했지만,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의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너를 포기할 수 없는 확신을 뻔히 알면서 내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것은 바보짓이며, 사랑 앞에서는 무거운 자존심을 내팽개칠 수 있어야, 사랑을 얻는 진정한 용기라고 적어 보내왔었다.

 

또다시 셋 번째 편지가 왔었다.

나에게 편지 쓰는 시간만이 그가 살아있는 유일한 시간의 공간이며, 모든 식음 패와 잠도 잘 수 없는 유령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일본에서 오신 부모님과 그의 가족은 원인 모르는 병을 앓는 자식이 안타까워 혹시나 신변에 위험이 생길 것을 우려되어 지켜보고 걱정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 편지는 우리 어머니께서 나에게 엄청난 꾸중으로 시달렸었다.

그와 헤어지는 것조차도, 주변에서 나를 무척 힘들게 했었고, 이럴 때는 그를 우리 집에 소개한 것이 정말 후회되었다.

 

그날은 친구들과 새로운 캠핑을 떠나려고 밤늦도록 음악 다방에서 계획표를 짜고 있었다.

간절하게 기다려도 답장 없는 나에게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더는 기다릴 수 없어 한 마디 음성이라도 듣고 싶은 심정으로 우리 집으로 용기 내 전화를 했지만. 내가 없었고, 늦은 밤 한 번 더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아직 귀가하지 않은 나에게 더욱더 실망하게 되었고 끝내,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생각을 혼자 결심하고 우리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 어머니 저를 믿어주시고, 내일 약혼식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우리 부모님 가족들과 함께 약혼하러 가겠습니다. >

우리 어머니는 잠결이라 꿈을 꾸신 줄 알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캠핑 여행 계획으로 마음이 들뜬 채,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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