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좋은 음악이 날마다 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든다

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27화) 나의 자서전-셋 번째 운명적인 사랑부분에서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09. 2. 16. 00:36

 

(27화) 나의 자서전-셋 번째 운명적인 사랑부분에서


그와 해운대에서 만남을 잠시 자제하기로 했고, 편지로 서로 주고받기로 약속하고 서, 그로부터 몇 번의 편지를 보내왔었다.

볼 수 없으니 답답하다. 혹시, 네가 다른 또 생각을 하지는 않느냐. 편지를 하지 않으니 불안하다는 내용을 보내왔었다.

내 성격상 낙천적인 면이 많아 그런지 만나지 않으니 그에게 소홀해지고 있었고 또한 친구들의 표현처럼 ( 넌, 교장 선생님을 사귄 거야. 네가 없는 그런 면들이 현재 좋아서 그 사람에게 호기심으로 빠진 거야. 좀 있어봐 넌 곧, 지루해질 거야!)사실 그 말이 나에게 확실히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프랑스의 과학자고, 철학자인 Braise Pascal이 말한, "인간은 한줄기 갈대와도 같이 자연 속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말을 떠올리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추스르고 그에게 첫 편지를 보내었다.

그는 내 편지가 너무 소중해 바로 간직하고 늦은 밤, 다 잠든 고요한 시간에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고, 아주 천천히 편지를 아껴보면서 읽었다고 했었다.

그리고 답장을 잠시라도 빨리 편지를 부치면, 네가 일찍 볼 것을 생각하고 밤새 답장을 쓰고 내가 답장을 받는 시간과 다시 그에게 보내는 답장의 날짜와 시간까지, 모두 계산해서 아주 꼼꼼하게 보내왔었다.

그의 답장을 보는 순간은 우선 부담감과 구속감으로 "예 그러겠습니다. " 하는 복종형도 되지 못하고 되려 그럴수록 부담감만 가중되어 답답해졌고 마음이 더 멀어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 되었다.

옛날 그 당시에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은 임시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특별한 날이라 모두가 마음이 들뜨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내 친구들과 부산친구들이 합쳐 서울에서 방학으로 내려온 고향이 부산 남학생 친구들과 우리 친구들과 소개팅 및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고, 집합장소는 우리가 늘 모이는 음악 다방으로 정했다.

 

그날 그는 약속 없이 크리스마스 이브 날을 나와 함께 있고 싶다고 우리 집에 방문했었다.

우리 집에는 그날따라 작은 오빠 대학생 친구까지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라, 많이 모여 있었다.

오빠는 대학교 축전 및 동반자 있는 날에는 여자 친구 대신해서 가끔, 동생을 자랑삼아 잘 데리고 다녔고, 오빠 친구들도 친구 동생에게 잘 해주었다.

그는 오빠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모여 있는 것이 불편한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었다.

둘만이 있기를 원하는 그에게 오늘 내 친구들과 친구의 동아리 남자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에 참석하기로 약속이 있다고 솔직히 말을 하고 나를 무한정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잠깐 얼굴만 내밀고, 그리고 둘이서 보내자고 겨우 설득하고 집합장소에 갔었다.

 

지각한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함께 온 그를 보고는 놀랐고, 서울에서 내려온 내 친구들은 의아한 얼굴로 어리둥절하게 그를 쳐다보았고 나와 관계를 듣고는 더욱더 놀라고 있었다.

그곳에 나온 남자 친구들은 대부분이 의대생, 법대생 그 외 다른 과 남학생들도 나와 있었다.

처음 보는 그들과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같이 나누고, 아쉬워하는 내 친구들을 두고 바로 나왔었다.

 

다른 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의 얼굴이 불현듯 불쾌한 억양으로 얹잖는 듯이 말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자 기대하고 나를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약속 없이 그냥 내려왔는데, 내 주변에는 대학생 오빠의 친구와 오늘 약속된 남학생까지 둘러싸여 있다며, 나에게 화를 내었다.

나는 오빠의 친구들과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며, 또한 친구들과 약속도 솔직하게 공개한 것이 무슨 죄느냐고 화를 내며 언쟁으로 싸웠다.

그는, 심지어 내가 편지 답장을 보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였느냐고, 터무니없는 억울한 소리로 나를 우박 질렸다.

지난 해운대에서 현재 나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오직 유일한 공부에만 매달려,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고 한없이 너를 보고 싶은 것을, 외롭게 참고 견디고 왔었는데, 너를 어떻게 믿고, 편안하게 공부할 수가 있느냐고 화를 내었다.

그 말에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고 그럼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헤어지자고 짜증 난 억양으로 말했었다.

< 저는 김 선생님을 보고 있으며, 이제는 즐겁지 못하고 답답해져요! >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에서 얼른 호흡을 가다듬고 숨을 삼키고 나를 강제로 앉게 했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남처럼 대하듯이 사무실에서 사용한 김 선생님이란 호칭이다.

나에게 복지라는 애칭을 만들어 주었든 날, 그도 고래 아빠라고 부르기로 약속했고 여태 그렇게 불려 주었는데. 갑자기 남에게 대하듯이 김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답답하니 헤어지자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이성을 찾고자 애를 쓰는 것 같았다.

< 우리 그만 싸우고, 오늘 신문사 홍 기자 집에 너와 같이 놀려 가기로 약속했는데, 같이 가자. >

홍 기자라는 분이, 처음 내가 시험 보는 날, 지각했다고 통제 한 사람이고, 신입생 단합대회 바닷가에서 진행자로 그와 내가 한 팀으로 만든 사람이며, 그와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화가 난, 내 감정을 잘 도닥거려주며 달랬고, 잠시 화가 누그러져 우리는 홍 기자 집으로 갔었다.

 

홍 기자도 미혼이며, 신문사 부근에서 자취하고 있었다.

그는 오래간만에 보는 우리를 무척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이브 날이니 과일과 술, 먹을 것을 사 오겠다고 하고 나갔었다. 

겨울 방에 깔아 놓은 따뜻한 아랫목 담요에 두 사람의 발이 맞다 이고, 단둘이 남은 작은 공간의 방안이 점차 갑자기 어색하고 무거운 정적이 흘렀고,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 나는 그동안 네가 보고 싶어도, 조금만 더 참아서 크리스마스 때, 행복한 시간을 만들고, 미루어 두었든 이야기가 많아, 찾아왔는데, 네 주변에 둘려진 남자들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싸움으로 허비하고, 헤어지자니 무엇을 어떻게 타일러야 하는 거야. >

 < ......... >

 

그리고 뜻하지도 않았던 달콤한 신혼여행지 첫날밤이 아닌, 낯선 불안한 남의 집에서, 너무 허무하게 나의 첫 순결 흔적을 방에 깔아 놓은 이불 위에 묻었다.

그를 밀쳐 뛰어나가다가, 대문 앞에서 막, 들어오는 홍 기자와 부딪치는 바람에 과일과 술들이 길바닥에서 뒹굴었고 나는 내리막 비탈길에 넘어질 듯이 뛰어서 내려왔었고, 그가 달려와, 내 등 뒤에서 껴안았다.

< 내 사랑하는 지야. 죽이고 싶도록 널 사랑한다. 제발 날, 믿고 기다려줘! >

그를 다시 뿌리치고, 떠나는 버스에 올라탔었다.

 

넋 잃고 달리는 버스는 어느새 부산역을 지나고 있었고, 나의 첫사랑 그가 그곳에서 뿌연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것 같아 목이 메었다.

그가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배웅해주며 나에게 절대 흉한 사과로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과 아쉬운 손을 흔들었든 모습이 아련히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참았든 슬픈 눈물이 주르륵 내 뺨을 타고 소리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4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