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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49화) 나의 자서전 - 여섯 번째 이야기 다시 대구에 내려오다.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3. 11. 29. 19:55

(49화) 나의 자서전 - 여섯 번째 이야기 다시 대구에 내려오다.

 

시부모님과 그의 결정으로 대구에서 아주 작은 집을 샀다.
서울보다는 가격이 훨씬 싼 도심 속에 있는 집이며 시부모님의 아시는 분이 살던 집이라 현시가보다 싸게 살 수 있었단다.

 내가 원하는 집은 도심보다 공기 좋은 변두리에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마당이 조금 있는 집을 원했으나 내 의견은 시갓집에서는 중요하지 않았고 집안 어른들의 결정에 난 서운 했지만, 무조건 따라야 했었다.
이사를 나왔으니 이제부터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난 수박 사건처럼 그가 어른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에 좋았다.


집을 좀 나은 구조로 고치고 싶었으나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그에게 몽땅 통장을 건네주어 경제권이 없다 보니 서울 집처럼 자신만만하게 고칠 수가 없었다.
이사 온 집은 도심이라 건물 속에 가려져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어둡고 마당없이 집구조도 도저히 마음 들지 않았다.
햇볕과 통풍에 고려하고 싶었으나 지붕과 건물 벽을 뚫은 것은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라 포기하고 그 상태에서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내부만 그에게 받은 최소의 돈으로 쓸모 있게 고쳤다.
그러나 밝은 빛이 없는 집에서 지내는 것에 매우 갑갑했고 건강도 갈수록 나빠져 갔다.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시골 아주머니가 직접 재배한 매우 좋아 보이는 깻잎을 아주 싸게 주어 많은 양의 깻잎을 몽땅 사왔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담아보지 못한 깻잎 김치와 깻잎 장아찌를 어떤 식으로 담는 줄 그때는 몰랐다.
정교하게 묶어진 깻잎 다발을 뜯어 일일이 낱개로 많은 양을 깨끗이 씻느라 아주 힘들었다.
깻잎 김치와 깻잎 장아찌는 양념으로 자연스럽게 숨이 죽는 것을 몰라서 깻잎을 삶아서 아마도 숨이 죽은 것으로 생각했고 몽땅 삶아 놓았다.
삶은 잎들은 쪼글쪼글 엉겨 붙어 이것을 다 펼쳐 노라면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못할 것 같아 한숨을 쉬고 있는데 하필이면 그날 시어머니와 시외숙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셨다.

한 소쿠리 푹 삶은 깻잎을 보시고 시어머니는 놀라움에 입을 딱 벌리시고 말씀을 잊은 듯이 하셨다.
<모르면 물어보든지 아니면 아예 하지 말지 이것을 어떻게 하려고 일을 벌였어? >
< 이렇게 담는 줄 알았어요.>
시어머니는 못마땅하게 말씀하셨고 시외숙모님은 내가 처음 결혼하고 시 외가에 인사차 들렸을 때 철없는 일을 이미 아시는 분이라 또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을 보시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며 재미있다는 눈초리로 시어머니를 안쓰럽게 보셨다.
두 분과 나는 아침이 밝아오도록 그 많은 깻잎을 일일이 펴느라 밤새 고생했고 일어서려니 허리가 꼬부려져 펴지지 않아 허리와 무릎이 몹시 쑤신다면서 누가 누구를 시집살이를 시켰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시외숙모님에게 무척 죄송하고 무안해 우리 집에 한 번 초대했으나 한의원에서 그동안 허리치료를 받으셨다면서 시외숙모님은 두 번 다시 우리 집에 오시지 않으셨다.

시외숙모님 뿐만 아니라 시가집 친척들에게 어떻게 소문이 난 것인지 그 뒤부터 아무도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시아버지 일본 친구분이 한국에 오셨는데 거처를 호텔에서 묶겠다고 하셨는데 굳이 시아버님께서 그것이 아니라면서 큰집이 아닌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오셨다.
 시아버지와 일본 친구분과 좁고 작은 우리 집에 계시다 보니 구조가 좁은 복도형 통로이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부딪쳐야 하는데 그분은 일본 생활 방식대로 만날 때마다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시어 나도 볼 적마다 따라서 풀썩 급하게 주저앉아 무릎 꿇고 말도 안 되는 서툰 일본 말로 함께 엎드려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덜 엎드려 인사하고자 화장실 갈 적에도 그분이 있나 없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문을 살짝 열어서 엿보고 살금살금 서둘러 방으로 들어오려니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분이 며칠 만에 가시고 내가 한의원에서 무릎 치료를 받을 지경이었다.


시아버지는 한국으로 완전히 귀환하시면서 일본의 재산을 정리하셨다.
옛날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가난했고 어려운 시절이라 정부에서도 귀환하는 교포가 일본에서 한가지라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오길 바랐고 그 당시 일본은 모든 기계가 한참 업그레이드하는 시기였으며 우리나라는 그들이 바꾸는 중고 기계를 사들이고 싶었던 시기에 시아버지 귀환과 맞아떨어졌다.

우리나라는 그때 한참 건설 바람으로 건설 중장비가 필요했는데 개인 구입은 절차와 구매가 비싸고 까다로워 오직 시아버지처럼 귀화하시는 분을 찾고 있었는데 어떻게 소문을 듣고 알았는지 그런 분들이 시가로 찾아오셨다.

 

시어버지는 그를 일본으로 데려가 시아버지 한국 귀환을 돕는 일을 하게 하도록 했고, 작은 집을 사고 남은 여윳돈으로 일본에서 아주 큰 중고 인쇄기 구매해 주고, 그 남은 수익금으로 중고 건설 중장비를 싸게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시아버지 도움으로 불도저, 지게차, 굴삭기, 장갑기계 등등. 그는 여러 가지 구매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은 요즘처럼 일본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수월한 시기가 아니라 매우 까다로운 출입국 심사가 있던 시절인데 일본에 있어야 하는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 왔었다.
내가 무척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일본 가기 전에 큰 아이 귀에 아주 큰 귀청딱지(귀밥?)를 보았는데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이비인후과에 데려가 뽑아주지 못하고 급히 간 것에 찜찜하고 걱정되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 것으로 왔다니 놀라 입을 떡 벌린 채 할 말이 없었다.
< 그런 것 때문에 한국에 왔어요? 차라리 전화로 말하지 그럼 내가 병원에 데리고 갈 것을…  >
< 내가 왜 그런 생각을 안 했겠어. 그런 말을 했으면 넌 분명히 이런 것으로 병원 갈 것이 뭐냐며 네가 빼준다고 엉뚱한 생각으로 설쳤다가 아이 귀 손상이 오면 어쩌나 그러니 말하지 않은 것이 안전하다고 항상 우려되니…  그런 실수를 오죽 잘했으면 내가 직접 와야 하니… >
여태까지 실수를 잘 한 나에게도 문제가 있겠으나 그역시 지나치게 완벽해야 하는 성격이라 그런 점에서 나를 못 믿는 불안한 마음은 셋째 아이는 애당초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뒤 시부모님께서 완전 귀환하셨고 그도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그 후 셋째 아이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세 번째 딸을 낳았다.
그때는 요즘과 달리 아들을 선호하는 시대라서 세 번째 딸을 낳은 나에게 시어머니는 아주 어이없다는 듯이 하셨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윗동서 형님은 같은 해에 내가 딸을 셋을 낳을 때마다 형님은 아들만 셋을 낳았다.

형님은 사랑을 받았지만 반대로 나는 약혼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셨다가 이제는 아들 없이 딸마저 셋을 낳았다고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면 쫓겨날 만큼 눈치를 주셨다.
시부모님은 무척 섭섭해 본체만체하셨고 특히 시어머님은 당신이 딸이 없어서 그런지 딸을 둔 사람의 심정은 모르시니 둘째 아들이 딸만 셋을 두었다고 못마땅하게 여겨 병원에 오시지도 않았고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는 아들, 딸을 구별하지 않은 매우 좋은 점이 있다.

하지만 난 이번에는 아들을 원했는데 셋째 딸이라 무척 실망하는 나에게 그는 아주 뒤떨어진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고 그랬다.

입원한 산부인과 간호사가 나를 위로한답시고 그런다.
< 아저씨는 셋째 딸을 누가 바꾸어 갈까 싶어서 그런지 신생아실 유리 벽에서 늘 지켜보아요. 아이를 잘 부탁한다며 아이스크림도 사다 주시고 맛있는 것도 자주 사다 주고 하세요. 셋째 딸을 낳은 아저씨들은 대부분 섭섭해 하시는데 아저씨 같은 분은 없어요.>

 

간호사의 위로 말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 한 컨에는 아들이 아닌 것에 계속 섭섭한 마음으로 신생아실 유리 벽에 기대어 보고 있었다.
어느 산모 복을 입은 나이 드신 아주머니가 신생아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어 내가 물어보았다.
< 아주머니 아이는 어떤 아기인가요? >
< … >
한참 말을 하지 않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 새댁 아이는 어느 아기인가요? >
< 저기요~ 저는 이번에 꼭, 아들을 원했는데 섭섭하게도 셋째 딸을 낳았어요.>
>
말을 하지 않은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무척이나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셋째딸… 새댁이 참 부럽네요! 여기 신생아실에는 제 아이는 없어요. 임신만 하면 자연 유산이 자꾸 되어요. 이 나이가 되도록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요. 임신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매우 조심해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역시 이번에도 실패했어요. 이제는 나이도 많고 포기했어요.>
< 제가 괜히죄송해요.>
< 괜찮아요. 내가 산모 복을 입고 신생아실을 쳐다보고 있으니 누구나 오해할 만하죠. 이런 마음을 먹으면 안 되지만, 신생아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어느 아이를 훔쳐 달아나고 싶은 충동감이 자꾸만 생겨나요. 새댁의 셋째 딸이라 실망이 되면 제가 데려다 키울까요?>

그녀의 충격 말에 새하얗게 놀라서 다음날 퇴원해야 하는데 그날 밤 당장 아이를 데리고 퇴원했다.
그 아주머니의 비하면 난 행복한 사람이라 다음부터 셋째 딸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이 싹 사라졌다.

 

모처럼 부산 친정에 갔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종 언니 어깨가 힘없이 축 처져 있고 얼굴도 몹시 상해있었다.

형부가 요즘 바람피우는 것에 마음고생이 많다며 이혼마저 생각하는 언니의 부부 위기가 살벌해 보였다.

평소 언니밖에 모르는 아주 착실한 형부였는데 어쩌다가…
언니는 마음이 몹시 답답해 오늘 점쟁이 집에 가는 길이라면 함께 따라가자고 했었다.
언니의 심각한 상태가 걱정되어 아이들은 친정에 잠시 맡기고 언니를 따라 나섰다.
부산에서 좀 알려진 점쟁이라고 하였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형부가 바람을 피운 것을 거짓말처럼 맞혔다.
그녀는 이혼보다는 우선 그 여자와 땔 수 있는 어떤 신기한 방법이 있다면 가르쳐 주었다.
언니는 유명한 점쟁이라 예약하지 않으면 볼 수 없으니 온 김에 너도 한 번 보라고 권유했다.
난 볼 것은 없으나 점쟁이가 언니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아맞히는 것에 흥미롭고 신기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점쟁이 말을 들었다.

그녀는 나에게 한마디로 말했다.
< 너의 인생은 앞으로 학생이 되거나 선생이 되거나 또다시 선생에서, 학생으로 그렇게 평생 살게 될 것이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평범한 현재 세 아이 엄마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니에게 그랬다.
< 말도 안 되는 아주 엉터리 점쟁이야! 학교 다닐 때도 무척 공부를 싫어했구먼, 더구나 이미 결혼하고 아이 셋 키우기도 하루가 바빠 죽겠는데 내가 무슨 학생, 선생이 된다고 하는 거야. 정말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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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후부터 내 인생이 그렇게 되어 갈 줄 상상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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