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나의 자서전 - 다섯 번째 어설픈 재태크 부분에서

 

(46화) 나의 자서전 - 다섯 번째 어설픈 재태크 부분에서

 

아침마다 아이 손을 잡고 미용실에 출근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는데 이제는 아무런 의미 없이 다리 기운조차 풀렸다.

고생이 끝나고 무지개 빛깔처럼 찬란한 희망이 보였는데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 검색해 부동산의 임차인 상식에 대해서 정보도 알 수 있겠으나 옛날 그 당시만 해도 내 나이에 아는 것이 없었다.

사우나 개업으로 시간이 갈수록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손님으로 북적되니 더욱 애통한 마음이 들었다.

김 미용사 언니와 보조 미용사도 집이 먼 시골이라 우리 미용실에서 함께 숙식하고 있어 그것조차 아주 순조롭게 잘 해결되는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미용실을 비워 달라는 주인아주머니의 통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이 캄캄했었다.

임대 보증금은 받을 수 있지만, 주인아주머니가 다른 용도로 본인이 직접 가계를 한다면 내가 준 전 미용실 주인에게 권리금는 한 푼도 건질 수 없다는 현실에서 남편 말이 생각났다.

(아기 잘 키우는 것이 돈 버는 거야. 네가 부업 한다고 설쳐다가 아기가 아프면 번 것이 아니라 잃는 거야. 너무 지나치게 무리하며 바득바득 살지 마.)

정말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무작정 덤벼든 잘못된 부업의 선택에 후회되었다.

그동안 너무나 힘들게 모은 돈으로 권리금을 주고 미용실을 인수한 것이라 이 난국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보조 미용사가 무슨 할 말이 있는지 김 미용사의 눈치를 힐금 힐끔 살피면서 퇴근하는 나를 따라났었다.

< 저… 할 말이 있는데... 혼자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알아야 할 것 같았어… >

김 미용사는 나이가 많았지만, 보조 미용사는 내 또래의 미용 학원을 갓 졸업한 아가씨이다.

사우나가 개업 후부터 새벽 손님에서 늦은 밤까지 많은 손님으로 수입이 무척 많지만, 나에게 계산해 주는 것은 아주 약간만 주는 것이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동대문 시장에서 옷 가게 하는 주인아주머니가 매일 밤마다 미용실에 오시는데 마사지와 손톱관리, 퍼머, 머리 손질 등 공짜로 해 드리면서 며칠 전부터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맛사지를 해 드리면서 내 눈치를 봐야 하는 김 미용사 입장을 설명하면서 주인아주머니께서 전 미용실 원장과 계약 만료가 지났으니 이제는 직접 다른 용도로 바꾸어 쓸 것이라고 하시고 미용실을 비워달라 하면 권리금도 안 주어도 될 것이고, 앞으로 자기가 미용실을 맡으면 그 보답으로 언제든지 눈치 보지 않고 공짜로 서비스하겠다면 간절하게 아양을 떨면서 하는 말을 엿들었다고 했었다. 

뜻밖에 놀라운 말에 상상조차 할 수가 없어 경악하고 말았다.

평소 김 미용사는 내가 힘들게 모은 돈을 어리석게 나쁜 미용중개인에게 속아서 권리금까지 주고 미용실 인수한 것에 안타깝게 생각했었고 이사를 오기 전에는 먼 거리를 아기와 버스 타고 다니는 조차도 안쓰럽게 생각했었다.

부업을 하면서도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그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일찍 퇴근하는 것도 그녀는 잘 이해해 주어 고맙게 여겼다.

모두 알아서 잘 관리하겠다는 김 미용사 언니에게 철석같이 믿고 맡겼는데…

김 미용사도 집안의 맏이로 시골 부모님 생활비와 동생 공부시켜야 하는 딱한 사정이라 서로 위로하면 살았다.

앞으로 함께 잘 헤쳐 나가자면 힘껏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던 사람이라 언니처럼 따르고 무척 신뢰했었다.

그래서 더욱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머릿속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의문스러웠다.

얼마 전까지 미용실 손님이 없어서 월세 받기가 민망하다면서 걱정도 해주셨고, 사우나 개업 후에는 마음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잘 될 것이라고 격려도 하셨던 분이 갑자기 태도가 바뀐 것이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무너진 불신의 분노에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자존심을 내세워 혼자 어리석게 해결하기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라 생각했었다.

그와 의논해 해답을 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생각들어 긴 호흡을 몇 번 하고 그에게 그동안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 계약 만료 전에 주인이 미리 통보해야 하는데 통보받았어?>
< 아뇨. 월세도 여태 직접 드렸고 그런 말씀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보조 미용사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는 별다른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고 저녁 퇴근 후에 주인을 만나볼 데니 약속을 해 달라 하고는 출근을 했었다
그에게 고민의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위안이 되었다.

저녁 퇴근 후에 미용실 안채에 사는 주인집에서 그의 혼자 아주머니를 만나러 갔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그와 집주인이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무척 궁금해하면서 그가 돌아오기를 안절부절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가 얼마 후에 집으로 왔었고 궁금해서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 애썼다.

< 어떻게 되었어요?>

주인아저씨도 집에 계시어 함께 만났는데 미용실를 개조해 다른 용도로 쓸 계획도 없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면 전연 모르는 사실이라 아주머니에게 묻었고, 난처한 아주머니가 김 미용사 이야기할 수 없이 했으면, 아저씨는 여태 아이 엄마가 미용실 인수해 마음 고생했다가 사우나 개업 후에 이제 미용실이 잘된다고 권리비를 한 푼도 주지 않고 내 쫓으려고 한 것은 얼토당토않는 몹시 못마땅한 경우이면 터무니없는 김 미용사의 욕심에 흥분하더라고 했었다.

아주머니도 김 미용사와 똑같다면서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다면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몹시 나물래서 민망스러워 일찍 나왔다고 했었다.

 

다음날 주인아주머니는 나와 김 미용사를 한자리에 불려놓고 말했다.
< 어젯밤 우리 아저씨도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무척 내가 곤란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나는 빠질 것이니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해…>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보기가 민망한지 황급히 말만 하고 나가 버렸다.
김 미용사 얼굴이 순간 납빛으로 질려 당황하며 뻔한 변명거리를 구질 하게 말을 더듬거렸다.

그 후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볼 적마다 눈길조차 마주치는 것을 꺼려 피했고, 김 미용사와 보조 미용사까지도 무척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계속 이런 분위기로 이어갈 수는 없었고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하는지 막막했었다.
물론 다른 미용사를 바꾸면 제일 간단할 문제이지만, 무척 힘든 시절에 없는 반찬도 투정하지 않고 먹어준 것에 고마웠고, 그동안 정말 언니처럼 정이 들어서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그쯤 나를 속인 미용 중개인이 다시 찾아와 자기가 소개해 준 덕분에 미용실이 큰돈을 벌게 되었다며 아주 잘난척하면서 다시 팔 마음이 없느냐고 은근히 물었다.

사우나 손님으로 미용실이 잘되어 서로 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많은 권리비를 줄 테니 잘 생각을 해보라면 부지런히 오시어 부추기자 김 미용사가 불안하게 생각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어쨌거나 결론은 김 미용사, 주인아주머니 이런 식으로 함께 지내는 것도 싫었고 내가 미용기술이 없는 것에 자신감도 없었고, 권리비를 많이 줄 때 인수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차츰 들었다.

그래도 이왕 남에게 인수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나와 함께 고생한 김 미용사 언니를 용서하고 내가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다.
김 미용사 언니는 너무나 고마운 내 제안에 눈물을 흘렸고 진정한 용서와 권리비를 건네주었다.
그녀가 주는 대로 받았고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한 푼도 아끼며 아기 우윳값을 비교하면 궁색하게 살던 시절이라 그것도 엄청나게 큰돈이라 생각하고 매우 고맙게 생각했었다.
 
어느 아침 햇살이 비추는 눈부신 봄날에 둘째 아이 만삭의 몸으로 그동안 알뜰하게 부어온 적금과 전세금 그리고 미용실 임대 보증금, 다행히 운이 좋아 큰돈이 되어준 권리금 목돈까지 합쳐서 둘째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작은 우리 집을 찾아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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