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좋은 음악이 날마다 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든다

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48화) 나의 자서전 - 여섯 번째 이야기 다시 대구에 내려오다.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3. 11. 7. 19:34

(48화) 나의 자서전 - 여섯 번째 이야기 다시 대구에 내려오다.


그는 중요한 결정에는 내 의견은 끝내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혼자 결정하고 공무원 사표도 내었고 대구 시갓집으로 내려 온 것이다.

사실 돌아 보면 처음 만날 때부터 모든 것이 늘 그랬다.
그의 결정에 5년간 자유롭게 떨어져 살다가 시갓집에 다시 들어가 우리 아이와 큰집 형님네 아이와 다시 합친다면 문제없이 잘 적응해 낼 수가 있을까?

 

다시 시작된 소소한 일까지 관습 받으며 당장 두부 한 모를 사는 것조차도 일일이 물어보고 사다 보니 그럴수록 서울에서 살았던 시절이 그리워지면서 내 말대로 공무원 사표를 내지 말고 서울 강남의 집을 그때 계약하고 부업을 시작했더라면 새로운 활력으로 나의 창의성이라도 생길 텐데

아침부터 밤 까지 시할머니를 비롯해 일본에서 귀화를 준비하시는 시부모님과 시아주버니, 윗동서 형님까지 받들면서 그리고 우리 아이와 큰집 아이까지 챙기며 식사준비부터 집 안 청소 모든 헛더리 일까지 끝내고 겨우 밤이 되어야 우리 방으로 돌아오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으로 세월이 고달프게 느껴졌다.

그도 대구에 온 뒤로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새로 시작할 것인가? 부부가 함께 의논할 모든 상담은 시가 어른들과 의논을 하는 것도 갑갑하고 미래가 까마득하게 여겨지면서 온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실감. 자신감은 바닥나고 내 존재는 갈수록 작아지기만 하는 의욕상실에 망연케 하였다.

 

그때는 내 나이가 어린 것도 있겠으나 옛날 그 당시만 해도 시가집에서는 며느리는 시부모님 잘 섬기고 집안 살림만 잘하고 아이 잘 키우며 되는 것이고 모든 결정은 내가 아닌 시부모님이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로 여겼고 대구가 좀 더 봉건주의 생각이 심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대구에 내려올 때 그가 앞으로 새로운 사업을 한다면 사업자금이 필요할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그동안 고생으로 애쓴 모은 것을 단 한 푼도 남겨두지 않고 몽땅 건네주었는데 그 일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실수가 되었고 특이나 혼자 결정 잘하는 그에게 내 존재를 더욱 스스로 무너지는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 되었다.

 

시집에 들어와 함께 살면서 생긴 스트레스에 한 번씩 다독거려주기 보다는 무조건 부모님과 어른들께 잘하기만 강조하던 어느 날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대청마루에 계시는 시부모님께 시원한 수박을 갖다드리니 시아버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 여기는 아무래도 방이 복잡하니 너희가 나가서 살 집을 사야겠다. >
그때 외출하고 막 들어오던 그와 시아주버님은 앞의 말씀은 모르시고 시아버지 말씀에 집을 사 달라는 오해를 하신 아주버님이 눈쌀을 찌푸리며 벌컹 화를 내시면 말씀 하셨다.
< 제수씨 대구에 온 지 얼마되었다고 벌써 나갈 생각으로 지금 아버지에게 집 사달라고 쪼르고 하고 있는 것이에요? >
< 그게 아니라 아버님께서.... .>
내말이 끝나기 전에 시아주버님은 평소 매우 성격이 급하시고 말씀도 직설적인 분이다.
< 뭘요~ 딱 들어 보니 집 사달라고 하는 것이구먼요>
<그게 아니라니까요.>
 무작정 나를 추하게 만든 것에 당황과 화가 난 목소리가 섞어 공손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 형님에게 왜 대꾸 하는거야. >
그가 중간에 서서 몹시 당황하며 시부모님과 시댁 식구 앞에서 나를 질타하는 큰 목소리로 꾸짖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은 이해는 되지만, 지나치게 격렬하고 흥분된 높은 목소리로 내가 무엇을 잘못한것인지 조금도 알려고 하지 않았고 무조건 거듭 시아주버님께 사과만 하라고 요구했었다.
무척 서운함에 눈물이 나와 밖으로 나가는 순간에 그는 어른들 앞에 사과하지 않고 버릇없이 나간다고 내 팔뚝을 아프게 끌어당기어 내가 넘어지면서 한없이 초라해지고 실망까지 겹쳐지면서 시갓집에서 홀로 타인 된 소외감이 밀려왔었다.
일이 크게 벌어지자 시부모님께서 그를 말렸고 시아주버니마저도 당황하셨다.
여태 볼 수 없었던 그의 무례한 행동에 섭섭함과 원망스러움에서 도저히 더는 그곳에 서 있을 수가 없었고 서러움이 복받쳐 끝내 어린 둘째 딸을 안고 울면서 대문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밖으로 뛰쳐나왔으나 어두워진 밤에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이 없었다.
요즘처럼 찜질방도 없던 시절에 주머니에 단 한 푼도 없이 거리를 무조건 헤매니 불빛이 비추는 건물은 많았으나 정녕 내가 쉴 곳은 아무 곳도 없었고 거리의 거울에 비친 내 초라한 모습을 스스로 자학하며 안 그래도 서글픈데 등에 업힌 아이는 자꾸만 칭칭 걸린다.
이대로 절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은 여관밖에 없었는데 여관비도 역시 없었다.
등에 업힌 아이를 내려둘 곳도 없어 겨우 여관 아주머니에게 사정하고 현재 차고 있는 시계를 풀어 맡겼다.
잠든 아이를 가만히 내려두고 그런 것 조차 서러워 울고 있는데 옆 방에 술 취한 손님이 들어 왔는지 시끄러운 괴성을 질려 되었고 아이가 깜짝 놀라고  한동안 밖에서 헤매고 다녀서 그런지 감기 기운으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또한, 집에 있는 큰 아이는 지금쯤 엄마를 찾으면 잠을 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에게 아무리 굳센 결심을 하고 싶었으나 아이들 엄마라는 단어 앞에서는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

 자는 아이를 끌어안고 다시 집으로 조급하게 뛰었다.

 

그래도 난 그를 기대하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에 나와 어린아이가 여태 들어 오지 않아 그가 애타게 아마도 지금쯤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내 기대는 빗나갔다.
대문 앞에는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은 인적조차 끊어진 고요 어둠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은 남편에게 찌그러진 자존심, 그리고 초라한 내 마음으로 우리 방 창문 밑에서 문을 두드릴 때는 내 심장을 두드리는 아픔을 느꼈지만, 그는 내 노크에 모르는 척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불쌍한 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겨우 방으로 들어왔으나 그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자세로 나를 모르는 체 돌아누워 있었다.
돌아누운 그의 뒤 모습에서 감정이 부글부글 게이며 견딜 수가 없었고 등에 차가운 물을 끼얹는 듯 정이 떨어지면서 내 가슴을 쓸었고 숨 모으는 소리를 안으로 삼키며 그에게 심증을 굳었다.
< 이런 사람을 내가 그동안 사랑했고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살았다는 말인가? 내일 날이 밝으면 곧장 법원에 달려가 이혼하고 말 거야!>
구슬픈 생각을 자아내면서 쓸쓸한 탄식으로 그날은 결혼 후에 처음으로 이혼마저 생각했다.

아침이 밝으면 곧장 법원으로 간다고 결심했으나 아이가 열이 나면서 법원이 아닌 소아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는 단 하루도 냉전은 불편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나에게 화해를 원했으나 난, 이번 일에는 용서가 되지 않았고 우리 사이에 무슨 벽이 생긴 듯 냉전의 검은 그림자가 가슴에 쌓여 어둡게 했다.

 

그날 밤 평소 술을 좀처럼 마시지 않는 그가 몸을 가누지 못한 만큼 취한 상태로 무엇가 방으로 던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무엇을 찾아 당혹한 표정으로 분주히 얼굴빛이 변해가며 방을 뒤지면서 물었다.
< 혹시 어젯밤에 내가 봉투 들고 오지 않았어?>
아직 삐친 상태라서 대꾸도 하기 싫었다.
< 몰라욧>
< 택시에 두고 내렸나? 내가 그런 실수를 절대 하지 않지?>
좁은 방 찾을 곳도 없는데 무엇을 열심히 찾는 모습에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리고 허둥지둥 찾는 것일까? 속으로는 무척 궁금했으나 아직 냉전 중이라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방 청소를 하면서 장농 아래까지 먼지떨이를 밀어 넣다 보니 무엇인지 건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 무엇이 받치지?>
몸을 최대한 엎드려 먼지떨이 막대기로 끄집어 세게 당기자 많은 지폐가 방 안에서 날아다녔다.
너무나 놀랐고 그날 그가 술에 만취해서 들어왔을 때 무엇가 던진 것이 떠올랐다.
시아버지께서 아무래도 따로 나갈 집을 사라고 하시어 계약금을 찾아온다고 한 말도 생각났다.

< 그에게 준 것을 후회한 그 돈의 일부이구나! 이래저래 미운데 어차피 잃어버린 돈으로 생각하는데 위자료도 안 줄 거니 그냥 모르는 체 챙길까? >
 그가 몹시 밉기도 하지만 내 도리가 아닐듯했으며 힘이 빠져 있는 그가 안쓰러워 돈 봉투를 내밀었다.
< 당신이 찾은 것이 이것이었나요? >
< 어디서 나왔어…?>
그가 매우 반가워 하는 억양으로 말까지 더듬었다.

< 오늘 청소하다 보니 장농 아래에서 나왔어요. 그냥 주지 말까 종일 고민했는데>
< 정말 고마워!>

깡그려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을 괘씸해 이혼까지 생각했는데 끝까지 버틸 수 있도록 내 운명은 관대하지 못했다.

대구 시갓집에 내려와 처음으로 일어난 수박 사건은 내 삶에 지워지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되어 기억 속에 남았다. 

 

 

 


5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