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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44화) 나의 자서전 - 다섯 번째 어설픈 재태크 부분에서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1. 1. 24. 18:57

 

(44화) 나의 자서전 -다섯 번째 어설픈 재태크 부분에서

 

적금을 몇 번이나 포기를 해야 할 위기를 맞이하면서 그동안 힘든 끈기로 세월은 흘려서 만기 적금을 타는 날이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큰돈을 만져보는 내 뿌듯한 만족감은 이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은행에서 겁 없이 현금으로 모두 찾아 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문을 꼭꼭 잠그고 목돈을 보니 그간 모질게 고생한 흔적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가 퇴근해 들어 오다가 집 앞에서 아기 울음소리도 들리고 방문까지 꼭꼭 잠겨 있어 무슨 일이 생긴 난 줄 알고 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오늘 드디어 적금 탔어요. 봐요.>
그에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불 속에 숨겨진 현금을 보여주면서 자랑했었다.
< 적금이 만기가 되었으면 예금 통장으로 돌려놓고 통장만 갖고 올 것이지 현금으로 몽땅 찾아와서 우는 아기도 돌보지 않은 체, 무엇하는 거야?  >

< 너무나 고생한 결실의 적금이라 보고 싶었어요…>

그날 밤은 밤새도록 이 돈으로 무엇으로 재태크를 할 것인지 머릿속으로 몇 채의 기와집을 설계하고 또 부수고 그리고 현금이 걱정되어 문단속까지 확인하느라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부터 주인집 신문 빌려다가 재태크에 관한 여러 가지 경제면에서 관심을 기울이며 훑어 살펴보고 정보 광고도 보았지만, 내가 가진 돈과는 아주 먼 이야기 같았다.

비로소 나에게는 무척 엄청난 돈이라고 생각한 그 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주 적은 돈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간 철없는 얄개 시절에서, 어린 말괄량이 신부 시절에서 철부지 아기엄마가 되었고, 이제는 재테크마저 생각하는 주부가 되어 내 삶을 한 계단씩 디디고 그렇게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서울 생활은 시골 생활과 달라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적금을 다시 붓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에서 오직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기본 생활비 부식 지출을 줄이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다.
며칠 동안 꼼꼼히 생각한 것은 동네 부식 가계 아주머니를 찾아가 돈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내가 먼저 물었고, 이자로 대신해서 부식을 갖다 먹겠다고 하였더니 아주머니는 아주 반갑게 내 제의를 받아 드렸다.
그때는 내가 힘들게 모은 돈을 남들이 떼어먹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아주 순수한 어린 마음을 가진 시절이라 신중하게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두 번째 힘든 적금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다녀가신 뒤, 조기 결혼을 서둘면 경제적으로 한 푼도 도와주시지 않겠다고 하셨다가 적은 봉급으로 알뜰하게 적금까지 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게 생각이 드셨는지, 생활비에 보탬이 될 것 같은 비싼 생활용품과 우리 옷, 아기 옷, 그리고 고가 화장품까지 일본에서 자주 보내주셨다.
어린 마음에 정말 입고 싶었던 고가의 예쁜 옷과 화장품도 바르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면 예쁜 옷은 거울 앞에서 한 번 걸쳐보는 것으로 만족했고, 화장품은 향기로 달랬고, 고가의 구두는 흙이 묻지 않게 방안에서 한 번 걸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남대문 시장 명품 외제품 전문집에 모두 현금으로 만들었다.

그중에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할아버지가 선물한, 예쁜 아기 옷마저 입혀주지 못하고 그것마저도 그집에 팔고 남대문 시장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아기 옷으로 대신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은행에다 몽땅 저금하였다.

 

어느 날 서울에서 대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그동안 내가 만나기를 무척 꺼리는 것을 알면서 그날은 무리하게 함께 쳐들어? 왔었다.
여고 시절의 얄개 대장으로 많은 친구의 리더로 잘난 체하던 나였지만, 아주 예쁘게 차려입은 풋풋한 여대생 모습의 친구들과 비교해서 고달픈 생활고에, 우는 아기까지 달래고 있는 내 모습은 아주 초라하게 느껴졌다.

<넌 우리와 달라서 무엇을 아주 크게 이루어 놓을 것 같은 네가 왜 일찍 결혼해서 고생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친구들은 내 모습에서 상당히 실망한 눈빛을 보였다.

<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찍 결혼하니 좋아? >
< 우리가 왔으니 네 집에 있는 맛있는 것 있는 대로 몽땅 내어 나봐. >

우리 집을 방문한 친구들에게 커피 한 잔도 사실 부담이 되었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친구들의 수다에 비로소 그동안 내가 그들과 얼마나 동떨어지게 살아왔는지 친구들은 아직 여전히 그대로이었지만, 그 사이 나만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적실히 실감하는 하루가 되었고, 아무리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머물다 간 뒤에 거울 속에 비친 처량한 내 모습은 한없이 그들과 비교가 되었고 가까스로 사는 현재 내 삶이 싫어졌고 그날만큼은 잠시 쓸씁한 기분에 우울해졌다.

 

하지만, 현실은 버스비도 아껴보느라 먼 거리를 아기를 업고서 걸어서 다녀야 했고, 부족한 모유는 비싼 우윳값 아껴보느라 카스텔라 빵에 분유를 조금 태워서 먹이면 아주 알뜰한 생활로 돌아가야만 했다. 

처음처럼 장기간 적금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단기간 적금과 그동안 시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선물을 한 번도 쓰지 않은 체, 남대문에 몽땅 판 돈과 합쳐 또다시 연탄 가겟집에 원금을 빌려주어 그 이자로 연탄을 대신해서 가져왔고, 그다음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쌀 가겟집에 원금을 빌려주고 이자만큼 쌀을 가져왔었다.

이자로 충당한 부식, 연탄, 쌀은 한 달 기초 지출비를 최소한 막을 수 있었고, 그만큼 대신해서 적금을 다시 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허리띠를 조르고 살아도 더는 생활비를 줄이고 산다는 것은 가족들이 영양실조에 걸릴 것만 같았고 갈수록 힘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좀 더 다른 목돈을 모으기로 생각하게 되었고, 작은 부업을 하기로 결심을 정하고 그에게 허락을 원했다.
< 이런 식으로 기초생활비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아무래도 부업을 해야겠어요.>
< 뭐? 네 말에 어처구니없구나. 아기 잘 키우는 것이 돈 버는 거야. 네가 부업 한다고 설쳐다가 아기가 아프면 번 것이 아니라 잃는 거야. 너무 지나치게 무리하며 바득바득 살지 마. 내 주변 동료도 작은 봉급이지만 다들 굶지 않고 멀쩡히 잘살고 있어. 왜 넌 유별나게 힘들게 살려고 하는 거야, 절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그리고 네가 이럴수록 얼마나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 >
그는 내 제안에 서글픈 표정으로 아주 완강한 태도로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타고난 내 고집은 한 번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며 몇 달을 걸쳐서 날마다 그를 조르게 되었다.

고집스러운 내 성격을 잘 아는 그는 어느 날 드디어 가능성을 비추었다.
< 그럼 조건이 있어. >
< 첫째, 아기를 남에게 맡겨두지 않고 함께 있는 일과 둘째, 남자 손님이 한 명도 들어 오지 않은 일, 마지막으로 내가 퇴근해서 들어오기 전까지 집에서 저녁 준비하고 기다릴 수 있는 일이라며 그럼 생각해 볼게.>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아무튼 알 수 없는 승낙이었지만, 무조건 그 조건에 맞추어 부업을 할 것이니 남아일언 중천금이니 절대 약속을 바꾸지 말 것을 거듭 강조했었다.

그는 아마도 그런 조건을 맞추어 부업을 찾는 것은 없을 것이며 집에서 하는 부업 중에 인형 눈을 붙이는 일은 내 성격상 바느질할 타입이 아니므로 결코 아무런 부업도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선 자본금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서 동네 부식 가계와 쌀집, 연탄 집에 원금 환수를 통보하고 기간은 걸렸지만, 다행히 문제없이 잘 받아 보통예금 통장에 묶어 두었다.
그리고 광고 신문을 들고 다니며 서울 시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아기를 업고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의 조건을 맞추고 또한, 적은 돈으로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서울에는 의논 상대라고는 대학 다니는 친구들밖에 없었고 친정가족에게도 자존심상 의논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아까운 세월만 가고 있었다.

이러다가 흐지부지하게 돌아갈 것 같은 초조감과 그의 약속이 혹시 물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매일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었다.


몇 달 동안 겨우 찾은 일은 남자 손님이 한 명도 들어 오지 않은 일은 그나마 여성 속옷 가계와 여성 전용 미용실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용실은 기술이 필요한 것이라 할 수가 없었고, 속옷 가계로 결정하고 본사에 찾아갔지만, 회사에서 내민 조건은 비싼 입지 조건이 좋은 곳이라 집세가 매우 비싸고 또한, 고급 실내장식비와 물품비로 부동산 담보를 요구하였다.
몇 달을 걸쳐 겨우 찾은 부업이지만, 그들의 조건에 부딪혀 내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 겨우 받은 승낙을 포기할 수 없다는 초조한 생각에 란제리회사보다는 더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은 없으나 일단 미용실 중개인을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란제리 가계처럼 입지가 좋은 곳은 실내장식과 창업비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가계를 얻는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는 좌절감에 뼈저리게 실감하고 돌아서 나오는 나에게 미용실 중개인이 내 적은 돈으로 추천할 만 곳이 있다는 기쁜 말에 귀가 솔깃해져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 미용실 경영 경험 있어요?>

<아뇨. 미용실은 가 본 경험밖에 없어요. 기술이 없어도 미용실 경영할 수 있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내가 얼마나 멍청한 바보처럼 여겨졌을까!

그때는 적은 돈으로 가계를 할 수 있다는 오직 단순한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다.

중개인은 오늘은 바쁜 일로 당장 갈 수 없으니 내일 오후에 가자고 했다.

그동안 그는 다시 한번 생각하자면 포기할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드디어 천만다행이라는 일념으로 밤새도록 가슴설레이며 뜬 눈으로 보냈었다.
다음날 중개인과 함께 간 곳은 아주 허름한 미용실에 손님들이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중개인은 그만 보고 다방에 가서 뒷이야기를 하자면 서둘러 나오게 하였고 미용실이 매우 잘 되는 집이지만, 이민 관계로 적은 돈으로 아주 급하게 내놓은 가계라며 오늘 계약하고 한꺼번에 잔금까지 지급하며 내일부터 당장 경영을 할 수 있고 손님이 많아서 1년도 못 가서 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며 오늘 저녁에 다른 사람이 계약하기로 약속이 잡혀 있으니 빼앗기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고 하였다.

당장 잔금까지 줄 수 있으면 매도인이 특별히 20%를 더 깎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20%라는 달콤한 유혹의 말에 그 돈이며 아기 우윳값에 계산해 보니 엄청 큰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아저씨 저는 미용 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요? >
< 걱정하지 마세요. 현재 원장도 기술이 없는 분이고, 기술 미용사가 다 해주니 아기 엄마는 매일 돈만 챙기면 된다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한심스러울 만큼 그분을 불신하지 못한 어리석은 짓이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나이라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알지 못했고,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내 마음이 다급해져 그에게 의논하고자 직장에 전화 하였지만, 그는 현재 대통령 중요한 의무 수행 중이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내일부터 수입이 내 돈이 된다는 아주 어리석은 생각과 오늘 다른 분이 계약한다는 초조함이 맞물러 은행 문을 닫기 전에 더는 그를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리고 만약 그가 혹시라도 반대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까지 생겨 은행에서 단번에 몽땅 찾아와 더할 나위 없이 잔금까지 지급하고 모든 상황을 바꿔 놓고 말았다.

 

미용실 가계를 아주 깨끗이 물청소까지 하고 거울도 말끔하게 빤질나게 입김을 불어가면 닦고 또 닦았다.

처음으로 내 가계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쁜 마음이 되어 출장 간 그가 돌아오면 드디어 내 가계를 이루어 놓은 것에 큰 자랑을 하고 싶었다.

깔끔한 거울에 비친 나와 아기를 보면서 잔뜩 신이 나서 말했다.
< 이제 한시름 놓았어! 아빠 말대로 이곳은 우리 아기와 함께 있을 수 있고, 남자분도 잘 안 들어오고, 미용사 언니에게 맡겨놓고 집에 갈 수 있고, 매일 수입 돈으로 아빠가 퇴근하기 전에 시장가서 이제는 마음 놓고 반찬거리를 사 와 맛있는 반찬도 미리 만들어 놓고, 그리고 우리 아기가 좋아하는 과자도 사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렇지 아가야! >


하지만, 아침 시간이 가고, 점심시간이 가고 또 오후 5시가 되었지만, 그 많았든 부쩍 되든 손님은 아무도 오지 않았고 점차 불안한 생각이 들 때 드디어 첫 손님인 어느 할머니가 삐죽이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말씀 하셨다.

< 이 미용실에서 특별히 공짜로 해준다고 동네 소문이 나 우리 옆집 아줌마도 파마하고 왔었는데 늦었지만, 오늘도 공짜로 해 주나유~ >

< … >

그 말에 아주 놀라서 머리가 하얗게 멍해졌다.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