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나의 자서전-셋 번째 운명적인 사랑 부분에서
신문사 밖에는 여름 장마의 굵은 빗줄기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의 대학교 뺏지에 부러움과 자존심으로 최악의 울적한 심리 상태였고 특히, 오늘은 미래의 희망으로 생각한 신문사마저 사표를 내고 나오는 발걸음은 더욱더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맥이 쭉 풀린 상태로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이 층 다방 간판을 우산을 비켜서 위로 쳐다보며 서성거렸다.
굵은 빗줄기를 맞고 반짝거리는 다방 네온 불에 유혹을 받으면서 혼란스러운 마음 결정을 하지 못한 체, 버스 몇 대를 보내면서, 왔다갔다 망설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그 사람을 잊어버리기로 했는데,. 그냥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 버릴까? )
이런 기분으로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더 이상 아무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한 번 더 만나자는 마음으로 올라갔었다.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고 환한 얼굴로 반색하며 반겼었다.
그 사람의 환한 얼굴에서 이상할 만큼 여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주 가까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편안함이 느껴졌었다.
오늘의 울적한 심리 상태에서 누구에게 간절히 기대고 싶은 심정인지? 그동안 엮인 사연들이 나를 융화시킨 것인지? 더는 무너질 자존심이 없는 것인지? 마지막 날에 잔인한 배신감이 아니었다는 그런 자존심 회복인지? 하여튼 알 수 없는 이유로, 나 역시 그 사람이 반가웠었다.
<만나서 반갑구나!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생기 없어 보여,.>
그 사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살펴보았고 나는 요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 너는 늘 하던 대로 명랑하고 까칠해야 예뻐! >
기분 전환으로 따뜻한 만두 먹으러 가자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비 오는 만두집 창가에서 지나간 일들은 서로 피했으며 그동안 보지 않는 기간에 대화가 부드럽게 회복되었고 사무실 직원과 동료 안부 등, 가벼운 일만 이야기를 했었다.
장맛비는 갑자기 더 퍼붓고 있었다.
그 사람은 비에 당황하면서 신문사 임시직으로 있을 당시, 책과 이삿짐을 이 부근에 맡겨 놓았는데, 걱정이 된다면, 만두를 먹다가 내 손을 이끌려서 그곳으로 뛰었다.
그 사람의 짐을 맡겨 두고 온 친척 집이 개천 옆에 있었다.
퍼붓는 장맛비로 금세 불어난 개천이 범 난하고 주변 낮은 집들이 당장에라도 물에 잠겨 버릴 것 같았다.
그 사람과 둘이서 정신없이 책과 이삿짐을 이웃 중화 반점, 이 층 집으로 옮겼었다.
동네 분들도 이삿짐을 그곳으로 나른다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전 권으로 이삿짐을 옮겨 놓고 보니, 버스가 끊겨 버릴 것에 걱정하는 나에게, 그 사람은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 사람과 나는 불어난 빗물에 또다시 옷이 젖었고 지난 해변 바닷물 빠져서 옷이 잠겨 듯이 우리는 어이없는 웃음으로 웃었다.
또한, 해변의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밤새 기다렸던 것처럼 똑같은 장면의 연출을 보듯이 홍수로 끊어버린 버스 불빛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었다.
겨우 승객이 타지 않는 버스가 모처럼 한 대 왔었다.
늦은 밤에 아무도 타지 않는 버스에 나 혼자 타는 것이, 그 사람도 불안해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해변에서 내 고집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더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알고 보내 주었고,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비 오는 도로에서 걱정스러운 듯이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시절에는 버스 안내원 있었다. )
비 오는 늦은 밤, 승객이 나뿐인 버스 속에서 버스기사와 건장한 조수 같은 남자 안내원 그들이 주고받는 이상한 눈빛이 갑자기 무섭고 두려웠었다.
버스에서 다시 내리겠다고 그들에게 재촉했고, 비가 퍼붓는 어두운 밤거리를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해서 힘껏 뛰었다.
피난처 같은 중화 반점 이 층 집에는 수재민 동네 분들이 각자 수재민 보따리 옆에서 약간 지친 듯이 힘없이 기대여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다시 돌아온 나에게 고집을 잘 알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보내주었지만, 몹시 걱정했다면 안도의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었다.
동네 수재민 속에서 우리도 나란히 몸을 웅크리고 벽을 기대고 앉았다.
< 신혼부부예요? 같이 짐을 옮기는 것 같았는데? >
어느 아주머니가 젊은 우리가 신혼부부라고 착각하고 묻어 보았다.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운명적인 인연인지 이어지는 지난 해변 바닷물 파도 소리와 오늘의 장맛 빗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또다시 밤을 새워야 하는 숙명적인 우연을 맞이하게 되었다.
저번과 달리 두 번째 밤샘은 이제 자존심의 벽도 허물 졌고, 편안함을 느껴서 그런지 그는 처음으로 나에게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았다.
시험 당일 날 들어올 수 없는 시험장에 지각생 내가 들어왔을 때, 그 사람도 나처럼 어디서 본 듯한 얼굴에 놀랐고 궁금해 계속 쳐다보게 되었고, 내 눈가에 검정 얼룩으로 퍽 퍼져 있는 모습이 무척 신경이 쓰였고 또한, 그 모습으로 시험 치르는 것이 너무 기가 막혀 속으로 웃었던 일, 합격증 유효 마지막 날에 나타난 것이 속으로 많이 반가웠고, 사무실에서 여러 가지 엉뚱한 내 행동 모습이 속으로 귀여웠다는 점과, 이미 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남으로부터 받은 고백 편지 심부름을 하려 왔을 때에는 황당하고 어이가 찬 기분을 맞이했으며, 신입사원 환영 단합대회 날, 단짝과 나를 분리시켜야 왠지 잘 될 것 같았고, 둘이서 바닷물에 빠졌을 때, 좋아하는 여자에게 자존심 짓밟은 말투에 정말 참을 수가 없어 순간적으로 그런 행동이 나왔으며, 아무도 없는 해변 뒤편에서 끝까지 나를 지키고 따라오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날 밤새도록 나 자신을 지키는 모습은 매우 좋아 보였고 그것이 나를 달리 보게 되었다고 했으며,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내 고집을 꺾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었다.
그의 솔직함에 나 역시 자존심을 버리고 털어놓았다.
허위 이력서의 적힌 본래 내 나이와 학벌,. 그리고 친구의 대학 뺏지에 요즘 자존심이 상했으며 그 일로 오늘 신문사 사표를 냈었고 무척 마음이 약해져 있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신문사를 그만둔 것은 잘한 것이지만, 학교는 어린 마음에 고생이 많았다며 가엾은 듯이 안쓰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동안 남모르는 자존심으로 가슴앓이 한 심경을 속 시원하게 그에게 말을 할 수 있었고, 그리고 위로를 받고 보니, 어느덧 든든한 신뢰성 느껴졌었고 편안한 연인으로 새롭게 탈바꿈한 것처럼 밤새 퍼부은 빗줄기도 차츰 가늘어지면서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나의 두 번째의 사랑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옮겨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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