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나의 자서전-셋 번째 운명적인 사랑 부분에서
밝아오는 아침은 어젯밤에 무섭게 퍼붓는 야수 같은 비가 언제 온 듯이, 햇볕 빛줄기가 회색 하늘에서 밀어 나와 중화 반점, 이 층 창살로 비쳐 들어왔었다.
동네 수재민분들이 햇볕을 반가워하며 젖은 이불과 담요를 담벼락에 널고 있었다.
< 색시도 젖은 이불 그냥 두면 안 되니 햇볕 날 때, 빨리 말려요. >
어제 그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햇볕이 있는 담벼락에서 동네 분들과 이불 널기 공간을 서로 차지하고자 쟁탈 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 여기는 우리 공간이니, 침입하지 마세요. >
우리라는 단어도 스스럼없이 친숙하게 나왔으며 그 대열에서 비집고 들어가 한 공간을 차지했었다.
햇볕 속에서 이불을 말리는 동안 그의 살림 중에 양은 냄비를 찾아냈고, 연탄불을 피우려고 마른 신문지와 부채 같은 것으로 잘 붙지 않는 매운 연기와 눈물마저 감수하고 힘들게 연탄불을 피어 아침 라면도 끊어먹었다.
그가 내 얼굴에 묻은 연탄 검정을 닦아 주면서 빙그레 웃었다.
<너는 처음 볼 때도 얼굴에 검정 화장품을 묻혀서 웃겨 드니, 그리고 바닷물에 빠져 헝클어진 모습, 오늘도 연탄 검정으로 묻혀놓고, 언제 한 번 제대로 단정한 네 얼굴 볼 수 있을까? ㅎㅎ>
< 내가 좀, 그런 편이죠!>
사무실에서 보아 온 그의 모습은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그는 너무 쉽게 대답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라면을 먹는 내 모습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바라보고 웃었다.
바람과 햇볕에 대충 말려놓은 이불을 거두었고, 그의 친척집 손수레를 빌려와서 이삿짐 보따리와 책을 싣고 그가 앞에서 손수레 운전하고, 내가 뒤에서 밀어주면서, 신장로 나왔었다.
화물센터에서 대구로 짐을 부쳐놓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비워진 손수레에 나를 태웠고, 버스 정류장까지 신나게 달려주었다.부산역 커피집에서 오후에 만나는 약속하고 버스에 올라탔었다.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가족들에게 어젯밤 홍수로 버스가 끊여버렸고, 겨우 탈 수는 있었지만, 남자기사와 남자 안내원이 너무 무서워 내린 사연과 할 수 없이 친구 집에 있었다고 그를 친구로 둘러서 말했었다.
그와 약속된 시간이 되었고, 거울 앞에서 언제 한번 제대로 단정한 얼굴을 볼 수 있겠느냐? 말이 떠올랐다.
여러 옷을 끄집어 보면서, 어떤 옷이 단정하고 예쁘게 보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꾸며 보았다.
부산역 커피집에서 만난 그는 단정하게 꾸며진 내 모습이 좋다면서 한 번 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었다.
대구에서 너를 잊으려고 한 번쯤 생각했지만, 공부하는 법전 책 속에서 너의 얼룩진 얼굴과 소금에 쳐 놓은 미꾸라지 모양 까칠한 성격이 자주 떠오르면서 한 번씩 웃는다며 어제는 그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고 그리고 진정한 확신을 얻었다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었다.
환한 웃는 모습에서 나 역시 그를 숙명처럼 받아지고 있었다.
그는 기차가 떠나는 직전까지도 함께 있고 싶다면서 내 입장권도 함께 끊었다.
움직이는 기차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내 손을 곽 잡아다가 놓았고 그의 눈가에서 슬픈 이별의 눈물이 비추어졌었다.
기차가 떠나간 자리에서 내 마음은 잠시 혼란스러웠고 주위를 돌아보았다그의 아쉬운 눈물 속에서 서울에서 커피집 조명 불빛에 반짝인, 첫사랑 그의 슬픈 눈물이 갑자기 겹쳐 떠올랐고 내 손에 움켜진 입장권과 내가 서 있는 주변도 첫사랑 그가 서울역에서 부산역 여기까지 배웅해주고 한 손에 입장권 움켜쥐고 손을 쓸쓸히 흔들면서 서 있었던 그 자리 같았다.
(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날, 잊어버려. )
첫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우리가 늘 모이는 번화가 큰 음악 다방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부산에 있는 친구들이 오래간만에 함께 모였고, 시끌벅적 떠들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친구가 음악 신청서에다 음악을 적으면서 말했다.
< 네가 좋아하는 팝송만 다 모아서 나오는 것 같아! >
<그런 것 같네! >
가볍게 대답하고, 친구와 화장실을 가려고 다른 테이블 사이로 걸어 나오는 내 다리를 누가 막아 세웠다.
< 그동안 잘 있었어? >
놀랍게도 첫사랑 그가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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