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열다섯 번째 옥탑방에서 생긴 이야기
임시 짐 보따리를 옆에 끼고 후덥지근한 낡은 옥탑방에서 남편의 이전의 뇌출혈에다 그리고 이번 암 수술 후에 난 남편을 간병하느라 아무런 수입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빚만 늘어가며 매달 건건히 겨우 버티면서 살아오고 있었던 어느 날, 지인 동생이 그녀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궁금한 것이 많아서 어느 점쟁이 집에 간다는 전화를 받고서 나 역시 현재 처해 있는 우리 집 현실이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어두운 터널 속 같은 현실에서 나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생겨서 지인 동생을 따라나섰다.
그녀의 사업 궁금증 상담이 끝나고 다음 내 차례가 되었는데 점쟁이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자마자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 상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듯이 술술 내뱉듯이 말을 해 속으로 놀라웠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우리가 현재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다면 문제가 발생한 윗대 조상님 무덤에 찾아가서 술이라도 한잔을 올리고 위령을 달래줘야 한다며 남편의 병도 그곳에서부터 영향을 받는지 모른다면 꼭 그래야 좀 더 나아질 것이라 했었다.
난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벙벙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할머니 설명을 자세히 듣게 되었으나 사실 시부모님의 무덤 위치는 해마다 명절마다 찾아가는 곳이라 잘 알 수 있으나 윗대 조상님 무덤은 어디인지 위치조차도 모르고 사실 살았다.
점쟁이 할머니 재차 설명에서 갑자기 섬뜩하게 생각나는 옛날 일이 있었다.
내가 결혼하고 갓 새댁일 때, 어느 날 시댁에 먼 친척 어른들이 모여서 집안 무덤에 관해서 어떤 문제로 심각한 의논을 하시는 걸 난 부엌에서 과일을 깎다가 듣게 되었는데 아주 섬뜩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시아버지 형제분들이 네 분이 계셨는데 모두가 똑같이 40대를 못 넘기고 일찍 횡사하였는데 후손인 남자들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으니 신속히 무덤을 이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시아버지 형제 네 분 중에서 세분은 다들 40대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는데 막내이신 우리 시아버지만 지금까지 생존한 이유는 아주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떠난 덕분에 피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조상님 무덤에 물이 차서 생긴 이유라며 무덤의 묘를 파 다시 다른 곳으로 이장 해야만 한다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시아버지의 형제들 남자 후손으로 남편과 우리 시아주버님과 사촌 형제 두 분만 그 당시 생존하였으며 어른은 우리 시아버지가 유일하셨다.
시 숙모님들이 우리 시댁에 모여서 남편 형제와 사촌 형제들이 40대 되기 전에 손 보지 않으면 후손까지 혹시나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심각한 의논을 한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갓 어린 신부인지라 안방에서 들려오는 말에 충격만 받았고, 그 이후 어떻게 잘 처리하셨는지 시댁 집안에 더 이상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로 시아버지께서 제사에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일찍 돌아가신 자손이 없는 시댁 큰아버지 제사는 나에게 부탁하셨다.
난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시 큰아버지 제사를 맡은 후부터 명절 차례, 기제사, 심지어 캐나다까지 이민 왔어도 단 한 번도 잊지 않고 제사를 오랫동안 제사를 모셨다.
캐나다에서 딸과 외국 사위와 함께 한집에 살면서 딸 집에서 시 큰아버지 제사를 모시는 것이 갈수록 어려운 점이 많아 그 후 한국 은적사 백중날 행사에 참석해 마지막 제사 인사를 고하고 절에다 위패도 모셨고, 한국에 올 적마다 절에 찾아가 내 나름대로 정성을 다했었다.
다시 그때 이야기로 돌아가서 점쟁이 할머니께서 또다시 조상 무덤에 새로운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듣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윗대 조상님 무덤에 찾아가 그곳에다 술잔이라도 올리고 나면 남편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인데 윗대 조상님 무덤 위치를 모른다니 무척 아쉽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난 현재 남편의 건강 문제라면 무엇이라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지만, 사실 시부모님 무덤 외는 윗대 조상님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전연 모르는 상태라며 그리고 내가 옛날에 들었던 시댁 집안에서 생겼던 사연과 시부모님도 돌아가시어 물어볼 곳이 없다고 난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점쟁이 할머니는 현재 우리가 처한 경제 상태와 남편의 뇌출혈과 암으로 내가 무척 고생하고 있는 현실이 무척 딱하게 생각이 드셨는지 아무쪼록 도와주고 싶은지 눈을 지그시 감고는 한참 집중하더니 또렷하게 보이는 것처럼 말하였다.
" 너희 윗대 조상님 무덤은 대구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는 곳이고, 그곳은 매우 넓은 초원이 펼쳐진 곳으로 보이고, 옆에는 작은 연못도 보이고, 주변에 소나무 숲이 웃겨져 있어" 그리고 눈을 뜨셨다.
어쨌거나 그곳을 잘 찾아서 조상님에게 술 한 잔만 올려도 네 남편 지병과 경제가 조금이나마 숨통이 틀질 것이니 꼭 그렇게 이행하라는 말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점쟁이 할머니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것을 따지기 전에 아픈 남편과 낡고 후덥지근한 좁은 옥탑방과 텅 빈 지갑 현실의 절망적인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만 있다면 물에 빠지면 쥐 풀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더할 나위 없이 조상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자 시가의 사촌 형제분에게도 연락을 취해봐도 아는 분이 없었다.
그럴 것이 옛날 그런 문제가 발생한 적에는 다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 돌아가셨고, 유일하게 생존하신 우리 시부모님과 시 숙모님들마저도 모두 다 돌아가신 지금이니 알 곳이 전연 없어 맥이 빠졌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할 곳이란 돌아가신 시부모님 산소뿐이라 그곳이라도 찾아가 대답 없는 메아리의 시부모님 무덤 앞에서 한없이 엎드려 윗대 조상님 무덤이 어디인지 간절히 빌어보았다.
< 아버지, 어머니 현재 제가 처한 환경이 너무나 힘들어요. 그냥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뭐라도 하고 싶은데 윗대 조상님 산소를 제가 도대체 알 길이 없어 답답해요….>
시부모님 산소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나서 거짓말처럼 먼 친척이 되시는 분이 연락이 닿아서 윗대 조상님 산소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기쁜 소식에 쏜살같이 한걸음 달려가 나이 드신 아주머니와 울산에서 만났는데 예전 시댁 집안 행사에 우리 집에 오셨던 어설프게 기억났었다.
그분과 함께 산소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었는데 그곳은 정말 대구와 가까운 경주였고 현재 대단위 골프장이었다.
골프장 관리 사무실에 들어가 우리가 여기에 온 사연을 말하고 잠시 조상님에게 인사만 하고 오겠다고 하니, 그들은 들어갈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었으며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간다고 해도 골프장 영업 중에는 날아오는 골프 공으로 매우 위험해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거절해 그럼 골프장 영업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난 읍소하였다.
우리는 골프장 영업이 끝나는 어두워질 때까지 한없이 밖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는 규정상 들어갈 수 없지만, 빨리 끝내라며 골프 카트 차를 제공해 그곳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난 그곳에 도착해 내리면서 주변 풍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점쟁이 할머니께서 지그시 눈을 감고 하셨던 말대로 대단위 골프장이니 매우 넓은 초원이라 한 것 같았고, 작은 연못과 주변에 소나무 숲이 우겨져 있어 정말 할머니가 눈을 감고 말한 그런 풍경 그대로 정확하게 펼쳐있었다.
하지만 현재 골프장으로 변한 이곳은 넓은 잔디밭으로 변해 윗대 조상님 무덤은 이미 사라진 상태이었다.
부근에다 소주 한 병을 뿌리고 인사를 드리고 있으니 골프장 관리 직원이 어두워져 빨리 나가야 한다고 재촉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먼 친척분이 지금까지 일어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몇 년 전, 이곳이 대단위 골프장으로 변경될 초기에 법적 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주 철저하게 후손을 찾아서 보상을 이미 지급하였고 또한 여기 산소들은 주변 옆 산으로 이장할 적에 골프장에서 마련해 준 혼령 위령제 큰 굿판을 열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당시 먼 친척분의 직속 조상님 무덤은 주변 옆 산으로 이장하였으나, 우리네 윗대 종갓집 할머니는 많은 보상금을 받아 쥐고는 조상님 무덤 이장도 하지 않은 체 그대로 무덤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렸다고 하였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옛날 시아버지 형제들은 40대를 못 넘기고 일찍 돌아가셨고 그 후 어른이 한 분도 안 계시어 무덤의 존재에 아는 이가 없었으니 그런 점을 이용해 보상금만 받아쥐고 무덤도 이장할 이유 없이 바로 처리해 오직 본인의 두 아들에게만 보상금을 나누어줬는데 그 벌을 받은 것인지 그 후로 큰아들은 등산 가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었고, 둘째 아들은 교통사고로 즉사했으면 종갓집 할머니는 치매가 와서 집안이 풍비박산 쑥대밭으로 된 것도 조상님에게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옛날부터 전해 들어온 인간에게는 업보가 있다는 것이 생각나 종교에서 말하는 죄와 벌이 그래서 생긴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점쟁이 할머니에게 다시 찾아가 우리의 조상님 무덤을 찾아 술잔을 올렸고, 또한 먼 친척분의 이야기도 전하였다.
할머니는 " 못된 종갓집 할머니가 혼자 욕심으로 자신 아들에게만 보상금과 무덤 이장도 안 해줬으니 조상님께서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으면 그랬을까 하셨다.
그곳에 다녀온 후에 당장 그다지 특별히 달라진 것은 크게 없었지만, 사람은 마음먹기 따라서 달라지는 것인지 남편 병세도 조금씩 나아져 가는 것 보였고, 경제도 조금씩 나아지는 징후가 보이기 것 같았다.
그 징후에는 (자서전 92화 참조)
첫 번째는 예전 그 당시 어쩔 수 없이 사게 된 먼 지역 낡은 빌라는 등기상 문제투성이라 누구도 선뜩 사지 않았던 작은 그 빌라가 주변 지하철 역세권이 되면서 전세자가 그 빌라를 매수하면서 조금 이득이 발생해 당장 생활비에 숨통이 터졌다.
그리고 두 번째 그때 같은 해에 산 작은 아파트마저도 재개발로 지정되면서 전세자에게 매매하면서 전세 보증금과 은행 대출금을 갚고나니 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수입 없이 몇 년간 아파트 대출금 매달 은행이자 붓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에 날아갈 뜻이 마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두 곳을 매매해도 전세 보증금과 은행 대출금 갚고나니 남는 돈이 그다지 없었으니, 옥탑방에서 벗어나 이전에 살았던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었으나 그곳은 전세 기간도 한참 기다려야 했고, 돌려줄 전세 보증금은 턱없이 부족해 사실 들어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여전히 희망없이 지내는 어느 날, 낡은 오래된 아파트를 지나다가 꼭 살 것도 아니면서 그런데도 답답한 심정에서 그냥 호기심으로 현재 이 아파트 시세가 얼마쯤 되는지 물어볼 겸 관리실에 들어갔었다.
관리실 아저씨는 내 질문에 가격은커녕 여기는 몇 년째 아무도 매매하지 않아서 가격도 잘 모르고 팔 사람도 없다면 바로 손사래까지 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었다.
< 여기 아파트는 아주 옛날 처음 입주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대로 살아요. 교통이랑 주변 생활 여건들이 편리해서 그때 처음 입주하신 분들이 이제 나이가 많고 그래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통 매매가 없어요>
더 할 말도 딱히 서로 없으니 막 관리실 문을 나서는데 어느 할머니가 다리 깁스에 목발을 짚고서 힘들게 관리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큰 목소리로 말하였다.
< 내 다리뼈가 부러져 여태 정형외과에 입원하다가 오늘 나왔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우리 아파트에서 늙은이 나이에 언제쯤 나을 것인지 모르는데 이 상태로 꼭대기 5층 우리 집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갈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우리 아들이 여기를 팔라고 하네요 >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관리실 아저씨랑 내가 눈이 서로 마주쳤고, 난 다시 관리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안 그래도 이 아주머니가 아파트 나온 것이 없느냐고 묻기에 없다고 말하는 중인데요….>
할머니는 내가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관리실 아저씨 말씀대로 적은 돈 가지고 여기처럼 교통과 생활 여건이 매우 좋은 곳을 찾기 힘들다며 본인도 첫 입주 때부터 여태까지 오랫동안 살았다고 하셨다.
난 여기에 들린 것은 처음부터 이 아파트를 사고자 의도해서 관리실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는데 우연히 집주인 할머니와 연결되어 그날 바로 조금 남은 여윳돈을 찾아서 매매하면서 그 후 중도금, 잔금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깊이 생각하면 못 살 것 같아 무턱대고 내 결단력으로 작고 낡은 18평 아파트를 거리낌 없이 얼른 매입하였다.
당장 잔금을 마련은 역부족이라 주변 큰 병원에 근무하는 수간호사에게 전세를 놓아 잔금을 해결하였다.
( 그 아파트는 훗날, 재개발이 지정되어 새로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에 주변 여건이 매우 좋아서 먼 훗날 매매하였는데 처음부터 작은 평수를 매입하였으니 크게 남은 것은 아닌지라도 이 아파트 매매 후 그간 빚 청산도 한 푼 남김없이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었고, 약간의 여윳돈마저 생겨 나에게는 큰 경제적 도움을 이바지해 주었다.)
이야기를 다시 그 당시로 돌아와 결국 또 어디라도 이사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어 제자리인 옥탑방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캐나다 딸의 아기가 태어날 날짜가 임박하였으니, 부모님이 오시면 좋겠다는 듯 그런다.
그때 생각은 잠시 캐나다에 다녀올 것으로 생각한 것이라 옥탑방에 이삿짐을 그대로 두고 떠나게 되었는데, 그랬는데….
그것이 우리가 캐나다에 영구 정착하게 된 계기가 되어버렸다.
캐나다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난 영어 한마디도 제대로 못 했으니, 많은 에피소드로 또다시 펼쳐졌다.
'내 삶의 이야기 > 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99화) 열여섯 번째 캐나다에서 살면서 생긴 이야기 (2) | 2026.01.27 |
|---|---|
| (98화) 열다섯 번째 옥탑방에서 생긴 이야기 (0) | 2025.11.13 |
| (96화) 열다섯 번째 옥탑방에서 생긴 이야기 (3) | 2025.02.22 |
| (95화) 열네 번째 작은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2) | 2024.07.21 |
| (94화) 열네 번째 작은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2) | 202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