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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94화) 열네 번째 작은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22. 12. 8. 08:58

 

(94화) 열네 번째 작은 아파트에서 생긴 이야기

 

 

공인 중개사 시험 몇 달을 앞두고 공인 중개사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열중해 보았으나, 모르는 생소한 전문적인 용어들이 많아서 어렵고 무척 난해했다.

더구나 그해 실행하는 공인 중개사 시험을 갑자기 응시하겠다는 그 자체부터가 나에게 무리수였으니 역시나 첫 시험에서 낙방하였다. 

하지만, 시험에는 비록 낙방했지만, 그간 공부한 덕분에 이전에 진정 몰랐던 부동산 법률, 중개사 용어는 큰 도움이 되었다.

 

남편이 그런다.

중개사 공부란 직접 현장에서 실무 보조 역활을 하면서 더불어 부동산 이론 공부하는 것이 훨씬 이해도가 빨라서 다음 시험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그런다. 

 

그 말에 동의하고 부동산 사무실을 정식적으로 오픈하기로 하였다.

우선 경험 있는 직원들을 채용해 직접 실무를 보조하면서 부동산에 관해서 이론과 실무를 배우기로 했다. 

다행히도 이곳 부동산 사무실 위치가 좋은 탓으로 구인 광고를 본 젊은 직원 A, B, C 3명을 쉽게 채용하였다.

 A는 나이가 30대 후반 남자로 대구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 유명 보험회사에서 관리직으로 일했으나 관리하는 스트레스로 힘들어 사표 내고 공인 중개사 시험을 통과한 자격증 가진 사람이지만, 아직 사무실 차릴 경제적 기반이 부족해 다른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 한 유경험자이다. 

B도 나이가 30대 후반 남자로 중소기업에서 한동안 일했으나 어떤 문제로 사표 내고 공인 중개사 자격증은 없으나 다른 사무실에서 일해 본 유경험자이다. 

C는 20대 후반 남자로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신랑이며 부동산에는 무경험자이다. 

난 그들에게 책상과 의자를 마련하고 한 쪽 벽면에는 커다란 최신 천연색 지도와 필요한 모든 비품을 더 구입해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정식 오픈하였다.

그들은 처음에는 점심을 각자 바깥에서 사 먹고 들어왔는데 아직 가난한 주머니 사정들 같아 난 그들에게 점심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매일 직원 점심까지 만들어 챙겨서 함께 점심 식사하였다.

그런 일은 힘든 일이지만, 함께 식사하니 빠르게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그들의 현재 가정사 문제도 나눌 만큼 친해지고 가까워졌다.  

막내 C는 이 지역에서 나름의 금수저 유지 아들이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부터 고생 없이 사고나 치면서 철없이 자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은 혼전 임신으로 양부모님의 강제적 권유로 결혼식장에 일단 나갔으나 신랑 입장 호출 사회자 말에 만삭된 아내의 웨딩복을 보니 앞으로 가장이 되어 남편, 아기 아빠가 될 것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압박감에 눌려 겁이 나 결혼식장에서 곧바로 도망쳐 버렸단다. 

그 말을 듣는 우리도 쇼킹한 사건인데, 하물며 그날 신부와 양가 가족들과 예식장 손님들은 얼마나 기절초풍할 그의 스토리인가?

그 일로 그의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나 그의 모든 카드 정지시켰고, 끝내 잡혀 와 그의 아버지가 마련한 신혼집에 억지로 살게 되었단다.

아들이 태어난 후에야 비로소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함이 생겼고 또한 그의 아버지가 앞으로 3년간 스스로 일을 잘한다며 많은 재산도 넘겨줄 것라고 약속해 처음으로 우리 사무실에 일하러 온 것라 한다. 

C의 금수저 환경과 다르게 A와 B는 어릴 적부터 흙수저 환경에서 어렵게 살아온 처지에 지금도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감에 항상 마음이 무겁다고 하였다.

그렇게 모인 우리는 직원들에게 활력을 주고자 지역 신문의 박스 광고와 교차로, 알림터 등등 부동산 광고지마다 무리한 비용으로 과감하게 투자하였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빚이 조금씩 늘어만 갔으나 그것은 곧, 미래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을 믿고 시작한 것이다. 

 

나 역시도 우리 직원들만 믿고 사무실에 앉아 있기보다는 나 자신부터 더 많은 것을 알고자 못다 한 공인 중개사 학원도 다시 등록하였고, 대학교 부동산과 야간 특강 강의도 등록하고, 유명인 부동산 특강도 빠짐없이 참석해 부동산 공부에 아주 열심히 열공하니 그런 노력은 훨씬 빠른 부동산 공부 감각을 얻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각대로 광고 효과도 차츰 생겨나 문의와 직접 찾아오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중에 어느 분은 광고란에 실린 매물 관심을 가진 분이 먼 곳에서 찾아오셨는데, 그분이 원하는 것은 많은 중개비를 챙길 수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개발될 다른 것을 추천하며 중개 수수료는 3 /1 정도지만, 그래도 그것을 추천해서 계약한 것이 그분에게 아주 좋은 성과로 이루어졌다. 

그분은 알고 보니 부동산에 큰 투자자분이었고, 타 부동산 사무실은 전반적으로 비싼 매물을 권유하는 것에 비해서 그분이 날 얼핏 보기에도 아직 어설프고 서툰 초보자에 수수료 욕심보다는 곧이곧대로 말을 해 진정성이 있어 그런 면이 마음 든다며 평가하시고 나를 더 돕고 싶다고 하셨다.

그 후로 우리 단골이 되어 또 다른 투자자 친구분들도 많이 소개해 주셨다.

 

사무실 오픈할 적에는 사실 걱정도 많았으나, 이런저런 덕분으로 매물과 고객이 계속 늘어나 활기가 생겼고, 수입도 늘어났으니 사돈에게 임대료 월세와 관리비를 정상적으로 주고자 했으나, 그분들은 좀 더 사무실이 번창한 후에 받겠다고 만류해 더 부담스럽다고 하니 정 그렇다며 50%만 받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부동산 사무실 실적은 좋아졌으나 난 이런 일에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섬세함과 꼼꼼하지 못해 빈번하게 여러모로 실수가 일쑤였다. 

 

예전 헬스클럽 경영할 적에도 오랫동안 결석하는 회원들에게 결석 안부 전화는 필수적이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못 챙겨 회원들에게 원망도 많이 듣곤 했는데, 그나마 그때는 우리 선생들이 나를 대신해서 결석하는 회원들에게 안부 전화, 회원들 월회비 관리, 부족한 물품 충당 관리, 그 외도 내부적인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아 대신해 주었기 때문에 경영을 버틸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경우는 그때와 완전히 다른 것이라 함부로 매물, 고객 정보 등을 남에게 맡길 수가 없는 처지이었다.

또한, 고객들과 전화 소통도 신속하고 빠르게 전달 연락하지 않아, 오죽하면 우리 고객님이 나더러 " 여러 중개사을 만난 중에 나처럼 전화 안 받고, 연락 안 해 주는 사람은 처음이라서 내가 되려 답답해서 여러 번 전화하게 만들다니..." 그런 말을 종종 들을 정도이었다.

난 천성적으로 섬세하고 차분하지 못하며 급한 외향성 성격에 덜렁대는 성향마저 있으니 이런 일은 매우 철저한 계획성과 꼼꼼하고 신중해야 하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내 학창 시절에 노트 정리만 보아도 내가 도대체 뭘 적은 것인지 퍼즐 맞추기를 할 정도로 엉망진창이니 무슨 공부를 잘 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잘하는 것은 통솔력이 있어 행동 리드는 잘해 항상 내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외면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매우 정확하고 빈틈없게 보였지만, 사무실에서 그의 노트 정리한 것을 슬쩍 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깔끔하고 정교하게 잘 정리된 것에 아마도 더 호감을 느낀 것 같다.
그러나 현재의 남편은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하는 내출혈 환자에게 신경 쓸 일을 맡길 수 없으니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고, 그렇다고 내가 하루아침 단번에 섬세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외진 야산으로 우리 집 강아지 '복동이'와 산책하는 길에서 어떤 견주가 자동차 창문을 열고는 강아지를 냅다 던지고 재빨리 쏜살같이 도망가 땅바닥에 나자빠진 강아지를 목격하게 되었다.
" 어떻게 저런 짓을... " 너무나 황당한 상황 목격을 보고 버려진 강아지를 그 자리에 두고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혹시나 견주가 마음이 바뀌어 오지 않을까 싶어 밤이 되도록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매우 더러운 강아지를 아무도 돌봐 줄 것 같지 않았고 추운 곳에서 떠는 배고픈 강아지를 할 수 없이 부동산 사무실에 데리고 오게 되었다.

남편은 아직 '복동이'도 허락하지 않는데 더러운 남의 강아지를 안고 들어오니 내 생각대로 그는 화를 내며 왜 남의 더러운 강아지를 데리고 왔느냐고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면박하며 난리를 쳤다.

다음 날 동물 병원에 가서 종합 검사를 해 본 결과 사상충, 심한 피부병, 귀속에 해충 질환 등등 그래서 아마도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 들었다.
그대로 두면 위험한 상황이라니 며칠 동안 비싼 치료비, 미용, 예쁜 옷, 맛있는 사료와 간식으로 정성을 쏟았고 많은 애를 쓸수록 남편에게 못마땅한 심한 눈치를 감수해야만 했었다.
시간이 지나 강아지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와, 어느 날 강변 주변에서 복동이와 그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중에 강아지가 멀리 있는 자기 주인을 알아보고 갑자기 그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난 견주라는 걸 단번에 직감하고 그날 일을 우연이 목격했다며 어떻게 병든 강아지를 함부로 버리고 가느냐며 정말 화가 나 말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삽시간에 모여 시선이 일제히 개 주인을 바라보니 부끄럽게 생각 들었는지 오히려 무시무시한 험악한 눈빛으로 나에게 되레 큰소리를 쳤다.
< 무슨 소리를 해욧. 내가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슬퍼하며 지금까지 찾고 다녔는데 왜 남의 개를 함부로 데리고 갔어욧>
황당한 말이라 병들고 아픈 강아지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정성으로 지금까지 돌봐왔는데 보람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남의 개를 훔친 나쁜 사람으로 억울하게 오인당하니 난 정말 기막혀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해 할 말조차 잃어버렸다.
결국 주인에게 강아지를 돌려주고, 허탈한 걸음으로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2차로 남편에게 심한 잔소리를 듣게 되었고, 남편은 내가 한 일에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며 이 모든 것이 쓸데없는 내 오지랖이 넓어서 생긴 결과이니 앞으로 네 일이 아닌 것에는 절대로 참견말라는 무시한 경고를 따끔하게 받았다.

(요즘 TV 방송에서 유기견을 볼 적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랬는데...

또 다른 일로 내 오지랖이 발동되었다.
결론적으로 난 부동산 업무를 하면 결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번 사건은, 초라한 차림으로 불쌍하게 보이는 할머니가 월세방을 구하러 들어오셨는데 할머니 형편으로 월세 보증금이 없는 싼 월세방이 없는지 물어보셨다.
어디를 가나 상대해줄 부동산 사무실이 절대 없을 것 같은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며칠을 귓전에 맴돌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다시 오셨다.
할머니를 다시 보니 괜한 내 오지랖이 또다시 발동되어 남편 동의 없이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 혼자 또 궁리를 시작하였다. 

 

여러 방법을 연구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것이, 옛날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매장을 선호한 시절에 남편 사업도 한창 번창할 때라 그 당시 남편이 가족 묘지로 사 둔 야산 3,000평이 있었다.
그 후 세월이 지나니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납골당, 수목장으로 의식이 바뀐 시절이 되어 매장할 의미가 없는 땅이 되었고, 그곳은 길이 없는 맹지에 남의 무덤이 여러 개 있는 최악의 쓸모없는 땅이었다.
어쨌거나, 그 땅은 남편 사업이 매우 어려운 시절, 오랫동안 민사 소송까지 휘말려 있을 때라서 변호사 비용으로 그 땅을 대신 주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에 변호사를 찾아가 제가 변호사비를 모두 지불할 테니 다시 그 땅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변호사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딱 잘라 대화를 거부해 사무장이 나를 밀어낸 일이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타협을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는데, 다행히 운이 좋았던 것이 그때 변호사가 우리 지역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면서 같은 지역에서 회원 수가 엄청 많은 헬스클럽 경영하는 관장이며 같은 지역에서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사람이라서 무조건 밀려낼 수 없었는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을, 그간 소송 변호사비를 모두 지불하고, 정말 어렵게 다시 찾게 되어 남편이 두 번 다시 멋대로 처분할 수 없도록 내 명의로 만들었다.
그 덕분에 남편이 증권에 푹 파져 모든 것을 탕진했을 때도 유일하게 남게 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그 당시 그곳 주변은 대구 신도시로 변해 갑자기 발전하니 부동산 투기 제한의 그린벨트로 오랫동안 묵힌 그 야산이 생각났었다.
난 그 땅 담보로 은행에서 빌려 전세방 명의자는 내 이름으로 해두고 할머니는 비싼 월세방 보다는 훨씬 싼 은행 이자만 지불하고 전세방에서 살게 하였다.

 

( 하지만, 그 후 할머니께서 전세 만료 후에 아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때 받은 전세금은 당장 필요한 우리 집 가게 빚과 생활비에 이리저리 분해 소모되어 결국 고스란히 내 몫의 빚이 되었고 그 여파 빚은 계속되었다)

 

우리 부동산 사무실 주변은 아파트 단지가 아닌지라 주된 고객은 단독 주택, 상가, 땅 그런 것인데, 사무실을 오픈 한 후부터 오랫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주변에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아주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졌다.

 

첫 번째 변화는 인근에 우리나라 굴지의 유명한 건설사에서 백화점 빌딩 상가를 건설하느라 분양 문의 상담으로 덩달아 분주하였다.
부산에서 올라 온 큰 투자자분께서 이곳 백화점 상가 분양을 3개를 받고자 우리에게 상담 의뢰하셨다.
난 직원 B, C보다는 유경험자인 A를 신뢰하고 모든 것을 다 맡겼는데, A는 상가 분양 몇 건을 우리 사무실을 배재하고 혼자 중개비를 챙기고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것뿐만 아니라 A는 우리가 잠시 없는 틈을 이용해 우리 사무실 매물과 고객 정보를 빼돌려 본인의 부동산 사무실 오픈하고는 우리 고객들에게 A의 달콤한 말에 잘못 계약해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는 고객이 우리 사무실에서 알게 된 직원이니 우리에게 항의하고 책임을 따지는 분도 있었다. 

난 A의 점심값을 아껴주느라 매일 점심도 만들어 함께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도 아랑곳없이 역시 돈의 탐욕 앞에서 신뢰 따위는 깨어져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또한, 다른 중개사는 고객인 것처럼 속여 우리 사무실 있는 매물만 여러 군데 둘러보고는 정보만 빼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점은 여태 내가 경험 못한 것이라 실망과 좌절함을 더욱더 느낀 게 된 이유가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이른 나이에 결혼해 사회 물정도 어둡고, 남편의 완강한 태도로 나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통제만 해서 저녁 해가 진 후에 남편 허락 없이 나간 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밤 바깥에 매우 불안, 초조하게 여기고 살아왔으며, 나의 직업도 여태까지 여성 전용 헬스클럽 경영과 대학교 제자들, 운동만 열심히 하는 우리 회원들만 상대했으니, 남을 불신하고 보안에 대해 엄격해야 하는 치열한 사회 현실에서 직접 부딪쳐 보니, 처음 부동산 사무실을 오픈할 적에는 의욕 충만으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예측과 달리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과 너무나 대조적인 직업에 자신감은 좌절로 변해 갈수록 힘이 빠졌다. 

 

두 번째 매우 큰 이슈 건설은 우리 사무실 인접에 대규모 공장지대가 있었는데 오래 전부터 계속해 경기가 매우 나빠져 공장 문을 닫은 곳이 많아 방치된 그곳을 도시 계획과에서 대규모 단지 아파트로 이곳에 건설하기로 설계 변경되었다.
그 소문으로 우리나라 대형 건설사, 시행사, 건설 관련된 여러 분야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우리 사무실이 또다시 분주해졌다.
주변 오래된 부동산도 많았으나, 공장지대 중심지에 가장 큰 면적을 가진 대부분 공장이 우리 부동산 사무실과 좋은 인연인 걸 사전 정보를 파악했는지 해결 도움이 필요하다며 우리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와 맞지 않은 너무나도 벅찬 큰 사업이 나에게 맡겨지면서 또 한 번 인생의 쓴맛을 뼈저리게 거듭 알게 되면서 애초 난 부동산 중개 일은 도저히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알게 된 사건이었다. 

 

 

 

<다음에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