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좋은 음악이 날마다 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든다

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99화) 열여섯 번째 캐나다에서 살면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26. 1. 27. 09:13

 

(99화) 열여섯 번째 캐나다에서 살면서 생긴 이야기

 

 

캐나다와서 영주권 신청했을 때 처음 딸기밭 사건이 동기유발이 되었지만, 캐나다 딸 생각은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았다.

뇌출혈로 균형이 온전하지 못한 아빠가 매일 오르내리려는 옥탑방의 계단에는 손잡이가 없어 위태로웠고, 엄마는 아빠를 24시간 곁에서 병간호하면서 힘든 생활고를 벗어나고자 평생 해 온 에어로빅 헬스클럽 경영과 제자 육성 교육, 대학 강의, 선수들 심사 위원 등등 여태까지 엄마의 열정이 담긴 그런 일을 다 접고는 단 한 번도 경험 없는 동네 시장통에서 작은 국밥집을 인수해 무조건 경영해 보겠다는 그 자체 무리수가 걱정되어 차라리 이번 기회에 캐나다 영주권을 받아서 손주도 봐줄 겸 함께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았다.

 

캐나다 정부는 부모님 영주권 신청서를 제출한다고 무조건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 영주권 신청 조건에는 보호자 자식의 범죄 기록, 파산, 사회복지 등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하고, 신청 보호자는 부모님이 캐나다와서 기반이 잡힐 10년간 돌볼 경제적 책임질 능력이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 신청 보호자의 최근 3년간 세금 신고 소득 수준이 높아야만 부모님 영주권 승인 충족된다.

 

딸은 그 당시 두 살짜리 첫째 아이 육아와 둘째 아이 임신으로 말미암아 최고급 호텔 매니저라는 좋은 직장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 하느라 최근 3년간 세금 신고 소득이 부족한 상태이었다.

최근에 와서는 딸은 영어 통역 번역 회사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위의 최근 3년간 세금 신고 소득 도움으로 영주권 신청서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사실 한국인 사위라도 장인, 장모를 모시고 한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도 어려울 텐데, 더구나 개인의 자유 분망한 사상이 많은 백인 사위 관점에서 장인 장모와 한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분명히 힘든 결정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생각도 캐나다에서 손주만 돌보면서 시간만 흘려보내면 왠지 내 나이가 돈 벌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한국에서 열심히 국밥 장사라도 도전해 보는 것도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많았다.

그러다가 오늘 생각은 달라져 매달 생활비에 쪼들리지 않고, 현재 안정된 편안한 생활에서 귀여운 손주 재롱을 보면서 캐나다 딸 가족들과 뉴욕 해외여행 다녀보니 여러모로 매달 생활비 고민 없이 여기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훨씬 나겠다고 하다가도, 내일 생각은 또 달라져 이 나이에 외국에 살면 언어장애 문제도 크고, 그리고 한국에는 나의 3명의 자식도 있고, 그리운 친정엄마, 형제들, 친구, 지인, 무엇보다 평생 먹었던 한식 생각 등등 여러 가지 향수병이 밀려오는 날이면 오늘내일 생각이 달라지니 뚜렷한 결정을 못 내려 혹시나 하는 마음은 한국의 옥탑방 물건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한국에서 Daum 블로그를 개설한 후 캐나다에 오니 장소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은 힘이 되어 주었다.

유튜버와 스마트폰이 한국에서 대중적 유행하기 직전이라 대다수 사람은 블로그에서 음악을 많이 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음악 저작권 이유로 Daum 음악에서 한 곡마다 유료로 사서 본인 블로그에 올렸는데. 오늘은 어떤 음악을 올릴까? 그런 내 설렘은 어릴 적부터 음악이 좋아 약간의 용돈이 생기면 군것질도 참고서 제일 먼저 레코드 가게로 뛰어가 내가 사고픈 엘피판을 사 올 때 그때 행복한 기분처럼 좋았다.

그래서 내 블로그 대문 문구도 이렇게 하였다.

 

"복지-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좋은 음악이 날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한참 미디어법에 따른 음악 저작권으로 유료 음악만 사용할 적인데, 어떤 분은 음악을 퍼 갈 수 없는 것에 격분하는 악성 댓글도 있었고, 또 어떤 분은 영어 가사 번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심한 욕설도 있었고, 또다른 악성 댓글 상처로 비공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방문자 댓글은 내 블로그의 음악을 통해서 요즘 행복해진다는 댓글을 보면서 내 블로그 음악이 누구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개로 다시 문을 열었다.

두번 째는 처음 블로그 시작을 할 적에는 내 개인 블로그니까 마음 놓고 자서전 습작을 쓰고자 한 이유인데, 처음은 한두 분 방문자가 하루에도 엄청난 방문자 수로 짧은 시기에 몇백만 조회수로 늘어나는 것에 되레 부담스러워 다시 비공개한 적도 있었다.

그 후로 유튜브와 스마트폰 시대로 바뀌어 자연스럽게 방문자 수도 확 줄면서 나의 비공개 고민도 사라졌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운전할 적에는 내가 잘못해 단 한 번도 과태료를 내 본 적이 없었는데 캐나다 와서는 교통 법규를 잘 몰라 당황한 일도 많았다. 

주차 허가 지역에서 난 주차 사용료 낸 용지를 창에 꽂아두고 볼 일 후에 돌아왔는데 주차 위반 노란 과태료 종이가 자동차 앞 창문에 꽂혀있었다. 

알고 보니 눈에 잘 보이지 않은 곳에 작은 소화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좌우 3M는 주차할 수 없어 그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이 넘는 벌금 과태료를 내었다. 

 

한국에서는 우리 집 앞에 주차했는데 캐나다는 동네 본인 집 앞이라도 잠깐 주차했는데 그사이에 노란 불법 과태료 딱지가 꽂혀 있었다.

그래서 토론토의 신시가지는 본인 집에는 주차장 설치는 필수이다. 

잠시 주차할 적에는 오직 특정 허가된 곳에만 사용료를 내면 주차할 수 있지만, 그것도 겨울철에는 눈설 비 관계로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차할 수 없단다.

동네 작은 건널목에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으면 그냥 지나갔는데 행인과 상관없이 한밤중이라도 무조건 정지했다가 출발하는 법규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 당시 캐나다 딸은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내가 운전해야 했었다. 

한국에서는 소형 승용차 운전했다가 캐나다 와서는 사위 자동차는 덩치가 큰 미니밴이라 손에 익숙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집 앞이 편의점, 동네 슈퍼가 즐비하니 요리 도중에 재료가 떨어져도 집 앞에서 바로 편리하게 사 올 수 있지만, 캐나다는 재료 하나가 떨어져도 자동차를 타고 나가서 대형슈퍼까지 가야 해 매우 불편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어떤 A/S 서비스 받고자 신청해도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무척 비싸서 차라리 오죽하면 새로 구매할 정도이다.

난 예전 외국 영화 볼 적에 집 차고에서 주인들이 직접 고치는 장면이 막상 여기서 살고 보니 직접 고쳐야 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관공서도 전화 통화 한 번 하려면 엄청난 인내심으로 계속 전화를 붙잡고 있어야만 겨우 통화가 가능한데, 주차단속만큼은 잠깐만 주차해도 언제 왔는지 과태료 용지를 꼽아두니 캐나다에서는 최고의 빠른 속도 같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었다.

옥탑방 문을 여는 순간, 내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아파트와 달리 낡은 옥탑방이라서 그런지 여름철 후덥지근한 온도와 장마에 오랫동안 문이 닫혀있어 환기되지 않아 습기 차서 옷과 이불은 좀이 생겨 가려워 모두 다 버려야 했다.

겨울철은 그간 난방을 틀지 않아 보일러가 터져 고장 나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전자제품도 오랫동안 가동하지 않아 냉장고, 김치냉장고, 밥솥, 전자레인지 기타 등등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장롱과 침구, 책상 나무 가구들의 습기로 비틀어 폐허에 방치된 물건처럼 모두 버려야 할 정도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더 빨리 결정 못해 이랬다저랬다 뒤집다가 이 모양새가 된 것이다.

멀쩡할 적에 진작 팔았으며 얼마라도 돈을 건졌을 텐데, 늦은 후회감이 밀려왔지만, 모든 것을 체념하고 처분해 보니 돈 낭비, 그간 밀린 옥탑방의 월세 목돈과 고장 난 보일러까지 물러주고 한국 살림마저 사라지니 캐나다 정착 결론도 굳어갔다. 

 

옥탑방의 물건을 모두 처분한 후에 캐나다에 돌아갈 동안 잠시 큰 딸 집 아파트에 머물게 되었다.

큰 사위가 자동차를 새로 구매하면서 이전 사용한 자동차를 큰딸에게 물러줘 큰딸은 평소 출퇴근은 대중교통을 주로 사용하다가 장거리 출장할 때만 사용해서 주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세워두었다. 

어느 날 딸의 자동차로 대형 슈퍼에서 많은 장을 보고 딸이 자동차 시동을 거는 순간, 급발진의 요란한 큰 괴음과 엄청난 속도로 제멋대로 질주하더니 주차된 남의 자동차를 여러 대를 박고는 주차장 3층 난간 턱에 겨우 걸려 정지하였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자동차 속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영화나 뉴스에서 본 장면을 운전사 옆 좌석에서 실제로 당해보니 무서워 두 번 다시는 운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캐나다에 돌아왔는데 도착한 지 3일 만에 딸의 회사에 지각이니 운전해서 회사까지 데워 달란다.

난 아직도 며칠 전에 일어난 악몽 같은 자동차 사고로 끔찍한 트라우마 충격은 도저히 운전할 엄두도 나지 않아 그 말에 머리가 뿌예졌었다.

그러나 운전면허증 없는 임산부 딸이 지각으로 1초가 긴박하고 촉박하다니 그 순간 엄마의 용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딸의 회사가 먼 거리인 줄 모르는 채 달리게 되었다.

 

( 요즘은 똑똑한 스마트폰과 GPS로 상세한 집 주소 위치 설정하면 쉽게 어디라도 갈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모르는 길은 사람에게 직접 묻기나, 종이 지도책 참고로 운전한 시절에서 초창기 내비게이션 시절은 개인이 직접 위성 지도 따로 구매해 자동차에 부착해서 위치를 설정하는 그런 시기이었다)

 

 

그때 시절이 생각이 난다.

한국에서도 처음 내비게이션이 나오기 직전까지는 한 번씩 서울로 제자들의 자격증 시험 보러 갈 적에 미리 스케치북 준비해서 큰 사거리에서 방향을 몰라 헤맬 적에는 뒤좌석 제자들이 재빠르게 스케치북에다 큰 글씨로 옆 자동차에게 '종로, 청계천, 낙원상가 그런 식으로 스케치북을 보여주면 옆 운전자가 손가락으로 지시 방향을 가르쳐 주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 후 처음 내비게이션 나왔을 때는 여성 기계 음성으로 길을 가르쳐 주었으나 가끔 엉터리 장소로 안내해서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 참으로 어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런 시절이라 사위의 자동차에는 영어 내비게이션만 있어 내가 사용하기에는 어려워 그 당시 딸이 구해온 것이 한국어가 나오지만, 너무나 엉성한 조선족 발음에다 매우 조잡한 내비게이션이지만, 그래도 영어보다는 알아들을 수 있어 내가 운전할 적에만 그것을 사용하였다.

 

딸의 회사로 출발할 적에는 옆에 딸도 있어 가르쳐 주는 대로 일반도로와 도시 고속도로를 번갈아 가면 무사히 도착하였다.

딸이 내리면서 한국어 내비게이션을 집까지 돌아갈 수 있게끔 기계 작동 시켜주면서 엄마 혼자서 갈 수 있겠느냐? 걱정스러운 말에 난 한국어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그랬다. 

 

그랬는데 한국어 내비게이션는 다시 시동을 걸다가 정지되어 딸이 설정한 기록이 사라져 버렸다.
순간 무척 당황했는데, 그렇다고 사위의 내비게이션은 온통 영어뿐이라 복잡한 조작 방법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는 길게 영어 단어를 내가 설정할 형편도 아니라서 막연했었다.
그 순간 갑자기 한국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 트라우마도 다시 떠오르고 용감했던 엄마의 힘은 어디로 사라지고 나약한 겁먹은 작은 새가 된 기분이었다. 


난 아직 캐나다 고속도로에서 운전해 본 경험도 없었기에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는 도시 고속도로 위에서 어느 출구로 빠져야 할지 몰라 막막하였다.
고속도로 위에는 출구마다 영어 표시판이 있지만, 그것조차 볼 여유가 안 되어 조급한 마음으로 사위의 자동차 기계를 반신반의 시도해 보니 어쩌다가 연결되어 내비게이션의 기계 음성이 영어로 목적지를 묻는 것에 난 애써 몇 번이나 깊은숨 고르고 서툰 영어 발음으로 답을 했으나 내 얄궂은 영어 발음을 내비게이션은 내 발음을 통 못 알아듣었다. 

 

" I don't understand what you mean, so please do it again…."

(즉, 무슨 말인지 모르니 다시 해 주세요)

몇 번을 더 시도해도 같은 대답만 하더니 아예 자동 음성 시스템이 꺼지는 것이다.

 

이제는 모든 내비게이션은 포기하고는 도시 고속도로 출구가 있는 오른쪽 차선으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운전하였다.

 <여긴가? 아니면 다음인가? 아니면 그 사이 내가 지나쳐 왔나?>

우물쭈물 망설이니 뒤편 차들이 빨리 가라는 난리에 일단 어떤 출구로 나왔으나 처음 본 낯선 장소에 여기는 전연 아니었다.

안전한 갓길에다 비상 깜빡이 등을 켜두고 누구에게 도움받고자 했으나 간혹 이따금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멈춰 세워서 영어로 길을 물을 볼 그런 형편도 사실 아니기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했었다.

 

"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마저 어질할 그때 어느 트럭이 차를 세우더니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그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그랬는데 하필이면 그도 나처럼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완전 영어 초보 영어로 떠듬거리면 나에게 띄엄띄엄 영어로 길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 Excuse me…. where…. I…. go…. @#$$%^…?>

 

< I don't know…. here…. @#$$%^….>

 

똑같은 입장끼리 엉성하고 어눌한 서툰 영어를 해봐자, 외계인 같은 대화였기에 시간만 허비하는 것 같아서 서로가 알아서 각자 길을 가기로 했었다. 

그렇다고 회사에 일하는 딸에게 난 여기 위치도 모르면서 괜한 이런 상황을 전화하면 걱정할까 봐 안 될 것 같았다. 

 

< 어쨌튼 나 스스로 해결해 가보자 아자!>

 

다시 불안한 왕초보 운전자 모습으로 돌아가 오직 핸들만 꼭 부 들고 '엄마 찾아 삼마리'가 아닌 '집을 찾아 삼마리처럼' 낯선 거리에서 집을 찾아 헤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