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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37화) 나의 자서전-넷 번째 좌충우돌 신혼 생활기 부분에서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09. 5. 1. 01:36


(37화) 나의 자서전-넷 번째 좌충우돌 신혼 생활기 부분에서



한복 저고리 사건은 안방으로 당장 호출당했고, 화가 무척 나신 시어머니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눈물이 쏙 빠져나올 만큼 엄청나게 나를 나무라셨다.

나를 무척 못 마땅 생각하시는 시어머니 마음은 아마도 나에게 호된 시집살이를 시키고자 하셨는 데 어려운 한복 저고리 동전을 건네주면 옆방 아저씨에게 맡겨버리지 않나, 불고기 요리를 맡기면 불날 뻔하지 않나, 자꾸 일만 더 저지르고 말썽만 더 생겨서 믿고 맡길 수 없는 내 행동에 무엇을 또 시키려다 그만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결혼이라는 것이 행복한 생각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더구나 두 집안의 결합이기에 나의 잘못은 바로 친정 부모님과 당신의 아들까지 들먹거려 막중한 책임감까지 가중되었다.

물론 잘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했다면 생각과 달리 그것은 사건과 사고로 이어졌고, 내가 잘못해 당연히 나무라셨고 내가 슬픈 눈물로 훌쩍거리는 것을 보시는 시부모님께서는 내 잘못 반성의 눈물인 줄 아셨지만, 사실은 그 순간에도 어린 나이에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부산 번화가 음악실에 앉아서 친구들과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면서 좋아하는 음악과 커피를 마시면서 있을 덴데…. 

왜 일찍 결혼해서 그의 부모님 앞에 무릎 꿇고서 혼쭐나야 하는지 오직 다른 생각으로 내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을 짓고 있었다.

특히 그가 없는 시 갓집은 낯설고 대구가 아득히 먼 곳처럼 느껴졌고, 내 마음을 도닥거려 줄 사람이 없는 신혼 방 구석에서 우두커니 웅크리고 앉아 뒤엉킨 생각으로 결혼한 것에 후회까지 되었다.

 

어느덧저녁 식사 시간 때가 다 되었고, 어쨌든 속으로 오래 담아두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에 늘 그렇듯이 딱딱하고 굳은 얼굴을 얼른 지우고 밝은 얼굴로 고쳐서 시부모님 방으로 들어갔었다.

< 어머니 우리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걸로 해 먹어요. >

두 분께서 나에게 크게 나무라셨기 때문에 지금쯤 마음의 상처를 입고 며칠 동안 조용히 반성할 것이라 생각하셨다가 내 밝고 명랑한 얼굴로 바로 나타나니 되려 귀신을 본 양 순간 화들짝 놀라시고 매우 당황하셨다.

그리고 시아버지께 응석 섞인 울음 목소리로 말했다.

< 아버지는 저에게 딸처럼 대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조금 전에는 너무 무서운 시아버지처럼 저를 나무라셨어요. >

<  허허… 내가 그랬냐…? >

당돌한 내 말에 당황하시고 말씀하셨다.

<허허‥ 섭섭했지… 미안하구나 >

나를 달래고 도닥거려주시는 시아버지 모습에 위엄 없다며 시어머니는 버럭 화를 내셨고 시아버지께서 웃으시며 침울한 얼굴로 있는 것보다 보기가 좋다고 하셨다.

 

며칠 후 나를 감싸주셨던 시아버지마저 일본으로 출국하셨고, 나는 시어머니에게 늘 구박을 받으면서 한 달이 지나갔었다.

그동안 마음고생과 오랫동안 기침 감기로 무척 아팠고, 그가 걱정되었는지 임시 대기 발령받은 먼 시골에서 급히 왔었다.

결혼 한 달 만에 보는 그는 여태 보았던 연인이 아니라 이제는 남편이란 단어로 안도감과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올랐고 당장에라도 목이 메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구세주처럼 반가웠다.

결혼이란 연인과 남편을 구분시켜 주는 차이점은 너무나 컸었고 비로소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재확인되는 것 같았다.

그도 내 모습에서 부산 번화가 음악실에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내 멋대로 잘난 척하는 하는 모습에서 남편 없는 시 갓집에서 생기 없이 기가 푹 죽은 수축해진 얼굴에 긴 치마 홈웨어 입은 내 모습이 약간 낯설게 느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 적응하는 것 같은 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듯이 보았고 시어머니는 나를 택한 당신 아들에 유감스러운 듯이 보셨다.

 

그는 내 아픈 모습이 애처롭게 생각했는지, 다음날 시어머니에게 나와 함께 떠나겠다고 말씀드렸다.

당신의 효자 아들이 고시 합격만이 오직 시어머니의 낙으로 생각하시고 장독 위에 정수 물 떠 놓고 정성 들여 기도와 여태 뒷바라지하셨는데 나를 만난 뒤부터 부모가 반대하는 약혼으로 고시 공부, 일본 경영공부도 포기한 체, 조기 결혼했으며 지금도 먼 시골에서 떨어져 고생하는 것이 나를 만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고, 그와 함께 떠나는 것에 못마땅하시며 좀 더 가르쳐야 할 것이 많다며 반대하셨다.

< 어머니 모든 것은 제가 택한 일이니 저와 함께 떠나게 허락해 주세요. >

예상하지 못한 그의 의견에 매우 기뻐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었다.

한 달만 있을 공무원 대기 발령지에 구태여 함께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만, 그는 시어머니에게 이해시키려고 애를 섰고 끝내 할 수 없이 포기하시고 급하게 챙겨 주신 것이 임시 입을 수 있는 내 옷가방과 당장 쓰이는 간단한 살림도구가 전부였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결혼 첫 살림으로 시작되었고, 잠시 있을 것 같은 한 달의 대기 발령이 1년 6개월 동안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도시 번화가에서 철없이 자란 나는 생전 처음 접하는 시골생활에서 철부지 어린 신부의 사고와 사건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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