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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35화) 나의 자서전-넷 번째 좌충우돌 신혼 생활기 부분에서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09. 4. 8. 00:02

 

(35화) 나의 자서전-넷 번째 좌충우돌 신혼 생활기 부분에서

 

결혼이 정해진 시간이 임박할수록 서서히 두려움과 강박감으로 망설였다.

아직은 친구들과 자유롭게 음악 다방에서 좋아하는 팝송과 커피를 마시며 놀고 싶은 마음이 우선으로 생각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보니 나의 예절과 요리가 시급했었다.

예비 신부교실 차밍스쿨 학원에 급하게 등록해 예절과 요리 수업을 받게 했지만, 평소에 집안일에 관심 없어 도와주지 못한 탓으로 전혀 요리 기초 상식조차도 없었고, 예절은 천방지축 말괄량이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므로 아까운 비싼 수업료만 지급했었다.

 

그리고 결혼식을 앞두고 두 가지 황당하고 당황한 사건도 있었다.

첫 번째는 나에게 관심이 많았던 서울 명문대 의대생 남자 친구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과 송정 바닷가에서 캠프파이어 보컬 한 남자친구) 음악 다방에서 난데없이 그에게 내가 아직 나이도 어리는데, 왜 빨리 결혼식을 하느냐고 엉뚱하게 따지는 바람에 나는 황당하고 당황했었다.

두 번째는 번화가 웨딩의상실에서 종이 가방 속에 드레스를 들고 막 나오는 순간,  외출 나온 군복 차림의  첫사랑 형과 하필 이며 그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었다.

그의 형을 보는 순간에 그를 생각하게 하였고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심장이 뻣뻣하고 멎는 것 같았다.

내가 웨딩의살실에서 막 나왔고 손에 쥐고 있는 웨딩 드레스와 결혼 청첩장을 보게 된 그의 형은 굉장히 흥분하고 화난 것처럼 나에게 잠시 이야기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그 형을  보는 것조차도 힘들었고 곤란함 느끼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었다.

 

 

꽃피는 따뜻한 봄날. 결혼식 시작되었다.

결혼식 날 서울 의대생과 그 팀 남자친구들도 거의 모두 결석하고 부산으로 내려와 결혼식 참석과 우리 작은 오빠 많은 친구까지 합세한 내 결혼식장에 온통 젊은 남자 대학생들이 바글바글해 옛날 그 시절 결혼식에는 보기가 드문 일이라 축하객들이 의아해 하였고 더구나 그는 신랑 입장으로 식장내로 일찍 들어왔지만, 난 신부 대기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짙은 신부 화장이 낮도깨비 모습의 타인 같아 도무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멋대로 긴 속눈썹을 뜯어내고 진한 빨간색 입술과 요란한 눈 화장도 몽땅 지워버리고 높이 부풀어진 올림머리도 손으로 내리고 있었으니 내 모습을 한동안 고치느라 신부 입장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신부 입장에 신부가 들어오지 않으니 축하객들은 안 그래도 젊은 남자 대학생들이 바글바글한 식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고, 신부 입장에 신부가 식장에 들어오지 않으니 그도 불안하고 복잡한 심경으로 신부를 초조하게 기다렸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자친구들은 신혼 여행지까지 따라와 배웅하는 바람에 그는 심기가 불편해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었고 마음이 매우 상한 것 같았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는 말다툼으로 이어져 우리의 첫날밤은 결국 따로 자고 말았다.

 

옛날 그 당시에 유난히 별난 덕분에 우리 집은 잘 살지도 못하면서 불구하고 결혼식에 대한 환상과 허영에 사로잡혀 내 고집과 욕심으로 잠시 입는 드레스를 비싼 광복동 웨딩 의상실에서 디자이너 작품  웨딩드레스를 맞추었다.

그리고 내가 구상한 맞춤 커플 옷으로 신혼 여행지 떠날 때에 입었고  두껍고 짙은 화장을 지워 버렸으니 옛날 화장처럼 촌스럽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생얼 화장, 커플 옷신혼 여행지 바닷가에서 드레스 차림의 야외 사진은 당시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요즘 결혼 사진과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고 그때는 별난 짓을 했지만, 옛날로 돌아갈 수 없는 현재에서 보면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낯선 대구의 시 갓집으로 들어갔었다.

친정어머니는 시 갓집 그 자체가 어렵고 조심스러운 곳이라 물가에 아기를 세운 둔 것처럼 말괄량이 어린 딸을 일찍 시집 보내는 마음이 불안하셨는데 심지어 신혼여행에서 다녀온 즉시 그도 나를 시 갓집에 홀로 두고 공무원으로 임시 대기 발령받은 곳으로 가버렸다.

그가 없는 신혼방에서 약혼과 결혼에 굉장히 못마땅하신 시어머니 눈치를 보면서 철부지 천방지축 어린 신부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시 갓집에는 결혼식으로 일본에서 임시 귀국한 시부모님과 시할머니, 시 아주버님, 윗동서 형님, 아기 조카가 있었다.

친정어머니는 시집에서 며칠 동안은 얌전한 한복을 입고서 시부모님께 아침 문안 인사를 큰절을 드려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다.

하지만, 시 갓집은 옛날 한옥 구조로 부엌 문턱이 높았고, 마루도 높았기 때문에 한복 입고 잘못해서 치마를 밟으면 밥상을 안고 넘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불편했었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한복 저고리 당기를 접는 방법도 잊어버렸고 임시 핀으로 고정해놓고 그 상태에서 한복을 위로 벗고 입는 것이 힘들었고 고역이었다.

불편한 한복을 벗어버리고 다음날 아침, 간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부엌으로 나와 무안한 표정으로 빙그레 웃음을 띠면서 어른들 눈치를 살펴보았다.

황당한 내 모습에 시할머니를 비롯한 시어머니는 아주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입을 다물지 못하시고 다만 시아버지께서는 그 모양새에 매우 재미있다는 듯이 아주 호탕하게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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