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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은 혼자 잘나서 커 온 줄....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5. 12. 19. 12:27

 

 

 

 

 

자식들은 혼자 잘나서 커 온 줄…  그 말을 생각한 날  

 

 

 

 

 

 

예전에 수영장에서 친하게 지낸 어느 할머니를 오늘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무척 반기면서 커피 한잔 하자고 하시어 잠시 그분과 시간을 보냈다.

 


헤어질 때 불편한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가시는 할머니 뒷모습을 보니 오늘의 회색 구름 가득 낀 을씨년스러운 날씨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당신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나에게 자주 하셨는데 아픈 다리를 보니 다시 상기되었다.

 

할머니는 흔히 이민 1~ 2세대라고 말하는 매우 젊은 나이에 이민 오셨다.
그 시절에는 심한 인종차별도 많았고 영어 언어 장벽에 부딪히면서 매우 고달픈 삶을 사셨다고 한다.
새벽부터 뻘밭에서 지렁이잡이를 하셨는데 징그러운 지렁이로 보이지 않고 1원짜리 동전을 줍는 마음으로 주었단다.
종일 엎드려 잡다 보면 허리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고 하셨다.
집에 와서도 주부의 고된 집안일과 내일 아이들의 도시락 준비와 먹을 음식까지 밤새 장만하고 제대로 못 자고 또 새벽되어 지렁이 잡으려 나가셨단다.
추운 겨울날 차가운 뻘밭에서 발을 너무 오랫동안 담근 것이 화근이 되어 지금도 고질병이 되어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면 불편하게 걷는다. 

 


남편이 하는 일도 옛날 수세식 화장실이 요즘처럼 시설이 좋지 못할 때라서 자주 막히는 경우가 많았단다.
그 시절에 일일이 사람이 직접 뚫은 일이 많았는데 그 일을 남편이 했단다.
두 분이 젊은 청춘을 그렇게 고생하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켰단다.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자식들과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단다.

 

아이들이 차츰 크면서 영어에 익숙해지면서 영어를 못하는 당신들과 더욱더 대화의 벽이 생겼고 갈수록 대화가 멀어졌단다.

 

성인이 된 자식들은 결혼하고 나가 살면서 자주 찾아오지 않아 무척 외롭다고 하셨다.

 

"자식들은 혼자 잘나서 커 온 줄… 안다면서"

 

자기네들 키우느라 고생한 힘든 기억보다는 자기네들이 못해 본 것만 기억하더라면서 매우 섭섭하셨다.
그런 것을 보면 요즘의 젊은 부모는 오직 자식만을 위해서 이민와서 지렁이잡이나 온갖 더러운 일을 하지 않은 젊은 부모가 현명하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 속에서 생각나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분은 한국 IMF 때 이민 오신 분이다.
남편이 오랫동안 형제처럼 지낸  지인 동생을 철석같이 믿고 뒤따라 이민왔는데  믿고 의지한 동생 지인에게 돈을 몽땅 사기를 당하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길바닥에 내다 앉게 되었는데 그 후 식당에서 허드렛일 설거지를 하면서 여태까지 고생하고 사셨다.
너무 오랫동안 서서 설거지를 하다 보니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밤마다 파스를 붙이고 잤단다.
어린 착한 두 아들이 서로 파스를 엄마에게 붙여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다리를 안마해주면서 그랬단다.
"엄마 이 담에 우리가 빨리 커서 돈 많이 벌어서 불쌍한 울 엄마 호강 시켜줄께"
그런 자식들을 바라보면 그 힘으로 벗티고 고생하면 사셨단다.

 


이제 두 아들이 성장해 대학 공부도 마쳤고 둘 다 결혼도 시켰단다.
할 일도 다 끝난 것 같고, 나이도 늙어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지면서 식당 일을 그만하고 쉬고 싶어지더란다.
그간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융자를 받아 마련한 작은 집이 있었는데 일을 하지 않으면 매달 갚아나가는 것에 부담스러워 집을 팔고 남은 융자를 몽땅 갚고 이제 편안하게 쉬고자 했단다.

 

 

 

그랬는데~
집을 판 것을 알게된 자식은 처음에는 작은아들을 앞장세워 며느리와 함께 찾아와서는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고 돈을 보태달라고 하더란다.
며칠 후에는 큰아들과 며느리가 찾아와 무슨 자금이 필요하다면 작은아들처럼 그냥 달라고 하지 않고 빌려 달라고 그러더란다.
그 말이 그 말이지 싶어서 남편이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을 했단다.
"우리도 이제 고생 안 하고 쉬고 싶어서 이 집을 팔아 융자 갚고 째 끔한 아파트라도 줄어서 가고 그간 못 가본 여행도 하고 남들처럼 편안하게 살려고 그랬으니 줄 수 없다" 라고 하셨단다.
그 말에 내가 아주 잘 하셨어요. 라고 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며칠 전에 만났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라고 묻었다.
아주머니는 끝내 자식에게 이길 재간이 없더라고 하면서 집 판 돈 일부를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고, 융자 갚고 나니 남는 것이 별로 없어 다시 식당 설거지 일을 하러 나간다고 했다.

 

 

 

그때 밤마다 고생하는 엄마 다리를 두 아들이 주물러주면서
 "엄마 이 담에 우리가 빨리 커서 돈 많이 벌어서 불쌍한 울 엄마 호강 시켜줄께"
그 말이 힘이 되어 주어 고생인 줄 모르고 지들을 힘들게 키웠는데 결혼하고 난 후에는 제 처자식만 챙기더라면서 남들이 자식에 대해서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그런 자식을 그냥 둬요?라고 많이 흥분하고 그랬는데 막상 당신도 당해보니 남의 이야기가 아니더란다.
."남의 자식은 다 그래도 내 자식을 절대 안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면서
그 말을 하는 아주머니처럼 우리도 누구나  다 그런 마음으로 자식을 키운다.

 


자식은 혼자 잘나서 커 온 줄 안다는 그 말이 왠지 오늘따라 12월 달력을 보면서 더 씁쓸하게 눈에 들어 온다. 

 

이 시점 연말은 또 한 해가 저물고…

 

우리들은 또 늙어가고…

 

 

 

 

 

- 2015년 12월 18일 캐나다에서 복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