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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치료 칼럼/영화치료 칼럼

은교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2. 9. 13. 11:48

 

 

은교 

젊음을 탐한 노시인

 

이 영화는 외로움과 생명 혹은 젊음에 대해 이야기였다.

영화는 반으로 나뉘어진다.

서지우와 은교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이적요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그 사건의 전과 후로.

그 전의 영화는 밝고 때로는 정겹고 살포시 웃음도 배어나는 봄햇살 같은 영화였으나,

그 후의 영화는 매우 무겁고 처참하고 피폐한 회샛빛 겨울같은 영화로 변해버린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을 종교처럼 신봉하게 만드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이적요에게 은교는 한없이 하얗게 빛나는 완벽한 순수이자 순결한 처녀이겠지만

실제의 은교는 싱그러운 젊음은 있으나 이적요의 기대처럼 순수한 처녀는 아닌 듯 싶다.

이적요에게 인사하고 집을 나서던 은교가 까치발을 하고서 몰래 들어와 술에 취한 서지우에게

먼저 다가서는 모습에서 이적요의 기대처럼 맑디맑고 순결하기만 한 소녀가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

오히려 이적요와 만난 첫날 은교가 입고 있었던 목이 느슨한 티셔츠처럼

은교는 경계를 쉽게 허물며 위태로운 행동을 곧잘 하는 이미 성에 노출된 품행장애 청소년일 것이다.

 

 

이적요가 제자 서지우를 죽인 까닭은?

 

이적요는 목격 이 후 분개하여 제자 서지우를 죽일 계획까지 세우는 데

그 분개한 마음에는 여러가지 마음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추측컨대, 서지우가 영혼의 분신같은 원고를 훔친 도둑놈인데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순결한

처녀의 몸 마저 훔쳐간 도둑에 대한 응징,

은교가 자신이 기대한 깨끗하고 순수하고 유리알같이 하얗기만 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분노,

은교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젊은 서지우에게 향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분노,

자신이 주축이 되어 세워진 완벽한 관계 트라이앵글이 사실상 허구였으며

그 관계의 밖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 분노..

이 것들이 뒤섞여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으리라.

 

 

사랑에는 사랑만 있을까?

 

이적요는 은교가 아닌 은교가 가진 열여덟의 "봄"의 젊음을 흠모했으며,

은교는 또래나 부모에게 보잘것 없고 존재감 없는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여겨주고 한없이 따뜻한 온기어린 사랑을 베풀어주는 이적요 옆에서 "존재감"을 찾고자 하였으며,

서지우는 전설같은 대단한 스승의 제자로서 그 스승의 재능의 작은 일부라도 얻어

"성공"과 "명예를 얻고자 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들은 가족이 될 수도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지 전까지는...

서지우와 은교가 결합하기 전, 그 셋은 마치 가족처럼 보였다. 아니 가족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적요는 자비로운 아비가 되고 서지우와 은교는 아비의 사랑을 좀더 차지하기 위해

옥신각신 다투는 시샘 많은 이복남매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가족들에게 심리적으로 버림받고 너무 외로운 그들이었기에

노련하게 적당한 선을 긋고 조심했더라면 좋은 가족의 형태로 유지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적요의 가장 아픈 트라우마, 늙음!

 

이적요가 정말 힘들어 했던 것은 서지우의 배신이나 은교에 대한 질투보다도

마음의 준비가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다다른 "늙음"일 것이다.

국민 시인 이적요는 고상하고 품위있고 무게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짐승처럼 포효하고 격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서지우가 자신을 보고 늙었다고 말할 때 그는 그만 이성 줄을 놓아 버리고 격하게 노한다.

 

 

열 여덟의 의미..

 

홀연히 이상문학상에 나타나 마치 스스로에게 되내이는 듯한 축사,

"늙음을 처음으로 겪게 되어서 마치 납옷을 입은 듯 힘들고 무겁다"는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마치 심장에 화살이 꽂힌 듯 가슴 쓰리고 목이 메였다.

왜 그토록 어린, 이제 갓 인생의 봄날을 맞이하는 18살의 은교에게 집착하고

가슴에 사무쳐 하는 지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은교를 쓴 박범신 작가가 왜 20살-매우 젊고 미성년자가 아니므로 안전한-은교가 아닌

18살-고등학생이며 미성년자인- 은교를 만들어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지도 이해가 되었다.

열여덟은 바로 80인생에서 가장 좋은 봄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머니가 갓 돌이 지난 손자를 안고서 혼잣말을 되뇌이셨다. "넌 좋겠다. 어려서. 젊어서"

아직 서른 초반의 인생의 여름을 지나고 있었기에 그 때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지

도통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유난히 많은 수분을 머금고 있었고

말의 무게가 무거웠기에 가슴 속 하나의 물음표가 되어 맺혀 있었다.

 

그 가슴 속 물음표가 이적요의 영화 초반 물끄러미 자신의 고목껍질같은 벗은 몸을 바라보는 장면과오버랩 되면서 칠십노인 이적요가 왜 그토록 열 여덟 나이에 큰 의미를 두는지,

왜 그리도 치명적인 매력을 느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또 왜 하필 그런 대사의 축사를 했는지도..

 

인생의 봄, 여름, 가을이 다 지나고 겨울을 닮아 늙은 고목 껍질처럼 거칠어져버린

자신의 육신과 마주친 그 아픔과 상실감이 얼마나 크고 아득했을까!

 

 

 

 

 

상자 속 숨어있었더라면 안전했었을 욕망이었다.

 

 

이적요는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을 인생의 봄을 사랑한 것이다.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젊음을 탐욕한 것이다.

그 귀소본능이 은교라는 매체를 통해 마음껏 탐하고 공유하고 젖어들었던 것이다.

그 욕망과 깊은 탐욕들이 판도라 상자 속에서 혼자만의 욕망으로 숨어있을 때는

안전하고도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남에 의해 바깥세상으로 노출되어버림으로 인해

그것은 씻을 수 없는 "죄"가 되어 버렸다.

 

70의 나이에도 여전히 심장은 젊은 그것과 동일하게 살아 움직이나

껍데기 나이가 70이므로 어린 소녀를 사랑한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파렴치한 범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노출된 순간 노시인은 젊음에 대한 능욕자요 수치스럽고 염치 없는 정서적 범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뒤늦게 은교가 자신을 여신처럼 보아주고 사랑한 사람이 서지우가 아닌 이적요였음을 알고

미안하다. 고맙다 용서를 구하나, 그는 차마 얼굴을 마주 하지 못하고 숨 죽여 흐느낀다.

안개꽃 한다발의 의미가 "나를 잊지 마세요"이고 마지막을 예고하는 이별임을 알지만

정서적 범죄자가 된 이적요가 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시신마냥 숨 죽여서 우는 것 외에는 없다.

 

 

 

은교 - 이름의 뜻

 

 

 

영화를 리뷰하면서 은교의 뜻을 지어 보았다. 책을 아직 읽지 않았기에 이름의 뜻이 책에 나오는 지는 모르겠다.

은교 "銀橋" 아름다운 젊음의 세계로 연결해주는 다리!

이적요에게는 열여덟 소녀 은교는 다시는 갈 수 없는 과거의 젊은 자신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타임머신" 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은교를 통해 건널수 없는 요단강 같은 젊음을 마음껏 만나고 손 잡고 달리며 기쁘게 웃을 수 있었으리라!

 

참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긴 영화다. 은교는..

너무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서 전체를 풀 수 없으며, 그냥 십분의 일만 풀어내는 것에

만족하여야겠다.

세월이 흘러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고서 다시 보는 "은교"는

지금 가을의 문턱에 선 내가 감히 볼 수 없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해주리라 기대해보며

조심스레 내 영혼의 "타임캡슐"에 묻어두고자 한다.

 

 - 글 제공: 영화치료 칼럼리스트 김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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