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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의 모든 것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2. 6. 24. 07:30

 

 

 

 

 

 

내 아내의 모든 것

이 전해주는 부부관계의 모든 것

 

 

유쾌,상쾌,발랄한 영화였다.

임수정의 독설연기는 평소 내뱉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찌질함에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충분히 가져왔고 류승룡의 오버연기는 유쾌하면서도 재미를 더해 기분 좋은 느끼함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선균의 찌질한 소심남 연기는 쯧쯧 혀를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남의 여자라고 보면 내 여자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결혼 7년차, 권태롭고 서로에 대해 환멸에 빠지는 시기에 남들처럼 한 참 손 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 소리도 없고 남편이 출근하면 늦게 혼자 남아서 집을 지키는 그녀는 그 외로움과 허전함을 소리로 채우려고 애쓴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선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마음의 소리들을 묻어 두지 않고 실시간 밖으로 뱉아낸다.

 

그런 그녀의 소리에 질려 버린 남편 두현은 환멸을 느끼고 어떻게든 아내를 떼어버리고자 한다.

정인에 비해 자기 마음 속 이야기는 하나도 못하는 두현은 결국 스스로의 힘이 아닌 남에게 “청부외도”를 맡기고 자신은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다가, 이상하게 조금씩 신경이 쓰이고, 스킨십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미행을 하기 시작하고 그녀의 가치를 깨닫게되면서 “청부외도”를 취하한다.

결국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수컷의 싸움이 시작된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반짝반짝 윤이 난다.

 

외로웠던 정인은 남편의 계략에 의해 라디오방송 게스트를 맡게 되고 의외의 시원시원한 독설과 사회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에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한다.

그러한 인정받음이 생기 없던 그녀의 표정에 생명을 부어 넣고 밤이면 밤마다 남편만 기다리던 그녀가 원고를 쓰며 열정을 쏟는다.

주변 사람들의 아내에 대한 칭찬과 아내가 다른 남자가 볼 때 충분히 매력적임을 깨닫게 되고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매력을 재발견하면서 두현은 다시 정인에게 빠져들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로서 다가온다.

 

아내가 변한 건 카사노바와의 연애라고 보지만 내 견해는 다르다.

성기는 단지 누구의 아내에서 여자, 그 자체로 다시 태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했을 뿐이고 아내 정인은 카사노바의 존재보다는 자신이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에 확인받을 수 있어서 즐거웠고 일본에서 남편과 첫 사랑에 빠졌던 그 예뻤던 시기가 모락모락 재현되면서 기뻤던 것이다.

 

정인에게 카사노바 성기는 남편 두현의 아봐타이며 그녀는 성기의 얼굴을 보면서 지독히 사랑했던 그 시절의 두현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에너지가 넘쳤던 그녀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남편과 달리 무료함과 상대적인 열등감을 느끼며 힘겨웠던 우울에서자신의 일을 갖게 되고 그 일에서 인정받았으므로 반짝반짝 윤이 났던 것이다.

 

인간의 기본 욕망인 자아실현!

내가 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몰입 됨에 살아있음과 존재의 가치와 소중함을 매순간 느끼고 싶은 그 본능적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기에 정인은 꽃처럼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뿌연 먼지로 가득찼던 마음이 반짝반짝 윤기를 내었고 그 모습은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사랑이 두려워 도망쳤던 카사노바의 신념마저 변화시킬 정도로. 또한 사회의 위선과 관례에 동승하지 않고 남들이 보지 못했던 사회 곳곳을 매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표현하고 나누고자 했으므로 그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욕망이 충분히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카사노바의 천적, 정인

 

 

성기는 바닷물에 진심으로 사랑한 연인을 잃어버렸기에 물을 두려워하고 사랑을 농락하고 희롱하지만 진짜 사랑을 할 수 없게 감정의 "계"를 쌓게 된다.

처음에는 각본에 철저한 베테랑 카사노바였지만 어느 순간 각본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미처 계획에도 없었던 자신의 진심을 토로한다.

정인은 그런 그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진심어린 위로를 한다.

 

처음으로 진실을 보여준 그는 전설적인 카사노바가 아닌 인간 강성기로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녀의 눈동자 안에 다른 남자 즉, 남편이 있음을 들여다 본 그는 가슴 아프지만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쓸쓸히 떠난다.

"매일 그대와" 노래를 부르면서..

이 노래는 정말 카사노바답지 않은 노래인 듯 하다.

카사노바라면 그대는 아름답소,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으스러질 듯 안아보자는 그런 뻔한 가사의 노래를 할 것 같은데 다른 남자와 사는 집 앞에서 당신과 함께 매일 그대와 함께 살고 싶다는 구슬프고 애잔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너무 카사노바답지 않아서 구슬프다.

 

 

 

 

 

자전거는 사은품으로 줘도 자전거타는 기술까지 주지는 않는다.

 

7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리트머스 종이처럼 둘은 서로에게 물들어가며 닮아간다.

불평불만하던 아내 대신 어느새 남편이 불평을 하고 있고 그냥 참으라고 하던 남편 대신 이젠 아내가 참으라고 한다.

남에게 아쉬운 말 못하던 착한 남자 콤플렉스 속의 남자가이제 소리친다.

속의 삼키고 삼키던 말을 어슬프게 소리치게 된다.

 

 

신문사절이라고 적어 놓았으나 꾸준히 신문을 넣던 신문배달원이 말했다.

"1년 구독 조건으로 사은품 자전거를 받았으니, 1년 구독할 의무가 있다"고 남편이 소리친다.

"자전거가 불량품이라 위험해서 쓸 수 없다고"

그러니 신문배달원이 응수한다.

"그건 자전거 탓이 아니라, 자전거를 못타는 기술 탓이라고. 우리는 자전거를 주는 거지 자전거 타는 기술을 주는 건 아니라고" 그 말에 둘은 침묵하고 결국 신문배달원의 완승으로 끝난다.

 

이 부분은 영화 속 메타포다.

다른 말로 "결혼을 한다고 결혼의 기술을 보너스로 얻는 게 아니라고"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아 큰 일 날 뻔 했다고, 내리막길이면 어쩔 뻔 했냐"고 말했지만,

결혼의 기술은 브레이크 밟아야 할 때 브레이크 잘 밟고 엑셀 밟아야 할 때 엑셀을 잘 밟는 것이다.

 

상황에 민감하게 맞추어서 이 두 사람은 그 걸 잘 못했으므로 결국 자전거를 타지 못한 채 방치 해 두었고 결국 조금씩 녹 쓸어간 것이다.

형태는 멀쩡해 보이나 사용할 수 없는 흉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둘 다 결혼의 기술이 서툴렀고 제3자가 개입됨으로서 서로를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소중함을 새로이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들은 다시 사는 것을 선택하였고,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행복해지리라.

 

하지만 조건이 있다.

둘 다 사랑의 기술과 결혼의 기술을 잘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넘어지기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고 생채기도 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술을 익히면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 사람은 꾹꾹 참기만 하고

한 사람은 고래고래 소리지르기만 하고

한 사람은 도망다니기만 하고

한 사람은 잡으러 다니기만 하고

이 고정역할에서 벗어나서 ‘주거니 받거니’ 역할을 교대로 한다면 좀더 진심을 다해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배려하고 도와준다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부부란 서로 마주보며 어정쩡한 춤을 추는 것

 

표현하지 않고 눈 마주치지 않고 꾹꾹 참기만 하는 남편에게서 아내 정인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자신이 매력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연애할 때 나는 예뻤고, 당신은 멋졌다. 아직도 내가 예쁘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함께 마주보며 춤추자고 제안한다.

 

쉘 위 댄스?

우아하고 완벽한 왈츠가 아닌 아비정전의 주인공들처럼 어정쩡하나 유쾌한 댄스를 춘다.

완벽한 박자와 동작이 중요한가!

두 사람이 즐겁고 좋은면 되지 않는가!

굳이 남들 사는 것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즐거울 수 있는 방식으로 사는 게 가장 중요할 것이다.

 

 

 

 

 

거리두기를 통해 전체를 볼 수 있다.

 

영화 속 정인은 말한다.

성기가 너무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서로 비슷하다고.

그가 사용한 탄알은 모두 의뢰인 남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가.

내 아내 정인에 대한 모든 것!

 

남편 두현이 공수한 탄알들을 받아서 성기는 큐피트 총을 난사했고 거기에 정인은 조금씩 탄복했다.

많이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면, 아는 것이 없어서 진정한 사랑을 못한다면, 성기는 정인을 사랑할 수 없고 남편 두현만이 정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제3자의 시선으로 관찰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남편 두현은 정인을 미행하면서 다른 남자와 함께 다양한 감정과 행동을 표현하는 모습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바로 앞, 근거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전에는 일부만 보이던 것이 전체가 함께 보이기 시작하고 형태가 일그러져 때로는 볼록하고 때로는 오목하게 보이던 것이 거리두기를 통해

본연의 모습 그대로 -각도의 장난침 없이- 온전하게 보게되는 것이다.

 

 

 

 

 

 

때로는 여행을 떠나보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행의 끝에 생각나는 그 사람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어떤 역할과 어떠해야한다는 책임감에서 면죄부를 주고 그 동안은 자유인으로서 나답게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자신이 원래 아름다웠고 본래 멋있었음을 확인하게 해 준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 낯선 것들의 아름다움에 미혹되지만 결국에는 익숙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여행이 끝나갈수록 못내 아쉬워지지만 결국 되돌아 온 집에서 우리는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

역시 내 집이 최고구나!

 

두현과 정인은 각자의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 같다.

정인은 자신을 아름답게 봐주는 성기와 새로운 여행길을 걸었고 두현은 아내 정인이 없는 빈 집을 지키면서 여행을 떠난 이가 엽서와 사진을 보내면 그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처럼 여행을 떠난 정인의 밝은 표정과 상기된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를 그리워하였다.

그녀가 있어서 답답하다고 느껴지던 집이 그녀가 없어서 허전하고 쓰산하게 느껴진다.

어차피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깨달음과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집으로 귀의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렇게 위험한 여행을 떠났던 정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소중함을 깨달은 그는 그녀를 정말 고맙게 안았던 것이다.

 

 

 

 

 

 

 

 

정인이 나에게 전해 준 메시지

 

 

치명적인 카사노바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사실 조금은 흔들렸지만) 남편을 향한 한결같은 아내 정인의 시선은 강성기와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잠시 안타까웠으나 결국 관계와 가정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순응적이고 일반적인 -하고 싶은 말 있어도, 반박하고 싶어도 꾹 참고 마는- 나에 비해

 

정인은 까칠하고 반항적이고 약간은 삐뚤어진 시각을 가진 듯하지만 그냥 그렇지하고 습관적인 관례의 체바퀴를 도는 나에게 정신 바짝 차리고 눈 크게 뜨고 제대로 표현하며 살라고 호소하는 듯 보였다.

사회의 관습, 관례, 매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그건 매너가 아닌 매너리즘이라고 톡 쏘아붙이는 것 같았다.

 

침묵을 무서워하고 침묵을 싫어하는 정인은 항상 도마를 두드리며 믹서기와 청소기 소리를 내면서 침묵하지 않고자 했다.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며 위선이라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위선에 대해 대항하는 단 한명 남은 투사같았다.

 

정인은 친절하게 나에게 속삭인다.

더 이상 속으로 꿀꺽 삼키지 말고 이제는 속 시원하게 밖으로 내뱉으라고...

 

 

 - 글 제공: 영화치료 칼럼리스트 김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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