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나의 자서전 - 셋 번째 운명적 사랑 부분에서
여고 졸업 후, 하루라도 볼 수 없으면 서운했던 친한 여러 친구는 내가 서울에서 합격을 하고도 가지 못한 무용과에 잘 다니고 있었고, 부산에서 대학 합격한 친구들, 그리고 사회 직장인으로 진출한 착한 친구? 모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철 없이 나는 어머니에게 옷 타령 트집이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화사한 봄날에 시샘의 봄바람 불었다.
그날은 운이 좋아서 지위가 높은 친구 아버지 덕분으로 진해 벚꽃 놀이를 혼잡한 시외버스를 타지 않고도 신문사에서 주체하는 벚꽃 구경 승차권을 구했고, 여러 친구와 고급 관광 배에 탈 수 있었다.
관광객으로 가득 찬 갑판 위에는 사회자가 진행하는 장기자랑으로 시끌벅적했고, 음악 밴드 소리에 맞추어 바다의 하얀 거품들은 너울에 춤추고, 만국기는 바닷바람에 춤추는 것 같았다.
흥에 취한 관광객 어른들은 홍일점인 우리에게 젊음이 부럽다고 장기자랑에 막무가내 밀어냈었다.
우리의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그날의 사람들에게 관심 대상이 되는 것 같았다.
멀미에 유난히 약한 나는 파도의 너울에 견디지 못해 고통으로 토하고 있었고, 때마침 내 옆으로 비켜 지나가시던 나이 드신 신문사 사장님께서 등도 두드리고, 냉수도 챙겨주셨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게 되었고 사장님은 장기자랑 때, 관심 있게 잘 보았으며 용감해 보이고 쾌활한 모습이 신문기자가 적성에 맞을 것 같다며 언제라도 한 번 찾아오라면서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날도 옷 타령으로 어머니와 다투게 되었다.
< 다른 집 딸들은 졸업하고 벌써 첫 봉급 받아서 빨간 내복도 사 준다는데. 철없는 우리 딸은 옷 타령이나 하니 쯧쯧,.>
< 그렇게 빨간 내복이 좋아? 그럼 나도 돈 벌어서 대학도 가고, 엄마 빨간 내복도 사 주께. >
지금이나 그때나 엄친아 타령은 제일 듣기 싫은 소리이고, 그 말에 대답도 잘해주는 다른 부모님을 비교하면서 경제적으로 못해주는 부모님 속을 상하게 했었다.
< 제발, 네 성격에 직장에 사흘만 다녀도 내 손가락에 장을 찍지. >
우리 아버지는 형제분만 넷 분만 계셨고 고모가 없었다.
내 위로 친사촌 오빠 일곱 분과 친오빠 셋 분( 한 분은 어릴 적에 돌아갔음) 흔한 고모도 없는 10명의 아들만 둔 집안에서 귀하게 생각한 첫 맏딸이라 이름마저도 집안 항렬에 맞추어 지어주셨고 또한, 어머니의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으로 아무것도 못 해보신 맺힌 한을 첫딸에게 조금이라도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던 우리 어머니는 웬만하면 못 살던 그 시절에도 해 주셨기 때문에 버릇없고 고집만 센 철없는 딸이라 생각하셨다.
그날 밤, 어머니와 다툰 것이 생각나 평소에 잘 보지 않는 신문을 찾아서 사원 모집 광고를 볼펜으로 일일이 표시하면서 찾아보았다,
내가 괜찮아 보이는 곳은, 거의 대학교 졸업자 또는 전문대학 졸업자밖에 없었다.
세상을 아주 쉽게 생각하고 어머니에게 내가 돈 벌어서 대학도 가고 빨간 내복도 안겨준다고 큰소리쳐놓고, 아무리 눈을 비벼서 찾아보아도 그런 곳은 없었다.
그때 내 어린 나이와 학벌에 딱, 맞아 들어가는 것은 개인 사무실 경리와 공장뿐이었다
내 강한 자존심에 실망을 느끼고 덮는 순간에 큰 광고가 눈에 띄었다.
어디서 기억나는 신문사에서 신입사원 또는 수습기자 모집 !
역시나 그곳도, 4년제 대학교 졸업자 또는 전문대학 졸업자이었고, 실망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했었다.
그 신문사는 벚꽃놀이 주체한 신문사였고, 사장님께서 어쩜 기억하실 것 같아서 한 번 부딪쳐 보자는 뜻으로 별생각 없이 받아두었든 명함을 책상 서랍 속에서 뒤엎어 겨우 찾았었다.
다음 날 전화로 대충, 안부 인사를 드리고 이번 기회에 신문사 이력서를 의논했었다.
사장님께서 찬성하셨고 사장님이 알아서 할 것이니 학벌과 어린 나이는 올려서 적어내라 하셨다.
요즘 흔히 논란이 되는 허위 이력서가 된 것이다.
(옛날 그 시절은 사장님의 힘이 많은 시절이었다.)
신문기자에 대한 앞날의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올라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험 당일 날. 미리 준비한 화장품으로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 보일까? 오직 그런 생각으로 처음 해보는 아주 서툰 짙은 촌스러운 화장에 검정 마스카라도 진하게 올렸고 아주 촌스러운 치마 길이가 긴 정장 숙녀복까지 마무리해서 입었다.
또한, 미용실에서도 최대한 나이가 들어 보이게 해 달라고 주문했었다.
미용실 거울 속에 완성된 내 모습은 완벽한 낮 도깨비로 변해 있었고, 입술 옆에 까만 점 하나만 찍으며 매우 유치한 여인 모습? 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아주 됐어! >
그렇게 꾸미고 시험장에 급하게 숨을 헐떡이고 뛰어 왔으나, 지각하고 말았다.
이미 필기시험은 시작되었고 지각으로 시험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통제했었다.
나는 사장님을 내세워서 통제하는 직원을 간신히 밀어내고 급하게 교실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섰었다.
( 그날은 일요일 고등학교 교실을 임시 시험장으로 사용했다.)
조용하고 긴장감이 고조된 교실에 지각생이 뻑뻑한 미닫이 쇠 끌리는 소리로 말미암아서 빽빽이 가득 찬 취업 수험생들이 동시에 뒤 돌아보는 것 같았다.
미안한 생각으로 최대한 키를 낮추어, 교실 맨 끝에 앉아 숨을 들이쉬었고 안도감으로 화장하지 않은 평소 습관으로 생각없이 땀으로 가려운 눈가를 마스카라 화장한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비벼 문질러버렸다.
그 당시에는 등사기 프린터라서, 문제가 잘 보이지 않았고, 시험 감독관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시험 감독으로 돌아다니는 두 명의 감독관을 둘러보았지만, 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교탁 위에 있는 또 다른 시험 감독관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교단에 서있는 시험 감독관을 쳐다보는 순간에 전생에서 만난 빚쟁이를 현실에서 또다시 만난 듯이 내 심장과 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고 잠시 모든 사물이 멈추어 버리고 두 사람만 살아 움직이는 착각이 생길 정도로 당황하면서 손에 든 볼펜마저 놀라서 놓쳐버렸다.
( 어디서 만난 사람이지? 분명히 아는 얼굴이야,. 도대체 어디서 봤을까? 누구지?)
확실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시험 도중에도 답답할 만큼 궁금증이 계속 밀려왔었다.
그 사람이 내 책상 곁에 다가와서 손수건을 내밀고 작은 음성으로 말했었다.
<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 헉, 내 얼굴~ >
눈가 얼룩이 생각났으며 놀라서 탄성이 나왔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추어진 내 얼굴은 그나마 아침의 유치한 여인이 훨씬 나았고, 조금 전 땀난 손으로 짙은 화장을 문질러 놓은 눈가는 마스카라 먹물이 한쪽 눈가에 퍽 퍼져 중국의 팬더 곰의 눈이 되어있었다.
그날 그 사람에게 보인 나의 첫인상은 들어올 수 없는 시험장에 멋대로 들어선 지각생, 마스카라 검정 먹물이 퍽 퍼진 팬더 곰의 한쪽 눈가,
정돈되지 않은 짙은 얼룩진 화장, 하늘로 치솟아 올린 잔뜩 부풀어진 머리, 세련되지 못한 아주 촌스러운 숙녀복 기타 등등.
한마디로 도저히 정상인으로는 볼 수 없었고 머리에 꽃 하나만 꼽으면? 아무튼, 그런 모습이었다.
나의 두 번째 운명적 사랑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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