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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살면서 이런저런 12월 이야기들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4. 12. 13. 13:58

 

 

캐나다에 살면서 이런저런 12월 이야기들

 

 

첫 번째 이야기

캐나다에서 알고 지내는 아주머니가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저씨는 60대 중반이고 아주머니는 50대 중반이며 그들은 이미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여기서 만나서 재혼하였다.
아저씨는 캐나다 이민 온 지 거의 40년이 다 되어 영어도 잘하고 아주머니는 캐나다 온 지 10년 되었으나 영어를 못하는 분이다.
나이 들어 만난 재혼이라 서로 살아온 방식도 다르고 자주 의견 충돌이 많았다고 한다.
이전 부부 싸움에도 몇 번 남편의 폭행이 있었지만, 아주머니는 아직 캐나다 문화에도 익숙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경찰이 와도 부부 문제는 두 분이 알아서 하라는 참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던 분이라 참고 살았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걱정시키는 것과 또다시 재혼을 깨 틀고 싶지 않아서 웬만하면 참았단다.

 

한국도 요즘 그렇지만, 캐나다는 부부 싸움에서 구타로 신고하면 정말 큰 일난다.
신고하면 바로 경찰이 출동하고 쇠고랑을 채우고 연행되어 간다.
이번 부부 싸움에도 남편이 먼저 때렸고, 아주머니도 몹시 화가 나서 옆에 있는 책을 남편에게 던졌단다.
캐나다 법을 잘 아는 남편이 베란다에 나가더니 어딘가 영어로 전화하더란다.
곧이어,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던진 책을 무기 증거물로 거두고 아주머니 손목을 뒤로 꺾어서 쇠고랑을 채우고 추운 밤에 아주머니는 맨발에, 외투도 못 입고 동네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연행을 당했단다.
영어를 못하니 한국말로 뭐라고 하여도,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너만 손해라고 하였고 영어가 되는 아들에게 연락을 좀 해달라고 부탁해도 외부인은 이곳에 올 수 없으니 내일 변호사가 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고 하더란다.

얼마 전에 본 한국 실화 영화 전도연과 고수가 출연한 "집으로 가는 길"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덩치 큰 백인 여자 경찰관이 경찰 지휘봉 막대기로 막 쿡 찌르고 완전히 죄인 취급하는 그 영화처럼,
아주머니도 그런 취급을 받으면 외투 없이 맨발로 춥고 사늘한 곳에서 무섭고 두려운 밤을 꼬박 새웠단다.

아침에 한국 국선 변호사가 왔고 아주머니는 한국 변호사를 만나니 매우 반가워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를 했는데 변호사는 아주머니 말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영어 문서에 무조건 사인을 하라고 하더란다.
아주머니가 영어 문서라서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떻게 사인을 하느냐고 물었으나 사무적인 냉정한 말투로 일단 여기서 나가고 싶으면 빨리 사인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더란다.
아주머니는 사인하고 나면 자기 말을 들어줄 것 같아서 사인했는데 젊은 국선 변호사는 사인받은 서류만 챙기고 그냥 나가버리더란다.

오후에 한국 통역사가 왔고, 아주머니는 너무나 미칠 것 같이 답답했는데 비로소 자초 지경 한국말로 설명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더란다.
이 나라 법은 책이든 칼이든 어떤 물건으로 상대에게 사용해 상처가 나면 무기로 적용되어 중죄가 된다고 설명하니 그냥 화가 나서 책을 던진 것이 무슨 무기를 사용한 폭행죄냐고 하소연을 하더란다.
평소 남편에게 맞은 것을 그때 하지 못 한 증거 불충분으로 고소가 안 되지만, 어제 맞은 멍 자국을 증거 삼아서 남편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경찰에 맞고소함으로써 경찰이 그제야 남편를 연행하러 가더란다.

 

 

두 번째 이야기
40대 중반 되는 한국 남자도 부부 싸움을 하다가 아내가 악을 쓰면서 대들기에 말발 궁지에 몰린 성격 급한 아저씨가 그만 아내에게 때렸다가 아내가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결국,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8주간 가정 폭력 순화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영어를 잘못하는 사람이라 한국어 통역사로 동행하게 되었다.
가정 폭력 순화 교육장에는 다국적 사람들이 폭력죄로 가득 차 있었는데 덩치 큰 흑인을 비롯해 팔뚝에 문신한 험악하게 생긴 무서운 형님들이? 득실해 험악한 분위기에 잔뜩 겁을 먹은 한국 아저씨는 키도 작고 몸집도 빈약해 그 무리 속에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아주 불쌍해 보이더란다.
아내에게 잘못된 행동으로 이곳에서 무서운 형님들과 8주간 함께 교육을 받는 것을 생각하며 이것이 더욱 끔찍한 형벌 되어 통역사가 매주 수요일 만날 때마다 한국 아저씨는 갈수록 주눅이 든 모습으로 그들 속에 끼어 앉아 있어 매우 안쓰럽게 보였다고 한다.

 

 

세 번째 이야기
예전에는 영어권 나라에 가는 것만으로도 영어는 잘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암튼, 영어는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미국 LA, 캐나다 토론토 등‥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는 영어를 몰라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나 역시 토론토에서 살아본 결과도 그랬다.

왜냐하면, 한국사람들이 경영하는 슈퍼마켓, 미용실, 식당, 커피숍, 세탁소, 편의점, 여러 가계 등등‥

여기서 한국 사람들만 상대하면 생활에 불편하지 않아서 구태여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이곳에 이민 오신지 30~ 40년이 되어도 그렇게 살면서 영어를 하지 않은 분들이 매우 많다.

 

나에게 무엇하러 머리 아프게 영어 공부 하느냐고 하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고속도로에서 어느 백인의 차와 교통사고가 났단다.
현장에 바로 도착한 백인 경찰에게 피해자인 아주머니는 영어로 한마디도 설명할 수가 없었단다.
반면에 사고를 낸 백인은 경찰에게 자기가 유리하게끔 영어로 설명을 잘하니 피해자 아주머니가 거꾸로 불리해졌단다.
아주머니 말로는 영어도 못하니 백인 경찰도 더욱 인종차별을 하더란다.

그 후에는 영어를 못해도 걱정이 없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날은 누구나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넷 번째 이야기

수영장에서 만난 한국 할머니는 이민 1세대에 오시어 지렁이 줍기, 접시 닦기, 미싱공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고생 고생해서 자식들을 교육시킨 분이다.

고생은 하셨지만, 그래도 자식들이 의사, 약사, 회계사가 되어서 주변 사람에게 부러움도 받고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다들 그랬다.

그러나 할머니 자식들이 함께 사는 것을 모두 꺼려해서 혼자 유료 실버타운에 사신다.

자식들은 남들에게 말할 때 어머니가 혼자 편안하게 사시는 것이 좋아서 비싼 유료 실버타운에 사신다고 한다.

영어도 잘하신다고 하셨지만, 할머니 발음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그곳 백인 노인들이 끼워주지 않고 왕따를 시킨단다.

어느 날 그 실버타운에 갈 일이 있었는데 백인 할머니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지만, 그 할머니는 구석에 혼자 쪼그리고 있는 그 모습이 매우 씁쓸하게 보였다.

 


할머니 발음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며칠 전 캐나다 TV 골프 채널에서 우리나라 골프선수 최경주 님의 영어 인터뷰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선수라서 TV에서 인터뷰 하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다.

하지만 아나운서 눈빛에서 서툰 영어와 발음으로 무척 당황하는 모습이 영역 하게 비추어졌다.
본인은 영어가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지만, 함께 본 캐나다 사람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나운서가 다음 질문을 넘어가지 못하고 서둘러 마무리 하는 눈치가 아쉬웠다.

일상에서는 생활영어는 대충 그래도 서로 뜻이 통하지만, TV 인터뷰는 다르다.

통역사와 함께 인터뷰했으면 좀 더 긴 좋은 인터뷰가 되었을 텐데…
영어는 문장이 된다 하더라도 발음이 나빠도 그네들이 못 알아 듣는다. 

 

우리나라도 해외 여행도 많아졌고, 외국인들도 많이 들어오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나 역시 앞날을 몰랐고 외국에서 살 줄 몰랐다.

앞날을 알았다면 그 시절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을 것이다.

누구나 앞날은 알 수 없듯이 지금 영어 공부 하는 젊은이들이 이 글을 본다면 공부할 적에 정말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 2014년 12월 캐나다에서 복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