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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할머니와 캐나다인 할아버지 재혼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2. 2. 24. 16:25

 

 

 

 

 

           한국 할머니와 캐나다인 할아버지 재혼 이야기

 

 

 

캐나다에서 알게 된 어느 할머니 이야기이다.

할머니는 한국 산골 시골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평생 그곳에서만 사셨다고 한다.

남편인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툭하면 반찬 투정에 술주정으로 밥상을 잘 뒤엎어버리고 할머니에게 폭행도 잘하시어 할아버지의 큰 고안소리에 할머니는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나뿐인 아들에게 소를 팔아가면서 온갖 고생으로 서울에 대학을 보내셨단다.

그 아들이 결혼하고 직장도 변변치 못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바람에 서울에서 함께 살면서 또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마음고생이 무척 많으셨다고 한다.

아들은 그나마 다니는 직장도 그만두고 작은 사업하다가 실패해 캐나다에 이민 가는 바람에 홀로 시골집에서 외롭게 혼자 사셨다고 한다. 

 

아들이 몇 년 만에 한국 방문해 그나마 사는 작은 시골집과 남은 텃밭도 팔아 치우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 맞벌이하는 아들 집안일과 손주 보는 일을 하시겠다고 캐나다로 함께 따라오셨단다.

캐나다에 오시어 매일 손주를 데리고 동네 공원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셨는데 그곳에서 매일 운동하러 나오시는 백인 할아버지를 보시게 되었단다.

처음에는 백인 할아버지가 손주를 귀여워하면 인사말만 건네도 영어 한마디도 못하시는 할머니는 무서워 도망하셨다고 한다.

공원에서 자주 맞주치다 보니 얼굴도 익히고 손주에게 맛있는 과자도 주시고 친절해서 두려움도 차츰 없어지고 손발과 표정으로 서로 대충 뜻을 알아들으면 몇 개월 동안 친근하게 그렇게 정이 드셨단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하시어 할머니는 호주머니에 늘 비상용으로 간직한 번호를 보여 드렸단다.

아들과 통화가 되어 동네 공원에서 만난 할머니 친구라면 할아버지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고 싶다고 하셨단다. 할머니와 아이에게 평소 그 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들은 지라 식사초대에 받고 가셨단다.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할머니와 언어가 안 통해서 그러니 도와달라면 할아버지도 부인과 오래전에 사별하고 자식들은 모두 출가해 멀리 있고 외롭게 혼자 사셨다면 작지만, 집과 나라에서 매달 나오는 연금도 제법 나오니 그동안 할머니를 보고 왔는데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그간 정이 많이 들어 노후를 친구처럼 함께 의지하면 함께 살고 싶다고 프러포즈를 하셨단다.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가 너무 화들짝 놀라서 할 말을 잊고 아들은 자기 어머니는 영어 한마디 못하시고 이 나이에 무슨 결혼이냐고 적극 반대 의견을 내세우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할머니도 말이 되지 않는다면 절대 반대하셨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들 집에 살자니 영주권도 없어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한국에는 이제는 집도 없고 또한 보고 싶은 아들과 손주 없이 멀리서 외롭게 노후를 보내는 것도 서글프고, 캐나다에서 아들 집에 억지로 버틴다고 해도 옛날 노인네처럼 한 사람 식사 입이라도 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무엇보다도 며느리 눈치를 계속 받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백인 할아버지 옆에 있으면 우선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 아들, 손주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생각 끝에 재혼하셨단다.

 

결혼하셨으니 캐나다 시민권자가 되시어 한국으로 안 가시고 아들과 손주를 계속 볼 수 있어 우선 좋았다고 하셨다.

옛날 한국 할아버지는 툭하면 밥상을 잘 뒤집고 술주정에 폭행과 큰 고안소리만 치는 것만 보다가 백인 할아버지는 친절하게 레이디 퍼스트로 차를 타더라도 미리 문도 열어주고 모든 것을 자상하게 챙겨주시고 평생 받아보지 못한 사랑한다는 표현하는 달콤한 말과 항상 손을 꼭 잡고 함께 산책과 자가용 타고 쇼핑도 하시고 생일에 평생 받아 보지 못한 꽃다발도 받았다며 자랑하신다.

백인 할아버지도 예전 백인 할머니에게 볼 수 없는 따뜻한 밥상과 와이셔츠 다림질, 구두도 빤질 하게 닦아놓고 옛날 한국 할머니의 하늘 같은 남편대접으로 지극 정성으로 대하니 감격해 하신다고 했다.

 

오직 불편한 것은 언어가 답답해 손발 짓과 그림으로 언어를 통하며 하루에 한 번씩 할머니 아들에게 전화해 할머니에게 대신 이런 말 저런 말 통역해 달라는 것에 아들이 몹시 귀찮아한다고 그런다.

이제는 아들 며느리 눈치 안 봐도 되고 새로운 할머니 집에서 인생을 다시 사신다면 즐거워하시는 할머니 얼굴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 2012년 2월 캐나다에서 복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