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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역사에 대하여 - 배경음악 / Take Five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21. 4. 15. 11:14
 
 
재즈의 역사

History of Jazz

Encyclopaedia Britannica

 

 

  배경음악 Take Five

 

 

4525

 

 

재즈 jazz

 

유럽 음악의 화성구조와 아프리카 음악의 복잡한 리듬의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계 흑인의 즉흥성이 강한 음악.말의 억양을 모방했고 블루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재즈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835년에 이미 집단농장에 브라스 밴드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1840년대에는 유랑 악단이 활동하고 있었다.

1890년대에 행진곡에서 형식 구조를 따온 당김음 음악인 래그타임이 발전했는데 이것이 재즈의 전신이다

 

 

최초의 재즈 밴드 양식은 오랜 문화적 전통과 여러 인종이 혼합되어 있던 도시인 뉴올리언스에서 발전했다.

1890년대말에 시작한 찰스 '버디' 볼든의 밴드는 래그타임을 즉흥양식으로 연주했고, 세기가 바뀔 무렵 뉴올리언스의 여러 밴드들이 집단적인 즉흥양식으로 연주했다.

이 양식은 백인 밴드인 오리지널 딕실랜드 재즈 밴드에 의해 모방되었으며 1917년 이 악단은 처음으로 음반을 내놓았다.

1920년대초 대표적인 밴드로는 뉴올리언스의 리듬 킹스 밴드, 젤리 롤 모턴 밴드, 킹 올리버 밴드가 있는데 이중 대위적 성격이 강한 음악을 구사한 킹 올리버 밴드는 래그타임보다 유려한 흐름을 지녔다.

이 악단은 트럼펫의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하여 다른 연주자들의 즉흥 솔로 연주로 유명했으며 1920년대말 시카고 양식을 발전시켰다.

관현악 편성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악단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플레처 헨더슨(작곡에 돈 레드먼), 폴 화이트먼(코넷에 빅스 바이더벡), 칙 웨브, 지미 런스퍼드, 베니 모튼 등이 이끄는 악단들이 스윙을 발전시켰다

  

West Africa in the American South: gathering the musical elements of jazz

 

래그타임 ragtime당김음(syncopation : 약박에 강세가 주어짐)의 효과를 강조한 흑인음악 양식.

 

래그타임은 재즈를 낳은 여러 요소 중 하나로, 1899년경에서 1917년까지 미국 대중음악을 지배했다.

19세기말 미시시피와 미주리 강 유역에서 활동한 홍키 통크(honkytonk : 원래 싸구려 술집, 연예장을 뜻하는 흑인 속어이며 그곳에서 연주하던 소박하고 즉흥적인 음악양식을 말함)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순회극단 쇼의 노래, 흑인 밴조(기타와 비슷한 미국의 재즈 및 민속악기) 음악, 케이크워크(cakewalk : 19세기말 미국에서 발생해서 유럽에까지 유행한 사교춤)의 당김음 리듬, 유럽 음악 요소 등의 영향을 받았다.

래그타임은 형식적 구성감이 있는 피아노 곡을 통해 특유의 표현을 이루었고, 왼손으로는 4/4박자나 2/4박자와 같이 규칙적 리듬을 치는 한편, 오른손으로는 빠르고 힘찬 당김음 선율로 앞으로 나가려는 추진력을 표현했다.

 

  

 

'래그타임의 왕'이라고 불리는 스콧 조플린은 1899년 초기 래그타임 작품 중 가장 성공적인 〈The Maple Leaf Rag〉를 발표했다.

그는 래그타임을 고전음악의 영원하고도 진지한 한 갈래로 간주했으며 이 양식으로 수백 곡의 소품, 연습곡,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밖에 중요한 연주가 중 세인트루이스에서 활동한 인물로 루이스 쇼빈, 토머스 M. 터핀(세인트루이스 래그타임의 아버지)을 들 수 있고, 뉴올리언스에서 활동한 인물로 토니 잭슨이 있다.

20세기 후반에 테리 월도의 〈이것이 래그타임 This Is Ragtime〉(1976)은 초창기의 래그타임과 20세기 후반 래그타임의 부활을 다 같이 다루고 있다. (스콧 조플린 등에 의해 작곡된 피아노 래그타임이 널리 인기를 끌었다(제임스 P. 존슨과 팻츠 월러 같은 피아니스트의 '스트라이드' 양식은 래그타임에서 발전한 동부 해안 지방의 재즈 양식임).

  

비밥 이후 생긴 또다른 음악은 레니 트리스태노(피아노), 모던 재즈 콰르텟, 길 에번스(클로드 손힐 밴드를 위해 관현악 편곡 담당), 마일스 데이비스(트럼펫), 웨스트 코스트 악파의 음악이 포함된다.

좀더 자유분방한 성향의 그룹으로는 호레이스 실버 밴드와 아트 블래키 밴드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밴드는 모두 강한 블루스적 성격과 함께 드럼의 비중이 보다 강한 하드 밥이라는 음악을 구사했다.

러셀, 트리스태노, 찰스 밍거스의 선구적 작업을 계승한 데이비스는 〈카인드 오브 블루 Kind of Blue〉(1959) 음반에서 재즈에 선법을 도입했고, 오넷 콜리먼(알토 색소폰), 존 콜트레인, 앨버트 에일러(테너 색소폰) 등은 새로운 정서적 강렬함을 지닌 연주를 발전시켰다 .

이들은 기존의 재즈 화성과 선율을 버리고 울부짖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음들을 급비상시키는 기법을 좋아했고 리듬이 강한 반주를 추구했다.

한편 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돈 체리, 돈 엘리스 등은 다른 문화권의 음악, 특히 인도와 아랍 음악을 융합시킨 재즈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

 

 

즉흥연주 卽興演奏, improvisation1950년대말에 등장한 재즈 즉흥연주 양식.

 

이후 재즈의 주된 흐름이 되었으며, 특히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와 색소폰 연주자인 오넷 콜먼, 존 콜트레인, 아키 셰프, 알버트 에일러, 샘 리버스 등이 이끄는 그룹과 시카고에서 활동하던 AACH(음악예술인발전협회)가 이끄는 그룹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자유로운 즉흥연주가 특징이며 박자를 엄밀히 지키는 일이나 반주의 전통적인 역할 분담, 연주에 앞서 화성(화음 진행)을 갖추어놓는 일 등 이전의 재즈 즉흥연주에서 사용하던 방법들에 매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프리 재즈의 즉흥연주는 미리 설정한 화성에 준하는 법칙적인 음진행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고, 순전히 무조성적 혹은 무리듬적인 음악은 극히 드물었다.

 

정열적이면서 집단적인 즉흥연주를 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한 프리 재즈는 격렬한 소리를 내서 둔탁한 음향의 짜임새를 만듦으로써 이전의 재즈 양식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는 서정성,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 등의 특성이 보이지 않는다.

1975년에는 에커드 조스트의 〈프리 재즈 Free jazz〉가 출판되었고, A. B. 스펠먼의 〈4명의 비밥인의 삶〉(1966, 1971 〈흑인 음악〉으로 바뀜)에는 오넷 콜먼과 세실 테일러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프리재즈 free jazz
1950년대말에 등장한 재즈 즉흥연주 양식.

 

이후 재즈의 주된 흐름이 되었으며, 특히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와 색소폰 연주자인 오넷 콜먼, 존 콜트레인, 아키 셰프, 알버트 에일러, 샘 리버스 등이 이끄는 그룹과 시카고에서 활동하던 AACH(음악예술인발전협회)가 이끄는 그룹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자유로운 즉흥연주가 특징이며 박자를 엄밀히 지키는 일이나 반주의 전통적인 역할 분담, 연주에 앞서 화성(화음 진행)을 갖추어놓는 일 등 이전의 재즈 즉흥연주에서 사용하던 방법들에 매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프리 재즈의 즉흥연주는 미리 설정한 화성에 준하는 법칙적인 음진행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고, 순전히 무조성적 혹은 무리듬적인 음악은 극히 드물었다.

 

정열적이면서 집단적인 즉흥연주를 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한 프리 재즈는 격렬한 소리를 내서 둔탁한 음향의 짜임새를 만듦으로써 이전의 재즈 양식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는 서정성,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 등의 특성이 보이지 않는다.

1975년에는 에커드 조스트의 〈프리 재즈 Free jazz〉가 출판되었고, A. B. 스펠먼의 〈4명의 비밥인의 삶〉(1966, 1971 〈흑인 음악〉으로 바뀜)에는 오넷 콜먼과 세실 테일러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1970년대의 경향으로는 음악적 장치, 특히 록 음악에서 빌려온 리듬 장치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자악기로 실험하는 재즈 음악가들이 등장하는데, 웨더 리포트 그룹과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가 가장 성공을 거두었다.

또다른 경향으로 무반주로 선율악기를 즉흥연주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1960년대의 프리 재즈(free-form jazz)의 전통은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와 시카고의 아트 앙상블 같은 그룹에 의해 계승되었다

 

 

The King and Carter Jazzing Orchestra
1921

 

재즈록 jazz-rock fusion이라고도 함.
1970년대 시작된 대중적인 재즈 양식.

 

솔로 연주자의 모던 재즈 즉흥연주는 베이스 선율들과 드럼으로 반주되며, 전자악기와 댄스 리듬을 강조한 록 음악의 악기 편성을 사용한다.

여러 재즈 음악가들이 실황 연주나 음반에서 재즈록을 부분적으로 사용했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소수의 재즈 음악가들이 재즈록 장르 안에서 독창적인 자기 양식을 만들어냈다.

중요한 선구자는 마일스 데이비스이며 그와 함께 활동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허비 핸콕, 칙 코레아, 조 자위널,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웨인 쇼터, 기타 연주자인 존 맥롤린 등이 주목할 만하다.

 

1940년대 중반 스윙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가장 많은 청중을 끈 재즈 양식 중 하나가 되었다.

스윙 시대의 빅 밴드처럼 재즈록 그룹은 즉흥연주를 최소한으로 줄인 양식으로 청중들로부터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

이 양식은 '크로스 오버'('건너다'라는 뜻)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졌는데, 음악 판매가 재즈 시장으로부터 팝 음악 시장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재즈록은 일부는 존 콜트레인으로부터, 일부는 록음악이나 현대 콘서트 음악으로부터 새로운 어법을 빌려왔다

 

 

스윙 swing1935년~40년대초까지('스윙 시대') 두드러졌던 재즈 양식 또는 재즈 음악의 독특한 동적·리듬적인 움직임.

 

음악적으로 볼 때 스윙은 재즈의 전통을 부분적으로 희석시키고 있는데, 스윙 악단은 연주자를 16명까지 확대시키고 있으며, 재즈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즉흥연주적인 데 비해 스윙은 연주자들에게 악보로 고정된 음악을 훨씬 많이 연주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스윙은 또한 재즈를 전미국과 전세계에 걸친 시장에서 진정한 상업적인 음악으로 만들려는 최초의 시도에서 나왔으며, 그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스윙 시대는 재즈의 사회학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 이전까지 재즈가 대중들에게 부도덕(뉴올리언스의 사창가) 또는 불법(시카고의 교도소)과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스윙이 장소를 무도장으로 옮겨감에 따라 재즈도 존중받게 되었다.

 

스윙 밴드는 금관·목관·리듬 악기별로 연주자들을 모집하여 조직했으며, 이들이 연주할 음악의 관현악 편곡자를 고용했다.

1920년대 흑인 밴드 리더인 플레처 핸더슨이 자신의 밴드에서 사용한 이 방법은 나중에 인기를 얻으면서 백인 악단들에게도 채택되었다.

빅 밴드에서 사용된 음악적 기교들은 비교적 단순하다.

악단의 각 섹션들은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대위법을 이루어 연주했고, 음악적으로 대화하기도 했다.

자주 사용되었던 또다른 수법으로 리프(riff)가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악구의 반복으로 반복의 단순한 힘에 의해 청자들을 거의 최면상태까지 몰고간다.

 

스윙 시대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중과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전국으로 확산되어야 했으며, 백인의 취향에 맞아야 했다.

이 시기 동안에는 유명한 흑인 밴드(예를 들면 카운트 베시, 듀크 엘링턴, 치크 웹, 지미 런스퍼드 밴드 등)도 많았지만, 백인 밴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대표적인 백인 밴드 리더로는 베니 굿맨, 해리 제임스, 토미와 지미 도로시, 글렌 밀러를 들 수 있다.

굿맨은 백인과 흑인 연주자를 함께 썼으며, '스윙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듀크 엘링턴 밴드가 최고로 꼽혔으며 카운트 베시 밴드가 그 다음으로 평가되었다.

 

The precursors of modern jazz

 

빅 밴드가 열광적인 인기를 얻던 시기에 그와 함께 솔로 음악이 꽃피었는데, 그러한 솔로 연주자 가운데는 피아니스트 패츠 월러와 테너 색소폰 연주자 콜먼 호킨스와 같은 소그룹 연주자를 비롯하여,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또다른 클럽에서 솔로 활동을 한 빅 밴드 연주자도 있었다.

솔로로 활동한 최고의 명인들로는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 조니 호지스, 베니 카터, 추 베리, 윌리 스미스와 트럼펫 연주자 로이 엘드리지, 벅 클레이턴, 레이 낸스, 쿠티 윌리엄스, 그리고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 아트 테이텀과 기타 연주자 찰리 크리스천, 베이스 연주자 지미 블랜턴, 트롬본 연주자 잭 티가든, 딕키 웰스, 가수 빌리 할리데이를 들 수 있다.

스윙 시대는 재즈의 화성적 실험시대 이전에 꽃핀 재즈 사상 최후의 전성시대였다.

절정기에 스윙은 즉흥 예술의 성취를 통해 현재의 화성적 관습과 대 창작가들의 양식적 개별성의 균형을 이루었다.

 

 스윙은 규칙적인 리듬과 밴드의 섹션들 사이 음향의 대조가 특징이며 카운트 베시, 베니 굿맨, 아티 쇼, 도로시 형제 등이 이끄는 그룹들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아트 테이텀(피아노), 로이 엘드리지(트럼펫), 레스터 영(테너 색소폰) 같은 연주자들의 활동을 통해 솔로 즉흥연주의 영향력이 커졌고 또한 이 시기에는 재즈 역사상 최고의 가수로 알려진 빌리 홀리데이가 출현했다.

후기 스윙 음악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듀크 엘링턴은 모턴과 같이 뉴올리언스 양식을 구사했으며, 독창적인 테마에 토대를 둔 즉흥연주를 강렬한 색채와 정교한 균형감을 지닌 악곡으로 승화시켰다.

작곡의 전통은 재즈의 후기 역사에서도 셀로니어스 멍크, 존 루이스, 조지 러셀 등의 작품 속에 이어진다. 

 

 

비밥 bebopbop이라고도 함.
모던 재즈 최초의 한 유형.

 

1940년대 후반에 재즈를 대립적인 두 진영으로 나누었는데, 이 말은 이 음악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2음으로 된 스타카토 악구를 의성어로 만든 데에서 유래했다.

이 음악은 처음에는 일반 청중뿐 아니라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결과 나타난 첫째 구(舊)악파와 신(新)악파 사이의 균열과 2번째로 재즈 음악가와 청중 사이의 균열이 상당히 깊었고 이중 2번째 균열은 아직도 완전히 치료되지 않고 있다.

 

이전의 재즈가 본질적으로 온음계(서양의 전통 장조·단조 7음계에 기초해서 선율과 화성을 쓰는 방식)적이었던 반면에 새로운 운동을 전파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즈를 반음계(반음계의 12개 음을 모두 사용하는 방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새로운 재즈 독주자들에게 알려진 화성의 영역은 끝없이 확대되었다.

비밥은 옛 재즈의 화성을 취하여 이것에다 부가적인 '대리'화음들을 덧붙였다.

또한 비밥은 드럼 연주자의 리듬에서 메트로놈의 규칙성을 깨뜨렸고, 2명의 독주자가 동시에 연주하게 하거나 여러 마디에 16분 음표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그결과 복잡한 즉흥 연주의 효과가 만들어졌다.

비밥 운동은 1940년대에 트럼펫 연주자인 디지 길레스피, 기타 연주자인 찰리 크리스천, 피아니스트인 몽크, 드럼 연주자인 케니 클라크 등의 연주로 시작되었다.

특히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알토 색소폰 연주자였던 찰리 '버드' 파커였다.

 

하드 밥 또는 펑키라 알려진 후기 비밥 양식은 가스펠 음악과 리듬 앤드 블루스에서 발전했으며, 그 음악의 요소들을 흡수했다.

이 시기에는 특히 호레이스 실버가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악단의 리더로 활약했다.

또다른 하드 밥 캄보(3~8명으로 편성된 재즈 악단)의 리더로는 캐논볼 애들리와 아트 블래키를 들 수 있다.

 

비밥(bop이라고도 함)은 전후 최초의 재즈 양식이며 찰리 파커(알토 색소폰), 존 버크스 '디지' 길레스피(트럼펫)에 의해 개발되었다.

불규칙한 악센트와 복잡한 교차 리듬이 특징인 길레스피의 화성 변화 즉흥연주는 새로운 강렬함을 지니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비밥에 대한 반발로 나온 쿨 재즈가 등장했는데, 이중 일부는 스탠 게츠(테너 색소폰)와 게리 멀리건(색소폰)의 앙상블 연주처럼 레스터 영의 음악에서 유래했다.

 

Orchestral jazz

 

비밥 이후 생긴 또다른 음악은 레니 트리스태노(피아노), 모던 재즈 콰르텟, 길 에번스(클로드 손힐 밴드를 위해 관현악 편곡 담당), 마일스 데이비스(트럼펫), 웨스트 코스트 악파의 음악이 포함된다. 좀더 자유분방한 성향의 그룹으로는 호레이스 실버 밴드와 아트 블래키 밴드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밴드는 모두 강한 블루스적 성격과 함께 드럼의 비중이 보다 강한 하드 밥이라는 음악을 구사했다.

러셀, 트리스태노, 찰스 밍거스의 선구적 작업을 계승한 데이비스는 〈카인드 오브 블루 Kind of Blue〉(1959) 음반에서 재즈에 선법을 도입했고, 오넷 콜리먼(알토 색소폰), 존 콜트레인, 앨버트 에일러(테너 색소폰) 등은 새로운 정서적 강렬함을 지닌 연주를 발전시켰다 .

이들은 기존의 재즈 화성과 선율을 버리고 울부짖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음들을 급비상시키는 기법을 좋아했고 리듬이 강한 반주를 추구했다.

한편 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돈 체리, 돈 엘리스 등은 다른 문화권의 음악, 특히 인도와 아랍 음악을 융합시킨 재즈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 

 

쿨 재즈 cool jazz

 

west coast jazz라고도 함.
1940년 후반 미국에 나타난 재즈의 한 양식.

 

'쿨'이라는 말은 마일스 데이비스나 모던 재즈 쿼르텟, 게리 멀리간, 레니 트리스태노 등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은근하고 절제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신문 음악평론가들이 이름 붙인 데서 비롯되었다.

부드럽고 은은한 음색에 비브라토는 느리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드럼은 밥이나 하드 밥 양식 등 당시의 다른 재즈 양식들에 비해 더 부드러웠고 다른 악기들과의 상호작용은 더 적었으며 선율 악기들은 대위법적인 집단 즉흥연주를 주고 받는 것에 새롭게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양식 안에도 감정의 범위나 복잡성의 정도, 악기편성 등에 있어서는 상당한 다양성이 존재했다.

'쿨'이라는 말은 로스앤젤레스를 기점으로 한 색소폰 연주자 데이브 펠의 감성적이고 가벼운 음악과 뉴욕을 기점으로 한 피아니스트 레니 트리스태노의 복잡하고 강렬한 음악을 지칭하기도 한다.

 

쿨 재즈의 녹음 활동과 악보 출판이 백인 재즈 음악인들의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에는 게리 멀리간과 데이브 부르벡, 쇼티 로저스 등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1950년대초와 중엽에 캘리포니아를 기점으로 해서 활동했고, 웨스트 코스트 재즈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지만 연주자들 대부분은 이곳 출생이 아니었고 또한 이곳에서는 아주 잠시 동안만 활동한 경우도 있었다.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나 트럼펫 연주자 디지 길레스피의 '핫' 모던 재즈 양식의 계승자들과 마찬가지로, 쿨 재즈 양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던 테너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이나 쿨 재즈의 개척자 마일스 데이비스의 후계자들도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활동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백인 색소폰 연주자인 게리 멀리건과 아트 페퍼가 이른바 웨스트 코스트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름을 떨치는 동안 텍스터 고든이나 워델 그레이 같은 유명한 흑인 색소폰 연주자들(이들 모두 파커의 영향을 받은 핫 재즈 양식의 계승자들임)도 같은 도시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그당시에 보스턴에서는 색소폰 연주자인 존 파포르타와 트럼펫 연주자인 허브 포메로이가 쿨 재즈 양식으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서부연안(웨스트 코스트)에서 당시 연주된 모든 양식을 쿨 재즈 양식이라 할 수도 없고, 이 양식이 서부연안에서만 국한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출처; tong. nate justinKIM에서 발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