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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아티스트 방/엘비스 프레슬리

My Way -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22. 7. 19. 01:46

 

 

 

Elvis Presley 

 

엘비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1935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의 이스트 투플로에서 태어나 그의 부모는 매우 가난해 엘비스는 음악 레슨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가 성장해 트럭 운전기사가 되었는데 우연히 1953년 여름 엘비스는 4달러를 지급해서 선 레코드 스튜디오에서 그의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는 노래 두 곡을 녹음했는데 샘 필립은 엘비스의 노래를 듣고 1954년에 That's All Right 를 녹음할 것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그의 어머니에게 분홍색 캐딜락을 사드렸다. 영화 '러브 미 텐더 (Love Me Tender)'에 영화 데뷔도 했다. 1956년 ‘Heartbreak Hotel’을 시작으로 인기몰이를 하면 락앤롤의 시대를 열었다. 록과 컨츄리, 가스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흑인의 사운드와 흑인의 감각으로 노래할 수 있었던 최초의 백인이었고 그의 음악 속에서 우상(Idol)이란 용어가 생겼다. 지금까지 총 10억 장 이상의 앨범 판매를 기록한 최초의 인물이며 생애 통산 149곡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총 18곡의 No.1 싱글을 배출했다. 또한 49장의 골드 및 플래티넘 앨범 등, 그의 음악은 명예 전당에 올랐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육감적인 목소리로 로큰롤의 역사를 이루어놓은 로큰롤의 제왕이 되었다. 이 기록은 엘비스가 최초이다. 그러나 프레슬리의 화려한 명성과 인기만큼 사생활에서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그는 8년 연애 끝에 아내인 프레실라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마이클 잭슨의 전 아내이며 그녀의 아버지 엘비스 프레슬리 전 남편 마이클 잭슨도 세기의 유명인으로 약물 중독으로  비슷한 운명을 했다) 그들의 딸이 태어나 잠시 행복했으나 아내인 프레실라는 늘 공연으로 남편이 없는 집을 외롭게 보내다가 그녀의 태권도 사범과 사랑에 빠졌고 결국 결혼 5년 만에 이혼하였다. 그 후 엘비스는 고독한 초조감에 시달리면서 알코올에 의존했고 공연을 끝낸 허무감과 허기를 없애기 위해서 설탕이 듬뿍 뿌려진 도넛을 걸신들린 듯이 먹어대어 뚱뚱해졌다고 한다. 결국,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8월 16일 심장마비 사망했을 때 전 세계 라디오와 tv 프로그램들은 그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로 라디오에서는 하루 종일 그의 음악이 흘러 나왔다. 그의 고향 멤피스에 있는 묘소에는 지금도 많은 꽃들이 꽂혀 있고 . 그의 생일인 1월 8일에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지미 카터(Carter)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대중문화를 바꾼 인물이 엘비스 프레슬리였다고 했다. 엘비스는 미국 우표에 등재된 최초의 락 뮤지션이었다. 이 곡은 처음 프랭크 시나트라의 곡이며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My Way' 에서 그의 삶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My Way

 

     

 

  

And now, the end is near,

지금 이 시간,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네,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그리고 난 내 삶의 마지막 장을 마주하고 있지
My friend, I'll say it clear,

벗이여, 이제 사심없이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나의 확고했던 인생관을 말해주고 싶소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난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오며
I've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여러 번의 고난을 겪었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하지만 더욱, 훨씬 더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는 사실이오

Regrets, I've had a few

살아오며 약간의 후회는 있었소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하지만 그 순간의 일일 뿐이었네
I did what I had to do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And so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아무런 예외 없이 깨끗하게 일해왔소

I planned each chartered course,

나는 내 인생의 길들을 계획했고,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 way,

그 길을 따라 최선을 다 하며 살아왔소,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하지만 더욱, 훨씬 더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는 사실이오

Yes, there were times, I'm sure you knew

그렇소, 그 당시에는, 자네도 아는 사실이지만
When I bit off more than I could chew

어떤 때는 과욕을 부리기도 했었지
But through it all, when there was doubt,

하지만 모든 것을 겪어오며, 그것이 의심스러웠을 때는,
I ate it up and spit it out

딱 잘라버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네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모든 것들과 정면으로 맞서왔어도,
And did it my way

나는 당당하게 내 방식대로 해내었네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나는 사랑도, 웃고 울기도 하면서
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승리도 해 보았고, 좌절 역시 겪어보았네
And now, as tears subside

그리고 지금, 눈물을 거두고 나니
I find it all so amusing

모든 것이 추억이라는 것을 알았소
To think I did all that

내가 해 왔던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And may I say, not in a shy way,

나는 절대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Oh no, oh no, not me, I did it my way"

나는 내 길을 따라 당당히 걸어왔다고 말할 수 있소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남자의 목표, 그리고 남자가 성취할 것은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그것은 바로 그의 자신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오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말하고,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비굴한 자들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오
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지난 날들이 보여주듯 나는 어려움에 당당했고,
And did it my way!

나는 당당하게 내 길을 걸어왔네!
Yes, it was my way.

그래,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