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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개념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11. 7. 11. 14:43

 

                                                      

              자아의 개념

  무엇을 나라고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대부분 당황하게 된다.

너무 막연하여 마치 어두운 골방에 갇힌 기분이다.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사물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언어적인 개념으로 쉽게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다.

 경험으론 분명하게 나의 존재를 느끼지만 막상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려는 순간에 어려움이 몰려나온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 나의 존재를 형이상학적인 실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성장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실제로는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고, 그것을 나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밖의 소리를 들을 때, 소리를 듣는 '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소리를 듣는 순간은 곧 변하지만 소리를 듣는 '나'는 변하지 않는, 실체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현상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을 나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이런 입장은 인도의 정통철학이나 서구 철학에서도 있었다.

세상이 변해도 나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것은 육체적인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존속한다고 믿는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실체가 있다는 관점이다. 

사실 과학사도 이런 변하지 않는 분자나 원자와 같은 더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

세계의 제일원리를 찾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변하지 않는 물질의 입자란 사실은 에너지의 형태이고, 그것의 본질은 끊임없이 변하는 물결과 같은 파장에 불과함을 인정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입자의 존재에 대한 가설은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낸 허구임이 증명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이름이고, 실제로는 그 존재의 위치나 속도를 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것이다.

 이것이 사물의 본질이라는 입장이다. 

 

  무엇이 나인가? 만약 정해진 불변의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왜 나는 정확하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명상이란 '새로운 과학'을 통해서 인식하게 되는데, 그 결과 불교에서는 영원하고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자아란 발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초기불교의 교설은 바로 이런 명상의 방법을 설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사용되는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잠정적으로 가설된 이름일 뿐이지 실제로 존재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실체가 결여된 문법적인 허사인 것이다.

 이를테면 뜨거운 것을 만진 아이는 <앗, 뜨거워!>라고 외친다.

결코 <앗, 나는 뜨거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 있다가 <누가 뜨겁다는 것이야>라고 질문을 하면 그때야 비로소 <내가 뜨거웠지 누구야?>라고 반문한다.

 

  여기서 보듯이, '나'란 사회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용어이다.

 문법적으론  지시대명사나 허사의 일종이다.

그것은 명사나 동사를 연결하는 관계어이다.

이점은 발달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증명되고 있다.

 대상관계이론에서 자아의 개념은 어머니와 같은 의미있는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자아란 절대불변의 개념이 아니라, 형성되고 형성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자아의 이미지는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변한다.

 

  하지만 언어를 사용할 때는 그것의 차이점을 모두 생략하고 '나'라고 한다.

일관되고, 변하지 않는 고정된 자아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줄기찬 노력을 하지만 우리는 좌절하곤 한다. 그것의 본질은 변화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인가?> 이 질문에서 고정되고 변화되지 않는 실체를 찾으려한다면, 답답하고 숨이 막혀올 것이다.

 본래 대답할 수가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쉽게 대답할 수가 있다.

 

  이것은 경험이고, 경계가 있고, 눈으로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바로 <지금 여기>의 사건이다.

때문에, 나란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경험 자체로서의 침묵이다.

나란 보이지 않는, 경험할 수 없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 여기를 살 뿐이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관계없이, 우리는 지나가버린 과거의 신라시대나 혹은 오지 않는 수세기의 미래를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무엇이 나인가라는 화두는 우리로 하여금 지금 여기의 코끝을 향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 지혜의 글에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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