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이야기/내가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82화) 열두 번째 상가주택에서 생긴 이야기
복지 - 날마다 좋은 날이 되소서
2020. 8. 23. 06:59
(82화) 열두 번째 상가주택에서 생긴 이야기
헬스클럽 이전 확장 후부터 매달 경영 관리 유지비가 갑자기 급증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에어로빅장 규모가 작았으니 처음은 선생도 필요 없이 나 혼자 시작했고, 이후 회원이 불어나 새벽 타임과 저녁 타임에만 다른 선생이 필요하였다.
여기 이전하기 전에도 흥부네 에어로빅장이라 부를 만큼 회원들이 엄청나게 많아도 시설이 형편없었으니, 수입은 많았고 지출은 적어 실속이 매우 좋았고 경영도 혼자 해도 규모가 적어 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이전 확장한 후부터는 집세부터 비싼 곳이며 시설도 완전 달라서 그게 따른 관리 유지비가 이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나게 급증해서 사실 실속 없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였으나 어쨌든, 월말이면 목돈 마련에 엄청난 고민거리가 되었는데 회원마다 각각 다른 수강비 날짜라서 매일 푼돈을 모아 월말 지출금을 마련하는 것도 문제지만, 난 새벽 타임과 저녁 타임 시간에는 아예 나올 수 없으니 회원들 얼굴과 이름조차도 모르니 수강비 날짜가 언제인지? 누가 요즘 결석하고 있는지? 결석하는 회원에게는 안부 전화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을 난 그런 세심함에 매우 부족한 편이다.
그럴수록 입출금 장부 정리가 매우 필요한데 난 애당초 어릴 적부터 가장 싫어한 과목이 수학이라 장부 숫자만 봐도 어질하고 더구나 우리 집 생활비와 뒤섞여 여러 가지가 뒤엉켜 어려움도 많았다.
난 오직 회원들과 교육생들에게 선생으로 가르침과 그리고 매주 에어로빅댄스 안무 만들기도 바빴으며 우리 집안일에 4명의 우리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몹시 벅찼다.
그러니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헬스클럽 맡아서 회원 관리도 하고 세심한 장부 정리 입출금을 해줘야 했는데 그 일을 B 선생이 맡아서 해 주는 것이다.
B 선생은 매우 착실하면서 가장 오래된 고참 선생인데 내가 늘 바쁘게 뒤죽박죽 하루를 살고 있으니 B 선생은 그런 내가 우려되는지 자신 스스로가 매일 은행 예금도 하면서 세심하게 장부 정리를 잘해 회원이 이틀만 안 나와도 단번에 안부 전화를 하는 모든 일을 총괄하였다.
그녀는 큰언니 리더로 헬스장 주말 대청소도 지시하면서 휴지 한 장도 알뜰하게 살림을 잘하였다.
이런 체계가 순조롭게 바통이 밑으로 이어지면서 만약 B 선생이 나가면 다음 고참인 C 선생이 맡고, 그리고 D 선생이... 계속 이어가 모두가 나의 손발이 되어 주니 난 오직 운동 안무와 교육에만 집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을 믿어주고 아예 장부를 맡겨버린다.
그들의 특권이라면 회원들 수강비 날짜 서비스를 더 주어도 난 절대 간섭하지 않았으니 그럼으로써 되려 회원들은 나보다 회원들과 선생들 사이가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선생도 처음은 그런 자기 권한이 매우 좋을 줄 알았으나 매일 수강료 푼돈을 모아 월말 총지출금을 모두 정리한 후에 나머지 잔액 장부를 보고하는 부담은 지난달보다 이번 달 수입금을 더 만들고자 노력하니 무조건 서비스를 더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한 명이라도 회원 수가 줄지 않도록 결석하는 회원들에게 안부 전화에 노력하였다.
선생도 그런 간접 경영을 해 봄으로써 경영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어 나보다 더한 주인 의식이 생겨 나를 더욱 이해하고는 경영자인 내가 되려 존경스럽다고 그런다.
여성 전용 에어로빅 헬스클럽이니 회원들의 성격도 다양하고 이런저런 일도 많았다.
A 회원은 세 명의 아들을 두셨는데 모두가 혼기를 훌쩍 넘긴 골치 아픈 노총각들을 점찍은 선생이나 교육생에게 처음은 점심 식사를 챙겨주시더니 갈수록 금목걸이, 보석 반지, 18K 발목 발찌 등등 비싼 선물 공세가 지나쳐 회원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골치 아픈 노총각 세 명의 아들을 한꺼번에 장가보낼 작정한다며 모두가 쑥덕거렸다.
B 회원 남편은 높은 고위직 공무원인데 그 시절에는 요즘과 달리 남편 직위 따라 덩달아 갑질하는 경향도 있었다.
성격도 매우 까다롭고 선생들에게 본인의 잡다한 개인 심부름도 당연한 듯이 시켰으니 다들 질색하면 싫어했다.
어느 날부터 B 회원이 계속해서 결석하셨는데 평소 같으면 B 선생이 결석 안부 전화를 했을 텐데, 갑질하는 사모님 꼴? 이 싫어서 그런지 B 선생도 안부 전화하지 않았단다.
그분은 내심 나를 비롯해 선생도 매우 괘씸한 생각으로 전화를 기다렸으나 무심한 성격인 나를 비롯해 B 선생까지 소식이 없으니 매우 화가 나셨는지 하루는 내가 헬스클럽에 들어서니 그분은 우리 학원에서 완전히 나갈 생각인지 본인의 비품을 가방에 주섬주섬 담고 있었다.
< 어머나!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안 보이시더니 무척 바빠 나 봐요? 아니면 어디 외국이라도 다녀오셨나요?>
< .... >
그분에게 아무렇지 않은 무심한 내 인사에 되레 당황하며 아주 어이없다는 듯이 맥없이 주워 담던 가방마저 바닥에 툭 떨어드리면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하였다.
<아니 여태 전화 한 통 없다가 겨우 하는 말이... 무척 바빠 나 봐요? 어디 외국이라도 다녀오셨나요. 어떻게 그런 말을.... >
그 후에 그분은 망설이다가 비로소 그간 있었던 일을 솔직히 털어놓으셨는데, 매일 전화를 기다리다가 매우 괘씸해서 다른 에어로빅장으로 가셨단다.
우리 학원에서 몇 년 동안 다니셨으니 거울이 잘 보이는 앞줄 본인 자리에서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우리 안무에 익숙했는데 다른 곳으로 옮겨보니 어딜 가나 처음부터 거울 앞줄에 설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음악은 같아도 에어로빅 안무가 완전히 달라 스트레스를 그간 엄청나게 받았단다.
그렇다고 스스로 먼저 올 수도 없어 핑계 삼아 소지품을 찾으러 온 것인데 내가 어처구니없는 말을 해서 여태 혼자 속앓이한 본인이 기가 막혀 입을 딱 벌어졌다고 하였다.
그 후로 회원들끼리 불만스러운 뒷말하면 앞장서서 말린단다.
"여기 관장은 회원이 일주일이나 결석해도 전화 안부 한 통 없어 섭섭해서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보다!"
"아예 그런 생각 버려라. 나도 2달이나 전화 기다려 봤지만, 소용없더라. 그래서 괘씸해 다른 곳으로 옮겨도 봤으나 다른 곳에는 여기처럼 5타임이 없어 결석도 자주 하게 되고 아주 불편해. 굳이 나가봐야 나처럼 손해더라고! 여기 관장이 결석한 회원에게 전화 못 하는 것은 무심해서가 아니라 매우 바쁘게 사니 우리가 이해해야지!"
그런 소문이 도움이 되어 전화 안부 없어도 삐침으로 안 나오는 회원들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C 회원은 화투를 무척 좋아하시는 분인데 운동 끝나면 휴식 공간 바이오 방에서 모여서 화투 놀이를 자주 하였다.
그런 점에 미안한지 선생들에게 점심도 배달시켜주고 화투 게임이 끝나면 맥주도 한 잔씩 돌리는 선심도 섰으나 잘못했다가 건전하지 못한 분위기로 변할 것 같아서 처음은 경고만 했으나 내가 없을 때는 화투판을 벌이는 일이 잦아 더는 안 될 것 같아 그들 모두를 내보내게 되었는데, 매우 화가 났는지 엉뚱한 소문도 만들어서 회원 한 명이라도 더 부추겨 데리고 나가고자 했었다.
또한, 여성 에어로빅 헬스장이다 보니 음란 전화가 많았는데 매일 운동 시간에 걸려와 이상한 신음을 내는 남자들로 나이 어린 교육생들이 이런 전화를 받으면 몹시 당황하고 진땀 빼면 얼른 끊어버리면 더 신났는지 계속해 걸려온단다.
난 그럴 때마다 전화기를 매우 시끄러운 대형 스피크 앞에 두고는 운동 시간이 끝날 동안 그대로 방치해 버린다.
요즘 전화는 자동으로 끊을 수 있으나 그 시절 전화는 상대방이 전화를 끊어주지 않으면 계속 통화음이 뚜~뚜~뚜~ 계속되는 시절이라 올 적마다 그런 식이니 재미가 시무룩한지 음란 전화도 서서히 사라졌다.
난 바쁘게 살다 보니 단 한 번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 동창회 모임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부산 출신이라 대구도 아닌 부산까지 동창회 참가는 아예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어쩌다 부산 친정에 갈 적에는 친한 친구들과 잠시 볼 뿐인데. 동창생들은 나이가 들수록 안부도 궁금하다며 동창회에 한 번씩 나오라는 통보가 계속 왔었다.
부산 동창회까지는 갈 수 없으니 대구에 사는 몇 명의 동창생 모이는 모임에라도는 한 번씩 나가기로 하였다.
동창생 모임이 주중의 점심 식사 시간이라 난 오전 2부 에어로빅 수업을 마치고 아주 급하게 샤워하고 머리는 물기가 덜 마른 체 택시 속에서 겨우 로션과 립스틱 정도만 허둥대어도 항상 지각이니 옷차림은 아예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동창생들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날짜를 맞추어 미리 머리 손질도 하고 예쁜 옷에 귀금속 치장에다 명품 가방까지 완벽하게 곱게 차려입고 나온다.
그래도 맨날 회원들, 교육생 앞에서 엄격한 선생으로 또는 집안일에만 파묻혀 살다가 그날은 다 내려놓고 여고 시절로 돌아가니 원래 내 이름도 불러주어서 좋았고, 옛날 시절로 돌아가 수다를 떠는 날이라 즐겁고 유쾌한 날이 되었다.
이번 모임은 부산 동창회에 가보자는 의견이 모여 드디어 처음으로 부산 동창회 가는 날이라 평소 편안한 운동복과 운동화 차림에서 모처럼 정장 차림에다 귀금속까지 곱게 치장하고 나서니 그날은 오직 나만을 위한 화려한 외출? 이 되었다.
여고를 졸업하고 우리 첫 딸이 대학교 졸업할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 와 보는 여고 동창회 참석인지라 세월이 흘러 누가 누구인지 도무지 졸업 앨범 없이는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 자신은 늙은, 줄도 모르고 살다가 동창생들 얼굴을 보니 비로소 내 나이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날 내가 느낀 점은 동창생 동기들이 아무리 좋은 명품 옷과 귀금속을 두르고 나와도 누가 편안하게 잘 살아왔는지? 누가 고생하고 살아왔는지? 점쟁이가 아니라도 얼굴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여고 시절에 얼짱인 어떤 애보다는 그 당시별 인물이었으나 그간 굴곡 없이 잘 살아왔는지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어릴 적 얼짱보다는 신수가 훤한 현재 그 동기생이 더 있어 보이는 인물이 된 것 같았다.
아무튼, 같은 나이일진대 지나치게 늙어버린 동창생, 아직도 변함없는 동창생, 나이가 십 년 차이까지 느껴질 정도로 보였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동창생들 만나니 그 시절로 돌아가 그날 마음은 이팔청춘 같았다.
그리고 그날 알게 된 깜짝 놀란 사실은 A 동창생이 여고 시절 국어 선생님(별명이 고자 선생님)이 놀랍게도 실제 딸이란다.
"헉 ~"
난 너무나도 놀라 얄개 시절에 얼토당토않은 내가 일으킨 기막힌 사건이 떠올랐다.
(자서전 24화 참조. 어떤 부분이라도 쉽게 찾는 방법은, 왼편 카테고리 그 분류에서 처음 숫자로 돌아가면 더 빠릅니다)